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데탕트
2화

문재인 데탕트와 한미 정상 회담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문재인 정부의 대미 대중 대북 외교 전략에서 지난 5월의 한미 정상 회담은 6월의 G7 정상 회담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의 출발점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중국 봉쇄 외교 전략의 시작점 역시 마찬가지로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 회담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두 번째 김대중-클린턴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건 그래서였다. 양국 모두 그리고 두 정권 모두 서로의 도움이 절실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문재인-바이든 밀월 시대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와 2000년까지 이어진 클린턴 행정부는 3년여 동안 한미 미 월관계를 연출했었다. 한미 동맹의 황금기라고도 불리는 시기다. 이때 한국 정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한반도의 운전석에 앉았다.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첫 번째 남북 정상 회담도 DJ와 클린턴의 한미 밀월 관계라는 기반이 있었서 가능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소통이 됐던 건 노련한 DJ의 박학다식과 젊은 클린턴의 학습 능력 덕분이었다. 젊은 대통령 클린턴은 집권 1기에 젊은 참모들로 백악관을 꾸렸다가 낭패를 볼 뻔했다. 중진 하원의원 리언 패네타를 비서실장으로 기용했다. 결국 재선에 성공했다.

여기에 당시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였던 바이든 대통령의 영향력도 한몫했다. 바이든은 카터 행정부 시절부터 상원 외교위원회 활동을 해온 국제 외교의 베테랑이었다. 사실상 미국 대통령들의 외교 가정 교사 역할을 해왔다. 미중부 시골 동네인 아칸소 주지사 출신의 클린턴은 국제 외교 경험이 전무할 수밖에 없었다. 바이든은 자신의 회고록 《지켜야할 약속》에서 클린턴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고 썼다. “대통령님, 당신은 외교적 본능을 믿으세요.” 모범생처럼 사실 관계에만 집착하지 말고 과감하게 직감을 믿으라는 말이었다.

클린턴은 자신보다 동북아 정세에 해박한 DJ를 직감적으로 신뢰했다. 국내 정치에서 리언 패네타의 교훈을 외교에도 적용한 셈이었다. 덕분에 2000년 남북 정상 회담이 열렸다. 한반도의 봄이 왔다. 한미 외교가에선 이때를 한미 밀월 관계의 황금기로 기억한다. 한미 외교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민주당과 미국의 민주당이 짝을 이룬 시기였다. 양국 정상 간 개인적 신뢰와 소통도 수준급이었다. 그래서 김대중-클린턴 시대는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 말 방북으로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었다. 2000년 10월엔 클린턴 행정부의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 클린턴 방북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평양을 갈 수가 없었다. 앨 고어가 졌고 부시가 이겼기 때문이었다. 미국 대통령을 투표소가 아니라 대법원이 결정했다. 클린턴은 DJ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시다시피 이곳의 애매한 선거 결과로 후임자와 상의할 수 없었고 귀중한 시간만 소비했습니다. 동시에 중동 평화와 관련한 대화가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성공적으로 결론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북한 방문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2000년 12월 28일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 방문 포기를 공식 선언한다. 대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워싱턴으로 공식 초청한다. 물론 북한이 응할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허망하게 한반도의 봄은 끝나 버렸다.

