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광활한 세계 안에서 서로의 경계를 만들어 주는 공간,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공간, 사회적 위치와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 의미는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지만, 변함없는 사실은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 조건이라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집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이 이전보다는 조금 더 우리에게 가까워졌다.
유명인의 집과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영상으로 유명한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작품 활동 외에 거의 노출된 적이 없었던 배우 유아인의 혼자 사는 집과 일상이 공개돼 관심을 끌었다. 잠을 어디서 자고 일어나서는 무엇을 하는지, 어떤 화장실에서 어떻게 세수를 하는지,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여유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등 집 안 곳곳의 관찰 카메라가 담아낸 혼자 보내는 일상을 많은 사람이 흥미롭게 지켜봤다.
혼자 사는 건 이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무언가 결핍된 것 같은 ‘혼자’라는 단어가 이제는 시대의 주요 키워드가 돼 문화를 주도해나가고 있다.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여(혼자 여행) 등 혼자 식사를 하거나 여가 생활을 하는 게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 됐다. ‘혼자’에 ‘함께’ 보다 좋은 이점들이 있단 것도 받아들이게 됐다. 집밖에서 여럿이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집콕’ 생활을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가 아닌 홈 루덴스(Home Ludens)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온 것이다. 혼자의 삶은 유명인의 혼자 사는 모습에 ‘뽐뿌’를 받아 더 매력적인 일이 되기도 한다.
1인 가구는 빠르게 늘고 있다.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해 전국 1인 가구는 614만 7516가구로 전체 가구에서 가장 많은 30퍼센트를 차지했다. 2015년에서 2019년 사이 18퍼센트가 늘었다. [1] 전 연령의 1인 가구 증가세가 지속되는 가운데청년층 1인 가구의 증가는 경제·사회·문화 등 우리 사회 전반의 다양한 변화를 보여 주는 지표다. 변화의 중심에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
사회·경제 상황의 변화 속에서 밀레니얼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 우선 결혼을 안 하거나 미루는 경우가 많다. 2019년의 혼인 건수는 23만여 건으로 2000년의 33만여 건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2]
결혼으로 감수해야 하는 경제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불확실의 연속인데 ‘억’ 소리 나는 아파트와 생활비, 자녀 양육은 밀레니얼에게 언감생심이다. 타인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늘어나는 삶의 대전환을 선택하기보다, 자신을 위한 투자와 소비에 가치를 둔다. 이들은 가부장제의 전통적인 가족 형태에도 저항한다. ‘아빠-엄마-자녀’로 이루어진 가족 형태만이 정상 가족으로 여겨지던 때는 지났다. 다양한 가족 형태가 인정받는 시대다. 이런 분위기 속에 밀레니얼에게 제도적 결혼으로 가족을 이뤄 살아가는 일은 더욱더 ‘남의 일’이 되고 있다.
밀레니얼에게 지금 혼자 사는 집의 의미는 무엇일까. 과거 세대가 대학 진학이나 일자리를 찾기 위해 상경해서 살았던 ‘하숙’이나 ‘자취’방은 잠시 견디면 되는 공간이었다. 지금을 잘 버티면 언젠가는 아름답고 커다란 집에서 살 수 있다고 믿었기에, 불을 켜는 순간 재빠르게 사라지는 바퀴벌레도, 시커멓게 벽을 장식한 곰팡이도 꾹 참아낼 수 있었다. 그 방은 “사회적 이동을 위한 주거의 환승역”[3]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저성장이 고착화되며 밀레니얼은 밝고 희망찬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됐다. 지금의 내 작은 집이 잠시 스쳐가는 공간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언제 갖게 될지도 모르는 커다란 집을 기다리며 살아가지 않는다. 먼 미래를 기다리는 게 아닌, 지금-혼자의 생활을 위한 선택에 집중한다. 가족보다, 결혼보다, 나 혼자의 삶을 택한 밀레니얼은 혼자 사는 집을 정성을 다해 자신을 위한 공간으로 꾸민다. 내 집이 아닌 월세를 내는 작은 방이지만, 하얀색 원형 테이블과 1~2인용 소파도 사고, 시폰 커튼도 달고 음질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도 둔다. 언젠가 이룰 가족과 함께 하는 ‘스위트 홈’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보다, 오늘 밤 기분 좋게 내 한 몸 누일 수 있는 편안한 ‘오늘의 (내) 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키드 밀레니얼
밀레니얼의 기억 속의 집은 어떤 공간일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현재의 근거를 찾는 하나의 방법이다. 과거의 환경과 경험은 ‘현재’를 만들어 낸 재료 혹은 단서다. 밀레니얼이 태어나고 자라난 80년대 이후 한국의 ‘집’을 중심으로 일어난 큰 변화를 살펴보면, 밀레니얼의 주거 공간에 대한 관점과 태도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우선 밀레니얼 세대가 등장하기 시작한 80년대는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시기다. 1987년에 들어선 노태우 정부는 주택 공급 부족과 부동산 가격 폭등, 투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만 호 주택 건설 계획을 수행했다. 분당과 일산 신도시 개발 계획 발표를 시작으로 평촌, 산본, 중동 등 서울을 둘러싼 수도권 지역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주거 밀집 지역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파트의 대량 공급은 ‘내 집 마련’의 구호를 삶으로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창 사회 활동과 함께 결혼과 자녀 출산으로 가족을 만들던 밀레니얼의 부모 격인 베이비붐 세대 중 일부는 주택 청약 제도를 통해 신도시의 새 아파트에 ‘당첨’되는 영광을 얻었다.
