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플레이하다
완결

영화를 플레이하다

영화관 대신 스트리밍 플랫폼


지금, 당신의 손안에 영화 이후의 영화가 있다. 영화는 영화관을 벗어나고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 같은 손안의 영화관에는 기성 영화관에서 볼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영화가 팽창한다. 넷플릭스(Netflix), 왓챠(Watcha), 디즈니 플러스(Disney Plus) 등 스트리밍 플랫폼은 다양해지고 있고, 우리는 취향에 따라 영화관을 선택하고 배제한다.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인 지금, 기성 영화관은 적막하기 짝이 없다. 반면 넷플릭스는 2020년 1분기에는 1577만 명, 2분기에는 1010만 명의 신규 가입자를 유치했다. 매출은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28퍼센트, 2분기에는 25퍼센트 증가했다.

영화관에 대한 시네필(cinephile)[1]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시대, 이들은 ‘영화관이라는 특별한 경험 자체가 영화’라며 탄식한다. 영화란 무엇일까? 칸 국제 영화제와 넷플릭스는 이 질문을 두고 갈등해 왔다. 2017년 칸 국제 영화제는 넷플릭스 영화 〈옥자〉와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를 경쟁 부문에 초청했으나, 프랑스 극장 연합은 자국의 영화관 개봉작만 경쟁 부문에 진출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 삼아 반발했다. 칸 국제 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리모는 “인터넷의 역사와 시네마의 역사는 별개의 것”이라고 밝히며 넷플릭스 영화에 배타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2018년, 2019년에도 넷플릭스 영화는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많은 것을 시사하지만, 무엇보다 영화관을 거치지 않는 영화를 진정한 영화로 인정하지 않는 일부 영화계의 태도를 드러낸다. 그들의 헤게모니는 ‘영화관이라는 시공간적 체험으로서의 영화’라는 가치에 꽤 단단하게 옭아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가 영화관을 떠난 것은 오래전이다.

1973년 영국의 다큐멘터리 작가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은 1930년대에 자신이 벌였던 다큐멘터리 운동을 지금은 BBC가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2] 다큐멘터리 운동은 영화의 사회 참여적인 부분에 큰 관심을 뒀다. 존 그리어슨은 다큐멘터리가 시민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일종의 설교 작업이라고 보았다. TV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기의 다큐멘터리 운동은 영화관에서 행해지는 정치적 활동에 가까웠던 것이다. 1950년 무렵 TV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서 다큐멘터리 운동의 주권은 영화가 아니라 방송이 차지했다. TV 특유의 접근성은 대중들을 영화관이 아닌 안방으로 인도했다. 영화가 담아내는 사회의 풍경은 안방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미 이때 영화가 영화관을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이 시대의 영화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포스트 시네마(post-cinema)’라는 개념을 통해 풀 수 있다. 포스트 시네마는 시네마(cinema)의 연장선상에 있는 개념이다. 시네마는 영화의 물질성과 예술성을 지칭하는 필름(film)과 상업성과 오락성을 지칭하는 무비(moive)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포스트(post)는 프랑스어로 ‘후기’나 ‘탈’로 번역된다. ‘벗어나다’라는 의미다. 그대로 풀어 해석하면 포스트 시네마는 결국 ‘영화를 벗어나는 영화’다. 다양한 테크놀로지, 시대와 만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영화 생태계를 말한다.

1999년 6월 LA의 AMC 버뱅크 극장에서 상영된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험〉은 포스트 시네마의 등장을 알렸다. 세계 영화 역사상 최초로 디지털 기술로 영화가 제작, 상영된 것이다. ‘영화의 미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당시 포스터의 문구는 필름 시대의 종언을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필름 영사기가 아닌 하드 디스크에 저장된 루카스의 영화는 디지털 영사기를 통해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다. 여기서 포스트 시네마란 필름 시대의 끝이자 디지털 시대의 개막이라는 ‘영화 생태계의 변화’였다.

