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3월,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핵 실험 금지 협상에서 실패한 것을 이렇게 한탄하며 경고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의 협상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1970년에는 핵 보유국이 4개국이 아닌 10개국이 될 것이며, 1975년이면 15개나 20개국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케네디의 생각은 틀렸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수많은 국가들이 핵무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탐구했지만, 실제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본격적인 단계를 밟은 나라는 상대적으로 적었다(표1 참조). 일부는 국가 자체가 분해되는 바람에 시도가 중단되기도 했고(유고슬라비아), 일부는 국내 정세의 변화로(브라질), 일부는 동맹국의 압박으로(한국), 그리고 일부는 무력을 통해서 중단되었다(이라크).[1]
핵 확산 금지 조약(NPT)에는 현재 핵개발 계획을 포기한 185개국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영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와 같은 5개의 핵 보유국도 조약을 인정하고 있다. 조약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들은 서명하지 않았거나(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 탈퇴한 경우(북한)다.
9개라는 핵 보유국 숫자는 케네디의 악몽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은 NPT 체제의 현상 유지 수준을 넘어서 전 세계적인 핵무기의 불법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핵무기 금지 조약(TPNW)의 목표가 바로 이것이다. 조약의 당사국들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사용하지도, 보유하지도 않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 조약은 86개 서명국들 가운데 52개국에서 비준을 받으면서, 지난 1월 22일자로 발효되었다.
하지만 조약이 말하는 ‘핵 금지’는 희망만큼이나 절망을 안고 있다. NPT는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은 비군사적 목적으로 핵 기술을 이용할 수 있다는 약속과 핵 보유국들은 군축 협상을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동시에 얻어 낸 조약이었다.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의 핵무기들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 오히려 약간의 역행이 있었다. 미국이 2002년 대탄도 미사일 조약(ABM)을 탈퇴했고, 2019년에는 (러시아가 위반하고 있었던)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을 탈퇴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1월 26일에 10년 기한이었던 뉴 스타트(New START) 조약을 5년간 연장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는 미국과 러시아의 핵전력과 관련해 두 나라를 묶어 주고 있는 유일한 쌍방 간 군축 협정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의 소형 핵탄두에서부터 해안 지역을 방사능 낙진으로 뒤덮기 위해 설계된 러시아의 수중 드론[2]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러시아는 음침한 신무기들을 다수 공개해 왔다. 중국도 그들 나름대로 한때는 허약한 억지력에 불과했던 초기의 미미한 핵전력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격상시켜 왔다.
주요 핵 보유국들이 자국의 핵 능력(nuclear capability)을 강화하면서 일부 핵 확산국들은 거의 아무런 대가 없이 핵 능력을 획득하고 있다. 비엔나 군축 및 비확산 센터(Vienna Center for Disarmament and Non-Proliferation)의 고카르 무카차노바(Gaukhar Mukhatzhanova)는 1990년대 후반 미국의 정책이 당시만 해도 초보적인 수준이었던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기들을 제재와 규탄을 통해 “차단하고, 역행시키고, 제거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인도가 중국의 힘에 맞서는 방어벽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지면서, 미국은 원칙을 변경해서 민간의 핵 공조를 허용했고 제재를 완화해서 핵 수출을 관장하는 국제 체제[3]로 편입되려는 인도의 노력을 도왔다.
강대국들의 무력 위협, 일부 국가들이 원칙을 변경했다는 인식, 도널드 트럼프 재임 기간 이뤄진 미국의 동맹국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가 모두 핵 확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을 수 있다. 핵폭탄이 확산되는 속도가 줄어들었기는 했지만, 확산은 결코 멈춘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속도와는 관계없이, 확산은 또 다른 확산을 낳고 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사우디아라비아에게 겁을 주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는 한국과 일본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들은 원한다면 할 수 있다
일본은 1960년대 핵 보유국이 된 중국을 따라서 핵클럽에 가입하겠다는 생각으로 시간 낭비를 하긴 했지만, 일본이 대체적으로 핵 경계국으로 여겨지는 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일본은 핵 비무장 국가들 중에서도 주요 우라늄 농축 시설과 사용 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재처리하는 시설을 운영하는 유일한 국가다. 우라늄 농축 시설과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은 모두 핵폭탄용 핵분열 물질을 만드는 잠재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리고 2017년 북한이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당시 북한의 발사체는 일본 열도를 넘어 날아가서 태평양에 착수(着水)했다.
