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에 재현된 피부색을 조정하기 위해 사용된 코닥의 ‘셜리 카드’ 중 하나 ©코닥
문제는 셜리가 기준이 된 탓에 유색 인종의 사진은 형편없게 보이게 됐다는 사실이다. 피부색과 윤곽의 미묘한 차이가 지워진 탓에 유색 인종의 얼굴은 눈의 흰자와 치아만 하얗게 두드러지는 검은 색의 덩어리가 됐다. 프랑스와 스위스 출신인 장뤼크 고다르(Jean-Luc Godard)는 1977년에 모잠비크에서 영화 촬영을 할 때 코닥 필름을 “인종 차별적”이라고 규정하고 사용을 거부했다. 하지만 코닥이 새로운 필름을 개발한 건 1980년대, 초콜릿과 목재 가구 제조사들이 코닥 필름으로 촬영하면 상품이 똑같아 보인다고 문제를 제기한 이후였다. 코닥은 “모든 사진사가 낮은 조도에서 검은 말의 디테일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하며 골드 맥스(Gold Max) 필름을 소개했다.
필름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디지털 사진에서도 이런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하버드대 조교수 사라 루이스(Sarah Lewis)는 색상 균형과 색상 보정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광원이 인공적일 경우 디지털 사진 기술은 여전히 짙은 색의 피부를 잡아내는 데 고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학 기술들 역시 사진학과 같은 종류의 유아론(唯我論·극단적 형태의 주관적 관념론)에 기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맥박 산소 포화도 측정기(의료인들이 환자의 손에 끼우고 피부에 붉은 빛을 비춰 산소 수준을 측정하는 기구)는 백인 환자를 대상으로 기준이 설정돼 있다. 측정기를 짙은 색 피부의 환자에 사용할 경우 산소 수준을 일관적으로 7퍼센트 초과한 측정값을 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스탠퍼드대 피부과 의사 록사나 다네슈주(Roxana Daneshjou)는 지난해 미국 공영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의료 체계를 디지털로 전환하기 전에 바로잡지 않는다면 현존하는 인종적 편향성을 지속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피부 질환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공지능 스마트폰 앱들이 출시돼 있다. 그 중 하나인 ‘스킨 이미지 서치(Skin Image Search)’는 사용자가 올린 사진을 자사 데이터베이스와 비교 분석한다. 하지만 스킨 이미지 서치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어두운 피부의 비중은 10퍼센트 이하다. 우간다의 연구자들은 검은 피부를 가진 환자 123명이 이 앱을 사용한 결과 진단의 정확도가 17퍼센트에 불과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의학과 사진학의 과오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 수 있다.의학 교과서와 피부 질환 진단 앱이 적당한 수의 유색 인종 환자 사진을 확보하더라도, 카메라가 짙은 피부를 적절히 찍을 수 없다면 이미지 자체가 정확할 가능성이 떨어진다.
유색 피부 진료 경험을 갖춘 전문의들이 늘어나는 추세는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유색 피부 전문 진료소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흑인 환자의 피부에서 건선을 진단하지 못한 무능함에 마음이 복잡했던 상황에서, 피부 질환 치료를 받으며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한 다른 유색 인종 환자들과 대화를 나눠 봤다. 런던의 역사 교사이자 연구자인 아피아 아흐메드 초드리(Afia Ahmed Chaudhry)는 그녀의 어머니가 피부색 때문에 지속적으로 오진을 받아 왔다고 했다. 초드리는 “의사들이 유색 인종 환자들은 얼렁뚱땅 진단하고 넘어가기 일쑤”라고 말했다. “환자는 포기할 때까지 계속 빙빙 돌며 다른 곳을 찾아다니거나, 아니면 집중 관리를 받기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악성 여드름을 제대로 진단받기까지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사실에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초드리는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진료비를 받으면서 전혀 효과가 없었던 국소 요법만 계속 처방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아프리카 사회는 수백 년 동안 식물에서 만든 수액과 찜질 요법, 연고를 사용해 짙은 피부의 질환을 치료하는 전문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피부 완화제로 사용되는 백년초 추출물부터 상처를 치유하는 알로에 베라, 피부염을 치료하는 루이보스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지식의 대부분은 사라졌다. 기니의 수도 코나크리(Conakry)에 있는 돈카국립병원피부과 교수인 모하메드 수마(Mohamed Soumah)는 “아프리카에서도 어두운 피부를 다루는 피부학 관련 자료는 굉장히 드물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의사들도 서방 세계에서 만든 의학 교과서를 배우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의사들마저 책에서 못 배운 내용을 매일 환자들을 다루며 배우는 사실들로 채워 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유색 인종 환자에 대한 서구 사회의 무지를 보완하기 위해 짙은 피부에 전문성을 가진 피부과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진료소가 곳곳에 설치됐다. 서구 대도시 중 많은 곳에는 “민족 피부과”나 “다문화 피부과”라는 명칭으로 운영 중인 유색 인종 진료소가 있다. 첫 번째 유색 인종 진료소는 미국 앨라배마에서 1914년에 태어난 존 A. 케니 주니어(John A. Kenney Jr.)가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선구적인 흑인 외과의였고 적극적인 사회 운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의학에서 흑인의 위상(The Negro in Medicine》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으며, 지역 병원들이 더 많은 흑인 의사를 고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1922년의 어느 날, 케니 주니어가 8살밖에 안 됐을 때 그의 가족들은 백인 우월주의 집단 KKK(Ku Klux Klan)가 집 앞 잔디밭에서 십자가를 불태우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후 수차례 살인 협박(아버지 케니가 환자를 돌보던 중에도 협박이 이어졌다)이 계속됐고, 케니 가족은 뉴저지로 도피해야만 했다.
