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위한 방법에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존재한다. 최근에 미국의 싱크 탱크인 외교협회(CFR)에 제출된 보고서에서 로버트 네이크(Robert Knake)는 ‘디지털 무역 지대(digital trade zone)’의 형태를 취해서 하나의 조약 기구로 완성되는 모습의 그랜드 바겐을 상상하고 있다. 미국은 사이버 보안이나 프라이버시 보호, 인터넷의 민주적 가치 등을 장려하기 위해서 “그 기구가 가진 디지털 무역 관계를 무기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안들에 대한 이 기구의 원칙을 준수하는 국가들만이 회원국이 될 수 있으며, 오직 회원국들만이 상호 간에 완전한 형태의 디지털 교역을 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규정을 위반하면 제재와 관세가 부과될 것이다. “디지털 무역 지대가 충분히 성장한다면, 중국도 지속적인 방해 공작보다는 협력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더욱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네이크는 쓰고 있다.
좀 더 느슨하면서도 규제나 처벌이 덜한 방식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10월 새로운 미국 안보 센터(CNAS)와 독일의 메릭스(MERICS), 일본의 아시아·태평양 이니셔티브(Asia-Pacific Initiative) 세 싱크 탱크가 모여서 배제가 덜한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이들은 민주 국가들이 어떤 조약의 대상이 아닌 ‘기술 동맹(technology alliance)’을 형성할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G7과 유사한 모습이 될 것이다. 현재 G7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참여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아마도 인도와 남반구의 몇몇 나라들이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IMF나 세계은행처럼 정례 회의를 개최하고, 합의된 견해에 대해서는 발표할 것이며, NGO에서부터 테크 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을 초청해서 의견을 들을 것이다.
우리 함께하자(Let us cling together)[5]
이번 달까지만 해도 이런 아이디어들은 시기상조인 것 같았다. 하지만 조 바이든이 조만간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다면, 이러한 논의들이 보다 현실성을 띠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제들은 그가 소집하기로 약속한 ‘민주 국가들의 정상 회의(summit of democracies)’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질 것이다. 보다 긴밀한 협력 관계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들 역시 필요할 텐데, 단지 중국의 위협 때문만은 아니다. 인류 활동의 상당 부분을 클라우드 안에 밀어 넣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디지털 영역과 그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기술 세계는 분열을 계속해서 인터넷(internet)이 아닌 디지털 보호주의가 만연한 스플린터넷(splinternet)[6]이 될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2차 세계 대전 직전에 붕괴된 전 세계의 금융 시스템을 연상시킬 것이다.
기술은 점점 더 지리학과 비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 세계를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세상을 지정학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은 19세기에 생겨나서 20세기에는 전략적인 사고방식으로 혁신됐다. 이는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서 물리적인 세계의 지정학적인 양상들이 상당히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산맥이 가로막고 있으면 이동이 제한되지만, 평원은 이동을 용이하게 만든다. 유전 지대와 석탄 지대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비좁은 해협은 해상 운송을 제한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현실에서 국가가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고, 무엇을 열망해야 하며, 그들의 이해관계가 누구와 상충하고 누구와 일치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지리적인 위치는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현재의 초창기 기술 정치학(technopolitics)의 분석 단위는 플랫폼이다. 다른 기술들이 구축되는 기반이 되는 기술이 바로 플랫폼이며, 그러한 플랫폼들과 함께 점점 더 많은 기업들과 정부들이 영향을 받게 되고, 삶의 방식들도 정해지게 된다. 이러한 모든 플랫폼들의 플랫폼은 바로 인터넷이다. 이 기반 위에 서 있는 일부 플랫폼들은 페이스북처럼 거대하면서도 널리 알려진 것들도 있고,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의 일종인 쿠버네티스(Kubernetes)처럼 규모가 작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있다. 지정학적인 영역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플랫폼들에는 자신들만의 정치학이 존재한다. 자체적인 규칙으로 누가 코드를 변경할 수 있고 누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정하고 있다. 그리고 지정학이 주변국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이들도 어떤 플랫폼을 지원해야 하고, 누구와 경쟁해야 하며, 누구를 기반으로 활용할 것인지와 관련한 입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자체적인 거버넌스(통치) 시스템도 있다. 