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싱킹
1화

프롤로그; 사람을 위한 디자인

우리 모두가 디자이너다


디자인은 단순히 제품의 외형을 보기 좋게 만드는 스타일링이 아니다. 1969년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디자인은 현재의 상태를 더 나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1] 디자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디자인의 역할은 스타일링에서 문제 해결로 바뀌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나고 해결한다. 일종의 디자인을 하면서 살아가는 셈이다. 디자인은 직업 디자이너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정, 직장, 학교에서 매일 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행위다. 이런 관점에서 디자이너는 고객의 문제를 비즈니스 관점에서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다.

디자이너는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창의성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본인이 창의적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다. 창의성은 천재들이 타고나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디자인에서 창의적인 것만이 중요할까? 우리는 어린이가 창의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린이에게 디자인을 의뢰하지는 않는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는 창의적, 즉 새롭다는 것만으로는 창출되지 않는다. 제품은 새로운 동시에 유용해야 한다.

새로움은 디자인의 출발점이 아니라 도착점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오히려 새로운 것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과정을 돕는 것이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이다. 디자인 싱킹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유용함에서 출발하는 전략이다.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해 콘셉트를 도출하고 테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최적의 디자인 결과물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최종 디자인은 새로운 것일 확률이 높다.

디자인 싱킹은 일종의 방법론이다. 수학 문제를 풀 때도 공식이 있듯 디자인 문제를 풀 때도 공식이 있다. 디자인 싱킹 방법론은 1990년 무렵 디자인 전문 회사 아이데오(IDEO)와 스탠퍼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가 함께 만들었다.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연구해 이를 방법론으로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수학 문제를 동일한 공식에 대입해서 풀지 않는 것처럼 디자인 싱킹 방법론도 모든 디자인 문제에 천편일률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에 디자인 싱킹 방법론을 적용해야 할까? 우리는 산업 혁명 이후 꾸준히 디자인 작업을 해왔으며 디자인 싱킹 방법론이 존재하기 이전에도 디자인 문제를 해결해 왔다. 디자인 싱킹 방법론은 왜 만들어졌을까?

디자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과거와는 다르다. 1973년 호르스트 리텔(Horst Rittel)은 디자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난해한 문제(wicked problem)’라고 명명했다.[2] 자율 주행 시대에 자동차의 실내 디자인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 치매 노인이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도움을 줘야 할까? 원격 의료 시대에 의사의 진료와 환자 관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효과적이고 안전할까? 모두 디자이너가 관련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들이다.

호르스트 리텔이 언급하는 난해한 문제의 열 가지 속성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문제 자체가 불명확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당면한 문제가 다른 문제의 결과로 발생한 문제일 경우, 어디서부터 해결책을 도출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문제의 원인이 다양하면 원인을 명확하게 특정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도시 범죄 예방 환경 설계(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CPTED)를 보자.[3] 서울시의 범죄 예방 환경 설계 가이드라인은 먼저 물리적으로 감시 기능을 강화해 은폐되는 장소를 최소화하는 것을 제안한다. 다음으로 외부인과 부적절한 사람의 출입을 통제할 것을 제안한다. 여기에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으로써 지역민의 다양한 활동과 공동체 교류를 장려해 자연 감시를 늘리고 보다 안전한 환경을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처럼 다양한 디자인 해결책이 제안되는 것은 문제의 원인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모두 의도된 범죄를 상당 수준 줄일 수는 있으나,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의 동기 그 자체를 억제하지는 못한다.

둘째, 문제가 독특하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과거 경험해 보지 못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선례가 없어 모범 답안을 찾아 적용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 코로나 사태 이후 재택근무와 온라인 강의가 확산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글로벌 회의를 위해 개발된 화상 회의 서비스를 일상적으로 쓰는 시대다.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다. 각급 학교에서 사용할 온라인 수업 서비스도 새롭게 개발될 수 있다.

