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어른
2화

내 자리가 없다

당신이 꿈꾸던 서른인가요


인터뷰에서 30대가 가장 많이 보여 준 감정은 불안이다. 물론 특정한 세대나 집단만 불안을 겪는 건 아니다. 한국인 열 명당 한 명이 불안을 경험한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보편적인 현상이다. 50대인 386세대도, 40대인 X세대도, 20대인 Z세대도 서로 다른 이유로 각자의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구조적, 정서적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라면 더 그렇다.

문제는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 불안이 어떤 무늬를 가지고 있느냐다. 불안의 실체는 특정한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다르다. 30대가 말하는 불안의 이면에는 이들 세대를 아우르는 공통분모가 있다. 고용과 주거 불안 등 물리적 조건으로 인한 불안, 안정된 직업과 결혼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압력, 삶의 격차에 따른 또래 압력 등 타인의 기대나 비교에서 비롯되는, 인간관계에서 파생한 불안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불안은 특히 ‘사회적 자리의 부재’와 연관이 많았다. 많은 30대가 실업이나 불안정한 고용 상태 등 사회·경제적 조건과 사회적 압력이 주는 부담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마음의 균열을 드러냈다. 경쟁의 파도 속에서 나름의 생존 방법과 자기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부담을 함께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른이라는 나이는 도전과 방황이 허락된 청춘 시절인 20대를 지나 안정되고 독립된 어른으로 살아갈 것을 기대받는 나이고, 자신도 서른이 되면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고 한다. 이들이 기대했던 서른의 모습은 사회 통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현실은 그렇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질 희망도 보이지 않아 불안하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더 성숙해지거나 멋져지지 않는다는 걸 이제 알게 된 거죠. 지금 즈음이 그걸 아는 때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희망이 잘 안 보이고. 개인적으로 나이가 들거나 사회 경험을 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위로 올라가는) 그러고 싶었는데 어른들을 만나 보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고. ‘나도 안 그렇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김종현, 남)

계약직으로 계속 일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하다가 잘리면 또 다른 데 가야 하고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20대 때는 젊은 나이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요새는 수입이 안정적이어야 뭘 해도 하니까요. (박진성, 남)

정규직 전환이 안 되면 3월 이후에는 다시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돌아오고. 저는 아직 결혼 계획이 없고. 집도 마련 안 되죠, 그런 상황에서. 그런 거에 구애받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왔는지도 모르겠는데, 이제는 하나라도 안정됐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처럼 계속 나이만 먹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김성아, 여)

이들이 말하는 불안의 스펙트럼은 다층적이다. 서른이 되면 ‘멋진 어른’이 돼 있을 줄 알았는데, 기본적인 생존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느끼는 불안, 물리적인 나이를 먹는다고 삶이 안정적으로 바뀌거나 나아지지 않는다는 현실에 대한 때늦은 자각에서 오는 불안, 어느 하나 이뤄 놓지 못하고 나이만 먹어 가는 듯해 느끼는 불안 등이다. 공통점은 대부분 경제적, 사회적 위치와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한 자각이 합쳐지며 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이 대부분이 서른이라는 나이를 체감하기 시작하는 30대 초반이라는 사실과도 연관 있어 보인다. 30대에 막 진입하면서 방황이 허용되고 자유로운 20대 청춘을 향한 것과는 다른 외부 시선을 받게 되고, 여기에 더해 개인이 스스로 느끼는 부담감이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삶의 안정성에 대한 30대의 일반적인 생각과도 일치한다.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1] 30대는 20대와 비교해 불안정성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낀다. 주목할 점은 자신이 계층적으로 하층이라고 생각하는 30대들이 느끼는 불안정성이 중층이나 상층이라고 답한 30대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당신의 삶이 매우 안정되어 있느냐’는 질문에 30대 중상층 이상은 18.2퍼센트, 중간층은 10.8퍼센트, 중하층은 3.3퍼센트, 하층은 1.7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2] 불안이라는 심리적 영역도 계층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고용 불안이 몸과 마음을 잠식해서 아픈 청년들이 유독 많아지고 있다는 것도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3]

 

워라밸은 그저 로망


직장에서 30대는 중간 관리자의 길로 들어서는 나이다.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로도 능력을 발휘하며 대부분 분주하고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간다. 그러나 근대 산업 역군으로서 ‘일 중독자’로 살았던 기성세대와는 삶의 지향이나 태도가 같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새로운 세대들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이다. 이들은 경제적 보상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개인적인 삶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크다.[4] 하지만 직접 만난 30대들은 워라밸은 자신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그동안 해왔던 방식으로 선택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여전히 원하는 일을 우선시하다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거죠). 또래 친구들보다는 경제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짐이 되기 시작하는 때인 것 같아요. 20대 때는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돈이 쫓아오는 삶을 사는 걸로 생각하고, 20대를 불태웠는데 30대에 들어오니 ‘아, 현실은 그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선경, 여)

