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는 고도의 전략이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자 중국 정부는 발원지가 우한이 아닐 수 있다며 이른바 ‘중국 책임론’에서 벗어나려는 홍보전을 펴기 시작했다. 2월 말 중국의 감염병 권위자인 중난산(钟南山)이 “출현은 우한에서 했어도 발원된 건 아닐 수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3월 초 “반드시 전력을 다해 바이러스 발원지를 분명하게 밝히라”고 언급하면서 거들었다. 이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군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우한에 가져왔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공식적으로 미국 책임론을 들고나왔다.
중국은 또 자국 내 신규 확진자가 줄어드는 가운데 다른 나라에서 확진자가 급증하자 일부 국가에 마스크, 방호복 등을 제공하면서 코로나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중국 공헌론’으로 막으려는 시도를 보였다. 중국 인민의 힘든 노력이 세계 각국의 전염병 방제를 위한 소중한 시간을 벌어 줬고, 중요한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당초 중국 우한이 코로나 발원지로 지목됐을 때, 중국 정부가 초기 정보를 은폐 및 축소해 사태가 더 악화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책임 전가는 국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외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런데도 중국은 왜 이렇게 무리해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일까?
일단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전개한 홍보전에는 일정 부분 효과가 있었다. 중국 내부적으로는 공산당 정부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대외적으로는 향후 중국에 대한 국제적인 손해 배상 소송을 미연에 방지하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한계도 명확하다. 우선,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의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로 인해 기본적으로 국제 사회에서의 매력이 크지 않다. 언론 자유 제한과 인권 침해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일련의 일방적인 정부 주장에 대해 스인홍(時殷弘) 중국 인민대학 교수는 “중국의 체제 선전전은 세계 각국의 반감을 불러왔다”고 인정했다.
그간 중국과 경제 분야에서 협력해 왔던 유럽 연합(EU) 국가들에서는 중국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거나, 경제 및 기술 협력의 범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영국 정부는 당초 중국 기업인 화웨이의 5G 통신 장비를 자국에 도입하기로 했다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전면 취소했다.
실제로 중국의 비호감도는 증가하고 있다. 2020년 말에 실시한 미국 여론 조사 기관 퓨리서치의 조사에서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미국 73퍼센트, 영국 79퍼센트, 스웨덴 85퍼센트였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선전전을 강화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통치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성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중국 공산당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행태를 보여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의 대응은 불가피하게 선택한 고육책이 아니라, 고도의 계산이 깔린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 거대한 면적과 인구,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싸우는 심리전의 전통과 상대보다 우위를 선점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협상술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중국식 영웅 서사
중국의 심리전과 협상술은 거대한 면적과 인구, 오랜 역사 속에서 뿌리내렸다. 중국은 국토가 넓고 기후 변화가 커서, 부단한 이동과 융합을 통해 타협의 지혜를 배웠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임기응변에 통달한 인재를 진정한 영웅으로 간주한다.
서양 전략가들은 전투에서의 승리를 강조하나, 중국 사상가들은 심리적 우위를 통한 승리에 가산점을 주고 직접적 분쟁을 피하라는 전략적 사고를 만들어 냈다. 중국에서는 전투의 승리는 불필요한 승리라고 강조한다. 중국에게 승리란 단순히 군대의 승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군사적 분쟁으로 확보하려고 의도한 최후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서양과 다른 전략적 독트린(doctrine)이다. 영웅주의의 공격을 강조하며 결정적인 힘의 대결을 칭송하는 것이 서양의 전통이라면, 중국은 적이 너무 많은지라 완벽한 안전 속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서양의 체스와 동양의 바둑을 비교할 때 이해할 수 있다. 바둑은 전략적 포위를, 체스는 완전한 승리를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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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중국의 특징은 고대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춘추 전국 시기(BC 770년~BC 221년)에 각국의 제후들은 상대국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양한 작전을 구사했다. 고대 중국 병법서인 《손자병법(孫子兵法)》에서는 “마음에 대한 공략이 상책이요, 성곽에 대한 공략은 하책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국의 군심(軍心)과 민심(民心)을 흔들려는 여론전과 심리전의 전법을 작전의 주요 책략으로 채택했다. 손자는 속임수와 거짓 정보 흘리기를 중시했고, 전쟁하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화사상(中華思想)’도 심리전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 있으며 주변의 오랑캐와 구별되는 우월한 문화를 갖고 있다는 허구의 관념을 만든 것이다. 근대에 들어 서양 국제 정치 질서의 영향으로 사라졌으나 중국 대외 정책에 있어서는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대에 등장한 마오쩌둥(毛澤東) 역시 선전의 귀재였고 그가 영도하는 공산당 정권은 선전전에 능했다. 우선 1949년 공산당 정권인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기 전까지 마오는 내부적으로는 국민당, 대외적으로는 일본과 대결했다. 그는 이 싸움에서 심리전에 많은 비중을 뒀다. “중국 공산당은 선전술로 대륙을 석권했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정도로 공산당에는 빼어난 선전가들이 많았다. 선전이란 자신의 존재감과 장점을 만방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실패를 성공으로, 패배를 승리로, 욕심을 덕행으로 포장할 줄 알아야 선전가로서 자격이 있다. 이들에게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인간은 반복에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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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국은 G2 반열에 오른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무기로 자신의 논리와 방식을 상대국에 강요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 합리화와 우위 선점이라는 큰 맥락 안에서 아홉 가지 배타적인 전략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략 1; 역사적 맥락에 가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