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왜 장난감을 살까
고객 감소와 경기 위축은 모든 산업의 위기 요인이다. 그렇게 본다면, 장난감 산업은 수년째 큰 위기에 내몰려 있다. 출생률이 떨어지면서 주고객인 어린이가 줄고 있고, 저성장 시대에 코로나 판데믹까지 겹쳐 소비 규모 자체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난감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전체 장난감 시장 규모는 이미 2016년에 1조 원을 넘어섰다.[1] 조립식 장난감 시장은 2017년 이후 연평균 7퍼센트대 성장률을 기록해 2021년에는 1474억 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2]
장난감 시장의 성장에는 새로운 고객이 있다. 바로 장난감을 소비하는 어른들, 키덜트(Kidult)다. 이들은 어른이 됐지만, 유년 시절 즐기던 장난감과 만화를 소비하는 어른들을 말한다. 키덜트는 과거에는 ‘어른답지 못하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 소수였지만, 지금은 자신만의 취향을 갖춘 소비자로 주목받고 있다. 키덜트가 주요 트렌드이자 소비문화로 부상한 이유다. 특히 코로나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장난감을 포함한 취미 용품 시장의 호황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일어나는 변화 중 하나는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장난감은 실리적인 효용이 있다고 보기는 힘든 소비재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왜 장난감을 소비할까?
첫 번째 이유는 감성적인 만족이다. ‘피터팬 증후군’이라는 용어로 이런 심리를 설명할 수 있다. 피터팬 증후군은 1983년 미국의 심리학자 댄 카일리(Dan Kiley)가 제시한 개념으로 성인이 되었음에도 아이처럼 다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성향을 뜻한다.[3] 경제 대공황 시대에 타인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성인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쓰인 개념이지만 키덜트의 심리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성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아이의 감성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는 캐릭터 상품 소비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귀여운 캐릭터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다. 곰돌이 푸나 스누피, 헬로키티 등은 지금까지도 다양한 상품으로 출시되고 있다. 펭수나 카카오 프렌즈와 같은 신생 캐릭터 제품들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니즈도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현실에서 벗어난 세계관의 구축이다. 레고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인형 하나를 갖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특정 캐릭터를 중심으로 여러 주인공을 배치한 세계를 만들어야 의미가 있다. 곰 모양의 피규어 베어브릭은 키덜트 소비자들의 수집용 장난감으로 유명하다. 피규어 하나만 세워 두는 것보다는 다양한 스타일을 함께 구입해 전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러 장난감이 결합하면서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는 하나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어울리는 것들을 지속해서 소비하는 심리가 있다. 어울리는 것들을 조합해 완성하려는 욕구다. 이는 디드로 효과(Diderot Effect)라고 불린다. 프랑스 작가인 드니 디드로가 제시한 이 개념은 친구에게 선물 받은 빨간 가운이 방과 어울리지 않아, 가운과 어울리는 소품들로 공간을 하나둘 채우다 보니 결국 방 전체가 변해 버렸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4] 특별한 날을 위해 값비싼 옷을 한 벌 샀는데, 여기에 어울리는 신발과 가방이 없어서 결국 모든 패션 용품들을 구매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디드로 효과는 어른들의 장난감 소비에서 재구매를 일으키는 동력이 된다. 완성의 욕구를 자극해 소비 행위에 관성(inertia)을 만든다. 과거의 장난감 소비를 기준으로 어울리는 제품의 구매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제품군 내의 다양한 종류의 장난감을 구매해 작품을 완성하면서 가치를 올리는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세 번째는 소속감이다. 소비자들은 ‘따로 또 같이(alone together)’ 키덜트 문화의 일원이 되어 간다. 취향대로 장난감을 수집해 홀로 즐기기도 하지만,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는 것도 즐기는 방식의 하나다. 키덜트 문화는 대중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문화가 아니라, 소수의 마니아층에서 시작된 하위문화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 타 집단과 구별되는 신념을 갖고 우리 집단에 포함된 사람들끼리의 독특한 경험을 공유하는 문화다. 마니아들 속에서 감정적 유대를 얻기 위해 장난감을 소비하고 이를 구성원들과 공유하면서 그룹의 일원이라는 존재감과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심리를 파노플리 효과(Panoplie effect)라 한다. 파노플리는 ‘집합’이라는 뜻으로 기사의 갑옷과 투구를 합친 한 세트를 뜻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제시한 파노플리 효과는 특정한 제품의 소비를 통해 자신이 소속되기를 원하는 집단과 동일시되는 것으로 믿는 소비자 심리를 말한다. 특정 브랜드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소비하는 현상이 대표적인 예다.
