하지만 목표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면, 계획을 수립할 수 있을까? 경제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이 커지게 된다면, 복잡성 역시 증가할 것이다. 조지메이슨대학교의 경제학자 알렉스 태배럭(Alex Tabarrok)은 이렇게 정리한다. “컴퓨팅 능력이 더 발전한다고 해서 복잡한 경제를 손쉽게 완벽히 체계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컴퓨팅 능력이 더 좋아지면, 경제는 그만큼 더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굿하트의 법칙(Goodhart’s Law)이라는 문제도 있다. 경제학자인 찰스 굿하트(Charles Goodhart)의 이름을 딴 이 법칙은 어떤 데이터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용되는 순간, 본래의 데이터가 가졌던 세상을 설명해 주는 척도로서의 기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학자 유용딩(餘永定)은 대약진 정책 기간에 실제로 이런 현상을 목격했다. 당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철의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러자 중국의 철 재고 상당량이 허름한 용광로에 투입됐고, 품질이 낮은 선철이 생산됐다. 유용딩은 현재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자문 위원인데, 이 위원회에서는 5개년 단위의 국가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상당히 광범위한 규모의 이 계획을 지지하는 유용딩은 미시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완전히 회의적이다. “신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을 일일이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하이에크라고 해도 이보다 더 뛰어나게 표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람의 얼굴에 붙어 버린 화면
중국의 지도부도 정교한 경제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유용딩처럼 확신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가 아닌 정치를 통제하는 일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문제라면, 우리의 예상대로 중국 정부는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심은 직접적인 억압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신장 지구에서 볼 수 있다. 이곳은 주민들의 대부분이 무슬림 소수 민족인 위구르족이다. 신장 지구의 도시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주민들은 검문소에서 반드시 신분증을 보여 주어야 하며, 얼굴을 스캔해야 한다. 스마트폰에는 경찰이 위치를 추적하며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앱을 설치해야 한다. 이런 방식은 수십만 명의 위구르족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두는 대신에 택한 차선책이 아니다. 거대한 규모의 수용소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보다는 더 완화된 방식이지만 영향력은 더 큰 정보 기술도 사용되고 있다. 중국 전역에서 검열관들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경찰은 대중적인 담론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서 하는 이야기를 보면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는 국가가 “출력 적법성”을 갖추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정보다. 대중적인 담론을 조작할 수 있다면, 또 하나의 통제 수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회 신용 체계”가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아직 단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이 제도는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사람들에게 신뢰도 점수를 매긴다.
끔찍한 상상을 좀 더 해보자. 이 지점에서 겨우 몇 걸음만 더 가면 사람들은 보그 종족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생물학적인 도구를 몇 가지 이식해서,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들을 수 있고, 불확실한 것들을 결정해 주고, 모든 기본적인 욕구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면,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사이버네틱 개미집 안에 살게 될 것이다. 물론 조금은 비현실적이다. 독재자들이 초연결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면, 경제 정책 입안자들과 비슷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에서도 어떤 변화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단지 소셜미디어 때문만은 아니다. 홍콩은 아주 좋은 실례다. 샬리지와 공동으로 저술 활동을 하는 헨리 퍼렐은 최근 블로그 포스트에서 AI를 통한 사회 공학적 접근은 잘못될 위험이 높다고 지적한다. AI 시스템은 실수를 하고 편향을 만들어 낸다. AI로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되는 일도 나쁘지만, 통제를 위해 AI의 통찰력에 의존하는 정부에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퍼렐은 이렇게 썼다. “머신러닝은 권위주의 정부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권위주의를 넘어서
기술이 독재를 강화하는 상황이 아닌 기술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상황에서도 비슷한 기술들이 거론된다. 소셜미디어는 “입소문”에 대한 욕구를 이용해서 상업적인 이익을 추구한다. 그래서 소셜미디어에는 대중적인 정보 처리 과정에 컴퓨터 바이러스에 해당하는 정보를 주입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거짓 정보, 감정 배설, 인식 파괴를 통해 결과를 깎아내리고 왜곡하는 것이다.
