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셴코는 충격에 빠진 것 같다.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치렀던 네 차례의 선거는 모두 그에게 75퍼센트에서 85퍼센트 사이의 득표율을 안겨 주었다(그는 16년 전에 대통령 연임 제한을 철폐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 수준보다) 더 높지 않게 잘 조작한다면, 연임이 확실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가 80퍼센트를 득표했다는 결과가 절차에 따라 발표되자,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지난 8월 23일 그는 열다섯 아들과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시위대 위를 날면서 거리를 향해서 비난을 퍼부었다. 착륙할 때 반자동 소총을 들고 나타났는데, 이상하게도 탄창은 장착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병력 수송 무장 차량을 탄 채로 거처를 지키고 있는 시위 진압 경찰들을 향해서 총을 흔들며 응원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멋집니다. 우리는 시위대를 처리할 것입니다.” 이 장면은 무장 병력에게 결의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와 아들의 아슬아슬한 광기는 의도했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되었던 것 같다.
러시아의 정치적, 수사적 지원이 없었다면 루카셴코는 지금쯤 쓰러졌을지 모른다. 러시아의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i Lavrov)는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지지하는 것은 서방 적들의 침투에 대항해서 구 소비에트 연방의 모든 영토를 지켜낼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이유는 지정학적인 문제보다는 국내의 권력 유지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
루카셴코와 푸틴은 공통점이 거의 없다.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이자 푸틴의 후견인이었던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은 소비에트라는 과거에 대한 부정을 정통성의 근거로 삼았다. 독불장군인 루카셴코는 소비에트로의 회귀를 기반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어떠한 시장 개혁 조치도 없었고, 대형 국영 기업 중 어느 것도 민영화하지 않았다. 그는 낮지만 거의 평등한 수준으로 임금을 유지했다. 그의 비판자들과 반대 세력들은 사라졌다.
대부분의 벨라루스 사람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개혁으로 경제가 흔들리고 생활이 뒤바뀌어 버린 일부 러시아 사람들은 국경 너머에 있는 예전 방식의 집단 농장과 지저분하지만 기능적인 공장과 깨끗한 거리를 향수 어린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1996년에 국가 연합(Union State)을 창설하기 위한 협상을 할 때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은 분투하고 있었다. 루카셴코는 단순했던 과거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으로 자신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두 나라의 지도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1999년에 옐친이 푸틴을 후계자로 지명했을 때, 그 결정은 명백히 과거로의 회귀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KGB 출신인 푸틴의 임무는 러시아 신흥 엘리트의 부를 보호하고 안전을 지키며, 옐친의 개혁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권력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푸틴은 루카셴코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한 정서에 호소했다. 그는 1990년대에 패배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옹호했고, 그런 사람들이 소중히 간직했던 과거의 상징들을 제공했다. 마치 루카셴코가 초록색과 붉은색으로 만든 소비에트 시절의 벨라루스 깃발을 복원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푸틴은 사람들이 자신과 푸틴을 동일시하기를 바랐고, 그렇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화답하고자 했다. 2001년 러시아가 스탈린 시절에 만든 소비에트 연방 국가(國歌)를 다시 복원하는 문제로 비판받았을 때
[1],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와 국민들이 아마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푸틴이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 버린 러시아 국영 미디어는 이런 동일시 전략을 강화하고 나섰다.
종신 대통령이 되는 방법
푸틴은 새롭게 등장한 엘리트들을 싫어하는 국민 여론에 주로 경제적 착취가 아닌 정치적 거세로 대응했다. 소비에트 해체 이후 부를 축적한 이들 엘리트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푸틴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한 보호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는 새로운 체제의 편입을 망설이는 이들을 거리낌 없이 교도소로 보냈다.
안정된 권력을 갖게 된 푸틴은 헌법에서 정한 대통령의 연임 제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2008년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y Medvedev)에게 대통령 업무를 맡기고 총리 자리로 물러났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다시 자리를 바꾸기로 한 2012년의 결정은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불만을 반영하지 못했다. 푸틴의 통치하에서 잘 지내는 것 같았던 도시 중산층은 저항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