원하는 분야의 직무를 찾았더니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급여가 또 많이 떨어졌거든요. 그때(예전 직장에 다닐 때)는 대우가 좋은 건 사실인데 원하는 일이냐는 건 조금 물음표였어요. 이 두 가지가 양립하기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예전에는 굉장히 어렵고 힘들게 일했는데, 결과적으로 경력과 함께 어느 정도의 결혼 자금이 쌓인 거죠. 그런데 지금은 정말 원하는 일을 하고 있고, 좋은 사람들과 일하면서 효능감도 느끼고 있는데 ‘돈을 모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어요. (정세윤, 여)

경제적인 보상 대신 자신이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직장을 옮긴 선경 씨와 세윤 씨는 현재의 삶에 대체로 만족한다. 그러나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경제적 보상이 적은 일을 계속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했지만 서른 살이 되고 나니 마음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미래가 불안한 상황에서 그런 삶을 추구하기가 더는 어렵다는 판단이 든다고 한다.

무엇보다 30대는 생활을 스스로 준비하고 책임져야 하는 시기인데, 20대처럼 워라밸을 꿈꾸며 사는 건 로망에 불과함을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몸과 마음이 힘들고, 팍팍하기만 한 현실에서 경제적 조건이 뒷받침되지 않는데, 개인적인 시간을 누리는 삶은 비현실적인 목표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단 한 번도 기업에 취업할 생각이 없이 살아왔는데, 경력도 대략 5~6년 정도 되고 있고요. 그런데 최근 들어서 이직 제의를 받았습니다. 연봉이 지금보다 두 배 정도 높고, 시스템도 좋은 단체였는데. 제가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최근 들었던 생각이 결혼 준비도 하고 있는데, 단지 이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이장훈, 남)

서른 살 넘어서 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직장을 찾게 됐죠. 찾게 됐음에도 지금도 고민하고 있어요. 더 늦기 전에 이직해야 하는 건가? 어디로 가야 하지. 저희 쪽(회사)에 50~60대분들도 오세요. 오셔서 청소라도 하시겠다고. 그 얘기를 들으니까 내 노년은 어떡하지? 여기에서 계속 있을 수 있나? 노년을 걱정하게 되면서 지금은 육아 휴직을 쓸 수 있는 (큰) 기업으로 가고 싶다, 육아 휴직을 쓸 수 있고 내 자리가 확보되는 곳으로 가면 좋지 않을까? (허수진, 여)

장훈 씨는 현재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다. 하는 일이 보람도 있어서 일 자체에는 큰 불만이 없다. 그런데 결혼 계획이 있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더라도 처우가 좋고 안정적인 직장으로 옮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다. 수진 씨도 개인적인 삶이 불가능할 만큼 바쁘기만 한 이전 직장에서 현재의 직장으로 옮겼다. 그런데 앞으로 결혼과 육아 등을 생각하면 일이 많더라도 복지 혜택이 좋은 회사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요즘 많이 하게 된다고 한다. 20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돈만을 위해 살지 않겠노라고 생각했지만, 30대가 되니 마음의 갈등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결혼을 계획하려면 워라밸은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바라는 것과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점은 얼마간의 사회 경험 후 도달한 냉정한 판단이다. 워라밸이 청년들의 보편적인 삶의 태도라고 이야기하지만, 서른이 되면서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내일을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워라밸은 유보되거나 폐기해야 하는 현실 너머 이야기였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다. 동시에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욕망도 있다. 워라밸에 대한 욕망은 경제적 성과가 최우선이었던 산업 역군 세대와 다른 삶을 꿈꾸는 세대의 출현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그러나 고실업과 고용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30대에게 워라밸은 그저 로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정말 괜찮은데


특정한 삶의 방식을 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통념에 대해 30대들은 대부분 비판적이었다. 암묵적으로 사회가 강요하는 나이와 성별, 직업에 기반한 편견 등 집단적, 문화적 압력도 몹시 불편해했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태도가 중요하고 나름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런 공식 선언과는 별개로 주위의 시선이나 기대에 자주 심리적으로 휘둘린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많았다. 스스로 정의하고 욕망하는 공식적인 자아와는 별개로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외부 시선 때문에 불안하다는 것이다.