“박복한 민족이요, 천추의 한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당시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안타까워했다고 전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플랜은 구체적이었다. 클린턴-김정일 평양 정상 회담, 종전 선언, 북한 체제 보장, 북핵 폐기, 남북 평화 협정으로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이걸 바로 눈앞에서 놓쳐 버린 꼴이었다. 미국내 정치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또 한 번 미국 대선이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한반도 평화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왔던 게 문제였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한 한국 민주당 대통령들은 모두가 한반도 문제에 재도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문재인 대통령 역시 그러고 있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 본인부터가 미련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일단 부시 대통령부터 일대일로 설득하려고 애썼다. 부시와 클린턴이 다르지 않을 거라고 봤던 것이다. 실수였다. 찰스 프리처드 전 국무부 대북특사의 회고록 《실패한 외교》에는 DJ와 부시가 첫 통화부터 어긋나기 시작하는 순간이 잘 기록돼 있다. 부시는 DJ가 대북 포용 정책을 역설하자 이렇게 말했다. “Who is this guy? I can’t believe how naive he is!”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첫 번째 한미 정상 회담은 한국 외교가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외교 대참사였다. 2001년 3월 8일 열린 한미 정상 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한테 문전박대에 가까운 수모를 당한다.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을 ‘Mr. President’ 대신에 ‘This man’이라고 칭한 게 상징적이었다. 심지어 한미 정상이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자리엔 파월 국무장관마저 불참했다. 파월은 부시 행정부 안에서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정책을 지지하는 거의 유일한 고위 관료였다. 당시 한미 공동 성명엔 한국 정부의 햇볕 정책을 지지한다는 문구가 있었다. 말뿐이었다. 부시는 정상 회담에서 파월을 배제하는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DJ한테 어필했던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엔 야당이었지만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이 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바로 이 무렵에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 되면서 미국 외교위원장을 맡게 됐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자서전 《지켜야할 약속》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부시는 바이든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 친구 김대중은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나요?” 바이든이 답한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 말인가요? 한국에 민주주의를 가져온 사람 말씀이죠? 그는 제 친구가 아닙니다. 그를 존경하지만, 제 친구는 아니예요.”

바이든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인연은 DJ가 미국 망명 생활을 하던 198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이든은 DJ의 민주화 투쟁에 감명을 받았고 돕고 싶어했다. 실제로 바이든이 지닌 DJ에 대한 감정은 우정이라기보단 존경에 가까웠다. 바이든은 부시한테 이렇게 충고했다. “당신은 김대중한테 이렇게 말한겁니다. 당신의 햇볕 정책은 실패했어요. 우리는 빠지겠습니다. 그것으로 당신은 그를 난처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곤경에 처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가 화가 난 겁니다.”

 

부시-김대중 불운 시대 

©Harry Hamburg/NY Daily News Archive via Getty Images
부시 대통령의 외교 가정 교사는 부통령 딕 체니였다. 부시는 외교적으론 사실상 딕 체니를 중심으로 한 네오콘들한테 둘러싸인 꼭두각시나 다름없었다. 첫 만남 이후 부시는 종종 바이든한테 전화를 걸어왔다.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외교적 결정에 대해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부시도 자신이 네오콘들한테 포위당해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부시한테 바이든과의 대화는 대통령으로서 비주류의 시각을 경청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덕분에 바이든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 정책이 어떻게 실패해 갔는지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지켜야할 약속》에서 바이든은 부시 개인에 대해선 꽤 우호적으로 평가한다. 대신 부시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다.

당시 부시 행정부의 외교 정책 기조는 ABC였다. Anything but Clinton, 클린턴이 한 것은 무엇이든 배제하는 정책이었다. 딕 체니와 럼즈펠트를 비롯한 네오콘 입장에선 자신들의 기획 작품이었던 레이건-부시 12년 아성을 무너뜨린 클린턴 정부를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그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이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부시도 DJ-클린턴 밀월 관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존중했던 김대중 대통령을 부시는 무시해야만 했던 것이다. 덕분에 남북미 관계는 파탄이 나고 말았다. 그 뒤로 북핵 문제라는 암덩어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이때 바이든은 전임자의 외교 성과를 무시하는 태도가 결국엔 미국의 국가 국익을 해친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교훈은 또 있었다. 이때부터 바이든은 네오콘의 신고립주의에 맞선 민주당의 관여주의 외교 노선을 정립한다. 2001년 9월 10일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네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연설을 한다. ‘21세기 미국의 외교 정책’이라는 제목의 연설이었다. 지금도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필독해야만 하는 연설이다. “관여합시다. 나는 우리가 우리의 정책을 바라보는 전 세계의 시각에 눈을 감는다면 국익을 성취하기는커녕 추구할 수조차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국익은 우리가 국제적 의무를 이해하고 조약을 지킬 때 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는 국가인가요? 아닌가요? 우리는 조약을 지킵니까, 아닙니까?” 바이든은 자서전 《지켜야할 약속》에서 이렇게 연설의 취지를 정리합니다. “미국은 유일하게 남은 초강대국으로서 국제 사회에 빚진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런데 이 연설은 여러모로 김대중 대통령한테 빚을 진 것이었다. 2001년 8월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방한해서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했다. 부시 대통령한테 외교적 수모를 당하고 국내 정치에서도 각종 게이트로 불리한 국면에 처한 김대중 대통령을 위로하는 자리였다. 이때 바이든과 DJ가 넥타이를 바꿔 맨 일화는 한국 외교가에선 유명한 미담이다. 바이든이 DJ의 초록 넥타이에 관심을 보이자 DJ가 즉석에서 바꿔 매자고 했었다. 당시 바이든은 부시 이후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었다.