그중에는 ‘개방적인(open)’ 것들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공동의 협업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오픈 소스) 운영 체제인 리눅스(Linux)다. 원칙적으로 리눅스는 누구에게라도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며, 그로 인한 혜택은 모두가 누릴 수 있다. 그 반대로 ‘폐쇄적인(closed)’ 시스템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수많은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들 사이에서 하나의 관행으로 여겨지는 오라클(Oracle)이 있다. 절대 군주제처럼 운영되는 시스템도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애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세운 기술 제국 내에서 가장 사소한 부분에 있어서도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
나를 막지 마(Don’t stop me now)[7]
페이스북이나 구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플랫폼 세계에서의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하면 수많은 국가 수준에 근접한, 때로는 능가하는 권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각국의 경제가 더욱 디지털화되면서, 국가들 역시 플랫폼으로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 시스템 역시 일종의 운영 체제(OS)인 것이다. 천연자원은 여전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숙련되고 잘 훈련된 기술 인력들이나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 인터넷 대역폭, 산업 정책, 벤처캐피털(VC)과 같은 디지털 자원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리고 기술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경쟁력 역시 상당 부분은 이러한 자원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
플랫폼으로 보면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Windows)면서 한편으로는 구글의 모바일 운영 체제인 안드로이드(Android)라고 할 수 있다. 개방형 시스템과 폐쇄형 시스템[8]의 측면들이 혼합돼 있어, 다른 사람들이 이들의 플랫폼을 위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게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면밀히 통제한다. 미국은 독점과 강력한 국가라는 요소를 결합해서 치열한 경쟁을 이끌어 낸다. 이렇게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합된 덕분에, 미국은 전 세계를 이끄는 대부분의 테크 기업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반면에 역시 플랫폼으로 따져 보면) 중국은 그들의 폐쇄성을 치열한 내부 경쟁 방식과 결합시킨다는 면에서 애플이나 오라클과 좀 더 닮았다. EU는 리눅스와 같은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비유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일본, 영국, 대만, 한국은 각자의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모두 그에 걸맞은 기술 기반도 갖추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인공지능(AI)이 부상하면서 이러한 플랫폼들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참고로 전자는 최초의 진정한 글로벌 인프라라고 할 수 있고, 후자는 가장 중요한 애플리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과 기계, 센서에 의해 생성되는 디지털 정보들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AI 모델들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컴퓨팅 파워를 활용해야 한다. 그렇게 점점 더 많은 가치들이 창출되고 있다. 모델들이 만들어지고 나면 다양한 서비스로 전환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운송, 의료, 교육, 캠페인, 전쟁 등의 사회 요소들이 ‘데이터가 주도하는’ 상황으로 빠르게 전환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결국 언젠가는 바뀌게 될 것이다. 여기에 연관되는 디지털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이윤(rent)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은 현실 세계에서보다 가상 세계에서 더욱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이윤을 창출할 것이다. 영국의 기술 사상가인 이언 호가스(Ian Hogarth)는 2018년에 써낸 논문에서 이러한 갑작스런 긴박감에 대해서 “AI 정책이 정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 영역이 될 것”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부유한 나라들의 상당수는 AI와 관련한 야심 찬 산업 정책들을 계획하고 있다. 자국을 벗어날 수도 있는 데이터를 제한하는 국가 차원의 데이터 전략을 이미 제도화한 곳들도 있다. 다른 나라의 컴퓨터 시스템을 해킹하고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면서 그 나라의 플랫폼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나라들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자신들의 세계를 재편성하는 기술을 만들어 내면서 점점 더 기업들처럼 행동하고 있는 나라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싱크탱크인 대서양위원회(Atlantic Council)의 저스틴 셔먼(Justin Sherman)은 “모든 사람들이 점점 더 기술 민족주의자(techno-nationalist)가 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