포스트 시네마는 디지털 시대의 영화이기도 하고 기존의 것을 벗어난 새로운 미디어, 즉 뉴미디어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필름 시대의 영화들은 시네마, 디지털 시대의 영화는 포스트 시네마라고 할 수 있다.[3] 그러나 이 구획을 명확하게 설정할 수는 없다. 이 시대의 모든 매체 역시 과거 어느 순간에는 뉴미디어였다.[4] 이제는 낡고 고리타분해진 라디오나 TV 역시 뉴미디어였다. 포스트 시네마는 급변하는 테크놀로지 환경을 보여 준다.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미학을 창안해 내고, 새로운 미학이 새로운 기술을 요구하기도 하면서 영화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 포스트 시네마가 있다. 급변하는 기술을 흡수하는 동시에 영화의 기존 형식과 산업 구조 전반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 시네마 시대의 영화관은 자신을 떠나가는 영화를 어떻게 다시 붙잡을 것인가? 기술은 포스트 시네마의 동력이다. 영화관은 기술 발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영화관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했다. 아이맥스(IMAX), 4DX 등과 같은 테크놀로지는 영화관의 고유한 가치를 재설정한다. 스펙터클하고 광대한 감각 체험을 주는 기술을 앞세워 관객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는 아이맥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영화다. 〈덩케르크〉는 106분의 러닝 타임 중 100분이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MSM 9820)로 촬영되어 아이맥스 상영관에 가장 적합한 영화가 되었다.[5] 아이맥스는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있는 한계점에 가까운 ‘아이 맥시멈(eye maximum)’이자 ‘이미지 맥시멈(image maximum)’을 뜻한다. 즉, 관객은 아이맥스를 통해 자신이 가진 최대의 시각 폭으로 스크린 위 이미지를 바라보게 된다. TV나 스마트폰에서는 결코 마주할 수 없는 거대한 이미지를 영화관에서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덩케르크〉의 아이맥스가 제공하는 시각적 극한점은 관객이 전쟁의 참상을 보다 생생하게 지각하게 했다. 또한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로 촬영된 영화이기에, 이에 맞는 영화관에서 감상하지 않는 경우 〈덩케르크〉의 표현 방식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

4DX는 CJ 그룹의 CJ 4DPLEX가 2009년에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4D 영화 상영 시스템이다. 4DX는 움직이는 의자인 모션 체어(motion chair)와 함께 페이스 에어(face air), 에어샷(air shot), 비(rain) 등의 효과를 통해 영화에서 발생하는 액션들을 관객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전달해 감각적 몰입을 높인다.[6] 이와 더불어 3D 입체 영상은 스크린의 평면적 지각을 넘어서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4DX로 제작된 마블 영화로 국내에서만 139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020년 10월 기준 역대 한국 박스오피스 5위를 기록하고 있다. 마블의 다양한 히어로들이 집합하는 영화답게 각각의 히어로에 맞춘 모션 효과를 선보여 흥미를 유발했다. 방대한 전쟁을 담은 엔딩 시퀀스에서 히어로들의 격투가 오갈 때는 모션 체어를 통해 타격감과 진동을 박진감 넘치게 전달하고, 토르가 망치를 내려칠 때는 섬광을 발생시켜 관객에게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영화와 테크놀로지의 만남은 영화를 상업적이고 오락적인 ‘무비’의 차원에만 머물게 할 수 있다고 일부 시네필들은 말한다. 이러한 우려는 고전적인 ‘아트 시네마’에 대한 지나친 애착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래야 해’라는 고정된 답은 변화하는 기술과 미학을 세밀히 살피지 못하게 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영화는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고 있다.

 

관객에서 플레이어로


기술과 결합한 포스트 시네마가 주도하는 첫 번째 변화는 관객과 작가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스크린 위의 스펙터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관객은 인터랙티브 영화(interactive film)를 통해 직접 영화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인터랙티브 영화는 관객과 영화가 상호 작용하며 함께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구조다.