물론 당시로선 슈퍼 루키 오바마의 부상을 예측할 순 없는 상황이었다. 바이든은 역경을 딛고 대권을 잡은 DJ의 넥타이를 행운의 부적으로 삼았다. 동시에 미국 대통령이 되면 한반도 문제에서 공화당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겠다고 결심한다. 바이든도 클린턴 시절 남북미 관계가 얼마나 크게 진전됐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DJ의 넥타이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한반도 평화를 완성하는 미국 대통령을 꿈꾸게해 줬던 건지도 모른다.

 

세계관이 같은 한미 정상 


지난 5월 21일 금요일에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 정상 회담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22년전 한국 민주당과 미국 민주당이 호흡을 맞췄던 김대중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의 한미 정상 외교를 이해해야만 한다. 동시에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외교의 막후 실력자로서 한미 정상 간 외교에서 어떻게 조정자 역할을 해왔는지를 파악해야만 한다. 그래야 바야흐로 바이드 대통령이 조언자가 아니라 당사자로서 어떻게 한반도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는 한국 외교사에서도 손꼽히는 대성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성과는 본질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선물이다. 백신이나 반도체나 배터리나 미사일 지침 폐기까지 개별적 성과와 선물의 요인과 이유는 다를 수 있다. 전반적으로 한미 정상 회담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다. 바이든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도 누군가의 후임자들이기 때문이다. 두 대통령 모두 각자 전임자들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다. 전임자들의 희망에서 의지를 찾았다. 한반도 문제와 한미 관계를 풀어내려고 애쓰고 있다.

둘 다 자신의 임기만 바라보고 있지 않다. 대통령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 전임자들의 성과와 실패와 실수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문재인한테서 김대중과 노무현을 본다. 문재인은 바이든한테서 클린턴과 부시와 트럼프를 본다. 이번 정상 회담이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었던 건 김대중과 노무현 시절에 밭을 갈고 씨를 뿌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DJ-클린턴에 이은 문재인-바이든 밀월 시대를 맞아 수확기를 맞이한 셈이다.

20여년의 우여곡절을 거친 만큼 양쪽 모두 이젠 거두절미하고 요점만 간단히 할만큼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두 정상은 모두 카톨릭 신자다. 한미 양국에서 집권한 두 번째 카톨릭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두 정상은 정치적 종교적으로 세계관이 같다. 새로운 한미 밀월 관계는 두 정상 간의 신뢰에서 시작됐다. 그것이 미국의 귀환을 알리는 바이든의 정상 외교 데뷔 무대인 G7 정상 회담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G7 정상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보증자였다. 아웃라이어 한국은 21세기 전반까지 이어진 미국 중심 세계 질서가 낳은 최상의 성공 사례다. 마찬가지로 이번엔 한반도에서 미국이 북한한테 한국을 보증해 줄 차례다. 한국을 믿으면 북한도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쿼드 아니고 미사일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공군 1호기를 타고 미국으로 향한 건 지난 5월 19일 수요일 저녁이었다. 그런데 문대통령이 워싱턴에 도착하기도 전에 예상 못한 보도가 흘러나왔다. 이번 한미 정상 회담에서 한미 미사일 지침 완전 해제가 논의될 거란 내용이었다. 한미 정상 회담의 최우선 과제는 백신이었다. 방역은 성공했지만 백신 확보는 실패한 한국 정부와 방역은 실패했지만 백신 개발엔 성공한 미국 정부가 백신을 매개로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거래를 할거란 전망이 우세했다. 한미 미사일 지침은 애당초 양팔 저울 위엔 없었다. 사실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의지를 갖고 추진해 온 부분이었다. 그만큼 이번 회담에서 미국 정부가 양보해 줄 이유가 없는 부분이었다. 

