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잠들어 있다는 걸 깨닫고는 계속해서 악몽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미국은 이런 상황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민주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에서 미국을 구할 적임자로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를 지명하게 된다면 말이다. 그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샌더스는 뉴햄프셔 경선에서 승리했고, 아이오와에서 거의 이길 뻔했으며, 네바다에서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압승을 거뒀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여론 조사에서는 선전하고 있다.
[1] 이번 주(현지 시간 3월 3일)에는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를 비롯한 14개 주의 대의원들이 할당되는 ‘슈퍼 화요일’이 열린다.
[2] 그는 다른 후보들이 거의 따라잡지 못할 만큼 크게 격차를 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온건파 민주당원들은 샌더스를 후보로 지명하면 대통령 선거에서 패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인들이 샌더스와 트럼프 둘 중에서 한 명을 고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은 전혀 이득이 없는 끔찍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코노미스트》가 자신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과 견해를 달리한다고 해서 놀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샌더스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강하게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수단보다 목적을 앞세우는 위험한 성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미 트럼프가 미국의 정치를 혐오의 광풍으로 몰아넣은 상태에서 샌더스의 당선은 증오를 부채질할 것이다.
경제학적 측면에서 샌더스는 오해를 받고 있다. 그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고, 기업이 책무를 다하게 해야 한다고 보는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호감 가는 사회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탐욕스럽다고 보고, 상당한 수준으로 약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가 내세우는 정책들을 보면 영국 노동당 대표인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마저도 온건하게 보일 정도다. 샌더스는 기업의 지분 20퍼센트를 확보해서 노동자에게 넘겨주고, 연방 정부 차원의 일자리 보장 제도를 도입하며, 기업이 모든 이해 당사자들을 위해서 움직이도록 강제하는 연방 헌장을 제안하고 있다. 무역 정책의 시장 개방과 관련해서는 최소한 트럼프만큼은 적대적인 입장이다. 그는 정부 지출을 두 배로 늘린다는 입장이지만, 세수를 확보하는 방안은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실업률이 기록적으로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고, 고용 시장에서는 하위 25퍼센트의 명목 임금이 4.6퍼센트 상승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경제의 혁명을 요구하는 그의 정책은 미국이 앓고 있는 질병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수단보다 목적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샌더스는 정의로운 사람의 편협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빈곤 감소, 보편적 의료, 탈탄소 경제 등 지극히 합리적인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은 가장 비합리적인 극단의 주장을 펴고 있다
(2화 참조). 그는 민간 의료 보험을 금지하겠다고 말하고 있다[국민의료보험(NHS)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영국에서도 그렇게까지 규제하지는 않는다]. 그는 앞으로 15년 안에 억만장자들의 부를 절반으로 줄이고 싶어 한다. 분별력 있는 생태주의자라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셰일가스 시추 분야에 세금을 부과할 것이다. 하지만 샌더스는 그런 방식을 더러운 타협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그는 셰일가스 시추 사업을 전면 금지할 것이다.
때로는 이런 목적들마저도 샌더스의 정의로움을 위해 희생된다. 빈곤 문제 완화 목적으로 제안한 대학 무상 교육 정책은 오히려 빈곤 문제를 키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장학금이 상대적으로 부유하거나 부유해질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에게 지급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법 입국을 처벌하지 않고 이민 관세 집행국(ICE)을 해산시키겠다는 정책은 국가로서 가장 중요한 의무 중 하나를 저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원자력 금지 정책은 탄소 제로 경제를 만들겠다는 그의 목표에 방해가 될 것이다.
샌더스는 자국 내의 사악한 세력들과는 이렇게도 치열하게 싸우지만, 해외에 있는 미국의 적들에는 종종 동조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쿠바와 니카라과 독재자들의 응석을 받아 주는 듯한 태도를 보여 왔는데, 문제가 있는 그 정권들이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명분만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 온 것이다. 그는 미국이 해외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 회의적이다. 군사적 모험에는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고결한 확신도 한 가지 이유다. 하지만 워싱턴의 기득권 권력자들을 경멸하는 그의 태도도 반영되어 있다.
마지막 문제는 샌더스가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정치 문화에 미치게 될 영향력이다. 미국의 정치적 분열은 트럼프의 출마에 도움을 줬다. 그리고 이제는 샌더스의 부상을 돕고 있다. 민주당 내의 좌파 성향 당원들은 그의 혁명에 열광하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민주당 내 신자유주의 엘리트들의 억압이 사라진다면,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 믿어 왔다. 샌더스의 지지자들은 민주당 내의 샌더스 반대 세력들을 공화당원만큼이나 증오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샌더스의 정치적 스타일을 말해 준다.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과 대면하면, 그는 본능적으로 음모론이 성립할 부분을 찾아낸다. 아니면 상대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규정하면서 자신의 정치 설교를 들어야 올바르게 정리될 것이라고 말한다. 민간 보험을 금지시키기 위해서 의회를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으면(미국인의 60퍼센트가 반대하는 정책이다), 샌더스는 그 법안에 반대하는 상원의원들의 지역구에서 그들이 동의할 때까지 집회를 열 것이라고 대답한다.
대통령이 의회를 통과하지도 못할 극좌 정책을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집회를 열게 된다면, 미국의 분열 양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은 좌절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정책이 의회나 법원에서 저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망령에 대한 공포를 주입당해 온 우파는 사회주의자가 실제로 백악관에 입성해 있는 광경을 보고 훨씬 더 큰 분노를 느낄 것이다. 샌더스가 시험하려는 제안들은 사상 초유의 격렬한 분열 양상을 초래할 것이다.
민주당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주류에서는 샌더스가 그렇게 나쁜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가 내세우는 정책의 상당수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샌더스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정책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이런 변명은 우려스러울 정도로 익숙하게 들린다. 트럼프는 대통령의 규제 대상 국가에 대한 장악력, 무역과 외교 영역에 대한 권한이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 그 권력을 이용해서 하려는 일들을 무시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이는 트럼프의 첫 임기가 시사하고 있는 점이다.
엔터 샌더스맨[3]
만약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다면, 미국은 오는 11월에 두 사람 중에서 한 명을 골라야 한다. 한 명은 부패했으며 분열을 조장하는 우파의 포퓰리스트이며, 법치와 헌법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독실한 척하며 분열을 조장하는 좌파의 포퓰리스트로, 모든 잘못의 책임이 억만장자와 기업들에게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역사상 전례 없을 정도로 평화롭고 번영하는 이 시기에 말이다. 이보다 더 나쁜 대결을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깨어나라, 미국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