최초의 인터랙티브 영화는 1967년 몬트리올 엑스포에서 상영된 라두스 친체라(Radúz Činčera) 감독의 〈키노아우토마트(Kinoautomat)〉였다.[7] 인물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작품 진행이 잠시 멈추고 사회자가 등장한다. 관객들이 사회자의 물음에 대해 고민하고 답하면 그 답에 따라 사건이 진행된다. 몬트리올 엑스포에 방문한 관객들은 영화의 수용자가 아닌 작가가 되어 함께 영화를 만들어 나갔다. 이후에도 다양한 인터랙티브 영화가 등장했다. 〈원인과 결과(Cause and Effect)〉(2004, 크리스 헤일즈), 〈파렌하이트〉(2005, 데이비드 케이지) 등의 작품들은 새로운 구조를 통해 관객이 직접 서사에 참여하고 결정하는 롤플레잉 시스템을 심화시켰다.[8]

넷플릭스는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해 동시대 최전선의 인터랙티브 영화 〈밴더스내치〉를 선보였다. 2018년 12월 최초 공개된 데이비드 슬레이드 감독의 〈밴더스내치〉는 로튼 토마토 평점 8점대라는 호평을 받았다. 영화의 내용은 1984년을 배경으로 버틀러라는 소년이 판타지 소설을 기반으로 한 게임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주가 된다. 인터랙티브 영화답게 다양한 엔딩이 있다. 평균 러닝 타임은 90분이지만, 관객의 선택에 따라 상영 시간이 줄어들거나 늘어난다. 넷플릭스라는 OTT 플랫폼의 스트리밍 기술과 결합된 인터랙티브 영화는 관객의 선택을 더 적극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밴더스내치〉가 제시하는 선택지 ©Netflix
관객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1인 기기로 영화를 감상하면서 주인공인 버틀러가 먹을 시리얼 고르기, 듣고 싶은 음악 고르기와 같은 소소한 선택부터 게임 개발 제안을 수락할지 말지와 같은 결정적인 선택까지 함께한다. 자신의 취향이나 의도를 버틀러에게 부여함에 따라 관객은 일상과 영화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지점으로 나아간다.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선택이 관객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주인공과 내가 한 몸이라는 감정 상태를 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영화 속 인물과 관객이 서로를 바라보는 구도는 관객이 버틀러라는 인물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밴더스내치〉에서 관객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Netflix
영화에서 어느 순간 버틀러는 누군가가 자신을 조종한다는 것을 느낀다. 관객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이다. 이제 버틀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영화 바깥의 관객에게 신호를 요구한다. 여기에 ‘NETFLIX’라는 답을 하면 버틀러의 모니터에 관객의 존재가 드러나며 “넷플릭스로 너를 보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 관객은 영화의 안으로 들어간 것과 다름없다. 인터랙티브 영화의 관객 미학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관객을 영화 밖의 수용자가 아닌 영화 안의 ‘플레이어’로 변화시킨 것이다.

〈밴더스내치〉의 관객은 전지적 존재가 아니다. 자신의 선택이 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관객은 버틀러와 소통하는 또 다른 주인공이다. 〈밴더스내치〉의 인터랙티브 시스템은 인물에 대한 관객의 몰입을 강화하는 것뿐 아니라, 관객이 제3의 인물로 영화에 직접 참여하는 체험을 선사한다. 〈밴더 스내치〉의 결말은 정해져 있지 않고, 관객의 선택에 따라 여러 편의 이야기가 생성된다. 관객은 수동적인 상태를 벗어나 영화 속 인물 혹은 영화 밖 작가로 변모한다. 이에 따라 영화의 가상 공간은 관객의 현실 공간과 연결되어 작동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객의 신체와 감각 체험이다. 관객이 손가락으로 마우스나 키보드를 터치함에 따라 미디어 속 세컨드 라이프(우리가 행동하고 생활할 수 있는 상상의 공간, 이야기)는 실제 세계 안으로 밀려 들어온다.[9] 영화와 현실의 구분이 희미해진 것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1인 미디어가 보편화될수록 관객은 자유로워진다. 정해진 상영 시간에 다른 관객과 함께하는 영화관에서와 달리 관객 스스로 영화를 재생시키고 멈추면서 감상한다. 나아가 〈밴더스내치〉와 같은 인터랙티브 시스템에 참여하는 관객은 개인용 기기에서 터치 몇 번만으로 영화를 변형할 수 있다. 영화관의 관객들과 같은 이야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선택과 재생 방식에 따라 감상 경험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신체적 행위는 단순히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행위를 넘어서 관객 스스로의 지각과 세계에 대한 지각을 드러내는 능동적 표현이다.[10]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세계에 표현하는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스크린이다