한미 미사일 지침은 한국 정부의 미사일 개발을 미국 정부가 통제하는 내용이 골자다. 1979년 10월에 만들어졌다. 당시만 해도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미사일 기술을 이전받는 게 조건이었다. 결과적으론 족쇄만 되고 말았다. 미사일 기술과 미사일 주권을 맞교환하려다가 실패한 외교 군사적 실책이었다. 문제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올인하면서 미사일 기술이 남북한 군사력 비대칭의 결정적 요인이 돼버렸다는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북한은 언제든 서울을 타격할 수 있는데 한국은 평양을 종심 타격할 수가 없었다. 이건 역설적으로 북한이 미사일 개발에 더욱 열을 올리게 만들었다. 당연했다. 강점을 강화해서 비교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를 180킬로미터로 제한한 한미 미사일 지침이 오히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의 동기가 된 꼴이었다.

그런데 한미 정상 회담에서 미사일 지침 완전 해제가 전격 논의될 거란 보도는 그야말로 깜짝 선물이었다. 실패한 정상 회담은 없다는 말이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정상 회담처럼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아주 예외적이다. 정상 회담이 실패하지 않는 건 정상 회담 이전에 물밑에서 의제가 정교하게 조율되기 때문이다. 실무진이 퍼즐을 맞춰 놓으면 정상들이 마지막 조각만 맞춘다.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참모 출신의 문재인 대통령과 의회에서만 40년을 보낸 바이든 대통령이 이걸 모를 리 없다.

덕분에 지난 문재인-바이든 정상 회담은 역대 한미 정상 회담 가운데서도 사전 조율 작업이 가장 정교했고 치밀했던 작품이 됐다. 과거 김대중-부시 회담이나 트럼프-김정은 회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한미 정상 회담에서 미사일 지침 완전 해제 논의가 이뤄질거란 예고편은 이번에 한미 미사일 지침이 완전 철폐될 거란 본편을 뜻했다. 양정상의 성격상 회담 테이블에 오른다는 건 이미 요리와 숙성이 끝난 의제란 말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 미사일 지침 완전 해제에 동의한 이유는 분명했다. 이것이 동북아 군사적 균형을 흔드는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자주적 미사일 보유국이 된다는 건 한국이 북한과 중국을 겨냥한 미사일 전진 기지기 된다는 의미다. 적어도 한국이 미국 본토를 겨냥한 ICBM을 개발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솔직히 미국은 한국이 쿼드에도 합류해 주길 원한다. 일본, 호주, 인도, 미국이 주축인 군사 동맹인 쿼드는 아시아판 나토의 원형이다. 원래 유럽의 나토는 소련의 서진을 막기 위한 군사 동맹이다. 마찬가지로 아시아의 쿼드가 막으려는 건 중국의 동진이다. 당장 한국이 쿼드에 합류하는 건 불가능하다. 두 개의 한국으로선 당장은 힘들다. 사실 중국의 압력 탓만이 아니다. 쿼드에 합류하려면 자체적인 미사일 개발 능력이 필수다. 평양이든 베이징이든 종심 타격을 할 수 없는데 한국이 쿼드에 합류해서 재래식 무기 연합 훈련만 해봐야 군사적 보탬이 되지 못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한테 억지로 쿼드 참여를 강요하기보단 한국한테 미사일을 쥐여주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미사일 자주 국방은 문재인 정부가 줄기차게 요구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이걸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연개해서 선심 쓰듯이 조금씩 풀어줘 왔다. 2017년엔 미사일 사거리를 800킬로미터로 하면서 탄두 중량 제한을 없앴다. 2020년 7월엔 고체 연료 사용 제한을 풀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이 미사일 무장을 하는 건 미국한테도 손해 볼 게 없는 일인데도 말이다. 바이든은 트럼프와 달리 치사하게 굴지 않았다. 어차피 줄 거면 확실하게 준다는 태도였다. 바이든은 중국 공산당의 태두인 등소평과도 맞상대해 본 인물이다. 이런게 외교통 바이든의 통큰 외교술이다.