집 꾸미기도 탄력을 받았다. 1993년 6월 《동아일보》는 〈신도시 아파트 성형 수술 급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획일적인 모양의 성냥갑 아파트를 특별하게 바꾸는 인테리어와 리모델링 열기가 뜨거웠다는 내용이다. 내 집 마련을 한 사람들은 전 세대가 같은 구조와 자재로 만들어진 아파트의 기본 틀을 뜯어고치며 다른 집과 차별화된 집을 만드는 데 열중했다. “베란다에 인조석과 행운목, 동백 등을 심는 2백만 원 정도의 실내 정원 공사부터 수억 원을 호가하는 대규모 수술”을 감행하기도 했다. “똑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경쟁적으로 실내 구조 자체를”[4] 바꾸는 일이 새 아파트에서 일어난 것이다.
당시 구조를 바꾸는 공사 외에 집 전체 분위기를 만들고 가꾸어 가는 일은 가정주부의 몫이었다. 이웃에게서 넘어오는 말과 소문 이외에도 신문, TV, 각종 잡지와 서적은 ‘우리 집 인테리어 전문가’ 주부에게 큰 도움이 됐다. 1987년 6.29 선언을 시작으로 6공화국이 들어서며 언론, 출판 자율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잡지 창간의 붐이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아파트 대량 공급이 일어난 시기에 맞춰 여성지의 공급도 늘어났다. 내 집 마련을 한 주부에게 여성지가 제공하는 각종 집 관련 이미지와 정보들은 인테리어의 참고서와 같은 역할을 했다.[5]
“천편일률적인 내부 구조를 보다 개성 있고 다채로운 실내 공간으로 꾸미는 아파트가 늘어 가고 있다.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아파트 ㅇ씨 집은 실내 인테리어를 흰색으로 일치시켜 통일감을 주고 복잡한 장식성보다는 단순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기 위해 고대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기둥을 세웠다. 또 카나리아가 울어 대는 실내 정원에 관엽 식물과 작은 꽃나무를 심어 사시사철 푸르름을 볼 수 있도록 꾸며 답답한 아파트 생활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6]
“싱크대도 낡았고, 거실 장식장도 아이들의 장난으로 흠집이 많았는데 장식 시트를 붙였더니 새롭고 독특한 분위기가 되었다”면서 “아이 방의 낡은 문짝에는 나무 무늬 시트를 붙였더니 새로 만든 것처럼 감쪽같았다.”고 말한다.”[7]
밀레니얼 세대는 이와 같은 분위기 가운데서 자라났다. 책상, 책장, 옷장, 침대가 세트로 구비되고, 재봉틀로 손수 만든 아기자기한 무늬의 커튼이 방 창문에 걸려있는 ‘내 방’이 있었다. 주부인 어머니는 삭막한 베란다를 화분과 나무가 가득 들어차 있는 실내 정원으로 꾸몄고, 때론 벽돌과 비닐로 물이 솟아나는 실내 분수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낡은 거실 장 위에 손수 잘라낸 ‘장식 시트’를 붙여 새롭고 독특한 분위기를 내기도 했다. 지금은 촌스러움의 상징이 된 ‘꽃무늬 벽지’가 폭풍처럼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일 테다. 화려한 꽃무늬 벽지는 90년대 이후로 대부분의 집을 장악했다.
밀레니얼은 집 꾸미기가 일상이 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같은 구조의 아파트에 사는 본인의 집과 친구의 집의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자연스럽게 체감하며 자랐다. 직접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잡지에서, TV 프로그램에서, 드라마에서 꾸며진 집의 이미지들을 접했다. 집이라는 공간을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두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아름답고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어 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부모 세대를 통해 경험하며 알게 된 것이다. 과거 세대에게 아파트가 투자의 대상, 재산과 계급의 상징이었다면, 아파트 키드 밀레니얼에게는 그에 더해 나와 가족의 일상이 이뤄지고, 사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꾸며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커졌다. 이와 같은 기억과 경험을 품고 어른이 된 밀레니얼은 집과 인테리어에 어떤 경로와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을까?