포스트 시네마는 인터랙티브 영화에서 더 나아가 기술을 통해 현실의 입체감을 고스란히 구현해 낼 수 있다. 가상 현실(Virtual Reality·VR) 기술을 토대로 한 영화가 대표적이다. 관객의 감각을 포함해 모든 것이 스크린이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이런 시대를 예견한 것일까? 그는 《시네마2: 시간-이미지》에 미래 영화에 대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주인공의 신체 혹은 관객의 신체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스크린으로 사용될 수 있다. (중략) 눈을 감은 채 머릿속에서만 진행되는 잠재적 영화 속에서 모든 것은 필름을 대체할 수 있다.”[11]

관객의 신체, 뇌 등이 필름을 대체하는 스크린이자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에서 VR 영화가 떠오르지 않는가? 들뢰즈는 시네필이자 철학자, 이론가로서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담론을 제공했다.[12] 그는 영화가 “지속, 즉 전체 혹은 어떤 전체의 동적인 단면”이라는 운동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지속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하는 상태다. 우리가 스크린 위의 영화를 볼 때, 이미지는 운동하고 있다. 스틸 장면과 같이 멈춰 있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이는 정말 멈춰 있는 것인가? 시계를 바라보면 시간은 분명히 흐르고 있다. 멈춘 이미지 또한 그 상태로 멈춤의 운동을 지속한다고 볼 수 있다.

스크린 위의 영화에서 이미지는 항상 운동하고 있고,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과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나와 현재의 나는 같은 상태가 아니다. 시간이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멈출 수 없다. 이것이 삶과 세계를 이루는 근원적인 ‘전체’의 모습이다. 여기서 전체란 구획을 정확하게 나눌 수 있는 닫힌 상태가 아니라, 열려 있고 변화하는 상태다. 우리의 세계와 똑 닮은 영화 역시 계속해서 변화해 간다.

포스트 시네마 역시 하나의 의미로 정의되지 않고 변화한다. 들뢰즈는 영화의 운동성에 대한 설명을 통해 끝없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포스트 시네마의 시대를 예견하고 있었던 셈이다.

VR 영화는 이처럼 끝없이 변화하는 포스트 시네마의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구글은 2016년 VR 영화 〈HELP〉를 공개했다. 외계 생명체가 미국 LA에 나타나 도시를 파괴하며 주인공들을 쫓아오는 이야기를 VR로 체험하는 영화다. 관객은 주인공 곁을 따라다니며 자유롭게 주변을 둘러보고 시각적 체험을 할 수 있다. 참여자라기보다는 관찰자에 가깝지만, 고정된 시점으로부터 해방됐다는 사실만으로 관객은 가상 공간을 현실처럼 생생하게 체험하고, 재난 현장의 긴장감을 주인공들과 공유할 수 있다.

〈HELP〉가 기존 영화와 가장 다른 점은 시종일관 롱 테이크(long take)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롱 테이크는 촬영 시간과 관람 시간을 동일하게 하는 것이자, 한 숏(short, 연속 촬영한 장면) 안에서 하나의 사건을 지속적으로 보여 주는 영화의 문법이다. 즉, 편집 없이 하나의 숏이 상대적으로 오래 지속되면서 관객은 사건의 시간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다.

VR 영화의 롱 테이크는 기존 영화의 롱 테이크와 큰 차이가 있다. 기존 영화의 롱 테이크는 선택된 영역만 프레임에 담고, 관객은 그 프레임 속 상황과 인물만을 바라본다. 반면 VR 속의 관객은 원하는 대로 고개를 돌리며 사방을 바라볼 수 있다. VR 영화를 제작할 때는 사방의 공간을 입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최소 4대의 카메라로 동시 촬영을 한다. 〈HELP〉의 롱 테이크는 입체적인 프레임으로 구성돼 있다. 외계 생명체가 지하철을 부수며 무지막지하게 쫓아오는 상황에서 관객이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면 시각적 긴박감은 상당히 축소된다.
〈HELP〉에서 관객의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시각적 긴박감 ©Google Spotlight Stories
이것이 VR 영화가 품고 있는 난제인 동시에 고유한 특징이다. 앞서 예로 든 인터랙티브 영화인 〈밴더스내치〉는 관객과의 상호 작용을 요구하지만, 어쨌든 영화 자체의 가이드라인과 선택지가 선명하게 제시돼 있다. 그러나 〈HELP〉는 선택지가 없는 가상 현실이다. 관객은 영화에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보다 능동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에 따라 관객은 ‘행위자’로 간주된다.[13] 인터랙티브 영화의 관객이 스크린 밖에서 평면적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면, VR 영화의 관객은 영화 속 인물과 동일한 공간인 입체적 세계에 들어선다. 인터랙티브 영화는 관객에게 구조화된 선택지를 제시하지만, VR 영화의 행위자는 더 자유롭다. 시점부터 행동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은 것이다. 이와 같은 포스트 시네마의 경향은 ‘스크린’이라는 특권적인 위치와 영화관 좌석에 고정된 관객이라는 수직적 구조를 해체한다.

