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벅스/ 상단, 반도체 기업 시가 총액/ 하단, 최첨단 반도체 칩 제조 기업의 수/ 출처: 블룸버그, 맥킨지, 이코노미스트.
이 모든 것은 반도체 제조업이 재편하는 큰 흐름의 한 가운데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산업의 한쪽 끝에선 치열한 경쟁과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AMD, 엔비디아, 그리고 인텔 등을 포함해 매출 기준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사가 만든 반도체 설계도는 새로운 창작품의 도전을 받고 있다. 아마존, 구글처럼 기존 기업의 주요 고객인 온라인 거물들은 자체 설계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들은 AI, 네트워킹, 또 다른 전문적 애플리케이션에 적합한 하드웨어 수요를 활용하려는 스타트업들과 힘을 합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분명 희소식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설계도가 실리콘 조각에 새겨져 전자 회로로 변환되는, 업계의 또 다른 쪽에서 일어나는 작업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첨단 기술을 좇느라 급증하는 비용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반도체 설계를 실제 반도체로 만들어 내는 기업의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표2 참조). 전 세계에서 3개의 기업만 이런 첨단 프로세서를 만들 수 있다. 먼저 인텔이 있다. 그리고 지진에 취약하며 중국이 자신의 영토라 주장하는 대만의 TSMC, 그리고 북쪽에 핵무기 장착 독재 체제 이웃을 가진 한국의 삼성이다. 미국 무역 기구인 미국 반도체 산업 협회(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는 현재 글로벌 반도체 제조 능력의 80퍼센트가 아시아에 있다고 추정했다.
선두는 곧 둘로 줄어들지도 모른다. 30년 동안 업계 최첨단을 선도해 온 인텔은 휘청대고 있다. 1월 18일 뉴스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자체 생산량 일부를 이미 인텔을 앞지른 TSMC에 아웃소싱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의 기초인 반도체 산업은 더욱 양극화되고 있다. 설계는 활기를 띠고 생산 집중 현상은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새로운 양상은 반도체 제조사,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실상 모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고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먼저 다각화 문제가 있다. 수년 동안 기술 기업들은 반도체를 기성품으로 구입했다. 44년의 역사에서 애플은 모스 테크놀로지(MOS Technology), IBM, 인텔에서 데스크톱 및 노트북용 마이크로프로세서(중앙 처리 장치)를 조달했다. 그러나 2007년 최초의 아이폰이 출시된 후 애플은 설계를 직접 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새로 출시된 아이폰에는 처음엔 삼성, 그 후엔 TSMC가 제조하고, 애플이 자체 설계한 반도체가 들어간다. 이 접근 방식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2020년 애플은 맥 컴퓨터에 들어가는 인텔 제품을 맞춤형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2년 전 전자 상거래 거물의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인 아마존 웹서비스는 데이터 센터에 탑재한 일부 인텔 칩을 자체 제작한 ‘그래비션(Gravition)’ 설계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이것이 비용 면에서 인텔 제품을 사는 것보다 40퍼센트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구글은 AI의 계산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체 고안한 ‘텐서 프로세싱 유닛(Tensor Processing Unit)’을 클라우드 고객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중국 검색 엔진인 바이두(Baidu)는 자사의 ‘쿤룬(Kunlun)’ AI 칩이 엔비디아의 제품을 능가한다고 주장한다. 서방의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 세 번째 주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체적으로 반도체 칩을 설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계의 영리한 스타트업들은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확보하고 있다. AI 반도체 칩을 설계하는 미국 세레브라스(Cerebras)는 12억 달러(1조 3254억 원)를 벌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업하는 영국 경쟁사 그래프코어(Graphcore)는 12월 그 가치를 28억 달러(3조 926억 원)로 평가 받았다. 1월 13일 스마트폰 반도체 칩으로 가장 유명한 퀄컴(Qualcomm)은 애플의 반도체 설계팀 베테랑으로 구성된 스타트업 누비아(Nuvia)를 14억 달러(1조 5463억 원)에 사들였다.
맞춤형 실리콘 제작은 10년 전만 해도 신뢰하기 어려운 방안이었다. 범용 반도체는 실리콘 칩에 채워 넣을 수 있는 구성 요소의 숫자가 2년 정도마다 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 덕에 빠르게 향상됐다. 오늘날 기초 물리학의 쿼크(물질 기본 입자)가 나노미터(10억 분의 1미터)로 측정되는 미세한 구성 요소들을 방해하면서 무어의 메트로놈은 무너지고 있다. 리서치사 린리(Linley) 그룹의 린리 그웬냅(Linley Gwennap)은 이제는 메트로놈의 진동 주기가 2년보다는 3년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무어의 법칙에 따르는 이점은 줄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경향은 특히 대규모 수직 통합형 기업들이 성능을 보강하기 위해 설계에 나서는 이유가 된다. 애플의 반도체가 아이폰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에 대해 애플보다 더 정확하게 아는 기업은 없다. 이 클라우드 컴퓨팅 거물은 그들의 하드웨어가 정확히 어떻게 사용되는지, 그리고 설계가 사용 방식에 부합하려면 어떤 부분을 수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자체 반도체의 설계는 한 때 제조를 의미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요즘 대부분의 설계자들은 제조 공정을 TSMC나 미국 회사인 글로벌파운드리(GlobalFoundries) 같은 전문가에게 아웃소싱한다. 스스로 공장을 세울 필요가 사라지면서 비용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수많은 자동화 도구들은 공정을 원활하게 한다. 반도체 산업 분석 업체인 퓨처 호라이즌스(Future Horizons)의 말콤 펜(Macolm Penn)은 “온라인 쇼핑몰 엣시(Etsy)에서 티셔츠를 맞춤 제작하는 것만큼 단순한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먼 미래의 이야기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