 

대화라는 외통수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에는 김대중-부시 시절의 실패에 따른 교훈도 새겨져 있다. 2000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했을 때 부시의 관심은 온통 MD에 꼳혀 있었다. 미사일 방어 체계 말이다. 딕 체니를 비롯한 네오콘이 군산 복합체와 석유 산업과 깊은 연관이 있는 건 이젠 비밀도 아니다. 미사일 방어 체계 구축은 군산복합체한텐 대박 호재다. 그런데 MD 체계 구축을 위해선 가상의 적이 필요하다. 미국 본토를 겨냥한 핵탄투 ICBM을 개발하고 있는 북한이야말로 제격이었다.

파월 국무장관이 김대중-부시 정상 회담 직전에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클린턴 시절의 대북 외교 노선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가 왕따를 당한 건 그래서였다. 파월은 분위기 파악이 안되는 자였다. 결국 부시는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급기야 악의 축 가운데 하나인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켜 버렸다. 제2의 이라크가 될 수 있다고 느낀 북한 정권은 이때부터 더욱 핵무장에 몰입하게 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국제 정세를 가장 안타까워했다. 미사일은 핵과 함께 국제 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다.

바이든 대통령은 누구보다 이런 맥락을 잘 알고 있다. 동시에 미사일과 관련한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이익도 지키고 싶어한다. 그래서 도출된 최선의 결론이 한국의 미사일 무장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한국한테 쿼드에 가입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국은 스스로 쿼드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묘수였다. 과연 NSC 인도태평양 조정관 커트 캠벨다운 전략이었다. 커트 캠벨은 아시아 차르라는 별명답게 두 개의 아시아를 다룰 줄 안다.

앞으로 한국의 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미국의 군산 복합체한테 돌아갈 이득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북한이 남한에 대한 미사일 우위에 집착하지 않게 하려면 오히려 한국의 미사일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바이든의 통찰도 정곡을 찌른 부분이다. 더군다나 한국의 미사일 개발은 공격보단 방어를 우선시한다. 북한의 미사일을 마지막 단계에서 요격하는 킬체인이 핵심 개념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하마스 공격을 막기 위해 예루살렘과 가자에 구축한 아이언돔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형 아이언돔 체계가 완성되면 북한의 미사일 우위는 사실상 무력화된다. 비로소 북한에게 미사일 군축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힘의 논리가 판치는 국제 외교에선 강자의 양보란 없다. 힘이 비등할 때만 양측의 동시 양보가 있을 뿐이다. 성킴 대북특별대표가 말한 대화와 대결이 모두 가능하다는 건 바로 이런 상황이다. 이제 대결에선 양쪽 모두 득 볼 게 없다. 그렇다면 대화가 외통수다.

 

문재인-루즈벨트 정상 회담 

©Anna Moneymaker/Getty Images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 회담을 위해 방미를 하자마자 알링턴 국립 묘지를 찾았다. 지난 5월 20일 목요일 오전 워싱턴 첫 공식 일정이었다. 미군 한국 전쟁 참전용사와 가족 40만 명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방미한 한국 대통령이 알링턴을 찾는 건 관례다. 주북한 중국 대사들이 마오쩌둥의 큰 아들 마오안잉의 묘소에 참배하는 것으로 첫 공식 일정을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오쩌둥이 가장 사랑했다는 큰아들 마오안잉은 한국 전쟁에서 전사했다. 북중 관계가 혈맹인 것만큼이나 한미 관계도 혈맹이다. 한미 정상 회담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봉쇄에 나서기에 앞서 열렸다. 중원 정벌에서 한미 정상 회담은 중요한 첫 단추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 첫 일정으로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은 건 관례대로였지만 그래서 이번엔 더 의미심장했다.

