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부터 스웨덴에 이르는 31개국은 핵무기 제조를 고려해 본 적이 있는 나라다. 이 가운데 17개국이 무기화 프로그램에 정식으로 착수했었다. 그중 실제로 폭탄 형태를 만들어 낸 건 10개국에 불과하다. 현재까지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선언한 국가는 9개국이다. 25년 전에 비해서 많지 않은 수치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이 무기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오랜 투쟁은 점점 힘겨워지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핵 보유의 야망을 가진 나라들의 대부분은 리비아나 시리아 같은 지정학적 피라미들이었다. 하지만 향후 10년간의 위협 세력들에는 야심을 억제하기 어려울 경제적, 외교적 강자들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지역 내에서 급속히 키워 가고 있는 패권과 북한이 개발하고 있는 핵무기는 아시아의 강국들인 한국과 일본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이란의 호전성과 핵 프로그램은 사우디아라비아나 터키 같은 나라들에게는 불길한 징조다(
2화 참조). 확산이 연쇄 반응이 아니지만, 전염성은 있다. 그리고 규제는 일단 한 번 약해지기 시작하면 급속히 무너질 수 있다.
조짐은 심상치 않다. 우선 1991부터 2010년 사이에 79퍼센트에 달하는 3만 8000개의 탄두를 감축했던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군축 협정이 힘을 잃었다. 지난 1월 26일, 조 바이든 신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양국 사이에) 마지막으로 체결되어 만료 예정이었던 ‘뉴 스타트(New START)’ 협정을 5년 연장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후속 조치에 대한 전망은 밝지 않다. 중국, 인도, 북한, 파키스탄은 모두 자국의 핵전력을 확장하며 현대화하고 있다. 핵 질서를 위한 주춧돌인 핵 확산 금지 조약(NPT)이 내세운 전 세계적인 군축이라는 궁극적 목표의 진척 상황은 여전히 암울하다. 86개국이 서명한 새로운 핵무기 금지 조약(TPNW)이 지난 1월 22일자로 정식 발효되었지만, 핵 비보유국들 사이에 불만만 퍼뜨리고 있을 뿐 역할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1]
만약 핵무기가 사라지지 않고 안보의 불안이 더욱 심각해진다면, 일부 국가들은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유혹에 빠질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은 핵 보유의 야심을 가진 나라들을 규칙에 따르게 만들었다. 대만 같은 우방국들에게는 안전 보장을 철회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고, 이라크와 같은 적국에게는 제재 조치와 군사력을 활용해서 단념시키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힘은 약해져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격한 표현은 미국이 과연 동맹국을 수호하며 규칙을 강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키웠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통적인 외교 정책을 복원하려고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미국이 아시아의 동맹국들에게까지 확장한 핵우산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핵우산은 만약 북한이나 중국이 서울이나 도쿄를 타격할 경우, 미국이 평양이나 베이징에 보복 공격을 하겠다는 약속이나 다름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은 자국의 영토가 북한 미사일의 사정거리 밖에 있다는 확신을 갖고 위협을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미국이 평양을 타격하면 샌프란시스코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적극적인 행동을 꺼리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본토에 대한 역공격을 우려한 미국이 적극적인 조치에 나설 수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김정은이 서울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 서는 것이다. 위기가 오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자국 영토에서 1991년에 철수한 미국의 전술적 핵무기의 재배치를 바라거나, 그게 안 된다면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한국이나 일본, 대만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핵 보유에 대한 야망이 정치적 현실에 의해 제어될 수 있다. 그러나 중동은 다르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협정
[2]은 무너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부활시킨다고 하더라도, 협정 조항 상당수의 시효는 10년 안에 만료된다. 만약 이란이 언제든 핵 개발을 고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사우디아라비아도 뒤처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사우디에서는 무함마드 빈 살만(Muhammad bin Salman) 왕세자가 가진 권위나 핵 기술에 대한 야심 찬 계획을 견제할 만한 세력은 거의 없다. 터키 역시 보조를 맞출 수 있다.
핵 질서가 일단 흐트러지기 시작하면,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행동이 중요한 것이다. 미국, 중국, 유럽, 러시아는 확산을 막는다는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다. 러시아도 미국만큼이나 이란의 핵 보유를 원치 않는다. 일본이 핵무장을 한다고 예상하는 것만으로도 중국에게는 최악의 악몽이다.
[3] 2015년에 체결된 이란 핵 협상은 경쟁국들이 핵 확산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핵 보유국들이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여전히 전 세계 핵탄두의 9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가 어떠한 노력이든 먼저 해야 한다. ‘뉴 스타트’가 연장되는 만큼, 극초음속 비행체(hypersonic glider)나 러시아가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저위력 핵탄두(low-yield warhead)와 같은 다른 무기들까지 포함하는 후속 협상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좀 더 급진적인 아이디어도 논의되어야 한다. 미국은 현재 지상에는 핵미사일 사일로(silo), 바다에는 핵 잠수함, 공중에는 핵 폭격기라는 삼각 체계로 핵전력을 운용하고 있다. 지상의 미사일을 퇴역시킨다면 핵 억지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도 군축을 향한 진정한 진전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군축 협정이 이루어진다면, 중국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핵전력을 급격히 끌어올려서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지 않고도 기존의 무기만으로도 적국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다고 말이다. 중국이 이처럼 자제한다면 결국 인도와 파키스탄도 안심할 수 있다.
북한과 이란을 진정시키기 위한 미국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동맹국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우방국들과의 관계를 복구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한 번의 임기로 신뢰를 완전하게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바이든 대통령은 우선 일본과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재확인하고 강화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는 미국의 지상군 역할도 포함된다. 단순한 방어선으로서의 역할만은 아니다. 동맹국들에게는 자신감을 보여 주고 적국에게는 미국이 분쟁에서 발을 빼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조짐을 포착하는 것도 필요하다. 각국의 정보기관들은 이란과 같은 익숙한 악의 무리들에게 초점을 맞춰 왔다. 시선을 더욱 넓혀서 한국이나 터키 같은 나라들의 핵 기술이나 대중의 여론, 정치적 의도에서 감지되는 변화의 경고음을 조기에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4] 국제 핵 감시 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민간 핵 시설을 감시하고 있으며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기구 출범 이래 최대 강도의 사찰을 실시하는 등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IAEA는 과중한 부담과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기술적인 변화에 발맞춰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5]를 주의하라
세상에는 수많은 걱정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핵 확산의 위험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오늘날의 핵 외교가 고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각 지역에서 핵으로 무장한 경쟁국들이 서로 대치할 때마다 발생되는 치명적인 불안정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