키덜트 소비자들은 구입한 장난감을 게시하는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활동한다. 대표적으로 가격 정보 공유 사이트 ‘다나와’의 ‘키덜트 포럼’이 있다. 장난감 매장이나 제품의 내용 등을 공유하는 ‘정보’ 카테고리부터 자신만의 장난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일상/자랑’, 스스로 제작한 작품을 보이는 ‘자작기’ 등의 다양한 게시판이 있다. 커뮤니티를 통해 키덜트 유저들은 장난감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고, 때로는 자신의 장난감을 타인에게 과시도 하며 정보를 획득하고 감정적 만족을 얻는다.
언제, 어떻게 장난감을 살까
성인이 되어서도 장난감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소비 행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5] 키덜트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장난감을 소비할까? 답을 찾기 위해 수도권에 거주하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키덜트 남성 4명과 여성 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은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여윳돈이 생겼을 때, 가격 할인 행사를 할 때, 신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한정판이 출시되었을 때 장난감을 산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장난감을 사는 것일까? 소비는 단순히 경제적인 목적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심리적, 정신적 측면을 포함한다. 소비가 발현되기 위해서는 동기(motivation)가 필요하다. 키덜트 소비자들의 심층 인터뷰를 분석한 결과, 이들의 소비 동기는 쾌락성, 노스탤지어, 심미성, 이상향(로망) 실현, 보상적 결핍, 완성 욕구 여섯 가지로 나타났다.
즐거우면 그만, 쾌락적 가치
유희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서 놀이는 인간에게 중요한 행위이다. 장난감은 인간의 놀이를 위한 도구다. 키덜트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기분을 전환하려는 목적이나 자기만족을 위한 쾌락 소비의 일환으로 장난감을 구매한다.
“나에게 상을 준다, 이런 개념으로 사는 것 같아요. 그만큼 내가 힘들고. 이번에 월급이 더 들어왔으니 이 정도는 살 수 있겠지.”
“딱 만들었을 때 모든 동작이 잘 구현되면, 실수 없이 잘 만들었다는 거니까. 기분도 리프레쉬도 되고, 시간도 잘 가고.”
장난감으로 떠나는 과거로의 여행, 노스탤지어
장난감은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추억의 대상이기도 하다. 디지털 세대 이전의 소비자들에게는 더 그렇다. 당시에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장난감을 가지고 몸으로 뛰어놀았다. 소비자들이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이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무언가가 그리워지는 노스탤지어(nostalgia, 향수[鄕愁])의 감정을 느끼는 이유다.
“차는 어릴 적부터 좋아했어요. 그때는 자동차 엄청 많았죠. 혼자 역할극 하면서 놀기도 하고, 저 목욕할 때 자동차도 같이 씻기고 했죠.”
“벼룩시장이나 그런 곳 있잖아요. 그런데 가면 피카츄, 포켓몬스터나 어린 시절 좋아했던 캐릭터 상품 저렴한 것은 꼭 사는 것 같아요.”
보기 좋은 장난감이 사기도 좋다, 심미적 가치
예쁘고 귀여운 것은 소장 욕구를 부른다. 키덜트 소비자들은 장난감의 외관(디자인), 색상 등에 대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소비자들에게 인기 있는 캐릭터 상품의 대표적인 특징은 귀여운 외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예쁘다 싶어서 사버릴 때도 있어요. 예쁘고 귀엽다 하면 그냥 구매해요.”
“너무 귀엽고 아기 천사 같이. 실제로 뒤에 날개가 있어요. 순수하게 생겼다고 해야 하나. 그게 너무 귀여워서. 눈도 순정 만화 눈이에요.”
로망을 꿈꾸다, 이상향 실현
장난감은 키덜트의 숨겨진 이상향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릴 때 군인이 꿈이었던 키덜트는 어른이 되어서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탱크나 군함 같은 군대 프라모델을 소비한다고 했다. 장난감 소비를 개인적 목표로 삼고 달성할 때 성취욕을 느낀다는 경우도 있었다. 로망을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장난감을 구입하는 것이다.