이보다는 거부감이 덜한 방식들도 있다. 사회적 신용에 점수를 매긴다거나 복잡한 감시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은 권위주의 국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람들은 기업이 개인의 모든 움직임을 추적하는 일을 기꺼이 허락하고 있다.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사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개인적 특징에 점수를 매겨 프로필을 만들고 있다. 국가의 감시는 이제 자기 관리라는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400개가 넘는 경찰서가 아마존과 계약을 맺고 아마존의 영상 초인종 서비스인 링(Ring)에 연결된 카메라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는 이를 “감시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 질서”라고 말한다. 중국에서 성장하고 있는 방식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망원경에서 보였던 지구의 녹색 덩어리들 중에서 가장 커다란 것 하나를 찾아가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다. 애플은 감시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천사의 편에 서 있다. 애플보다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대 테크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을 때는 실수를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느긋하고 편안한 고위 임원들의 모습을 보면, 애플이 원래 반문화적인 곳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
애플의 본사는 거대한 원형의 유리 건축물로, 밝고 깨끗하며 아름답다. 건물은 아주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이다. 하지만 그 내부로 들어가 보면, 단순한 독특함 이상의 느낌을 받는다. 건물은 놀라울 정도로 투명하다. 바닥은 멀리까지 휘어져 있고, 이 건물의 반대편이 있는 직원들이 중앙 정원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건물이 투명한 것과 개방성은 엄연히 다르다. 건물의 출입구를 통과하려면 카드를 인식시켜야 한다. 잘 숨겨져 있기는 하지만, 카메라가 모든 곳을 비추고 있다. 2017년에는 직원 한 명이 해고를 당했는데, 어린 딸이 애플의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아이폰 동영상으로 찍었다는 이유였다. 동영상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되거나 온라인에 게시된 것도 아니었다.
비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건축가인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한 이 건물은 종종 우주선과 비교되기도 한다. 이러한 비유가 특히나 인상적인 이유는 이곳 하부에 700개의 강철 원판으로 만들어진 내진 시스템이 있어서 지진이 발생하면 이 건물을 지각으로부터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건물은 발사를 준비하고 있는 비행 물체인가? 아니면 완전한 네트워크와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갖고 아주 잘 통제된 미래를 출발해 과거로 날아와서 거의 대부분의 현대인들로부터 환영을 받으며 이제 막 조용한 해안에 착륙한 침략 세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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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계산 논쟁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양쪽 진영이 서로 얼마나 동의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은 기계와 같은 효율성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그 효율성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신장 자치구를 탄압하는 것에 대해 격노하는 일과 현대의 바쁜 사람들이 알렉사(Alexa)나 시리(Siri)의 결정과 데이터에 항복하는 것에 대해 느끼는 참담함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개인의 삶에서 통제와 예측 가능성을 원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을 통제한다는 개념 사이에는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다. 별생각 없이 쫓아가다 보면, 비슷한 문제점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별생각 없이 적응하게 만드는 것이 자동화의 핵심이다.
가치라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생각할 여지를 갖춘 시스템을 설계할 수도 있다. 효율성이 쉽게 훼손되는 원인이 무엇이고, 그로 인한 결과가 무엇인지 토론할 수 있는 영역을 마련하는 것이다. 칠레의 프로젝트 사이버신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자. 물론 그 제어실이 통제를 위한 공간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곳은 동시에 토론의 공간이기도 했다. MIT의 에덴 메디나(Eden Medina)는 저서 《사이버네틱 혁명가들(Cybernetic Revolutionaries, 2011)》에서 사이버신은 목적과 수단과 가치에 대한 토론을 촉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인간과 기계를 한자리에 모으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이버신은 경제의 민주주의를 위한 플랫폼이었다. 사이버신을 만든 사람들은 국가 전역에 비슷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노동자, 관리자, 관료 등이 각자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 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일반적인 키보드가 아닌 커다랗고 기하학적인 버튼을 갖춘 키보드를 설치했다. 타이핑에 익숙한 사무직뿐 아니라 손가락이 두꺼운 노동자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선택과 토론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개념은 중요하다. 세계를 플랫폼 위에 올려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거나, 플랫폼을 기반으로 운영한다는 아이디어가 테크 산업에서 말하는 유비쿼터스적인 특징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플랫폼은 매우 다양한 형태일 수 있다. 운영 체제일 수도 있고, 온라인 마켓일 수도 있고, 소셜네트워크일 수도 있다. 다만 플랫폼은 언제나 그 위에 다양한 것들을 올려놓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상들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규정한다.