디지털 네이티브의 집 꾸미기
밀레니얼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기기와 언어를 자연스럽게 접한 세대로 디지털 네이티브라고도 불린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일상처럼 이용하는 이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에서 사진과 글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지금 먹고 있는 음식, 커피 한 잔, 파란 하늘 사진을 한 문장의 감상과 해시태그를 덧붙여 전시한다. 전시 행위는 본인이 살고 있는 주거 공간에 대해서도 비껴가지 않는다. 2020년 11월 24일 기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집스타그램 게시물은 약 430만 건에 달한다.
SNS뿐 아니라 유튜브의 동영상, ‘오늘의집’, ‘하우스앱’, ‘집꾸미기’, ‘원룸만들기’ 등 인테리어 관련 애플리케이션도 인기다. 밀레니얼은 이러한 플랫폼에서 정보를 얻고, 쇼핑하고, 본인의 주거 공간을 꾸미며 그 결과물을 그곳에 다시 공유한다. 과거에는 소수의 주거 공간과 그 안의 변화를 TV나 잡지와 같은 전통적 미디어에서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현관문 뒤에 숨어 있던 수많은 개인의 사적 공간을 디지털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게 됐다.
인테리어 플랫폼 애플리케이션 ‘오늘의집’은 누적 다운로드 수 1000만 회로 2020년 8월 기준 누적 거래액 6000억 원을 돌파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8]
사용자들은 오늘의집에서 각자의 집 사진들을 공유한다. 앱 운영사 버킷플레이스에서 밝힌 사진 개수는 350만 장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다.[9]
공유된 사진은 원하는 주거 형태, 주거 면적, 예산 등의 필터로 정렬해서 검색할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 사진에 포함된 제품을 클릭하면 바로 구매 가능한 페이지로 연결된다.
SNS, 블로그, 유튜브, 인테리어 플랫폼에 올라오는 사진과 글은 본인이 원하는 집 공간을 그려보는 데 하나의 표본이 됐다. 각자의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과 물건을 살 수 있는 경로까지 한 번에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인테리어 견적을 내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홈 인테리어에 관심이 커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스타그램 ‘오늘의집’ 계정에는 “한동안 택배 박스 쌓일 듯”, “완전 예쁘다”, “이렇게 꾸미고 살아 줘”, “내 로망의 방 인테리어 꼭 이렇게 할 거야”, “수납을 이런 식으로 해도 괜찮을 듯” 등 수많은 댓글이 달려 있다. SNS와 인테리어 플랫폼은 단순히 인테리어 비용과 정보를 전달하는 장이 아니다. 수많은 개인이 사는 집의 사진과 정보가 삽시간에 다수에게 전해지고, 생각과 취향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반복적이고 지속해서 일어나는 공간이다.
본인의 집을 스스로 계획해 꾸미는 ‘셀프 인테리어’는 이제 우리에게 일상적인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들의 영역에 속했던 인테리어가 일반인에게로 확장된 것이다. 자산이 넉넉하지 않은 밀레니얼은 우선 경제적인 이유로 직접 본인의 공간을 구상하고 꾸미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미디어에서 얻는 정보들을 참고해 본인의 취향에 따른 주거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은 오늘날 밀레니얼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이와 같은 현실을 바탕으로 온라인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의 1인 주거 공간 디자인 문화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분석은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오늘의집’은 밀레니얼이 집을 꾸미기 위해 다양한 사례를 찾아보는 것과 동시에 다시 완성된 자신의 집의 인테리어를 공유하는 상호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플랫폼이다. 인테리어 사진은 SNS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전문 플랫폼인 오늘의집에서 각종 집 꾸미기 ‘꿀팁’을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다.
나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공간
나만의 취향대로 꾸민 집은 언제부터인가 ‘로망’이 됐다. 별을 따고 싶다는 꿈처럼 실현 불가능한 환상이 아니다. 손에 잡힐 수 있는 실현 가능한 꿈이고, 그 때문에 더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 어떤 가구를 채워 넣으면 좋을까? 가구는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까? 어떤 소품들을 진열할까? 고민하고 상상하며 나의 취향을 한껏 담은 집을 스스로 구상하고 만드는 일은, 이제 트렌드를 넘어서 누구나 즐기는 일상적인 활동이 되고 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집을 꾸밀 때 인테리어 전문 업체(18퍼센트)에 맡기기보다는 직접 인테리어(75.6퍼센트)를 한 비중[10]이 훨씬 높았다.
인테리어 정보 플랫폼 ‘오늘의집’ 집들이 메뉴 게시물 중, ‘원룸&오피스텔’, ‘1~9평’, ‘싱글 라이프’로 게시물 필터를 설정해 역대 인기가 가장 많은 게시물 중 5개를 분석한 결과[11] 모든 작성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은 셀프 인테리어로 집을 꾸미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벽지나 장판을 교체하거나, 페인트칠을 하거나, 섀시를 교체하거나 하는 등의 전문적인 인테리어 작업보다는 대부분 가구의 선택과 배치, 침구와 커튼 같은 패브릭 활용, 소품의 진열, 조명 설치 등의 품이 덜 드는 방식을 선택했다. 또한 조립식으로 판매되는 가구를 산 후 직접 조립해 설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밀레니얼은 왜 셀프 인테리어를 좋아할까. 셀프 인테리어를 선택하면 전문 업체에 들어가는 수수료와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다는 아니다. 밀레니얼은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해 집을 직접 꾸미지 않는다. 밀레니얼에게 집은 단순히 거처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의집에 올라온 게시물에는 집과 자신을 가깝게 잇는 글이 많다. 유독 ‘나’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한다.
