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녁 식사 자리에서 무역과 글로벌 협력의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두 달 전 서구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폐쇄가 시작되면서 사재기 열풍이 일었고, 빵, 버터, 콩 등 식품 부족 사태를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다. 현재는 슈퍼마켓 선반을 가득 채우는 배송 트럭 부대 덕분에 당신은 영상 몰아보기를 하면서, 폭식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기적은 획일적인 계획 경제가 아니라,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고 있는 8조 달러(9800조 원) 규모의 글로벌 공급망에 따른 것이다. 지금은 수백만 개의 기업들이 아시아의 쌀 공급처 교체부터 냉동고 수리에 이르는 다양한 결정을 즉각적으로 내리는 시대다. 이 시스템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소득이 붕괴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 노동력 부족에서 흉작까지 다양한 리스크들도 있다. 게다가 중국 우한의 시장에서 천산갑(穿山甲) 고기를 판매하면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는 위기에 식품 업계가 맞서 싸우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식품 네트워크는 지금까지 어려운 테스트를 잘 통과해 왔다.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지금,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각국 정부가 독자 행보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아이폰 공급망, 혹은 리오그란데 강을 종횡무진하는 자동차 부품은 놀라운 협업의 산물이다. 하지만 21세기 물류의 숨은 일등 공신은 글로벌 식품 시스템이다
(2화 참조). 대지와 식탁을 잇는 글로벌 식품 시스템은 전 세계 국내 총생산(GDP)의 10퍼센트를 차지하고, 대략 15억 명을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1970년 이후로 지구촌 식량 공급은 거의 세 배가 늘었다. 그동안 전 세계 인구는 두 배 증가해 77억 명이 되었다. 먹을 것이 너무 부족해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는 인구의 36퍼센트에서 11퍼센트로 줄었다. 오늘날 옥수수 1부셸(bushel, 36리터)이나 쇠고기 한 조각의 실질 가격은 50년 전보다 저렴하다. 식품 수출은 지난 30년 동안 여섯 배 늘었다. 다섯 명 중 네 명은 부분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식품의 칼로리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이러한 현상은 정부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지, 정부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역할이 작아지긴 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때로는 가격을 고정하고 유통을 통제한다. 유럽 연합(EU)의 수입 농산물 관세는 비농산 수입품의 네 배다. 미국, 인도, 러시아, 베트남을 포함한 10여 곳의 대형 수출국들은 밀이나 쌀과 같은 주식 작물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의 카길(Cargill)이나 베이징의 중량그룹(COFCO)과 같은 몇몇 무역 회사들은 세계 곳곳으로 식품을 실어 나르고 있다.
기후 및 원자재 시장의 불안정성, 기업 집중 현상과 정부의 개입을 감안하면 식품 공급 시스템이 얼마나 정교하게 조율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곧 시스템이 오작동할 경우에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2007~2008년에는 흉작과 에너지 비용 증가로 식품 가격이 올랐다. 이에 각국 정부는 식량 부족을 우려하며 수출을 금지했다. 불안감은 더 커졌고 가격은 폭등했다. 그 결과 신흥 세계에서는 폭동과 고통의 물결이 일었다. 비료 가격 상승과 미국과 캐나다, 러시아의 악천후로 식량 생산이 줄었던 1970년대 이후 최악의 식량 위기였다.
(코로나19로 인한)충격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이 시스템의 각 계층은 적응하고 있다. 곡류의 공급은 최근의 수확과 매우 높은 수준의 재고량 덕분에 유지되고 있다. 해운 회사와 항만들은 계속해서 대량의 식품을 옮기고 있다. 외식 문화에 변화가 일면서 일부 기업들은 심각한 결과를 맞았다. 맥도날드는 유럽 내 매출이 약 70퍼센트 감소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사업 범위를 줄이고 유통망을 개편했다. 아마존의 식료품 전자 상거래 규모는 60퍼센트 증가했고, 월마트는 15만 명을 새로 채용했다. 결정적인 요인은 대부분의 정부들이 2007~2008년 금융 위기 당시의 교훈을 바탕으로, 보호주의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칼로리 기준으로 과거 수출 식품의 19퍼센트였던 규제 대상은 5퍼센트로 줄었다. 현재까지는 식품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테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식품 산업이 세계화되면서 집중 현상은 심화됐고, 병목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 내 다수의 도축장에서 코로나19가 발병하면서 돼지고기 공급량은 25퍼센트 줄었다. 반면 인디애나주의 야생 칠면조 사냥 허가는 28퍼센트 증가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수확 철이 되면 멕시코, 북아프리카, 동유럽에서 오는 100만 명 이상의 이주 노동자가 필요하다. 유엔의 계산에 따르면 경제가 위축되고 소득이 주저앉으면서 극심한 식품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수는 세계 인구의 1.7퍼센트에서 3.4퍼센트로 증가할 수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이 굶주리게 된다면,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이다. 커지는 빈곤과 생산의 문제에 겁먹은 정치인들이 식량 비축과 수출 제한 조치를 단행할 리스크는 상존한다. 2007~2008년처럼 이런 결정은 보복 조치로 이어지고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각국 정부들은 평정심을 갖고 세계 식품 시스템을 비즈니스에 개방해야 한다. 식량을 비축하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생산하는 것을 허용하고, 이주 노동자들에게 비자와 건강 검진을 제공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현금을 지원해 도움을 주어야 한다. 또한 취약한 식품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대형 기업들에게 인수되면 산업계의 기업 집중 현상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이 시스템을 보다 투명하게, 추적 가능하게, (인증 제도나 품질 표준과 같은 방법을 통해서) 책임감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이되는, 추적되지 않는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식량은 국가 안보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이를 왜곡해서 (정부가) 독자 행보를 강화하고 노골적인 개입을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올해 이전에도 이미 식량은 무역 전쟁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은 대두의 수출을 관리하고 치즈에 관세를 부과하려고 시도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도축장을 미국의 주요 기반 시설의 일부로 지정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이 농업에 있어서 “전략적인 자율성”을 구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식량 자급자족은 망상이다. 상호 의존과 다양성이 당신을 더 안전하게 만든다.
새로운 레시피 만들기
식량 공급 시스템 구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시스템이 향후 30년 이내에 탄소 발자국을 최소한 절반으로 줄여야 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부유해지고 더 많아지는 인구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공급량을 약 50퍼센트까지 늘려야 한다. 도시 인근의 최첨단 온실에서 과일 따는 로봇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새로운 생산성 혁명이 필요하다. 그러한 생산성 혁명은 시장이 필요로 하는 민첩성과 독창성, 그리고 거대한 민간 자본을 필요로 할 것이다. 오늘 저녁 여러분이 젓가락 또는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들 때, 세계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세계를 먹여 살리는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 시스템의 마법은 판데믹 사태 와중에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