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성과는 중국의 권위주의적인 위협을 인식한 것이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과제는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본능은 미국 혼자 이 싸움에 나서기를 원했다. 오랜 동맹국들은 파트너가 아니라 들러리였다. 조 바이든은 대중국 전략을 준비하면서 다른 경로를 택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같은 생각을 가진 나라들과의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체결해서 그들의 노력을 하나로 끌어모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새로운 동맹을 위한 장애물은 크겠지만,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이번 냉전이 과거의 냉전과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봐야 한다. 소비에트 연방과의 경쟁은 이데올로기와 핵무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현재는 컴퓨터 칩, 데이터, 5G 이동통신망, 인터넷 표준,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의 분야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모든 영역들은 미국이나 중국이 단지 군사적인 우위를 갖고 있느냐뿐 아니라, 어느 쪽의 경제가 보다 역동적인지를 가려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과학 연구에 있어서는 다른 경쟁국들에게 이득이 될 수도 있다.[1]
첫 번째 냉전은 서로를 비춰 주는 별개의 세계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이번 2차 냉전의 주인공들은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이는 중국이 세계 경제에 통합된 것이 일부 원인으로 작용하는데, 특히 중국이 2001년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이러한 현상이 강해졌다. 하지만 수많은 기술 비즈니스에서의 네트워크 효과에서도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 기술 부문은 규모가 크고 확산력이 강할수록 보상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이는 기술 경제의 모든 전문 분야를 어느 한 국가가 전부 지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컴퓨터 칩을 예로 들면, 설계는 미국이나 영국이 하지만 일본 및 네덜란드의 장비와 독일의 렌즈를 활용해서 대만의 시설에서 만들어지고, 최종 조립은 중국의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식이다. 자급자족 상태의 북한이 핵무기뿐만이 아니라 첨단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는 경로가 기술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중국에게 축복인 것은 거대한 시장과 (국가 차원의) 야심,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보조금 지급과 산업 스파이 활동을 통해서 중국 기업들의 노력에 힘을 크게 실어 주고 있다. 규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는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을 활용하고 국제기구들 내에 중국에게 유리한 기준을 설정하려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수출 계약을 따내는 한편, 자국을 디지털 강국으로 홍보하면서 (전 세계에) 기술을 선전하고 있다.
트럼프의 거친 독자적 대응은 일부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는 동맹국들이 5G 네트워크를 구축할 때 중국 기업인 화웨이의 장비를 구입하지 못하도록 압박했다. 그리고 화웨이에게 컴퓨터 칩을 공급하는 업체들에게는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위협하면서, 화웨이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은 결국에는 중국에 유리한 것이다. 중국이 실제 성과를 보기까지는 10년 이상 걸리기는 하겠지만, 이미 자체적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컴퓨터 칩 제조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남을 괴롭히는 행동의 초점이 언제나 자신들의 비좁은 이익에 맞춰져 있다면, 기술 분야에서의 격차 유지를 도와주는 동맹국들과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럽은 미국의 압력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점점 더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유럽 연합(EU)의 최고 법원(ECJ)은 데이터를 미국에 전송하는 것을 제한하는 결정을 두 차례 내렸는데, (데이터가 이전되게 되면)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유럽의) 데이터를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럽의 정책 입안자들은 클라우드(cloud)를 규제하는 법안을 제정하고, 미국의 테크 대기업들에게 디지털 세금을 부과하며, 외국 세력의 기업 인수를 제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잠재적으로 미국 기업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랜드 바겐을 한다면 유럽과의 관계가 이러한 갈등이 아닌 협조의 분위기로 바뀔 것이다. 동맹국들은 갈등에 휘말리기보다는 세제 개편이나 기업 인수 규제, 공급망과 같은 이슈에 대한 접근 방식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유럽의 데이터 보호에 관한 일반 규정(GDPR)[2]은 유럽 외부에서도 사실상의 표준이 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정보 분야에서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동맹국들은 중국의 해커 집단과 기술 기업들의 안보 위협에 대해 보다 큰 경각심을 갖게 될 것이다. 즉, 중요한 기술에 대한 공조로 연구에 들이는 노력이 불필요하게 중복되게 하는 일 없이 더욱 전문화할 수 있는 것이다.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각각의 연결 고리를 조사한다면, 공급망이 우발적이거나 악의적인 상황에서 붕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5G 네트워크에서 기존의 하드웨어를 활용하는 기술인 오픈랜(Openran)과 같은 분야에서의 기술 표준을 제정하는 작업에서 협업을 함으로써, 자국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안면 인식(facial recognition)과 같은 영역에서의 윤리적인 기준에 대해서 협업한다면, 사회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을 고립된 상태로 내버려 두지 않고 그랜드 바겐을 한다면,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과의 긴밀한 협력이 주는 이득으로 인해 기술 우위를 향한 경쟁에서 앞서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술 산업에서 가공할 만한 네트워크 효과가 발휘된다면, 전체적인 동맹 역시 강화될 것이다. 이러한 대합의는 미국을 보다 개방적으로 만들어서 과학 분야에서의 국경을 초월한 협력을 촉진하고 (인재들이) 유입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수많은 외국계 학생들이 미국에 머물면서 연구 활동이나 기술 분야에 계속해서 종사하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이러한 개방성은 중국이 갖추지 못한 강점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종류의 협업을 위해서는 나토(NATO)나 WTO와 같은 기구나 조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진지함은 갖추고 있겠지만, 유연성은 결여되어 있는 방식일 수 있다. 오히려 G7을 확대한 (G20 같은) 그룹이 보다 적응력이 뛰어나면서도 덜 까다로울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그랜드 바겐을 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미국이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를 수립할 때처럼 영향력이 지배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장기적인 차원에서 자국 정부의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서 프라이버시와 조세 제도, 산업 정책의 세부 사항들에 대해 지금 당장이라도 동맹국들에게 양보할 의지가 있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해외에서 신뢰받기 위한 전략을 세우려면 워싱턴에서 초당적인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들도 양보가 필요하다. 그들은 트럼프 치하에서 때로는 대서양 양안의 동맹을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던 미국을 이제는 믿어야 한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중국과 미국 모두와 거리를 두고 초강대국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누그러뜨려야 할 것이다.[3]
그러나 일부 유럽 국가들의 이런 꿈은 실현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워싱턴의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바로 중국이다. 게다가 그러한 희생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랜드 바겐은 기술 분야에서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필요하다면 소비에트 연방과 군축 협정을 했던 것처럼, 지구 온난화 억제나 보건 의료 분야와 같은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데탕트(detente)를 통한 협업도 잠재적으로는 가능할 것이다. 그랜드 바겐이 이루어진다면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 세계는 더욱 안전해질 것이다. 초강대국들 간의 충돌은 그들이 강력하게 원하는 사안을 놓고 벌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