문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찾은 장소는 루즈벨트 기념관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루즈벨트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오바마의 롤모델은 링컨이었다. 루즈벨트는 대공황 경제 위기와 2차 대전에서 미국을 구해냈다는 점에서 바이든과 주어진 시대적 과제까지 닮아 있다. 바이든은 코로나 경제 위기와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지켜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인 더 나은 재건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벤치마크다. 루즈벨트는 뉴딜로 대공황을 이겨냈다. 바이든도 코로나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만 한다. 바이든은 ‘Build Back Better’를 확대한 ‘Build Back better for World’를 G7의 의제로 만들었다. 2차 대전에서 루즈벨트는 히틀러의 나치와 스탈린의 소련에 맞서 유럽을 지켜냈다. 그게 나토와 G7의 모태다. 바이든은 나토와 G7을 기반으로 중국에 맞서고자 한다. 캡틴 아메리카는 루즈벨트처럼 승리하려고 한다.[1]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바이든의 롤모델부터 만난 셈이었다. 바꿔말하면 바이든의 비전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메시지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루즈벨트와 만난 5월 20일 목요일 당일 오후에 이뤄졌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의 간담회는 또 다른 의미였다. 내용은 한국계 미국 정치인들과의 상견례 자리였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호불호가 강한 정치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연설이 끝난 뒤에 보란 듯이 연설문을 찢어버렸다. 정반대로 펠로시 하원의장은 문재인 대통령한텐 각별했다. 한복 저고리를 입고 취임한 메를린 스트릭랜드 의원을 비롯해 한국계 정치인들을 간담회 시간까지 연장하면서 하나하나 문재인 대통령한테 소개했다. 스트릭랜드 의원은 이렇게까지 말했다. “한국이 잘 되면 미국도 잘 된다.” 한미 동맹을 바라보는 의회의 시각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발언이었다. 스트릭랜드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한테 팔꿈치나 주먹 인사 대신 손악수를 청했다. 어쩌면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얼싸안는 허그를 원했을 분위기였다. 미 의회를 뜻하는 더 힐 안에서 지한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걸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일화다. 동시에 한국도 중국 앞에서 미국을 배신할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때때로 두 개의 한국일 수는 있다. 한국은 이제까지처럼 언제까지나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심지어 펠로시 의장은 의회를 떠나는 문 대통령을 붙잡아 세우기까지 했다. 펠로시는 하이힐을 신고서도 입구까지 직접 뛰어나오더니 하원의장실에서 근무하는 젊은 한국계 2세 보좌관을 소개시켜줬다. 한국에서 태어난 이민 1.5세였다. 보좌관이 한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싶다는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단 설명이었다. 버선발로 나와서 아끼는 보좌관을 소개해 주는 행동이야말로 부시와 오바마와 트럼프와 바이든까지 네 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도 민주당 내 최강자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는 낸시 펠로시가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성의였다. 미국의 우방 대한민국 대통령한테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였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에 딱 맞춰서 코로나19 증오범죄법에 서명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 안에선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증오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침묵은 공모”라면서 법안 통과를 독려했다. 해당 법안은 4월에 상원을 통과했다. 5월에 하원을 통과했다. 모두 압도적인 표차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5월 20일에 해당 법안에 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 회담을 딱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분명 선물이었다.

코로나에 있어서 아시아 한중일 3국은 각기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코로나의 가해자라는 이미지가 있다. 일본은 코로나의 피해자이지만 방역 열등생이다. 반면에 한국은 코로나의 피해자이면서도 훌륭한 방역 우등생이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한국은 아시아계 전체의 자부심일 수밖에 없다. 한국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서 코로나19 증오 범죄법에 서명한 건 분명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행위였다. 한국계 의원들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방한에 열광한 건 이런 배경이 있었다.

 

차기 권력 해리스 부통령의 한계 


다음 날엔 5월 21일 금요일 오전에 이뤄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의 접견은 당시 바이든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 회담에 가려지긴 했지만 미국의 차기 정권과 코드를 맞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1942년생으로 78세의 고령이다. 재선 여부를 가르는 중간 선거를 82세에 치르게 된다. 고령 대통령이라고 했던 레이건도 재선 당시 나이가 73세였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나이다.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는 나서지 않을거란 전망도 있다. 아직 임기 첫해라 불거지지는 않고 있지만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자연히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한테 권력이 넘어갈 수 있다. 당초 바이든이 해리스를 부통령으로 지명한 것도 이 지점까지를 염두에 둔 거란 분석도 많았다.