프랑스의 영화 이론가 장 루이 보드리(Jean-Louis Baudry)는 영사기와 스크린, 영화관의 구조가 지배 이데올로기 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다.[14] 지배 이데올로기 효과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과 같은 기득권의 관습이나 가치관 등을 선전하고 주입하는 효과다. 영화관에 묶여 있는 관객, 암전, 그리고 영사기의 빛을 받는 스크린의 구도는 주입식 교육의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영화는 스펙터클한 이미지를 통해 정서를 자극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특정 이데올로기를 은근히 드러낸다면 관객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영화관의 구조에서 수동적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펴본 포스트 시네마의 관객은 이러한 구조에 속박되지 않는다. 스크린의 지배를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 인터랙티브 영화에서의 선택, VR 영화에서 행위자가 되는 경험을 통해 스크린의 권력이 해체되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은 포스트 시네마 관객의 저항성과 권력 대 행위자의 대립 구도를 읽을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배경인 2045년, 식량 파동과 인터넷 대역폭 사태는 현실을 황폐화시킨다. 반면 가상 현실 ‘오아시스’에서는 누구든 VR 기기를 통해 원하는 캐릭터를 선택하며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고, 상상한 것을 실현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잠자는 것과 식사, 화장실 가는 일을 제외한 모든 일을 오아시스에서 해결한다. 주인공인 웨이드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오아시스에서 보낸다. 오아시스의 창시자인 제임스 할리데이는 자신이 숨겨둔 3개의 미션에서 열쇠를 얻고 ‘이스터 에그’를 찾는 사람에게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긴다. ‘IOI’라는 대기업은 이 소유권과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미션에 도전하는 이들을 가상 현실 속에서 저지하고, 심지어는 현실에서 살인도 행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이 보여 주는 세계는 포스트 시네마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오아시스는 포스트 시네마의 영화관과 닮았다. 오아시스에서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주인공 웨이드와 플레이어들은 관객과 대응된다. 오아시스라는 가상 현실과 함께 실제 세계를 지배하려는 IOI라는 기업의 행보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권력과 욕망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여기서 오아시스가 과거 수직적 구조의 영화관을 닮았다면, IOI는 자신들의 지배욕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아시스가 기반한 테크놀로지는 VR이다. IOI는 영화관의 스크린을 결코 독점할 수 없다. VR 테크놀로지는 관객을 플레이어로 바꾸며, 스크린에 얼마든지 개입하고 뛰어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결국 IOI라는 지배 권력을 해체하는 데 이른다. 웨이드를 비롯한 플레이어들의 연대 행위를 통해서다. 이들의 저항은 나아가 오아시스라는 가상 현실을 해체한다. 플레이어는 이제 오아시스라는 구조 자체를 인식하고 반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 VR 기술이 권력 구도 해체와 연대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되어 보기


