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미국에서 제안된 좌파 성향 정책들/ 2019년 7월부터 12월, 해당 정책에 대한 지지율(%)*/ 부유층 세금 인상/ 공립 대학교 무상 교육/ 메디케어포올(국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의료 보험)/ 그린 뉴딜/ 민간 의료 보험 폐지/ 노예제 보상금 지급/ 불법 이민자 무상 의료 제공/ 출처: 민주주의 펀드, UCLA 네이션스케이프, 이코노미스트/ * 의견을 밝히지 않은 성인들은 제외.
그는 미국에 맞서는 세력들과 대화한다는 오바마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대화한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도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란과의 핵 협상 재개도 원하고 있다. 그는 아마도 러시아 및 중국과 미국 사이의 불운했던 관계를 재정립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다른 민주당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파리 기후 변화 협약에 미국이 재가입할 것을 약속했고, 기후 변화와의 싸움에서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적대적이었던 트럼프와는 입장을 달리 하고 있다.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손상되는 것을 방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샌더스는 최근 국방 예산을 국가 GDP의 2퍼센트 이하로 조정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국가들을 포함한 나토 회원국에 대해 조약 5조(안보 동맹의 핵심인 집단 안보 원칙)를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대통령은 무역 정책에서도 비교적 제한을 덜 받고 있는 편이다. 샌더스도 트럼프처럼 수십 년 동안 미국의 무역 협정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현할 방안을 찾아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중국을 세계 무역 기구(WTO)에 가입시키는 협정에 반대표를 던졌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WTO를 완전히 탈퇴한다는 법안에도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그는 최근에 체결된 새로운 북미 무역 협정(USMCA)을 “즉각” 재협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외부로 넘기는 것을 막고 임금을 높이기 위해서 미국이 체결한 모든 무역 협정들을 근본적으로 다시 작성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샌더스는 트럼프보다도 더 보호주의자에 가깝다. 그가 USMCA에 비판적인 데에는 협정문에 기후 변화에 대한 언급이 누락되어 있다는 이유도 있다. 샌더스는 과거의 무역 협정들이 노동, 환경, 인권의 기준에 대해서 자신이 우려하는 부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프레임으로 공격하고 있다. 비록 그가 트럼프만큼 변덕스럽지 않고 순수한 의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무역 정책들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할 수도 있다. 외국과의 경쟁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면 국내 기업들은 보다 쉽게 이윤을 챙기겠지만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른 나라들이 시장 제한 조치로 보복할 경우엔 미국 노동자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샌더스의 임기는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지속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 샌더스가 행사할 수 있는 특권 중에는 다른 정책 결정권도 있다. 행정 조치는 내수 산업에서 상당한 수준의 재량권을 줄 수 있다. 민주당 정부 시절의 대표적인 정책들이 다시 시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 행정 조치의 상당수는 철회될 것이다. 느슨해진 환경 보호 규제, 건강 보험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시도, 이민 규제 강화 조치들이 가장 먼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는 환영받을 만한 일이다. 샌더스는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갈 것을 예고하고 있다. 원유 수출을 금지하고,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면서 처방약의 수입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연방 기관 수장 자리에 민주당의 주류가 아닌 이들을 지명할 것이다.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면 내각의 한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인물 중에는 엘리자베스 워런이 있다. 독점 금지와 소비자 보호, 노동 관련 기관에는 워런의 정책들을 열성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이들을 임명할 수도 있다.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Take a chance on me)
샌더스의 지지자들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선거 필패로 이어질 ‘자살 행위’가 아니라 뛰어난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와의 일대일 대결 여론 조사에서 샌더스는 전국적으로 3.6퍼센트 앞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미시간과 위스콘신과 같은 분수령이 되는 주들에서 근소한 차로 트럼프에게 패배했는데, 샌더스는 이들 두 곳에서 각각 5퍼센트와 1퍼센트씩 근소하게 앞서 있다.
샌더스의 지지자들은 그가 선거인단의 규모를 늘려서 새로운 부동층 유권자들을 끌어모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처음 세 군데의 경선에서 그가 얻은 결과를 보면, 많은 유권자들이 몰려들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정치학자인 버클리대의 데이비드 브룩먼(David Broockman)과 예일대의 조슈아 칼라(Joshua Kalla)가 최근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샌더스는 트럼프를 상대로 한 본선 경쟁력이 온건 성향의 다른 민주당 후보들보다 떨어진다. 원인 중 하나는 샌더스가 투표를 할지 말지 망설이는 유권자들의 투표 의욕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런 손해를 만회하려면, 그는 청년층 투표율을 11퍼센트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다시 말해, 2008년에 오바마를 지지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상승했던 것보다 더 큰 폭으로 청년층의 투표율이 상승해야 한다는 의미다.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 투표율 상승폭은 사상 최대치였다.