최초의 다인종 여성 대통령을 만드는 것도 바이든의 정치적 목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달러 지폐의 모델을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서 흑인 여성 인권 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으로 바꾸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 추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쓰레기통으로 처박았다. 바이든은 자서전 《지켜야할 약속》에서 상원의원으로서 여성인권법을 재정한 것을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긴다고 밝힌 적이 있다. 카멀라 해리스한테 다음 임기를 넘겨주는 것도 바이든한텐 정치적 승리일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접견은 이번 정상 회담에서 유일한 옥의 티로 남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손악수를 한 해리스 부통령이 자신의 정장 상의에 손을 문질러 닦는 모습을 보인 탓이다. 아무리 코로나 상황이라지만 외교적 결례였다. 보수 성향의 폭스 뉴스는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 공격했다. 한 SNS를 인용하면서 “무례할 뿐 아니라 공화당원이 그랬다면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 찍혔을 것”이라고 간접 비판했다. G7 정상 회담도 그랬지만, 지난 한미 정상 회담도 정상과 스태프 모두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마주한 철통 방역 회담이었다. 해리스 부통령이 악수를 한 다음에 손을 닦은 건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쓸데없는 짓이었다.

사실 해리스 부통령의 의전상 실수는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투에 오르면서는 자신에게 경례하는 병사한테 맞경례를 하지 않았다.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 비하면 외교 무대나 중앙 정계에서 아직 아마추어다. 마찬가지로 외교적 아마추어였던 오바마의 약점을 보완해 준 게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었다. 반면에 해리스는 바이든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바이든이 해리스의 부통령이 아니라 해리스가 바이든의 부통령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 입장에선 미국의 차기 정권이 젊지만 서툴 수도 있다는걸 전망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외교적으로도 바이든에 비해 훨씬 서툴 수밖에 없다. G7 정상 회담만 봐도 바이든은 10년 넘게 정상 외교 무대를 누빈 메르켈 독일 총리보다도 훨씬 노련한 리더쉽을 보였다. 따지고 보면 바이든도 이제 집권 반년째인 초짜 대통령인데도 말이다. 문재인 데탕트에 있어서 바이든의 경륜은 대체 불가능한 요소다.

 

두 명의 캡틴 그리고 문재인 

©Stefani Reynolds/The New York Times/Bloomberg via Getty Images
지난 5월 한미 정상 회담의 하이라이트는 정상 회담과 이어진 공동 기자 회견만이 아니었다. 정상 회담 직전에 치러진 한국전 참전용사 명예훈장 수여식이야말로 문재인-바이던 정상 회담이 얼마나 잘 짜여진 각본 있는 드라마인지를 보여 주는 이벤트였다. 지난 5월 21일 오후에 열린 한미 정상 회담 직전에 바이든 대통령은 명예훈장 수여식을 열었다. 심지어 수여식 장소도 한미 정상의 공동 기자 회견이 예정된 백악관 이스트룸이었다.

수상자는 올해 94세인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이었다. 캡틴 퍼켓은 1950년 11월 청천강 북쪽 205 고지 점령 작전을 이끌었다. 퍼켓 대령이야말로 살아 있는 캡틴 아메리카였다. 그런데 당시 퍼켓 대령과 한미 연합군이 맞서 싸운 상대는 독일군도 북한군도 아니었다. 중공군이었다. 바이든이 반드시 봉쇄해야만 하는 미국의 라이벌 중국 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퍼켓 예비역 대령에게 훈장을 수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미 양국 군은 3배나 많은 중공군에 맞섰습니다.”

당시 베이징은 한미 정상 회담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미중 갈등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국제 외교의 상수다. 트럼프 정권에서 시작된 미중 무역 갈등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집권 초기부터 바이든 대통령은 제로섬 게임인 무역 전쟁을 포지티브섬 게임인 외교 전쟁으로 전환시키는 걸 목표로 삼았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로 동맹을 하나로 묶는 것이 바이든 독트린이다. 한미 정상 회담과 G7으로 이어지는 외교 일정 그리고 하반기에 염두로 두고 있는 미중 정상 회담이 바이든 독트린의 시간표다. 1990년대부터 30년 동안 지속된 G1의 시대는 끝났다. 바이든 대통령도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미 정상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건 미국의 이런 세계사적 인식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면 한국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미국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한국을 좀 더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그런데 퍼켓 예비역 대령에 대한 미군 최고 훈장 수여식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했다. 미군 최고 훈장 수여식에 다른 나라 정상이 동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심지어 바이든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을 무대 단상으로까지 불러올렸다. 언뜻 애드립 같아 보이지만 아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외교적 이벤트를 연출해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퍼켓 대령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진 촬영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었다. 