VR 영화를 구현하는 기술이 더 발전해 시각을 넘어 감각 체험도 가능해진다면, 포스트 시네마는 관객에게 다른 사람이 되는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미러〉 시즌5의 에피소드인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포스트 시네마의 미래를 상상하게 해준다. 에피소드의 내용을 살펴보면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관객 사이에 일어날 문제를 구체적으로 그려 볼 수 있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대니와 칼이라는 두 친구가 VR 격투 게임인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함께 하며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이 게임은 신체의 감각을 그대로 구현해 낸다. 플레이어들이 가상 공간에서 벌이는 격투로 인한 통증, 신체 접촉 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관자놀이에 장치를 착용하면 현실을 완벽히 재현한 가상 공간에서 격투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VR 격투 게임 ©Netflix
모든 신체 감각을 구현한 게임인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쉽게 넘나든다. 첫 게임에서 대니는 남성 캐릭터 ‘랜스’를, 칼은 여성 캐릭터 ‘록셰트’를 선택한다. 게임이 진행되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엎치락뒤치락하던 중에 대니와 칼이 갑작스레 키스를 하게 된 것이다. 당황한 그들은 게임을 종료하고,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이후 게임을 거듭할수록 그들은 격투가 아닌 섹스에 탐닉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니는 이성애자이고, ‘시오’라는 배우자도 있다. 가상 현실에서의 섹스에 중독돼 가는 대니는 점점 시오에게 소원해진다. 결국 그는 이러한 상황을 멈춰야겠다는 생각으로 칼에게 게임을 그만두겠다는 통보를 하고 절교한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모르는 배우자 시오는 대니의 생일에 칼을 초대한다. 결국 그들은 다시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통해 섹스를 하게 되고, 결국 칼이 “사랑해”라는 말을 뱉게 된다. 이에 충격을 받은 대니는 칼을 단골 술집으로 부른다.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현실의 술집 앞에서 키스를 해보지만, 서로 어떤 감정이나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대니와 칼은 이후에도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통해 섹스에 탐닉하게 된다.

이러한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내용이 흥미로운 이유는 기술이 현실에서 불가능한 신체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고, 현실의 층위를 벗어나는 새로운 사건을 출현시킬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칼은 현실에서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록셰트라는 여성 캐릭터를 통해 여성의 성적 감각을 완벽하게 체험한다. 그렇다면 칼이 플레이하는 록셰트는 남성인가, 여성인가?

이러한 질문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속 기술을 통한 감각 체험은 남성이냐, 여성이냐는 이분법적인 질문 자체를 해체한다. 이항 대립은 수많은 것을 소외시킨다.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선과 악 등 이항 대립의 언어들은 인간의 사유 체계를 점령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이러한 구도에 따라 정확히 나눠지지 않는다. 정체성은 유동적이다. 삶과 세계는 끝없이 변화하고, 정체성 또한 이에 맞춰 끝없이 변화할 수 있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VR 테크놀로지는 비록 상상적인 것이긴 하나, 기술이 더 발전했을 때 포스트 시네마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보여 준다. 관객에게 다른 존재의 신체를 경험하게 하고, 이를 통해 관습적인 이항 대립의 사고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예상할 수 있듯이, VR 기술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 가상에서 일어나고, 가상은 점점 현실을 넘어서는 또 다른 현실이 된다. 가상이 현실을 완전히 넘어서고, 관객이 다양한 기술이 적용된 영화를 통해 다양한 신체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하나의 신체’라는 특권은 사라질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신체만 경험하기 때문에 한정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15] 나는 언제나 나의 관점에서만 타인과 세계를 바라보고 경험한다. ‘나’라는 중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남성의 관점에서 여성을 바라보고 해석하면 남성이라는 중심을 갖게 된다. 반면 영화는 하나의 중심을 벗어나는 다양한 시공간의 이미지, 사운드를 함께 담아낸다. 수많은 영화들이 프레이밍, 편집 등을 통해 시공간을 해방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소환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스크린이라는 평면에서 발생하는 일이었다. 반면 디지털 기술이 적용됐을 때 영화는 관객이 자신의 시각을 벗어난 시공간을 입체적으로 체험하게 할 수 있다. 테크놀로지가 영화를 시지각적 탈중심화에서 감각 체험의 탈중심화로 바꾸는 것이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에서 대니와 칼은 현실의 나를 벗어나 타인의 신체를 직접 경험했다. 생물학적 남성이 생물학적 여성의 신체를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기술은 미래적인 것이지만, 이를 통해 기술이 발전하면 VR 영화의 감각 체험이 단순한 자극의 차원을 넘어설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다른 신체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면 새로운 철학적 질문들이 생겨날 것이다. 가상 현실에서 대니와 칼의 갑작스러운 섹스는 예상할 수 없던 사건이었다. 대니와 칼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당혹감을 느끼고 혼란에 빠져 계속해서 그 사건에 몰두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자신의 사유로는 지금 눈앞의 사건들을 해명할 수 없는 ‘사유의 무능력’ 상태에 다다른 것이다.[16] 이 상태와 마주해야만 그 무능력을 극복하는 새로운 사유가 탄생할 수 있다.