“집은 시각적으로 내 취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잖아요. 게다가 내 생활 습관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곳이죠.”
“오롯이 나만의 취향대로 꾸며지고,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기”
“제 취향의 것들로 저만의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집은 집주인의 생각과 마음을 담는 공간인 것 같아요.”[12]
밀레니얼에게 집은 식사와 잠 같은 인간의 본능적인 목적을 해소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다. 생활 습관과 취향이 드러나고, 생각과 마음을 담는 곳이다. 스스로를 표현하는 매개물인 것이다. 직접 집을 고르고, 고치고, 장식하는 행위, 즉 ‘셀프 인테리어’를 하며 그 공간에 자신을 담아낸다. 생활 공간 디자인은 단순히 전문가가 방향을 제시하고 소비자가 선택하는 차원을 넘어 각자의 생활 양식과 기호와 취미를 반영해 공간을 스스로 표현하고 창조하는 자아실현의 단계로 변화하고 있다.[13] 밀레니얼이 셀프 인테리어를 위해 시간 투자와 육체적 고단함을 감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밀레니얼에게 집은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혼자 살면 가족들과 살 때는 몰랐던 부분들을 알게 된다. 1인 가구는 가족, 친족 중심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가구 형태에서 분리된 가구 형태다. ‘가부장제’나 ‘효 개념을 바탕으로 한 위계질서’ 같은 전근대적 가치관이 거미줄을 치고 있는 혈연 가구 형태에서는 ‘내’가 중심이 된 생활을 하기 어렵다. 부모님뿐 아니라 자매, 형제의 간섭을 수시로 받게 되고 생활 공간이 겹쳐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개인의 생활이 서로에게 노출된다.
물론 ‘방’이라는 구조로 가족 간의 사생활이 구분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성(性)의 자매나 형제가 방을 함께 쓰는 경우가 있고, 혼자 쓴다고 하더라도 방문으로 쉽게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가능하다.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 방은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공간이다. 가족들의 시선이 체화된 삶은, 감시와 통제가 내면화된 삶과 같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지 않더라도 매 순간 그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이런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표현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집을 꾸미기 시작하면서 나는 누구이고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원래도 취향이나 호불호가 뚜렷한 편이긴 했지만 누가 그에 관해 물었을 때 전에는 모호하게 대답했던 부분들을 이젠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됐어요.”
“처음으로 온전히 공간의 주인이 되면서 주체적으로 공간을 가꿀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머무를 공간을 스스로 선택하고 꾸미고 그 공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참 설레는 일이에요.”[14]
가족 가구의 주거 공간에서 살고 있다가 분리돼 혼자만의 주거 공간을 마련한 밀레니얼은 타인과의 관계에 얽혀서 잘 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혼자 집에서 살아가는 일은, 그 집과 관련된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때는 역할을 분담한다. 그 누군가가 가족이라면, 가족 중에서도 특히 부모라면 집과 관련된 대부분의 일은 부모(특히 ‘모’에 치중돼 있는 경우가 많다)가 주로 계획하고 관리한다.
그러나 1인 가구에서는 그 역할이 온전히 1인에게 집중된다. 그동안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부분까지 생각하고 선택해야 한다. 어떤 침구를 사는 게 좋을지, 식기는 무엇을 써야 할지, 화장실을 더 깨끗하게 쓰기 위해 어떤 방법과 도구가 필요한지 생각하고 선택하는 등의 일을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주체적인 삶을 선택한 밀레니얼은 반복되는 선택을 귀찮아하지 않는다. 기꺼이 즐거운 일로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관심사, 능력, 취향, 욕구 등을 재발견하고 표현한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또 관심사는 무엇인지를 집에서 발견하게 됐죠.”
“혼자 살다 보니 저도 몰랐던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나다운 삶의 시작을 도와주는 게 내 공간을 마련하고 꾸미는 거 아닐까요.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나의 취향), 내가 살아가는 습관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나만의 공간을 꾸미는 과정을 밟아가는 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어요. 저는 앞으로도 꾸준히 고민하고 제 자신을 알아나가면서 ‘나라는 사람이 보이는 공간’을 꾸밀 예정입니다.”[15]
이는 어쩌면 집이라는 물질을 통한 자아실현인지도 모른다. 밀레니얼은 유명하거나, 고가이거나, 광고를 맹신하는 소비를 하지 않는다. 자신의 취향과 가치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따른 소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찾고, 구체화 시킨다. 이런 특징은 밀레니얼이 머무는 주거 공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오늘날 혼자 사는 밀레니얼의 주거 공간은 자신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매체로 존재하고 있다.