아, 낮에 체육복 입고 돌아다니는 저 사람은 백수다. 그런 거 아시죠. (웃음) 우리나라는 그런 게 너무 심하니까. 저 사람 뭐 사업하나 보다 하고 치우면 될 건데. 도가 너무 지나치니까 대인 기피증이라고 해야 하나, 방에 숨어서 나가기가 겁나는 거예요. (일하지 않더라도) 웃으면서 그냥 다닐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보는 눈이 무섭죠. (김선웅, 남)

미국에서는 대학 다니면서 ‘오늘은 뭘 도전해 볼까?’라고 자유롭게 생각하다가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딱 지났을 때, 출퇴근 버스 타고 다니면서 ‘아,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결혼하고 전세를 구하지?’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달라지는 자신에 많이 놀랐는데. 저도 결혼 준비하지만, 별로 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런 메인스트림을 벗어나기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정태호, 남)

한동안 일정한 일 없이 지내면서 동네에서 주목받았던 시선에 대해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선웅 씨는 직장을 찾지 못한 괴로움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 시선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이직하는 과정에서 잠깐 쉬었던 시기였지만, 동네 주민들이 자신의 상황을 자꾸 물어봐서 함께 사는 어머니도 스트레스를 적지 않게 받았다. 선웅 씨는 대인 기피증까지 생겨 한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한 적도 있다. 태호 씨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 공부했던 태호 씨는 한국에 귀국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삶의 기준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자신의 관심과 욕구를 중심으로 삶을 기획하고 판단했는데, 한국에 온 후에는 자신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한국에서 살다 보니 주위의 시선과 기대에 무게를 두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계획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저는 속으로는 불안하진 않은데, 시선들이 저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왜 그때 제대로 하지 않았어?’라는 시선들요. 그 시기에 살아야 하는 패턴대로 살지 않았을 때는 약간 돌연변이? 도태된 사람? 그렇게 취급받는 게 저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안선형, 여)

이 나이에 취업해야지, 이 나이면 뭐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지. 비단 부모님이나 친척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듣고 있어요. 우리 회사 오려면 네가 대학 정도는 나와야지, 석사 정도는 받고 와야지, 우리 회사 정규직 되려면 이 정도는 하고 와야지. 이게 다 꼰대질 아닌가요? (정현미, 여)

선형 씨는 혼자 살아가는 삶이 비정상이거나 문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20대에 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다가 현재 직장을 구하고 있지만, 자신의 삶이나 미래에 크게 불안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위 시선에는 신경이 쓰인다. 30대인데 결혼도 안 하고 안정된 직업도 없는 채로 살아가는 자신을 향한 편견이 선형 씨를 불안하게 만든다. 현미 씨는 나이에 근거해 직업, 결혼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공고한 고정 관념이 못내 불편하다.

서른을 향한 시선은 성별에 따라 차별적이기도 하다. 30대가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젠더 스테레오타입(gender stereotype)이다. 사회가 정한 성 역할과 스스로 바라는 삶, 욕구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여자 친구가 돈을 더 벌고, 대신 저는 가정주부를 하는 게 꿈이에요. 제가 집안일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남자가 가정주부를 한다고 하면 “정신 나간 놈 아니야?”라고 해요. 그런 편견이 마음에 안 들죠. 왜 굳이. 나는 그런 걸 하면 안 되나? (김정민, 남성)

프리랜서로 일하는 정민 씨의 여자 친구는 정규직이다. 여자 친구 직장의 안정성과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정민 씨는 결혼하면 자신이 가사 일에 더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런데 남자가 가정주부 역할을 하는 것을 비정상적으로 보는 사회 시선 탓에 이루기 어려운 꿈일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사회 통념상 남자인 자신이 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회사에 출퇴근하는 규칙적인 일상은 몸에도 맞지 않아 더 고민스럽다.

30대 싱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은 더 촘촘하고 복합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관습적이고 차별적인 시선 때문에 겪는 불편함이 크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시선들과 편견의 언어들은 30대 싱글로 살아가는 이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화두였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따라 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주위 시선 때문에 흔들린다.

기본적으로 사회에서 바라는 30대에 대한 틀이 있잖아요. 19살 학생들이 봤을 때 32살은 완전 어른이거든요. ‘저 여자 선생님은 왜 아직 결혼을 안 했지?’라고 생각하는 거죠. 절 아시는 분들도, 32살인데 왜 결혼 안 하냐고 다 물어보시거든요. ‘만약에 내가 결혼했고 아이가 있으면 그런 질문을 저한테 안 하실까? 또 어떤 걸 물어보실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김미영, 여)

