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반응/ 2017년 7월~12월과 2019년 7월~12월 사이 미국의 수입처 비중 변화/ %포인트/ 하늘색(중국), 노란색(동남아시아), 붉은색(북미)/ 출처: USITC, 이코노미스트
지역화의 측면을 먼저 살펴보자. 시트용 가죽에서 대시보드의 디스플레이 장치에 들어가는 전자 칩까지 자동차 생산을 위한 공급망의 59퍼센트는 이미 역내 교역이 담당하고 있다. 통합은 이제 스스로 강화되고 있다. 멀리 있는 공급자를 가까운 누군가로 대체하는 일은 점점 더 쉽고, 매력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2019년 하반기와 2017년 하반기를 비교해 보면, 미국이 수입한 자동차 부품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2퍼센트 포인트 떨어졌다. 반면에 북미의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는 부품의 비중은 2.8퍼센트 포인트 증가했다(표 참조).
하지만 자동차 업계에서 효과가 있다고 해서 다른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가구, 장난감, 의류의 역내 수입량이 증가했다는 것이 굳이 자랑할 만한 성과는 아닐 수도 있다. 2017년~2019년 미국의 의류, 장난감, 가구의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떨어지긴 했지만, 북미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전자 제품의 자리 대부분은 미국에서 가까운 공급처가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차지했다.
이는 기업들이 다른 전략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즉, 중국의 특색이 줄어든 세계화라는 전략이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응답 기업의 약 40퍼센트는 제조 시설이나 공급처를 중국 이외의 지역으로 돌리고 있거나, 그런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다 최근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24퍼센트의 기업들이 코로나19 이후 공급처를 중국이 아닌 지역으로 바꾸려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었다.
일부 기업들에게 이는 단순한 경비 절감 조치가 아니라 “중국+1”이라는 전략의 수용이다. 이 전략은 중국을 공급원으로서 여전히 활용한다는 것으로, 일단은 중국이라는 아주 매력적인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하면서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다른 곳에 있는 공급처를 독려하는 전략이다. 구글이 픽셀(Pixel) 스마트폰을 생산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서피스(Surface) 태블릿을 생산하기 위해 베트남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 로비 단체인 미중 비즈니스 위원회(US-China Business Council)의 제이크 파커(Jake Parker)는 이러한 전략의 대가가 저렴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공급망의 재편이 중국을 기반으로 했을 때만큼의 저렴한 비용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5년은 걸린다. 그러는 사이에 물가는 상승할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들이 여분의 현금을 더 확보하게 된다면, 새로운 생산 클러스터를 구축하려고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공급망 컨설팅 업체인 GEP의 마이크 제트(Mike Jette)가 전해 들은 전자 제품 제조업체들의 입장은 이렇다. 업체들은 공급망의 30~40퍼센트를 고객이 존재하는 시장과 동일한 지역에 확보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 중국에 존재하는 기존의 공급망을 절반가량은 남겨둘 것이다.
고객이 아시아에 있다면 일은 쉽게 풀릴 것이다. 고객이 다른 지역에 있는 상황이라면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아시아는 역사적, 지리적인 관계로 엮여 있기 때문에 아시아의 전자 제품 공급업체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 따로따로 존재하는 기업들에 비해서 거대한 비교 우위를 갖게 된다. 이는 다른 지역의 고객들이 중국의 대항마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아시아의 장점을 전부 없애기는 쉽지 않다.
기업들은 안전하고 새로운 공급원을 찾는 과정에서 각국의 코로나19 대처 방안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오토머티브리서치센터(Centre for Automotive Research)의 크리스틴 지첵(Kristin Dziczek)는 판데믹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무계획적 접근으로 인해 자동차 업계에 엄청난 불확실성이 야기되었으며, 하나의 공급자로서 국가의 신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로봇의 부상
이러한 우려는 무역 협정이나 수준 높은 제조 능력, 인건비 경쟁력 같은 일부 국가들의 이점과 함께 고려의 대상이 될 것이다. 멕시코의 경우, 미국 및 캐나다와의 무역 협정이 예정대로 체결된다면 자동차 부품을 역내에서 조달하기 위한 장려책을 늘릴 것이다. 세계은행의 피에르 소베(Pierre Sauvé)는 미국, EU와의 무역 협정은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모로코, 튀니지도 일본이나 한국과의 무역 관계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말레이시아, 베트남처럼 공급망 조정의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한다.
이들 국가들은 제조 부문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역할을 줄이는 선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보다 장기적인 차원의 전략이 될 수 있다. 현재의 판데믹은 이러한 상황을 촉진할 수 있다. 화이트칼라 노동자 대부분은 갑작스럽게 디지털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관리자들이 직원들을 원격으로 감독하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다면, 해외의 직원들을 관리하는 것에 익숙해지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스위스 제네바 국제개발대학원(IHEID)의 리처드 볼드윈(Richard Baldwin)은 판데믹으로 인한 폐쇄 조치 이후에는 고용주들이 비용 절감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즉, 무역이 유일한 비용 절감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대학연구소(EUI)의 버나드 호크만(Bernard Hoekman)은 기업들이 생산 시설의 해외 배치가 아닌 자동화된 서비스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경고는 생산 시설을 국내로 불러들여 일자리를 재창출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만약에 당신이 엔지니어라면 그 자리를 자동화된 서비스가 대체할 수도 있다. 만약에 당신이 서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현 상황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세계화의 강점은 개방성에 있다고 설명하려 할 것이고, 비판적인 사람들은 세계화가 지나치게 진행됐다고 소리칠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두 진영은 아마도 각자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미치는 국가에서 의료 및 제약 부문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라면 국내에서 더 많이 생산하라는 정부의 압박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세계 시장 활용을 원하는 중국 기업들의 접근은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외국계 자본의 기업 인수는 의혹의 시선에 휩싸일 것이다. 미국은 자국 공급원에 대한 엄격한 정밀 조사를 실시해 국제 교역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다시 투자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면, 많은 기업들은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계속해서 구축해 나갈 것이다. 물론 선호하는 공급업체와의 사이에 언제든 장애물을 놓을 수 있는 정부의 존재는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 분야에서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다보스(Davos) 포럼에 참석한 이들에게 충고를 할 수 있다면, 저는 조용히 그저 고통을 감내하라고 조언할 겁니다.” 케빈 오루크는 이렇게 말하면서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우에든 절제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만약 정치 지도자들이 안전에 대한 대중의 염원을 과거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 요구로 받아들인다면, 정상적인 상황으로의 복귀는 지연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세계화의 생명 주기는 이제 끝나 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판데믹의 교훈과 그로 인한 긴축 정책에 대한 견해를 밝히면서 했던 말이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변화의 과정 자체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영향력이 강한 한 곳의 수출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새로운 방식의 균형 잡힌 주기를 시작하는 것이 세계를 위한 더 나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