계획 입안자나 규제 당국이 개입하고자 한다면, 플랫폼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플랫폼은 관례가 법령이 되는 곳이고, 시장의 메커니즘이 명시되는 곳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초기의 인터넷이다. 당시에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그들이 특정한 기술 표준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만들었다면, 지금과 같은 인터넷의 혜택은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시각에서 계산 논쟁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이 논쟁은 계획과 시장 모두를 현재 우리가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취급하면서, 서로 비교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프로그램들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생각해 보자. 이전과는 많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시장은 수많은 다양한 프로세스들을 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된다. 계획적인 접근 방식은 훨씬 더 엄격하게 규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거대하지만 점점 더 커지고 있는 플랫폼은 권력과 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것들의 원천이다. 정치에서는 이미 뜨거운 이슈가 된 상거래 규제뿐 아니라, 플랫폼이 구현하고 장려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서도 플랫폼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작가이자 연구자인 예브게니 모로조프(Evgeny Morozov)는 최근에 발표한 논문 〈디지털 사회주의?(Digital Socialism?)〉에서 플랫폼 경제의 “피드백 인프라”에 대한 통제권을 정부가 다시 장악하도록 좌파가 압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뉴욕에 있는 뉴스쿨의 연구원인 트레버 숄츠(Trebor Scholz)는 훨씬 더 많은 플랫폼들이 협동조합에 의해 운영되기를 원하고 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문제는 있다. 하지만 예측 능력과 자기 감독 능력이 결여된 시장이 공리에 맞는 플랫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예상한다면, 너무 낙관적인 전망일 것이다.
대부분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플랫폼 세계는 다원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디지털 신분 체계나 디지털 통화와 같은 일부 기본적인 플랫폼의 경우에는 정부가 소유하거나, 최소한 정부가 치안 유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다른 플랫폼들은 사용자와 시민 사회가 관리하고 감독해 (AI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원죄와도 같은) 편향과 사생활 침해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인터넷, 오픈소스 운영 체제인 리눅스, 위키백과 등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표준 기구나 자발적인 개발자 그룹에 의해서 아주 잘 관리되는 대표적인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데이터를 직접 소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의 행적은 암호 화폐에 사용되는 블록체인 기법으로 코딩되어야 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제학자인 글렌 웨일은 플랫폼들의 건강한 연합체를 통해 의사 결정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연대가 있다면 계획에서도 새로운 방식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적인 합의가 필요한 플랫폼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웨일은 새롭고도 기발한 투표 방식을 만들었는데, 새로운 플랫폼에서 빨리 사용하기를 바라고 있다.)
모든 것을 플랫폼의 관점에서 본다고 해서 반드시 밝은 측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플랫폼이 모든 것들을 포괄하려면, 수많은 가치를 하나의 체계로 정리할 방법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보르헤스의 도서관이 필요할 것이다. USS 엔터프라이즈호가 속해 있는 행성 연방(United Federation of Planets)과 같은 우호적이고 고결한 동맹과 비슷한 웨일의 건강한 플랫폼 연합체라는 아이디어는 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하나의 희망 사항이다. 그러한 새로운 삶과 새로운 문명을 찾기 위한 탐험을 떠나려면, 활발한 정치적 프로세스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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