이런 경험은 인식을 바꾼다. MIT의 리처드 새뮤얼스(Richard Samuels)는 핵무기에 대한 일본의 논의가 한때는 “소토 보체(sotto voce, ‘목소리를 낮추어서’라는 뜻의 음악 용어)”로 이뤄졌으며 소규모의 “매우 보수적인 사상가들” 사이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그는 동료인 에릭 헤긴보텀(Eric Heginbotham)과 작성한 글에서 “한때는 거의 금기시되었던 것이, 현재는 일본의 안보 담론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갖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핵 보유라는) 아이디어는 여전히 그다지 인기는 없다. 그러나 미 국무부에서 비확산 정책을 총괄했던 마크 피츠패트릭(Mark Fitzpatrick)은 “일본의 안보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다면” 일본의 과학자들은 핵무기 제조 명령을 순순히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악화된 상황의 사례는 아주 위험천만한 경우만은 아니다. “일본의 정책 입안자들의 상상 속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한국이 핵을 보유하거나 북한이 기존의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남북한이 통일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한국은 농축과 재처리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에서 일본보다 유리한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과의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우려가 커졌다. 싱크탱크인 카네기 국제 평화 기금(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의 토비 달튼(Toby Dalton)과 서울대학교 학생 한아인의 글은 “(한국의) 정치인들이 공공 담론에서 핵무기에 대한 논의를 정상화하고 부정적인 인식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국은 핵 추진 잠수함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핵잠수함은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무기급에 더욱 가까운 핵연료를 사용한다. 그리고 지난 1월 13일 한국은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의 테스트 계획을 발표했다.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 중에서 이런 역량을 갖추려 하는 나라는 없다.
여론 조사를 보면 한국인들의 다수가 핵무기 개발이나 냉전 시절 배치되었던 미국 핵무기의 귀환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핵 억지력 확대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언제나 중대한 결정이었겠지만, 과거에는 그것이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을 전선에 내모는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는 북한의 미사일이 북미 대륙에까지 닿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미국이 평양을 공격한다면 뉴욕이 위험에 빠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전략적인 계산에서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이를 잘 알고 있다.
대만 또한 비슷한 걱정거리를 안고 있다. 지구의 반대편까지 타격할 수 있을 정도로 커진 중국의 능력은 이 섬나라를 돕기 위해 개입하려는 미국의 의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교적 최근인 1988년까지도 핵무장을 모색했던 대만에게는 더 이상 핵 개발 재개는 매력적인 카드가 아니다. 지금 그런 시도를 한다면 훨씬 더 강력해진 중국에게 선제적 타격이나 침공으로까지 이어지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커지는 핵 능력과 그 영향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서 현재까지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어디에서도 핵 확산을 부추기는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이다. 미국은 약속과 설득과 위협을 통해서 동맹국들 사이의 핵 개발 야욕을 견제해 왔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갖고 있는 불만의 경제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면, 한국인들의 핵무기에 대한 인식도 충분히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핵 능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인정하는 합의라도 하게 된다면, 한국으로서는 적어도 핵무기 보유의 가능성을 살려 두고 싶어질 것이다. 핵 협상에서 헤징(hedging)이라고 불리는 입장이다. 그렇게 된다면 북한은 미사일 테스트를 재개할 것이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미들베리 국제 관계학 연구소(MIIS)의 제프리 루이스(Jeffrey Lewis)와 데이비드 슈멀러(David Schmerler)는 북한이 신형 장거리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를 최근 공개했다.
마크 피츠패트릭에 따르면 북한의 핵전력 성장으로 조성되는 공포와 일본, 한국, 대만이 모두 “2년 내에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고, 일본은 더 짧은 기간에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이 동북아를 뜨거운 지역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카네기 국제 평화 기금의 조지 퍼코비치(George Perkovich)는 잠재적인 핵 확산국을 두 가지 범주로 분류한다. 수단은 풍부하지만 야심이 덜한 나라들과 야심은 크지만 수단이 적은 나라들이다. 동북아는 첫 번째 범주에 든다. 두 번째 범주는 중동이다. 이곳은 동북아보다 불안정한 상황이 더욱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자유 민주주의라는 족쇄나 동맹국들의 견제가 동북아만큼 강하지 않은 편이다.
