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미국 실리콘밸리로 처음 출장을 갔었다. 1990년대 닷컴 버블이 한참 부풀어 오를 때였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옆자리 승객이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었다. 처음엔 한국인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우리말을 못 알아듣는 기색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해 영어로 말을 걸어 봤다. “혹시 영어 할 줄 아세요?” “어…… 조금”이라는 답과 함께 말문이 트였다. 대만 IT 업계에서 일하는 연구원인데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가 복귀하는 길이라고 했다. 대화 내용은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특별한 용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조금’이라고 했던 영어가 사실은 대단히 유창했고 식견이 넓었다는 것, 말투에 묻어나는 성품이 상당히 겸손하고 상냥했다는 기억만 아련하다.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한 후 돌아와서도 한동안 연락이 이어졌다. 주로 내가 국제 전화를 했고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통화 내용은 안부와 근황을 묻는 정도에서 맴돌다 끝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점차 다른 것들에 밀리고 묻혀 언젠가부터는 모두 잊힌 일이 되었다. 어릴 적 동네 중국집에서 본 몇을 제외하면 내가 만나서 대화까지 나눠 본 대만인으로는 처음이었다.
3년 전 대만의 한 작가를 알게 되었다.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라는 제목의 번역서를 통해서였다. 처음엔 ‘마르케스의 서재’라는 말에 끌려 펼쳐 본 책이었다. 뜻밖에도 저자가 대만 사람이었다. 언제 대만 작가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있었던가? 탕누어라는 이름(알고 보니 필명)도 독특했다. 사실 처음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보니 책에 담긴 생각이 무척이나 깊고 넓었다. 곧장 팬이 되었다. 출판사를 통해 현지까지 가서 직접 대면 인터뷰를 했다. 그때 대만이며 타이베이를 처음 가봤다. 탕누어 외에도 그곳 출판계 사람과 문인 몇 명과도 만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쩐지 분위기가 그전에 많이 봐왔던 중국 대륙인의 호탕함이나 요란함과는 아주 달랐다. 대만을 달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한 가지가 더 있다. 탕누어에겐 외동딸이 있었다. 트랜스젠더라고 했다. 자녀의 결정을 흔쾌히 존중했고, 그 사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작가가 다르게 다가왔다. 2019년 5월 대만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이었고 지금까지도 유일하다.
그리고 세 번째 대만과의 만남. 이번엔 사람이 아닌 사건이었다. 지난해 날벼락처럼 세계 전역을 차례로 강타한 코로나19 소식과 함께였다. 대만은 중국에서 첫 발병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줄곧 방역 대응의 성공 모델로 세계의 시선을 끌었다. 국내 언론들도 뉴스를 앞다퉈 보도했다. 주로 화제가 되었던 것은 대만에서 방역에 효자 노릇을 한다는 마스크 앱이었다. GPS 방식의 온라인 지도를 통해 전국의 마스크 구매처와 재고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 앱이었다. 국내에서 마스크 대란으로 한바탕 아우성이 일던 때여서 이 소식은 한층 더 주목을 받았다. 대만의 방역 성공 뉴스에서 주인공으로 부각된 인물이 바로 오드리 탕(Audrey Tang) 디지털 장관이다. 사실 직명도 생소한 이 동안의 ‘디지털 장관’은 수년 전에도 잠시 국내 언론을 탄 적이 있었다. 그녀가 막 장관에 발탁됐을 때였다. 당시에는 ‘대만 정부 역대 최연소이자 트랜스젠더 장관’이라는 수식어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이번에 내가 그녀에게 새삼스레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엔 그랬다. 마스크 앱 하나로 코로나를 제압하다니 천재 해커는 뭔가 달라도 다른가 보군. 하지만 가시지 않는 궁금증에 그녀와 관련된 기사와 팟캐스트, 인터뷰 동영상 등을 더 찾아봤다. 인터넷에 자료는 차고 넘쳤다. 하나둘 찾아 읽고 듣고 보다 보니 처음에 뉴스로 접했던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내가 특별히 그녀의 남다른 이력과 면모, 능력과 행보에 주목하게 된 것은 단순히 코로나19 방역 차원을 넘어, 오늘날 현대 기술 사회가 봉착한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출구 찾기라는 더 큰 관심과도 관련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후 변화를 넘어 위기라고까지 불리는 지구 환경과 생태계 문제, 숨이 가쁠 정도로 속도를 더해 가는 기술 혁신과 그것이 낳는 인간의 고용 불안과 자율성 위기, 소셜 미디어로 대변되는 플랫폼의 커져 가는 비대칭적 위력과 민주주의의 불안한 미래 같은 것들이다.