새로운 사건은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야만 하는 사유 환경을 만든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포스트 시네마 경험이 현실과 얼마나 가까운지와 관계없이, 영화는 달라지고 있으며 관객도 변화하고 있다. 포스트 시네마가 제공하는 감각은 사유의 무능력 상태를 거쳐 새로운 사유를 생산해 낸다. 포스트 시네마는 영화관을 벗어난 곳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다.

 

게임인가, 영화인가


포스트 시네마는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미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기존의 영화는 숏, 구도, 편집 등을 통해 이미지 미학을 만들어 냈지만, VR 영화는 이러한 프레이밍을 벗어난다. 관객이 마음대로 세계를 둘러보는, 즉 감독이 제시하는 구도가 무의미해지는 상황[17]에서 VR 영화를 게임, 연극, 뮤지컬 등 다른 예술이나 매체와 구분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인터랙티브 영화, VR 영화는 같은 기술을 활용한 게임과 무엇이 다른가?

이는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프랑스 영화 이론가 자크 오몽(Jacques Amoun)은 영화가 “이양과 전통의 예술이자, 또한 새로운 예술”[18]로서 모던하다고 말한다. 모호한 정의지만,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적절한 대답이 될 수 있다. 영화는 애초에 홀로 나타난 예술이 아니었다. 사진, 연극, 문학 등의 장르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들 장르로 표현될 수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앞서 언급했던 기술들은 과거와 동시에 첨단의 미래와도 관계하는 영화의 운동성을 증명한다.

‘이것은 게임이고, 이것은 영화다’라는 분류가 필요할까? ‘영화’라는 단일한 뿌리는 없다. 영화는 뉴미디어, 포스트 시네마, 인터랙티브 영화, VR 영화, 고전 영화와 같은 형태로 변화하고 횡단하는 중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영화와 게임의 경계는 흐려졌다. 중요한 것은 영화의 정의가 아니라 생성 과정이다. 영화가 등장했다고 해서 사진이나 문학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해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같은 영화가 실제로 등장한다고 해서 우리가 진한 멜로드라마가 자아내는 감정에 무감각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자본의 논리에 의해 특정 종류가 시장의 주목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들 자체가 서로를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테크놀로지는 다양한 계열의 포스트 시네마를 만들어 냈다. 이 영화들은 관객의 신체를 거쳐 새로운 사유를 촉발한다. 물론 테크놀로지와 융합하는 모든 영화들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밴더스내치〉가 설계한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주어진 답을 원하거나, 능동적인 시스템에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또 누군가는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주인공들이 섹스에 집착했던 것처럼 테크놀로지가 선사한 놀라운 신체적 경험을 사유로 연계하는 데에 실패하고 감각적 쾌락에 머물지도 모른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레디 플레이어 원〉은 VR 테크놀로지의 미래를 흥미롭게 상상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2018년 부산 국제 영화제는 ‘VR 시어터(theater)’를 운영했다. VR 영화의 스펙터클을 기대한 관객들은 생각보다 소소한 체험을 했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그림 속을 돌아다니거나, 〈기억을 만나다〉(2018, 구범석), 〈베트남의 크리스마스〉(2018, 장범곤) 등의 작품을 통해 헤어지거나 죽은 사람들의 흔적을 좇았다. 이들 영화는 관객을 이색적인 위치로 몰고 가지만, 사실상 심도 있는 신체적 경험까지는 제공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VR 영화는 아직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수준이다.

영화관이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수용하고, 멀티플렉스로 변모하면서 영화는 킬링 타임(killing time)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롤러코스터를 닮아 가고 있다. 영화관 의자가 흔들리고, 물이 분사되고, 스크린의 풍경이 입체적으로 주변을 둘러싼다. 감각적 쾌락, 혹은 수동적 감상을 비판하는 계몽주의적 발상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다. 그러나 쾌락과 수동성을 온전히 떼어 낸 사유의 영화가 존재할 수 있을까? 감각과 사유는 분리되지 않는다. 포스트 시네마 기술의 잠재성은 감각과 사유가 함께 움직이는 곳에 있다.

