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필자는 2019년 1월 방탄소년단(BTS)에 ‘입덕’[1]했다. ‘최애(가장 좋아하는 멤버)’는 지민이다. 춤출 때 선이 정말 곱다. 입덕 당시에 이미 만 41세였던 ‘아재’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모든 건 그해 시작과 함께 연구하기 시작한 주제이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69호 스페셜리포트[2] 주제였던 ‘Z세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Z세대와 BTS 입덕은 또 무슨 상관인가. 분명 상관이 있다.
이 책은 ‘세대’를 주제로 한 책이다. 이제 좀 지겨운 감도 있다. 지난해 한국 사회는 1년 내내 ‘세대론’으로 시끄러웠다. 대한민국에서 글깨나 쓴다는 이들은 모두 신문 칼럼에서, 블로그나 브런치에서 또는 책을 통해서 세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읊어댔다. 지난 몇 년간 경영계에서는 예전과는 다른 행태를 보이는 새로운 성향의 밀레니얼 세대 직원과 밀레니얼 소비자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돼 왔다. 마케팅을 위한 소비자 세그먼테이션(segmentation)[3] 연구 차원에서, 인사 관리(HR) 차원에서 현실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기업과 경영학계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해에는 연구 대상으로 Z세대가 추가됐다. 거기에 86세대가 지난 십수 년간 한국 사회 내 권력을 독점해 왔다는 ‘86세대 기득권론’, MZ세대와 86세대 중간에 껴서 힘들다는 X세대에 대한 이야기, 한국 사회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 사이 갈등이라는 주장 등 정치·경제·사회 측면에서의 세대론도 폭발했다. 또 20대를 어떤 가치보다 공정을 우선시하는 ‘공정 세대’라고 부르면서 정치 사회적으로 호명해 내는 이들도 있었다.
필자도 이 세대론 열풍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당시 DBR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한국판 에디터이자 경영 전문 기자로서, 그리고 〈DBR 스페셜리포트 Gen Z〉의 기획자로서 밀려드는 강연과 자문 요청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사실 2019년 초 처음 Z세대 리포트를 기획할 때만 해도 이 주제를 다루기에는 다소 이르지 않나 싶었지만 그건 기우였다. 마침 현 대통령이 주변에 권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임홍택 작가의(임 작가 자신은 Z세대라는 세대 구분법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저서 《90년생이 온다》 돌풍이 불고 있었고, 기업의 인사팀이나 마케팅팀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세대이자 전혀 다른 소비자의 등장에 당황해 문의를 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문과 강의에 불려 다니면서 더 많은 자료를 모았고 그것들을 잘 엮어 내면 기업의 인사와 마케팅 현장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하나의 세대론을 다루지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다소 작위적인 구분으로 세대를 나누고 그걸 바탕으로 다양한 논의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프롤로그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세대론 자체의 위험성이다. 세대는 정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개념이자 변수임을 강조하고 싶다. 마케팅을 위한 세그먼트로서 접근하든, 정치 사회적으로 호명하고 변수화, 개념화해 접근하든 마찬가지다. 세대를 변수로 설정하면 사실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사회 경제적 지위(socioeconomic status)라는 변수가 전부 지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대론은 듣다 보면 재밌고 그럴싸한데 사실상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거나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세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세대를 흥미로워한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나와 내 주변을 둘러싼 재미있는 ‘썰’의 소재이자 주제이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우리 세대는’, ‘586 꼰대들은’, ‘밀레니얼들은’ 이렇게 떠들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공감도 이루어지고 다양한 에피소드도 나온다. 이런 방식으로 퍼지는 세대론은 ‘내가 아는 사례, 내가 겪은 사례, 내 주변에서 벌어진 일’에서 얻은 성급한 일반화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보통 일을 하거나 가족을 구성하거나 친구들을 사귈 때 비슷한 사회 경제적 지위 안에서 관계를 맺게 된다. 이른바 ‘SKY’ 대학 교수가 바라보는 20대는 SKY대 20대일 수밖에 없다. 특히 지식인일수록,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자신과 주변이 그 세대를 대표할 수 없고, 본인이 다른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관점이 진실로 그 세대를 꿰뚫어 보는 시선이 되기도 쉽지 않다. 살짝 과장을 보태 말하면 우리가 술자리에서 안주로 삼는 세대론은 그저 ‘유유상종’인 사람들끼리 모여 자신의 선배 그룹이나 후배 그룹에 대한 불만 표출과 험담을 마치 어떤 담론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옛 동굴 벽화에도 써 있다는 문장, ‘요즘 애들 싸가지 없다’는 이야기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뜻이다. 백번 양보해서 세대에 대한 이야기가 맞다 하더라도 여기에서의 세대는 엄밀히 말해 세대가 아니라 그저 연령대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렇다면 세대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의 1번 뜻은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30년 정도 되는 기간’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 중 ‘한 세대가 지나고 나니’라고 할 때는 보통 이 의미다. 그러나 정치학이나 사회학 등 사회 과학에서 활용되는 세대 개념은 더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연령대를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이상 등으로 구분한 뒤 해당 나이대가 갖는 공통적 특성, 즉 ‘10대나 20대는 도전적이고 진보적이다’, ‘50대 이상은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등을 도출하는 것은 연령 효과다. 여기에 각 연령대가 10대나 20대 등 가치관 형성기에 겪었을 중요한 사건이나 트렌드를 바탕으로 ‘세대 특성’을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코호트(동년배) 효과다. 그리고 때로는 전체 세대가 함께 특정 정치 사회적 사건을 겪으면서 형성된 사회 구성원 전체의 성향을 변수화해 측정하기도 한다. 이는 기간 효과라고 한다.[4]
우리가 주로 술자리에서 떠드는 세대론은 상당 부분 연령 효과와 연결돼 있고, 이 책의 주제이자 소재가 되는 ‘Z세대론’은 코호트 효과와 맞닿아 있다. 기간 효과는 2차 세계 대전과 같은 큰 사건을 모두 함께 겪어야 만들어지는 효과인데, 마침 2020년 여름 현재 전 세계는 세계사적으로 매우 드문 사건이자 우리의 생활 세계와 가치관을 뒤흔드는 코로나19 글로벌 판데믹을 경험하는 중이다. 이러한 기간 효과가 Z세대는 물론 다른 세대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가지 짚을 수 있는 점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겪게 될 현상 ‘콘택트(contact, 접촉) 약화, 커넥트(connect, 연결) 강화’는 사실 Z세대가 이미 살아 온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판데믹은 Z세대가 가진 코호트 특성이 전 세대에 걸친 경험으로 확산돼 ‘기간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알쏭달쏭할 수 있는 이 말의 의미는 이어지는 내용을 통해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이제 Z세대를 만나러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