21세기 디지털 산업 시대 민주주의는 중대한 기로에 선 것처럼 보인다. 모두의 열린 공간을 약속했던 초기 인터넷의 유토피아적 꿈은 어느새 빛을 잃어 가는 듯하고, 그 자리를 소수 기술 기업들의 승자 독식 시스템에 의한 개인 데이터 포획과 감시 자본주의가 차지하려 한다(이것과는 다른 길인 중국의 감시 국가주의는 일단 논외로 하자. 나중에 본문에서 이야기하겠다). 여기에 과거 산업화 패러다임에 갇혀 있던 국가 권력은 뒤늦게 새로운 규제의 무딘 칼로 문제를 허겁지겁 서툴게 해결하려 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순간의 편리에만 휩쓸려 속수무책으로 개인 데이터를 기업들에 내주었던 일반 시민들은 이제 가짜 뉴스와 정보 홍수, 끊임없는 주의 분산 속에서 피로감과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 지식인들도 기술 디스토피아에 대한 묵시론적 예언과 경고만 반복하거나 저항의 구호만 남발하고 있다.[1]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마치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 나오는 고속 열차처럼 앞으로만 질주하는 가운데 그 안에 저당 잡힌 듯 탑승한 승객들은 등급이 나뉜 객차에 몸을 실은 채 속수무책으로 차 안과 차창을 번갈아 내다보는 형국이다. 여기서 앞쪽의 기관차는 실리콘밸리와 월가가 주도하는 기술 산업 복합체에 비유할 수 있다. 기차의 방향을 좌우할 조종간이라든가 속도를 조절할 제동 장치가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그것은 오늘날 심각하게 고장 난 것처럼 보인다. 단적인 예로, 한때 세계 민주주의를 선도해 온 미국의 의사당이 권력자를 중심으로 한 극렬하고 과격한 세력들에 의해 폭력적으로 점거당하는 세상이다.
이런 지구 차원의 위기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인물이 바로 대만이라는 작은 섬나라의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이다. 그녀는 남들이 속단하는 지점에서 과감히 새로운 길을 상상하고 대안적 서사를 풀어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축적된 생각과 역량을 구체적인 정책의 형태로 구현해 보이고 있다. 그 최근의 성과가 코로나 방역 과정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은 대만의 성공적인 대응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조명받아 마땅한 다채로운 면의 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만으로 40세에 불과한 그녀의 이력만 봐도 대단히 이례적인 것들로 점철되어 있는데, 이것 자체가 대만 사회의 새로운 민주적 변화와 그 주역인 밀레니얼 세대에 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그녀는 일찍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면서도 학교에서 따돌림에 시달리던 끝에 자퇴와 인터넷 독학의 길을 택했고, 그 후 뛰어난 프로그래머로 10대에 창업해 큰 성공을 거두었는가 하면, 스스로 성전환의 길을 택한 ‘보수적 아나키스트’였다. 또한 2014년 대만의 민주화에서 일대 분수령이 된 해바라기 운동을 지원한 사이버 전사였고, 지금은 대만 최초의 트랜스젠더 디지털 장관으로 변신해 인구 2400만 명의 소국을 세계가 주목하는 디지털 민주주의 혁신의 모델로 바꿔 가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다양한 의미가 중첩된 실험으로서 최근의 대만 민주주의와 그 중심에 서 있는 오드리 탕의 특별한 삶과 생각, 그동안의 구체적인 성과, 그것이 21세기 디지털 시대 민주주의의 앞날과 우리 사회에 주는 교훈을 이야기한다. 코로나19 방역의 성공담은 그 이야기의 일부로서 소개되고 해석될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디지털 기술을 통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길 찾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