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기업의 지배/ 세계 상위 25개 기업 시가 총액(단위:조 달러)/ 알파벳,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익 성장세, 중간값, 전년 대비 성장률, %/ 자료: 블룸버그
따라서 경기 침체에 대한 IT 공룡들의 대처는 중요하다. 투자자들은 이런 기업들이 난공불락이라고 생각하겠지만, IT 기업들도 디지털 시대 이전부터 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광고, 소비 지출, 그리고 기업의 IT 부문 지출 등 주기를 타는 매출에 상당히 노출돼 있다. 물론 새로운 사업 모델은 어느 정도는 방패 역할을 해줄 것이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실직한다면 온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 아마도 광고주들은 디지털과 관련한 지출을 쳐내기 전에 TV, 신문 그리고 광고판에 대한 지출을 삭감할 것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인한 고통이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증거들이 있다. 2000~2002년과 2007~2008년 경기 침체 당시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은 급격하게 추락했다. 스마트폰 판매는 이미 줄고 있다. 경기 침체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기기를 사고팔지 않고, 이미 갖고 있는 기기를 더 오래 사용하게 만들 것이다. 견고한 대차 대조표는 안전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다섯 개 IT 기업의 순현금 자산은 2700억 달러(326조 9700억 원)에 달한다.
거대 IT 기업들에 이어 또 다른 반란 세력도 부상하고 있다. 에어비앤비(Airbnb)와 우버(Uber)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을 연결해 과금의 기회를 만들고 있다. 렌딩클럽(LendingClub)과 소피(SoFi) 같은 금융 혁신 기업들은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여윳돈이 있는 사람을 연결해 수백만 건의 대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간편식부터 화장품까지 어떤 것이든 배달해 주는 구독 사업은 번창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첫 번째 쇠락을 경험할 것이다. 일부는 문을 닫게 될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예상만큼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2015~2016년 브라질 경기 침체 당시 우버 승객은 급격히 줄었지만, 더 높아진 실업률로 자금난에 처한 운전 기사는 더 늘었다. 우버는 비용을 줄이고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경기 침체로 더 많은 사람들이 현금을 벌기 위해 집을 빌려주게 된다면, 에어비앤비는 호텔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올 수 있을 것이다. 위기는 ‘옛날 방식’, 즉 디지털이 아닌 부문의 경제 쇠락을 앞당기면서 IT 기업들에게는 그다지 큰 충격을 주지 않을 수 있다.
IT 시장에 뛰어든 곳들 가운데 가장 취약해 보이는 분야는 ‘소규모 럭셔리’를 제공하는 업체들이다. 꼭 사지 않아도 되는 품목들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빠르게 포기할 수 있다. 딜리버루(Deliveroo, 음식 배달 업체)를 제외하고 버드(Bird, 전기 스쿠터 렌트 업체)와 펠로톤(Peloton, 운동용 자전거 구독 업체)은 재정적인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이처럼 고정비가 높은 업체들은 특히 수요가 쪼그라들수록 어려움에 처할 위험이 크다. 기술 기반 부동산 업체인 위워크(WeWork)는 앞으로 15년가량 470억 달러(56조 9405억 원) 규모의 임대료를 지불하기로 돼 있다. 이런 회사들은 철수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경기 침체를 전혀 겪어 보지 않은 30세 기술 기업 창업자라면, 모든 것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비용 절감은 이들의 교과서엔 없는 말이다.” 컨설팅사 베인(Bain)의 톰 홀랜드(Tom Holland)의 말이다.
무자비한 비용 절감은 실리콘밸리의 강점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가 꺾일 때, IT 이외의 산업에 속한 기업들의 교과서에는 늘 포함되어 있는 방법이었다. 가장 최근의 불황기, 미국 기업들은 주주들을 지키고 채무 불이행을 막기 위해 노동자를 해고하고 임금을 깎는 방식으로 인건비 7퍼센트를 삭감했다.
긴축 게임
이제 운신의 폭은 더 좁아졌다. 일부 원인은 달라진 비용 구조다. 예를 들어 연간 2000억 달러(242조 3000억 원)가 넘는 IT 부문 지출은 AWS(Amazon Web Services)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엔 10년에 한 번씩 대규모 서버 구축에 엄청난 비용을 썼다면 이젠 분기별로 서비스마다 사용한 소프트웨어에 대한 청구서가 도착한다. 이는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약 회사가 파산한다면 살 사람이 없는 하드웨어를 파는 일보다 클라우드 청구서에 돈을 지불하는 일이 훨씬 간편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설비 투자를 미루면서 생긴 현금을 쌓아두느라 유연성을 잃고 있다.
동시에 사회적인 환경도 달라졌다. 2019년 미국의 대규모 기업 181곳의 대표들은 기업 오너뿐 아니라 고객, 직원, 공급업체, 그리고 지역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책무(fundamental commitment)’를 약속했다. 많은 기업 대표들은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선언을 떼어 내 버리면 그만인 장식품으로 생각했다. 경기 침체로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일자리가 국외로 빠져나가 정치적 포화를 맞을 때, 이 선언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당신은 사람들이 해고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겁니다. 특히 당신의 회사가 여전히 수익을 내고 있을 때라면 말이죠.” 한 유럽 기업의 리더는 말했다. “해고는 최후의 보루가 될 겁니다. 우리는 해고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조금 더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변화는 침체가 없었던 장기 호황 기간에 기업들이 나쁜 습관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도한 부채 혹은 고약한 비밀을 숨기는 식이다. 이런 문제들은 대부분 고치기엔 너무 늦었을 때 발견된다.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당시 족벌 자본주의는 부채와 통화 불일치로 무너졌다. 2000~2001년엔 닷컴 회사들의 붕괴와 엔론(Enron), 월드콤(WorldCom)의 분식 회계가 있었다. 그리고 2007~2009년에는 부패 위에 세워진 은행들이 무너졌다.
이러한 재앙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일반적인 경고 신호는 있다. 오랫동안 끌어온 인수 협상들이 마무리되면서, S&P 500 상장 기업들의 영업권(인수자가 지불하려던 금액과 실제 장부 가치의 차이)은 역대 최고인 3조 6000억 달러(4361조 4000억 원)를 기록했다. 이런 수치는 문제를 암시한다. 2000~2001년 그리고 2007~2009년 기업들은 엄청난 영업권 상각을 일으켰다. 기업들은 추후 의심스러운 거래였다고 자백했다.
컨설팅 기업 오딧 애널리틱스(Audit Analytics)에 따르면, 2017년 S&P 500 기업의 97퍼센트는 가장 최근의 경기 침체 이전에 비해 76퍼센트 개선된 결과를 적어도 한 가지씩 발표했다. 그러나 이 성과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회계 원칙인 GAAP(Generally Accepted Accounting Principles)에 저촉되는 결과였다. 이익에 대한 “조정(adjustments)”을 언급한 미국 대기업의 수는 지난 경기 침체 이후 두 배 이상 늘었다.(표4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