지금까지 샌더스가 프라이머리(예비 선거)와 코커스(당원 대회)를 치르는 동안 경선에 참여한 민주당의 동료 후보들은 그의 성품에 대한 비판이나 동의하지 않는 정책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 비교적 신사적으로 그를 상대하고 있다. 트럼프라면 그러지 않을 것이고 자제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깎아내리기 위한 광고에 1조 달러 이상의 자금을 퍼부으면서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민주당을 후원하지만 부유하다는 이유로 샌더스가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 과연 트럼프의 디지털과 텔레비전 광고 맹공격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금을 샌더스에게 지원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샌더스가 신혼여행을 갈 정도로 소비에트 연방을 좋아했었다는 사실이나, 셰일가스 추출 금지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나(이는 치열하게 경합 중인 펜실베이니아주의 경제에는 치명적인 정책이다), 민간 의료 보험을 폐지하고 세금을 인상해서 불법 이민자들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게 한다는 정책 등은 모두 네거티브 공세의 뇌관을 터뜨릴 수 있는 것들이다. 게다가 트럼프가 골칫덩어리라는 사실은 이미 많이 보도되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에게 샌더스에 대한 정보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을 수 있다. 즉, 현재 전국 여론에서 나타나고 있는 근소한 우세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다가오는 본선의 판세를 점친다는 것은 추정일 수밖에 없지만, 민주당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은 분명 아니다.
샌더스는 생각보다 더 좋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그가 경선에서 승리한다면, 11월 대선에서는 미국을 1970년대의 스웨덴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에 맞서 위대한 미국을 지키고자 하는 권위주의적 성향의 이민자를 배척하는 우익 세력들이 결집할 것이다. 정치학에는 말굽 이론(horseshoe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극좌 세력과 극우 세력은 생각보다 서로 닮은 경우가 있다는 이론이다. 샌더스가 트럼프처럼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물론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엘리트를 싫어하는 포퓰리즘적인 성향에서는 비슷하다. 트럼프도 그렇지만, 샌더스도 당내의 충실한 일꾼들로부터 깊은 불신을 받고 있다. 그들이 지지하는 캠프와 샌더스 진영 사이에서는 비방이 오가고 있다. 네바다주 경선에서 승리를 거두기 하루 전날, 샌더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공화당의 기득권층에게 알려 드릴 소식이 있습니다. 민주당의 기득권층에게도 알려 드릴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우리를 막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온건 성향의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샌더스가 대선 후보가 되면 의회 장악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물론 올해 선거를 치를 상원의원 지역구들을 보면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6] 민주당은 2018년 메디케어포올(Medicare for All) 대신 오바마케어를 지키고 확대하는 등의 연성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온건 성향의 후보들을 내세워 하원을 장악한다는 계획을 가동했었다. 그 결과 민주당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겼던 지역 31곳을 비롯해 36석 더 많은 다수당이 되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그렇게 얻은 의석들을 저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대통령 선거 투표용지에 버니 샌더스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중도 성향의 싱크탱크인 제3의 길(Third Way)의 맷 베넷(Matt Bennett)은 불법 이민자들에게 무상 의료를 제공한다는 샌더스의 메디케어포올 정책으로 인해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던 의료 정책 부문이 오히려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도시 지역과 대학가에서는 사회주의적 정책이 통할 수 있지만, 교외 지역으로 나가면 그렇지 않다. 교외 지역은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하원의 핵심이다.
[7] 이미 발언을 시작한 이들도 있다. 1978년을 끝으로 민주당 당선자가 없었던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2018년 승리하며 하원에 입성한 조 커닝엄(Joe Cunningham)은 이달 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민들은 사회주의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상대로 세금을 인상하겠다는 버니의 제안”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샌더스가 지난 2월 23일 쿠바 혁명의 주역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을 하자,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플로리다의 거의 모든 민주당 의원들이 그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샌더스는 늘 정치적으로 변방의 견해를 갖고 있었다. (물론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제는 쿠바식 사회주의 정책에 대해 거침없이 칭찬을 하고 있다. 이 사실이 민주당원들을 우려하게 만들고 있다. 민주당의 승리 가능성이 큰 트럼프에 대한 국민 투표 성격의 선거를 민주당의 패배 가능성이 큰 사회주의에 대한 투표로 바꿀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SOS
민주당의 상원 승리는 이미 요원한 일이지만, 과격분자의 이름이 투표용지의 맨 위에 적혀 있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대선과 동시에 치러지는 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대선 후보와 거리를 둘 수는 있다. 그러나 공화당 후보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공화당 소속의 애리조나주 현직 상원의원인 마사 맥샐리(Martha McSally)는 최근 여론 조사에서 민주당 마크 켈리(Mark Kelly) 후보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그녀는 최근에 켈리를 “버니의 형제”라고 지칭하는 광고를 시작했다. 불법 이민자들에게 무상 의료를 제공하겠다는 샌더스의 인기 없는 정책에 켈리를 연결시키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앨라배마주 상원의원인 더그 존스(Doug Jones)의 승산은 제로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트럼프는 인기없는 후보이고, 샌더스가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승리하고 의회에 들어서는 순간, 혁명의 진군 명령을 이행할 수 있는 민주당원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