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처럼 미국의 화합을 상징하는 기업은 정치적으로 신중하게 행동한다. 특히 인종과 투표 같은 논란이 되는 문제에서 그렇다. 1964년 코카콜라는 애틀랜타 ― 코카콜라의 본사 소재지이자 민권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본거지 ― 의 명사들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돌아온 킹 목사의 축하 만찬 참석을 거부했을 때 훌륭하게 대처했다. 코카콜라의 전·현직 경영진은 영예로운 만찬에 산업계 인사들이 참석하도록 뒤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참석자들은 만찬장에서 〈승리는 우리에게(We Shall Overcome)〉
[1]를 부르기까지 했다.
올해도 코카콜라는 3월 31일 조지아주의 공화당 소속 주지사인 브라이언 캠프(Brian Kemp)가 새 투표법
[2]에 서명하기 전후로 개입했다. 코카콜라는 법안 통과 전까지 법안의 내용을 완화하려 노력했는데, 두 번이나 역풍을 맞았다. 우선, 민권 단체들은 비겁하다고 비판했다. 제임스 퀸시(James Quincey) CEO가 유감을 표하기 위해 델타 항공 같은 다른 애틀랜타 기업들의 무리에 합류했을 때는, 공화당 지지자들로부터 ‘깨어 있는 위선 기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4월 14일, 아마존, 구글 등 거대 기업들과 워런 버핏(Warren Buffett) 같은 거물 기업인을 포함한 수백 개의 기업이 투표를 어렵게 만드는 ‘모든 차별적 입법’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발표했다. 서명에 참여한 미국 대형 제약 회사 머크(Merck)의 CEO 케네스 프레이저(Kenneth Frazier)는 《뉴욕타임스》에 성명이 비당파적이었다고 말했다. CEO 출신인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윌리엄 조지(William George) 교수는 “(유권자 억압은)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린다. 그리고 자본주의 역시 위험에 빠트린다”고 말한다.
재선 임기를 광범위한 사기 행각으로 놓치게 됐다는 트럼프의 큰 거짓말에 호응하며 법안을 밀어붙인 공화당원들은 기업의 반발이 노골적으로 정치적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가정용 브랜드와 중역들이 전통적으로 기업 친화적인 공화당에 점점 더 반대하는 것은 그들이 미국 자본주의의 여명기 이래 기업에 도움이 되었던 정치적 침묵이라는 규칙을 깨트릴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 준다. 왜일까?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의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국의 기업은 법적 혁신인 유한 책임 회사를 기반으로 구축되었다. 본래 이런 기업 구조는 정부 허가가 필요했고, 종종 정부에 돈을 쥐여 줘야 했다. 19세기 전반기에 일련의 법원 판결로 기업은 정부와 상호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됐다. 그 후 기업에 필요한 것은 야망과 의지가 있는 투자자뿐이었다. 그 결과 역대 가장 풍요로운 비즈니스 환경이 탄생했다.
20세기 초 일부 기업인은 회사의 부를 이용해 정부에 있는 친구를 사들이며 정치를 재발견했다. 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산업과 정치 사이의 회전문은 자주 돌지 않았다.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의 사장인 ‘일렉트릭 찰리’ 윌슨과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의 사장인 ‘엔진 찰리’ 윌슨은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여러 행정부에서 일했다. 1960년대까지의 기간은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가 ‘대항적 권력’이라고 불렀던 시대였다. 큰 기업은 큰 정부와 큰 노동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었다. 일부 CEO들은 산업 정치가처럼 행동하며 노동자에게 평생 일자리를 제공하고, 마을과 골프 코스를 건설하며 사회의 수호자를 자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