개취와 국민템
혼자 사는 밀레니얼은 어떤 사물들로 공간을 채우고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다섯 집의 공간에 어떤 사물이 있는지, 사물의 색상과 소재는 무엇인지, 어떤 브랜드의 사물이 많았는지 살펴봤다.
먼저 소재다. 다섯 집의 사물 82개 중, 나무가 30개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패브릭이 20개, 철제가 18개, 플라스틱이 7개 등으로 이어졌다. 나무 소재에는 원목 이외에도 목재를 재료로 해서 만든 파티클 보드(PB), 섬유판(FB) 등이 모두 포함됐는데, 총 30개의 나무 소재 사물 중 원목으로 된 사물의 개수는 20개였다. 색상은 흰색 계열이 40개로 전체 82개의 사물 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나무색이 19개, 회색이 5개, 베이지가 4개 흰색+나무색이 3개로 이어졌다.[16]
“집이 좁을수록 전체적으로 밝게 톤을 맞춰줘야 답답함 없이 넓어 보일 것 같아서 화이트와 우드 톤을 중심으로 인테리어하게 됐어요.”
“작은 공간에 특효약인 화이트를 주로 가되, 그레이와 우드로 포인트를 줘서 너무 차갑지 않은 느낌으로 스타일링했습니다.”
“인테리어의 전체적인 톤을 화이트 앤 우드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빌트인 된 주방이 우드 톤이라 안심이 됐어요.”
“‘좁은 집 = 화이트’가 진리인 줄만 알고 모든 것들을 화이트로 도배했어요. 의자도 흰색, 책상도 흰색, 침대 프레임도 흰색, 이불 커버도 흰색, 선반도 흰색. 물론 예쁘긴 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왜 그렇게 흰색에 집착했나 싶기도 하고요……..”[17]
이렇게 흰색과 나무 소재는 밀레니얼 1인 가구의 인테리어에서 가장 선호되는 색상과 소재다. 원색 계열 대신에 밝은 화이트 계열, 원목 나무 소재를 활용해서 좁은 공간을 최대한 넓어 보이게 하고, 자연스럽고 감성적인 느낌의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나라 인테리어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친 이른바 ‘북유럽 인테리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스칸디나비아의 디자인은 과거 한국의 인테리어를 장악한 꽃무늬 벽지와 ‘지옥의 체리 몰딩’을 극복하는 대안이 됐다. 자연적이고 심플하며 실용성에 중점을 두는 특징은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밀레니얼의 성향과도 맞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이와 같은 스타일이 여러 매체를 통해 빠른 속도로 모방, 확산하는 현상이다. 밀레니얼은 인테리어 정보 플랫폼과 SNS를 통해 다른 사람의 주거 공간을 관찰한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이 사는 공간을 노출한다. 이는 주거 공간의 분위기, 그 안을 구성하는 사물을 ‘닮은 꼴’로 만든다.
“인터넷에서 볼 법한 예쁜 자취방 느낌으로요. 당시 유행했던 것들은 모두 방 안에 들어있어요. 화이트 테이블, 철제 선반, 하늘하늘 커튼, 이케아 조명 등이요.”[18]
한 네티즌은 집을 꾸미는 과정에서 마주했던 본인의 과거 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인터넷에서 볼 법한’이라는 표현은 특정 스타일의 강한 영향력을 시사한다.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이 따라 하고 있는 표본과 같은 방의 스타일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흰색 커튼’, ‘무채색 계열의 침구’, ‘침대 옆의 스탠드’, ‘벽에 붙이거나 작은 병에 꽂은 말린 꽃’, ‘벽에 붙이거나 세워 놓은 작은 그림(사진)엽서’, ‘디퓨저’, ‘캔들’ 등은 오늘날 혼자 사는 밀레니얼의 주거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물들이다.
“저는 향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테이블 위에는 제가 좋아하는 디퓨저, 여러 가지 캔들, 단 스탠드 등을 올려놨어요.”
“침대 옆에 협탁을 두고 여러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미고 앙리 마티스 화가의 작품으로 벽을 꾸미고 싶었어요. (중략) 포스터를 무심한 듯 섬세하게 마스킹 테이프로 붙여 주니 느낌이 더 살았어요.”
“포스터나 엽서를 좋아합니다.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고, 그림체가 맘에 들거나 제 취향의 엽서를 발견하면 그때그때 사두고 방을 꾸미는 데 요긴하게 사용해요. (중략) 엽서, 스티커, 달력, 포스터 등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벽의 허전함을 채웠습니다.”[19]
SNS에 인테리어 사진을 올리는 이들은 “똑같은 방이 지루하다면 인테리어를 해보는 건 어떠신가요?”라며 본인이 산 가구를 따라 살 수 있도록 ‘공답(공개 답변)’한다. 여기에 수백 명의 사람이 ‘좋아요’를 누른다. 취향에 따라 소품을 선택하고 꾸미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말하지만, 개인 취향에 따른 결과물은 서로 비슷한 모습이다. 개인의 취향이 따지고 보면 많은 사람이 이미 선택한, 모두의 취향인 셈이다.