이후 존 케니는 미국의 1세대 흑인 피부과 의사가 됐다. 케니는 워싱턴DC 외곽 하워드대 병원에 흑인만을 위한 최초의 피부과 진료소를 세웠다. 그는 2003년에 사망했지만, 유산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는 사망하기 전까지 미국 전역의 흑인 피부과 의사 3분의 1을 직접 가르쳤다.
유색 인종만을 위한 피부과 진료소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짙은 색 피부와 흰 피부의 차이가 임상적으로 유의미하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이 다르며, 그 차이가 얼마나 의학적으로 중요한지는 여전히 논쟁의 영역에 있다. 이미 오래 전에 뒤집힌 이론이 정설처럼 널리 퍼져 있는 경우도 많다. 1851년, 노예제 찬성론자였던 의사 사무엘 카트라이트(Samuel Cartwright)는 소위 ‘악동병(dysaesthesia aethiopica)’이라고 명명한 증상 탓에 흑인들이 두껍고 감각이 둔한 피부를 가졌고 행동이 굼뜨게 됐다고 주장했다. 카트라이트는 ‘악동병’의 유일한 치료법이 매질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피부를 자극하는 최선의 방법은 기름을 바른 피부를 두꺼운 가죽 띠로 때리는 것”이라며 “그 후에 환자가 햇살 아래서 고된 노동을 하도록 한다”고 썼다. 2016년의 한 연구는 미국 의사 중 3분의 1이 아직도 흑인 환자에 대해 잘못된 사실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흑인 환자가 더 두터운 피부를 가지고 있다든지, 더 적은 수의 신경말단을 가지고 있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덤넷NZ(DermNet NZ)는 뉴질랜드의 피부과 의사 아맨다 오클리(Amanda Oakley)가 운영하는 온라인 피부학 정보 사이트다. 인기와 신뢰도가 높아 전 세계 의사들도 이 사이트를 이용한다. 하지만 덤넷NZ의 ‘민족 피부학’ 페이지에는 “어두운 색의 피부는 진피가 더 두꺼운 경우가 많다”는 주장이 올라와 있다. 이미 오류로 입증된 잘못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녀는 해당 페이지를 수정하는 데에 동의했다. 또 오클리는 덤넷NZ의 모든 페이지에 짙은 색 피부 사진을 포함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늘날 유색 피부 진료 경험을 갖춘 전문의들이 늘어나는 추세는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유색 피부 전문 진료소는 그 나름의 잠재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다수의 진료소들은 피부 미백 시술 같은 가벼운 미용 문제에 집중하고 있으며, 영국의 진료소 대부분은 수익을 우선으로 하는 민간 기관이다. 케니에 의해 사회 보장 체제로 시작돼 유색 인종이 백인과 동등한 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지원해 온 유색 피부 진료는 시장의 영향을 받아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피부과 진료가 수익성이 좋은 미용 산업의 일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미용 산업은 짙은 색 피부가 결함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을 ‘먹이’로 삼는다. 주의하지 않는다면, 피부과는 유색 피부를 병으로 취급하고, 또 이를 비정상이라고 느끼는 유색 인종 환자들에게서 수익을 얻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
의학계에 만연한 인종 차별의 역사를 생각하면, 흑인 환자들이 의심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다. 흑인들은 의학을 믿고 몸을 맡기기를 거부하게 됐다.
피부 질환은 단순한 골칫거리가 아니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밥 말리(Bob Marley)가 피부암에 걸려 일찍 사망했다는 사실은 그가 단순히 음악의 거장이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것이 아니다. 말리의 사례는 흑인 환자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을 때 겪게 되는 복잡한 현실을 상기시킨다. 또 오늘날의 의료 체계가 유색 인종 환자들을 버려둔 채, 백인 환자들을 위한 치료법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밥 말리는 1997년 여름에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건강 문제를 언급했다. 말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축구를 하다가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부상을 입었고 발톱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통증을 느낀 것이 처음은 아니라고 말했다. 몇 년간 발톱 아래에 통증 부위가 있었고, 단순히 작은 멍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조직 검사를 받기 전까지 두 명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야 했고, 결국 피부암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말단 흑자 흑색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보통 연약하고 햇빛에 노출되는 신체 부위에서 생겨나는 다른 세 종류의 흑색종과는 달리, 말단 흑자 흑색종은 발바닥이나 발톱 아래 등 쉽게 놓칠 수 있는 부위에서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