남자 친구 없지, 결혼 안 했지,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지, 독립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니까. 그리고 지금 제가 일을 잠시 쉬면서 (미래) 기반을 다지고자 일 같은 건 안 하고 있는데. 당연히 불안하죠. 친구들은 대리, 과장 이렇게 하니까. 보편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거에 대한 불안감은 사실 없어요. 저는 제가 하고자 하는 거를 하려고 불안을 이겨 내고, 마음이 되게 편안하거든요. 사실 행복한데, ‘너는 왜 불안하지 않냐’라고 보는 시선들이 ‘내가 불안해야 하는 건가?’ 이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박지선, 여)

30대 싱글 여성들은 꼭 결혼하고 싶지도 않고, 그로 인해 불안하지도 않다. 그런데 ‘너는 왜 불안하지 않냐’라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불안해해야 하는 건지 헷갈린다고 한다. 이른바 ‘결혼 적령기’에 결혼하지 않는 여성을 비정상적이라고 바라보는 견고한 사회 편견이 오히려 불안하게 한다는 것이다.

젠더 스테레오타입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30대 여성은 20대 여성들과 차이가 있다. 30대는 젠더 스테레오타입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았다. 20대 여성들이 차별적인 사회 시선에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냉소적이라고 한다면, 30대들은 마음이 더 복잡하다.

대한민국, 그래도 낫다, 지나가다가 총 맞을 일은 없다고 하지만, 저는 이 나이 먹어도 아직 어린 여자애라고, 여자애가 사회 생활한다고, 그런데 좀 먹고살 만하네? 이런 인식이 많아요. 그래서 남자들이 많이 무시해요. 거기에 대항해야 하니까 저는 거칠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남자와 여자에 대한 처우가 조금. 그런데 편견과 차별이 바뀌기 어려울 거 같아요. (여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남경진, 여)

우리 세상이 생각하는 (여성의) 태스크(task)들이 있잖아요. 취업, 결혼, 나이 더 들면 출산, 육아. 그 기준에서 보면 전 아직 해낸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어떤 하나라도 완수했다는 안정감을 가지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안수정, 여)

수정 씨는 서른이라는 나이에 맞는 안정적인 직업을 구해야 한다는 부담에 더해, 여성에게 부과되는 ‘결혼과 출산의 과업’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여성이 완수해야 하는 “태스크(task)”를 말하는 그는 차별적인 사회적 시선을 내면화한 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경진 씨는 직장 내 남성 동료들의 여성인 자신을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직장이라는 공적 영역의 일은 여전히 남성 중심이고,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면 부정적인 시선을 받는 현실에 화가 날 때도 많다. “어린 여자애”가 너무 잘나가도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여성들이 경험하는 보이지 않는 성별 위계와 차별, 그로 인한 어려움을 읽게 해준다. 남성 상사나 동료들과 타협하거나 부드러운 관계를 맺기보다는 만만해 보이지 않으려고 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일부러 자기 목소리를 더 세게 내게 된다는 경진 씨의 대응 방식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 시선에 마냥 ‘쿨(cool)’하기 어려운 낀 세대의 마음도 녹아 있다.

때로 현실적인 상황이나 조건보다 주위의 시선이나 평가가 더 힘들다. 사회적 통념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은 마음은 어디까지나 내적 욕구일 뿐, 30대들은 사회 관습과 타인의 시선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중요하다고 말하는 30대가 타인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거나, 때로는 그 기준에 자신의 삶을 맞추게 된다는 것은 일면 모순적이다. 성장기 내내 끊임없이 가정과 학교에서 평가받고 통제받았던 경험이 몸과 마음에 새긴 자기 관리와 규율의 흔적일 수도 있다. 이후에도 이어지는 경쟁 속에서 일상적인 외부 평가나 시선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본능적 욕구에 가깝다. 그러나 30대에 들어서도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자각은 이들의 마음에 적지 않은 스크래치를 남기게 된다. 상처받은 자존감은 조바심과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주변 시선이 자신의 상황을 무엇인가 부족하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해서 불안하다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이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 개인이 자신을 스스로 정의할 때 타인의 시선과 인정 여부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불안을 사회와 개인이 자연스럽게 상호 작용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개인의 정체성은 한 번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회화 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5]
[1]
조귀동, 《세습 중산층 사회: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 생각의힘, 2020.
[2]
조귀동, 《세습 중산층 사회: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 생각의힘, 2020.
[3]
김승섭, 〈고용 불안은 건강을 잠식한다〉, 《한겨레 21》, 1099, 2016. 2. 18.
[5]
Carmel Camilleri & Joseph Kastersztein, 《Stratégies Identitaires〉, Paris: PUF, 1990.
Dubar Claude, 《La socialisation, construction des identités sociales et professionnelles》, Paris: Armand Colin éditeur, 1991.
Alex Mucchielli, 《L’identité》, Paris: PUF,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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