이 현상은 혼자 사는 밀레니얼의 경제적인 상황과 맞물려 증폭된다. 1인 가구의 평균 소득은 2017년도 기준 1917만 원(소득 5분위 평균)으로 전체 평균 5020만 원에 비해 훨씬 낮다. 고가의 가구나 생활 용품을 구입하기보다는 실용적 소비를 하게 되는 배경이다. 또한 1인 가구는 내 집이 아닌 월세나 전세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다. 내 집이 아닌 만큼 수십 년을 살 가능성은 희박하고, 어느 날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불안정한 주거 상황을 고려한다면 중저가 브랜드의 가구나 저렴한 소품을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사회 초년생이다 보니 비싼 가구를 구매하기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빈 공간을 대부분 제 작업물(사진, 디자인)로 채워 넣고 있어요.”
“침구나 협탁 같은 걸 빼면 딱히 큰돈이 들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집이 꽉 차 보이는 이유는 제 취미가 소품이나 엽서를 모으는 거라 그동안 모은 걸 곳곳에 붙여 놔서 그런 것 같아요!”[20]
밀레니얼의 선택은 이렇게 ‘가성비’가 높은 사물들로 향한다. 탁월한 검색 능력을 바탕으로, 가격 대비 성능이 높은 대상을 골라낸다. 이케아는 이 현상의 중심에 있는 브랜드다. 2014년 한국 진출 전부터 병행 수입과 같은 경로를 통해 ‘공구(공동구매)’ 바람이 불었지만, 본격적으로 국내 매장이 문을 연 뒤에 영향력이 급증했다. 분석한 다섯 집에 사용된 소품 가운데 가장 많은 17개가 이케아 제품이었다. 다음으로 8개가 ‘마켓비’, 3개가 ‘무인양품’ 제품이었다.
밀레니얼이 이케아를 선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직접 조립을 통해 스스로 가구를 만들 수 있어서다. 내가 만든, 나만의 가구라는 점에서 셀프 인테리어를 즐기는 성향과도 연결된다. 또한 전체적으로 색상이 어둡거나 클래식한 스타일보다는 밝은 색상의 모던한 스타일의 가구와 제품이 많다. 선택의 범위가 넓어 수많은 제품 중에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골라낼 수 있으며, 가격이 저렴해서 쉽게 살 수 있다.
이케아는 밀레니얼의 이른바 ‘국민템’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오늘의집 사이트에 업로드된 사진 중 ‘헬메르(HELMER)’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철제 서랍장은 1200번 넘게 태그됐다. ‘국민 서랍장’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사람의 집에서 사용하고 있다. 또한 플로어 스탠드 ‘레르스타(LERSTA)’는 오늘의집에 올라온 사진 중 무려 2200개에 이름이 태그돼 있다. 단스탠드 ‘오르스티드(ARSTID)’도 1400여개의 사진에 나와 있다.[21]
이 제품들의 가격은 모두 2~3만 원대로 저렴한 편이다. 가성비가 높은 제품을 많은 사람이 동일하게 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밀레니얼은 혼자 사는 집을 나만의 개성, 나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공간으로 여긴다. 자신에 집중하는 일이란 남들과는 다른, 비교 불가한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다. 공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한다면, 각자의 공간이 타인과 다른 독특한 모습이어야 할텐데, 실제 집을 들여다보면 결국 비슷한 사물로 비슷한 인테리어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
독특한 나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 이면에는 결국 다른 사람들의 취향의 범위 안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오로지 자신의 취향으로 주거 공간을 꾸미려고 하지만, 검색창에는 ‘국민’ 식탁, ‘국민’ 토스터기, ‘국민’ 스피커를 검색해 본다.[22]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 저렴한 것만 샀다가 실패해서 자책하게 되는 일은 피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가성비를 만족시키는 실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면 해답은 결국 ‘국민템’이다. 타인과 다른 선택을 하고 싶은 욕구와 이미 검증된 선택의 범위 안에 머물고 싶은 욕구는 공존한다. 다시 말해 취향 소비는 유행의 범주 안에 있다. 사회학자 짐멜은 유행이 본질적으로 사회에 대한 의존과 차별화 심리라는 인간의 두 가지 상반된 욕구를 함께 채워 준다고 설명한다.[23]
밀레니얼이 유행의 흐름을 따라 비슷한 것을 추구하고, 소유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더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피로 사회》를 쓴 철학자 한병철은 전 세계가 연결된 오늘날의 세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전면적인 디지털 네트워크와 소통은 타자와의 만남을 쉽게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낯선 자와 타자를 지나쳐 같은 자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발견하도록 하고, 우리의 경험 지평이 갈수록 좁아지게 만든다.”[24]