셋째, 문제가 복잡하다. 단순해 보이는 문제에도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서로 다른 관점, 경험, 가치를 추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야만 현실적인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 초연결 사회에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다양한 스마트 디바이스가 등장하고, 각각의 디바이스에 최적화된 서비스도 늘고 있다. 고객뿐 아니라 콘텐츠 제작자, 서비스 제공자, 플랫폼 제공자, 광고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해 서비스를 기획하고 디자인해야 한다.

넷째, 문제의 파급력이 크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해결책의 파급력은 크다. 좋은 해결책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예상하고 사전에 방지할 수 있지만, 나쁜 해결책은 예상치 못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능한 한 많은 테스트를 거쳐 실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예방해야 한다.

10~20년 후면 자율 주행차가 상용화된다고 한다. 자율 주행차는 단순히 대신 운전해 주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환경을 총체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율 주행차가 달리는 도시의 경관은 지금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도심의 주차장이 모두 외곽으로 옮겨 갈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 도심의 도로는 모두 지하화되고 지상은 녹지화될 수 있다. 물론 미래의 시나리오 중 하나로 현실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러한 변화의 파급력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과 환경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자율 주행차와 관련된 제품, 서비스, 시스템은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디자인해야 한다.

디자인할 때에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우선 사람들에게 가치(desirability)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가치를 구현해 낼 수 있는 기술적 검토(feasibility)가 이루어져야 하며, 마지막으로 비즈니스 측면에서 이윤을 창출(viability)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기존의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보다는 통합적이고 실험적인 사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개선이 아니라 혁신이 필요할 때


디자인 싱킹은 기존 제품의 개선이 아닌 혁신에 필요하다. 로저 마틴(Roger Martin)은 《생각이 차이를 만든다The Opposable Mind》에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활용(exploitation)과 탐색(exploration)이라는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4]

활용은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 지식을 정교하게 다듬는 것으로 현재의 비즈니스를 최적화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전략은 리스크를 줄일 수 있지만, 보상이 적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비즈니스가 노후화되고 자원이 고갈될 우려가 있다. 반대로 탐색은 과거의 데이터가 아니라, 직관과 독창성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리스크가 높은 대신 성공하면 따르는 보상이 매우 크다.

탐색 전략은 비즈니스의 고갈을 막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기업들에 꼭 필요하다. 탐색 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론이 바로 디자인 싱킹이다. 비즈니스 관점에서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디자인 관점에서는 혁신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주어진 디자인 과제가 기존의 제품이나 서비스의 일정 부분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굳이 디자인 싱킹을 활용하지 않아도 된다. 디자인 싱킹 방법론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걸리는 작업으로 단순히 기존 디자인을 개선하는 데에는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디자인 ‘혁신’은 무엇일까?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디자인 혁신의 정의는 디자인 권위자 도널드 노먼(Donald Norman)이 제시하는 ‘의미의 변화’다. 노먼은 진정한 혁신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뤄지는데, 하나는 기술 혁신이고 다른 하나가 디자인 혁신이라고 했다.[5]

기술 혁신은 흑백 TV가 컬러 TV로 진화하고, 브라운관 TV가 플랫 TV로 진화하는 종류의 혁신이다. 디자인 혁신은 제품의 의미가 달라지는 혁신이다. 스와치 시계는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였던 시계가 패션 아이템으로 변화한 사례다. 소니의 워크맨 역시 특정 장소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음악을 이동하면서도 들을 수 있게 한 디자인 혁신 사례다. 워크맨 이후 개인화(personalization)와 이동성(mobility)은 많은 디바이스의 핵심 속성이 됐다. 애플의 아이폰 역시 핸드폰의 개념을 스마트폰이라는 모바일 PC로 변화시켰다. 혁신은 기존 개념으로부터의 긍정적인 일탈을 의미한다. ‘이래야 한다’는 사람들의 고정 관념을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옳은 것이 아닌 최적의 것