또 다른 싱크탱크인 전략 및 국제 관계학 센터(Centre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의 최근 연구는 “개인의 힘이 센 권위적인 지도자들이 좀 더 핵폭탄에 기우는 경향을 보이며, 그들이 권력을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이 어떤 면에서는 계획을 좀 더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해당 연구는 점점 더 독재적으로 변해가는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대통령이 최근에 바로 이런 식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2019년 9월 그는 터키의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 Parti)의 당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불만을 표했다. “일부 국가들은 핵탄두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스탄불 소재의 싱크탱크인 EDAM을 이끌고 있는 전직 외교관 시난 윌겐(Sinan Ülgen)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러한 논리를 기반으로 행동하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다. “처음에는 대중들이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생각을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터키와 같은 개방 경제를 취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비용이 지나치게 크고 기간도 오래 걸릴 것입니다. 민주적인 선거 제도를 갖고 있는 정부하에서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중동의 모든 지도자들이 이러한 제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우디에서의 논의를 보면, 핵 확산의 가능성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지가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텍사스A&M대학교 그레고리 고스(Gregory Gause)의 말이다.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명백한 원인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다. 2015년 이란과 NPT가 인정한 다섯 곳의 핵 보유국, 그리고 독일과 유럽 연합(EU)까지 참여해서 체결한 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JCPOA)은 제재를 완화하는 대가로 이란은 우라늄 보유량과 농축 능력을 축소하고, NPT의 감시 기구인 국제 원자력 기구(IAEA)의 엄중한 사찰을 받는다는 데 합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이 2018년에 협정을 탈퇴하자, 이란은 협정 준수를 중단했다. 지난 1월 4일 이란은 우라늄의 순도를 (무기화할 수 있는 단계의 10분의 9에 해당하는) 20퍼센트로 농축하기 시작했고, 9일 후에는 핵폭탄의 핵심부를 만드는데 사용될 수 있는 금속 우라늄 작업에 착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JCPOA에 재합류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란은 그렇게 되면 다시 합의안을 준수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아랍 지역 경쟁국들은 애초에 이 합의에 반대했던 것처럼 부활에도 반대하고 있다. 그들은 합의안이 이란의 핵 기반 시설에 대한 합법화이며, 이란의 핵무장 능력에 일시적인 제약을 가할 뿐이라고 여기고 있다. 사우디의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Muhammad bin Salman)은 2018년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 왕국은 어떠한 핵폭탄 보유도 원하지 않지만, 만약 이란이 핵폭탄을 개발한다면 저희도 최대한 빨리 보조를 맞출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피츠패트릭은 “사우디가 전 세계에서 핵 확산의 우려가 가장 큰 국가”라고 생각한다.
사우디가 16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의사를 발표하기는 했지만, 이들의 핵 기술은 일본이나 한국에 비해서 한참이나 뒤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개발하고자 하는 야심이 좌절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서방의 정보 당국 관계자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사우디로부터 재정적 후원을 받아서 핵폭탄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파키스탄이 사우디에 완성된 핵 장비나 노하우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었다.
사우디가 외부의 직접적인 도움에 덜 의지할 수도 있다. 다트머스대 니콜라스 밀러(Nicholas Miller)와 미국 해군대학원(NPS)의 트리스탄 볼프(Tristan Volpe)는 조만간 발표될 논문에서 “권위주의적 핵 시장”의 성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비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의 “철칙”은 농축 핵연료는 수입해야 하고 사용 후 핵연료는 외국에 보내서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핵분열성 물질의 자국 내 공급 루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은 이러한 원칙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 논문의 저자들은 2000년 이후에 다른 나라로 수출된 33개의 원자로 중에서 19개가 이들 두 나라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사우디의 우라늄 원석 가공 시설의 건설을 도와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것이 농축 시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방의 관계자들을 우려시키기에는 충분하다.