사람들은 SNS와 같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수많은 사람을 쉽게 만나고, 방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늘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그 대상은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언급하는 대상이다. 공유되지 않는 ‘낯설고 불편한’ 대상은 찾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유행의 전파는 빨라지고 범위가 넓어지며, 더 많은 사람의 삶이 닮은꼴이 되어 간다. 이런 현상을 보여 주는 모습 중 하나가 바로 혼자 사는 밀레니얼의 주거 공간이다. 인기 없는 인테리어 아이템들은 장바구니 목록에서 탈락하고 ‘국민템’만 남는다. 밀레니얼이 사는 집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메아리처럼 퍼지며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집에도 포토존이 필요하다
우리의 일상은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다.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서 바지를 추켜올리고 주방으로 가서 물 한잔을 마신다. 침대에 기대 쪼그리고 앉아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고 뉴스를 보고 SNS를 훑는 일상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SNS에 등장하는 일상은 다르다. ‘아침에 내린 핸드 드립 커피’, ‘커피 한잔과 함께 하는 책 한 권’,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받는 침대’, ‘싱싱한 야채가 들어간 샌드위치 한 입’. 사진과 함께 공유되는 일상의 이미지는 환상처럼 네모난 창 안을 떠돌며 두 눈 속에 담긴다. 전후 맥락이 생략된 사진 한 장은 누군가의 일상이 되고, 그것을 본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나도 저런 일상을 살고 싶다.’
인테리어 정보 플랫폼에 공유되는 집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집들이’[25]라는 이름으로 공유되는 집의 사진은 내가 사는 집의 모습과 다르다.
허물처럼 바닥에 놓여 있는 바지나 남은 음식물이 묻어 쌓여 있는 설거지는 없다. 잘 정리돼 깨끗한 공간, 모델하우스나 잡지의 한 페이지에서 볼 법한 사진들만이 공유된다. 집주인이 마치 화보 촬영처럼 사적인 공간의 일부분을 연출하고, 사진을 찍어 기록한 후 공유하는 것이다.
온라인 집들이라는 표현의 시작은 2014년 중반 정도다. 자신이 꾸민 집의 모습과 방법, 제품 구입처 등을 블로그나 200만여 명의 회원 수를 자랑하는 네이버 카페 ‘레몬테라스’와 같은 공간을 통해 공개했다. 이 방식은 셀프 인테리어의 확산세와 함께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활용하는 유용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집을 꾸민 사람에게는 본인의 집을 많은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집을 꾸미고 싶은 사람에게는 하나의 지침서로 활용됐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셀프 인테리어가 태동하던 2000년대 중반 ‘레몬테라스’ 카페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초창기 온라인 집들이와 현재의 차이다. 초창기에는 지금보다 일상의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셀프 인테리어는 목재로 가구를 직접 만드는 DIY, 친환경 페인트를 이용한 셀프 페인팅, 셀프 조명 교체, 화환, 액자, 쿠션 같은 다양한 소품들을 활용한 꾸밈에 집중됐다. 결과물이 물론 중요했지만, ‘내 힘’으로, 여러 도구를 활용해서 ‘셀프’로 한 인테리어가 강조됐다. 비포와 애프터를 사진으로 담았지만, 비포에서 애프터가 되어 가는 과정도 중요한 정보였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재료와 도구를 사용했는지 설명해 줬다. 구석에 보이는 전깃줄이나, 셀프 페인팅을 하다가 페인트가 흘러내린 자국,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 등이 사진에 담기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일상의 모습이 슬쩍 끼어 들어간 장면이 크게 거슬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온라인 집들이는 다르다. ‘오늘의집’ 플랫폼의 집들이 사진이나 인스타그램에 ‘#원룸인테리어’와 같은 해시태그로 공유되는 사진들에는 고도로 완벽한 장면 만들기를 추구한 흔적이 묻어 있다. 이용자들은 집의 이곳저곳을 줌인, 줌아웃하며 네모 프레임에 담아낸다. 집 전체가 보이는 전경을 찍기도 하지만, 그릇이 놓여 있는 테이블, 베개와 이불의 일부분, 여러 소품으로 꾸며진 흰 벽의 일부 등 집의 부분적인 장면을 가까이 찍는 경우도 많다. 장면을 구성하는 소품들은 모두 계획된다. 위치, 색상, 각도가 하나의 완벽한 장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 구상되고 배치되는 것이다. 사진뿐만 아니라 영상도 마찬가지다. 집 구석구석을 영상으로 찍는 브이로그는 이른바 ‘룸 투어(Room tour)’로 불린다. 이때 제목에 빠지지 않는 게 있다.