미국의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 Peirce)는 귀추법(abductive)의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귀추법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가 만든 연역법(deductive)과 귀납법(inductive)과는 다른 새로운 논리적 사고 방식이다. 연역법은 검증된 명제를 기반으로 필연의 논리 원칙을 결론으로 도출하고, 귀납법은 관찰을 바탕으로 규칙성을 발견해 일반적 원리를 도출한다. 두 가지 사고방식 모두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 추론을 한다. 이에 반해 귀추법은 제한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상을 탐구해 새로운 개념과 이론을 만들어 낸다. 귀추법의 추론은 ‘옳고 그름’의 관점이 아닌 ‘최적’의 관점에서 설명되며, 새로운 생각을 도출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디자인 연구자 키스 도르스트(Kees Dorst)는 과학에서 사용되는 연역법과 귀납법을 대상(what), 작동 원리(how), 결과(result)의 관점으로 해석한다.[6] 연역법은 대상과 작동 원리를 알 때 결과를 예측하는 논리적 방법이다. 귀납법은 대상과 결과를 알 때 작동 원리를 예측하는 논리적 방법이다. 연역법과 귀납법은 새로운 결과를 예측하고 새로운 원리를 발견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논리인 셈이다. 그러나 새로운 대상을 창조해 내는 데에는 부적합하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귀추법이다. 귀추법의 원리로 디자인 혁신을 설명해 보자. 디자인에서 결과는 사용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얻고자 하는 최종적 가치(value)를, 대상은 디자인의 결과물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말한다.

귀추법의 적용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결과와 작동 원리가 주어졌을 때 대상을 창조하는 방식이 있다. 현재의 조건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개선된 제품 또는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TV, 냉장고, 자전거, 호텔, 택시, 온라인 쇼핑 등 제품 또는 서비스의 카테고리가 명확하게 주어지면 이 범주 안에서 해결책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더 아름다운 TV, 더 사용성이 좋은 냉장고, 더 가볍고 견고한 자전거, 더 고급스러운 호텔 서비스, 더 안락한 택시 서비스, 더 빠른 온라인 쇼핑 배송 서비스를 디자인 해결책으로 제안한다. 이것은 기존 제품 또는 서비스를 개선하는 보수적인 디자인이다.

다른 하나는 결과만 주어졌을 때 대상과 작동 원리를 모두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인 디자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이다. 여기서 적용되는 방법이 바로 디자인 싱킹이다. 이 경우 우리는 카테고리의 범주를 고려하지 않고 사용자가 추구하는 가치에 집중한다. 최종적으로 나오는 디자인 해결책은 기존의 카테고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류가 된다. 디자이너는 콘텐츠 소비(TV), 음식 보관(냉장고), 개인 이동(자전거), 집 이외 장소에서의 수면(호텔), 목적지로의 빠른 이동(택시), 비대면 구매(온라인 쇼핑)에 있어서 사용자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 요소가 무엇인지를 찾아내 새로운 디자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해결책은 기존 제품 또는 서비스와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귀결된다. 디자인 싱킹은 공감하기 - 정의하기 - 아이디어 도출하기 -프로토타입 제작하기 - 테스트하기의 다섯 가지 단계로 구성돼 있다. 지금부터 하나씩 밟아 나가 보자.
[1]
Herbert Simon, 《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 MIT Press, 1996, p. 111.
[2]
Horst Rittel and Melvin Webber, 〈Dilemmas in a General Theory of Planning〉, 《Policy Sciences》 4, 1973, pp. 155-169.
[3]
진희선·최성태, 《범죄 예방 환경 설계(CPTED) 가이드라인》, 서울시 주거 환경 관리 사업, 2013, 7쪽.
[4]
로저 마틴(김정혜 譯), 《생각이 차이를 만든다》, 지식노마드, 2008.
[5]
Donald Norman and Roberto Verganti, 〈Incremental and Radical Innovation: Design research vs. Technology and Meaning Change〉, 《Design Issues》 30(1), 2014, pp. 78-96.
[6]
Kees Dorst, 《Notes on Design: How Creative Practice Works》, BIS Publishers, 2017, pp.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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