중국도 사우디의 탄도 미사일 무장에 영향을 미쳤다. 2019년 MIIS의 연구진은 리야드 남서쪽에 있는 로켓 엔진 제조 공장 의심 시설이 중국의 제조 시설과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것만으로는 그들이 핵무기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미사일은 재래식 무기로서의 유용성이 익히 알려져 있기 때문에, 지금도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이 탄도 미사일 전력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잠재적 핵 확산국들이 미사일 기술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상태라면 분명 핵무기와 관련한 유용성이 있다.
현재 확산을 노리는 나라들의 입장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탄도 미사일 능력이 점점 더 넓은 영역으로 확산되고 핵연료에 대한 합의가 느슨해지고 있는 상황만은 아니다. 미국의 국가 핵 안보국(NNSA)은 3D 프린팅이나 강력한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설계와 같은 기술적 발전이 “핵무기 개발의 새롭고도 우려스러운 경로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확산국들도 새로운 도전 과제들을 마주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던 당시(1980년대)에 비해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를 알 수 있는 세계의 능력이 훨씬 더 뛰어나기 때문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더욱 늘어났습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미 국무부의 비확산 담당 차관보를 지냈던 토머스 컨트리먼(Thomas Countryman)의 말이다. 비정부 기구(NGO)들도 “공개된” 정보 출처를 활용해서 비밀 시설들을 찾아내 공개하고 있는데, 이러한 공개적 정보 출처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사진이 있다. MIIS의 연구진이 북한의 미사일 테스트 예정지와 사우디의 로켓 공장을 찾아내는 데 활용했던 것도 위성사진이었다.
IAEA는 변조 방지 카메라와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전송하는 방사능 탐지 장치를 활용해서 최근 몇 년간 이란에 대한 원격 모니터링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미국 해군대학원의 트리스탄 볼프는 점점 더 많은 제조 기술이 아주 먼 곳에서도 모니터링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기술은 단순히 유지 보수 일정을 관리하는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볼프는 판매한 핵 관련 기계 장치의 실제 작업 용도를 공급자들이 면밀히 조사할 수 있는 “핵의 사물인터넷(Internet of Nuclear Things)”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은밀하게 핵무기를 개발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공공연한 개발은 어떨까? 어떤 나라의 NPT 탈퇴는 분명 위기를 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인도의 사례를 보면, 진심으로 (핵무기 개발을) 저울질 하는 국가들은 국제 사회의 반감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비엔나 군축 및 비확산 센터의 고카르 무카차노바의 말처럼,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나라들은 만약에 비상 상황이 발생한다면 NPT에 받아들여질 것이라 확신할 것이다.” 만약에 한국이 (NPT를 탈퇴하고) 노골적으로 핵 확산을 추진한다고 가정해 보자. NPT의 안전한 품으로 되돌아오게 하려고 한국을 세계 경제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 될 것이다.
돌아갈 방법이 없다
이란을 포함해서 핵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대부분의 국가들은 실제로 무기화 프로그램을 구축하기보다는 (잠재적 가능성을 열어 두는) 헤징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다수의 경쟁국들이 동시에 헤징을 하게 된다면 연쇄적인 확산의 가능성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이 이란을 군사적으로 타격한다면 이란에서 핵 억지력의 필요성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고, 이는 사우디의 대응을 촉발시켜서 결과적으로 터키나 이집트의 (핵무장에 대한) 야욕을 강화시키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세계가 미국의 외교와 참여와 설득에 리스크 억제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다. 향후 몇 년 동안은 바람대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중심적 역할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텍사스A&M대학교의 그레고리 고스가 지적하듯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뺄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는 상황”이 핵 확산에 대한 사우디의 논의를 뒷받침하고 있다.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에 수반되는 리스크(미국 본토에 대한 직접 타격)도 분명히 증가하고 있다. 비록 바이든 대통령이 언제나 철저하게 군축을 옹호해 오긴 했지만, 그의 전임자에게는 그러한 철학이 적용되지 않았다. 후임자가 그와 동일한 원칙을 가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핵 확산은 한때 우려했던 것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핵 확산은 멈춘 적이 없었고, 얼마든지 속도를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