“이번 방은 2.5평 정도 되는 작은 방을 인스타 감성 st로 꾸미셨어요. (인스타에서 많이 본 그 느낌~). 감성 포토존, 조명 켠 모습(감성 터짐)”[26]
“집 꾸미기를 좋아해서 인스타그램 감성 낙낙하게 꾸며봤어요!”[27]
“인스타 감성 가득! 어디에 카메라를 둬도 아쉽지 않도록 꾸미는 게 목표였어요.”[28]
이른바 ‘힙’한 ‘인스타 감성’에 맞는 장면을 찍고 공유할 때는 셀프 인테리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스스로 무엇을 해냈는지 같은 정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완벽한 결과물이 중요하다. 방금 벗어서 흐트러져 있는 현관의 신발, 빨간 스위치가 번쩍이는 멀티탭, 미처 개지 못한 빨래 같은 사물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어 사물을 스타일, 컬러, 모양 등 외적인 형식에 맞추어 배치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전체적인 이미지를 추구한다.
혼자 살게 되면서 밀레니얼의 일상생활은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됐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누군가의 시선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이번에는 한두 사람의 시선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시선, 네모난 창을 통해 나를 지켜보는 시선이다. 나를 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스스로 용인하는 순간, 나의 시선은 타인의 시선으로 둔갑한다. 누군가 보는 내 방, 누군가 보는 내 침대, 누군가 보는 내 아침 식사를 생각하는 일상은 내 욕구대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아닌, 외부의 시선을 욕망하는 삶의 모습이다. 연출된 사적인 공간은 그렇게 탄생한다.
불특정 다수가 접속하고 관람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자신의 사적인 주거 공간, 그곳에서의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공유하는 일은 다분히 타인의 시선 뒤에 따라붙는 부러움과 칭찬을 기대하는 일이다. 어떤 이미지에서 느낀 부러운 감정은 그 이미지를 실현 가능한 대상으로 여기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을 또 다른 사람들이 내 사진을 보며 느끼기를 바라게 된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욕망이 오늘날 밀레니얼의 1인 주거 공간을 만들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감춰지고 완벽히 연출된 미장센만 남은 영화 같은 공간이다. 물론 이것은 주거 공간이라는 대상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는 확실히 사람들의 삶을 잊게 만드는 방법으로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다.”[29]
완벽한 장면을 만들기 위한 밀레니얼의 노력에는, 한 달째 방치되어 있는 침대 위 먹다 흘린 음식물의 흔적, 여기저기 둔 소품 위로 점점 쌓여 가는 먼지, 빨래 널 공간이 없어 방 한가운데 펼쳐 놓은 빨래 건조대 등 지금 내 곁을 둘러싼,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같은 내 집, 나의 현실을 잊고 싶다는 생각이 반영돼 있을지도 모른다.
내일 떠나더라도 오늘 우아하게 살래
배우가 혼자 사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무엇을 느꼈을까?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멍 때리는’ 장면에 ‘저 사람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느끼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하면 그가 사는 몇십 억의 단독 주택과 거실에 놓여 있는 3000만 원이 넘는 소파는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비슷한 삶처럼 느껴지다가도 그와 나 사이에는 너무도 커다란 간극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까워질 수 없는 멀고 먼 거리를 밀레니얼은 아주 잘 알고 있다.
밀레니얼에게 집은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는 임시 거처다. 죽는 날까지 오래오래 살아갈 공고한 삶의 터전이 아니다. 직장이나 일터는 흔들리는 배와 같고, 월세나 전세금은 항시 솟구치기 위한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런데 슬픈 사실은 임시 거처의 삶이 임시가 아니라 계속 반복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방에서 방으로의 이동만이 무한 반복되는 폐쇄계, 그러니까 환승역이 존재하지 않는 순환선의 세계”다.[30]
원룸을 꾸미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과 이케아를 드나들고, ‘국민템’을 찾아다니며 하루만이라도 내가 만족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일. 타인의 부러운 감정에서 만족과 행복을 느끼고,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발견하는 것. 이는 어쩌면 밀레니얼이 오늘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일지 모른다. 동시에 우리 사회의 문제와 모순을 비추어 주는 거울일 수 있다.
“가끔 해가 질 때 멍하니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곤 해요. 하루 중 가장 행복하고 짜릿한 순간이에요.”
“저는 미래 걱정보다 현재가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니, 앞으로도 계속 어제보다 오늘이 더 편하고 예쁜 집에 살 거예요.”
“어차피 집에 있는 시간도 별로 없는데 뭐 하러 꾸미냐, 월세 방에 투자해봤자 이사할 때 힘들어”라며 이해 못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제 대답은 한결같아요. 여기 있는 동안만큼은, 내가 몸담아 쉬는 공간만큼은 예쁘고 편안했으면 좋겠어요.”[31]
밀레니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까마득한 미래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유예하는 삶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찾으며 산다. 삶의 목표는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을 향해 있다. 금세 떠나야 하는 집일지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남들처럼 우아하게 살아보는 것. 밀레니얼의 집은 오늘을 위한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