포스트 시네마의 테크놀로지는 다양한 감각과 사유 과정을 동원해 관객을 플레이어로 만들고 스스로 영화의 주인이 되도록 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영화가 더 이상 영화관의 전유물이 아님을 절실히 체험하고 있다. 넷플릭스, 왓챠 등 OTT 서비스는 영화의 생존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OTT는 ‘Over The Top’, 즉 셋톱박스(Top)를 넘어서서 사용자가 원하는 때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영화가 영화관을 벗어나듯 관객 또한 영화관을 벗어나고 있다.

뉴미디어 이론가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는 영화의 디지털화 현상을 키노 브러시(Kino Brush)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영화가 현장 촬영보다 CG를 통한 후반 작업의 비중을 높여 만들어지는 현상, 즉 영화를 붓질하듯이 그려 내는 과정을 빗댄 말이다. 이를 토대로 포스트 시네마의 미래를 떠올려 보자. 영화는 영화관을 벗어나서 관객의 손안으로 흡수된다. 영화를 그리는 것은 이제 감독과 작가만의 몫이 아니다. 포스트 시네마의 붓은 관객이 함께 쥐고 있다.
[1]
시네필은 프랑스어 조어로 ‘영화광’을 뜻한다. ‘cinema(영화)’와 ‘phil(‘사랑한다’의 접미사)’의 합성어다.
[2]
제프리 노웰 스미스 編(이순호 외 譯), 《세계 영화 대사전》, 미메시스, 2015, 563쪽.
[3]
정진철, 〈포스트 시네마로의 전환〉, 《영화연구》 64, 한국영화학회, 2015, 138쪽.
[4]
김무규, 《뉴미디어 영화론: 수용에서 수행으로》, 경진출판, 2017, 43쪽.
[5]
최영진, 〈영화 언어는 진화하는가? 디지털 기술 시대 영화 산업과 영화 비평의 현재에 대한 단상〉, 《안과밖》 43, 영미문학연구회, 2017, 180쪽.
[6]
조종학, 〈실감 미디어가 몰입감에 미치는 영향 분석: 4DX 3D 영화를 중심으로〉,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25(1), 한국디자인문화학회, 2019, 436쪽.
[7]
김무규, 《뉴미디어 영화론: 수용에서 수행으로》, 경진출판, 2017, 261쪽.
[8]
김무규, 《뉴미디어 영화론: 수용에서 수행으로》, 경진출판, 2017, 261쪽.
[9]
토마스 엘새서·말테 하게너(윤종욱 譯), 《영화이론-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333쪽.
[10]
계운경, 〈인터랙티브 영화의 공간: 가상 공간, 사이버 스페이스, 재매개 공간〉, 《현대영화연구》 35,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2019, 20쪽.
[11]
질 들뢰즈(이정하 譯), 《시네마2:시간-이미지》, 시각과 언어, 2005, 418쪽.
[12]
들뢰즈는 《시네마1: 운동-이미지》, 《시네마2: 시간-이미지》에서 영화사의 시작점부터 현대 영화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영화들을 언급하고 분석하며 영화철학이라는 생소한 작업을 해낸다.
[13]
문원립, 〈VR과 영화〉, 《씨네포럼》 제22호, 동국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2015, 352-353쪽.
[14]
장 루이 보드리, 〈기본적 영화 장치가 만들어 낸 이데올로기적 효과〉, 1970, 이윤영 編譯, 《사유 속의 영화》, 문학과지성사, 2011, 281-286쪽.
[15]
김호영, 《영화 이미지학》, 문학동네, 2014, 397쪽.
[16]
질 들뢰즈, (이정하 譯), 《시네마2:시간-이미지》, 시각과 언어, 2005, 329쪽.
[17]
문원립, 〈VR과 영화〉, 《씨네포럼》 제22호, 동국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2015, 367-368쪽.
[18]
자크 오몽(이정하 譯), 《영화와 모더니티》, 열화당, 2010, 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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