“어릴 때 꿈이 군인이었어요. 그래서 프라모델은 군용품 종류로만 모았죠. 헬기, 탱크, 장갑차, 군함 등.”
“자동차 같은 경우는 제가 좋아하는 차량들을 구입해서 전시해 놓으면 성취동기, 목표 의식이 생겨요. 나는 이거 살 거다, 그런 식이에요. 이걸 사기 위해 열심히 할 거다.”
장난감 내돈내산, 보상적 결핍
한정된 자원으로 상품을 구매해야 하는 소비자는 치열한 의사 결정 과정을 거친다. 장난감 소비도 그렇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어린이날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나 하나만 고를 수 있었던 것이 장난감이다. 성인이 되어 경제 활동을 하고 여유 자금이 생긴 어른들은 장난감 ‘플렉스’[6]를 할 수 있게 됐다. 일종의 보상 소비(compensatory consumption)로 과거의 물질적이나 정서적인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장난감을 구입하는 것이다.
“레고를 생일에 한 번씩만 사주셨어요. 그것도 원하는 게 아니라 랜덤으로 사주고 싶은 걸 사주시더라구요. 항상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나이 들어서 네 돈 생기면 해라’예요. 그게 뇌리에 박혀서 과외 하고 나서 샀던 것 같아요.”
“사실 어릴 때는 접근하기 힘든 가격이라 대학생 때부터 구매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 완성 욕구
독수리 5형제 가운데 형제가 2명만 있으면 왠지 모르게 어색하다. 5명이 모두 모여야 안정감이 있다. 곰돌이 푸도 피글렛이나 티거 등의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하나의 세계관이 완성된다. 이처럼 장난감을 수집하는 행위에서는 소비자의 완성 욕구가 발현된다. 인터뷰에서 한 소비자는 무작위의 장난감을 모두 수집하는 것이 아닌, 현재 높은 관여도를 갖고 있는 장난감을 기준으로 삼아 통일성 있게 시리즈물로 모은다고 했다. 한 세트의 장난감이 완성된 것을 보고, 뿌듯함과 행복 등의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성취감이 느껴져. 한 명만 있으면 안 돼. 세트인 애들을 다 사야 해. 하나만 있으면 아… 이러고. 3개가 있으면 와아 하는 뿌듯함이 있어.”
“맥도날드에서 받은 건 친구 다 준 적도 있어요. 기존에 있는 애들이랑 달리 대두여서 어울리지 않더라구요. 저는 그래서 같은 시리즈만 모아요. 뭔가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나.”
코로나 시대와 장난감
코로나는 시장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마스크를 사용하게 되면서, 패션·뷰티 시장 매출은 급감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 관광·여가 산업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주요 소비 공간도 달라졌다. 야외 활동에 제한을 받는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실내 공간, 특히 집에서 소비하게 됐다. 집에서의 시간을 흥미롭게 보내기 위해, ‘집콕’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정신적 안정감을 찾기 위해 장난감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색 컬래버레이션으로 경험을 확장하는 사례도 있다.
위안을 드려요, 컴포트 토이
장난감은 우리에게 감정적 만족을 준다. 갖고 싶은 장난감이 내 품에 들어올 때 느껴지는 뿌듯함, 가지고 놀 때의 즐거움과 행복감은 장난감이 주는 감정적 혜택들이다. 최근에는 안정감과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일명 컴포트 토이(comfort toy)가 소비자의 품 안에 들어왔다. 대표적인 예는 피젯 스피너를 포함한 피젯 토이(Fidget toy)다. 피젯(fidget)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는 ‘꼼지락거리다, 만지작거리다’라는 뜻이다. 가지고 노는 방법은 상당히 단순하다. 피젯 스피너는 장난감의 중간 부분을 돌릴 수 있고, 피젯 패드는 누르고, 돌리고, 긁을 수 있는 장난감이다. 단순한 행동을 반복하면서 느끼는 안정감이 피젯 스피너의 효용이다.
컴포트 토이의 또 다른 예는 애착 인형이다. 애착 인형은 보호자가 없을 때, 함께하는 편안한 느낌을 갖기 위해 아이들이 갖고 다니는 인형을 말하는데, 최근에는 성인의 소비 사례도 늘고 있다. 성인 애착 인형을 쇼핑 플랫폼에 검색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형태는 바디 필로우(body pillow)다. 숙면을 위해 안기도 하고, 다리를 올려 잘 때 가장 편한 자세로 만들어 주는 쿠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