정상 외교는 사진의 예술이다. 정상들이 어떤 사진 장면을 연출하느냐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을 자국 군인 앞에 무릎을 꿇렸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약간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있다. 퍼킷 대령의 무릎 위에 손을 얹고 있다. 무릎을 꿇었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자세다. 대신 고령의 예비역 대령에겐 충분한 예우를 갖추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명의 캡틴 아메리카 사이에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과거에 중국과의 전쟁에서 한국에게 도움을 줬던 캡틴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지금 중국과의 전쟁에서 한국이 도움이 돼주기를 바라는 캡틴이었다. 어쩌면 이 사진 한장이 지난 한미 정상 회담의 전부였다.

 

문재인, 한반도의 운전대를 다시 잡다 


백악관 웨스트윙 오벌오피스에서 이뤄진 한미 정상 간 단독 회담 시간은 37분 남짓이었다. 중간에 점심 식사도 함께했다. 사실상 런치 미팅이었던 셈이다. 바꿔 말하면 오후 이스트룸에서 있을 한미 공동 기자 회견의 내용은 이미 정리가 끝난 상태였단 뜻이다. 밥알 튀기면서 토론할 만큼 첨여한 이견도 없었단 말이다. 당시 청와대가 한미 정상 단독 회담에 관해 배포한 보도자료의 주요 내용은 점심 메뉴에 관한 것이었다. 양 정상이 메릴랜드 크랩 케이트를 함께 먹었다는 내용이었다. 메릴랜드 크랩 케이크는 꽃게살을 이용한 일종의 어묵이다.

양 정상이 함께 마스크를 벗은 채 가까이 앉아서 점심을 먹는 장면은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의 오찬 장면과 대비될 수밖에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총리는 멀찍이 떨어져 앉아서 20분 동안 햄버거를 함께 먹었다. 사실 미국측은 코로나를 우려해서 스가 총리와의 오찬을 취소하려고 했었다. 일본측의 고집으로 오찬 자리가 만들어졌다. 스가 총리로선 햄버거 대접을 받아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스가 총리는 햄버거에 손도 대지 않았다.

이어진 한미 정상 공동 기자 회견에선 외교의 달인들인 두 정상의 화려한 플레이가 돋보였다. 한마디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았다. 일단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 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했다”는 발언을 얻어냈다.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 성명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업적이다. 바이든 역시 ‘Anything but Trump’일 수도 있었다. 바이든은 부시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 클린턴과 김대중 그리고 부시의 실패에서 배웠다. 판문점 선언엔 남북한 철도 연결이나 DMZ 평화지대 전환 같은 실질적인 남북한 협력 방안이 담겨 있다. 싱가포르 공동 성명은 장차 북미 수교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 모두 문재인 정부 대북 외교의 성과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재인 독트린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G7 코뮤니케엔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나토 공동 성명에선 북한의 완전한 핵 해체라는 표현이 재등장했다. 둘 다 자칫 문재인 독트린을 헝클어뜨릴 수도 있는 문구들이다. 두 개의 한국이 있듯이 두 개의 미국도 있다. 미국은 이란과의 핵 재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이란 대선에선 초강경파인 에브라힘 라이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성직자인 라이시는 전임자는 로하니 대통령에 비하면 압도적인 강경파다. 라이시는 검사 출신이다. 검사 시절 반체제 인사 검거에 앞장섰던 이른바 공안통이다. 별명이 테헤란의 도살자였다. 미국 입장에선 북핵과 이란 핵을 적어도 겉으로는 동일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두 개의 미국이다. 속내는 좀 다르다. 라이시의 임기가 시작되는 8월까진 사실상 이란 핵 재협상은 잠시 멈춤 상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7월과 8월은 북핵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다. 오바마 시절엔 이란 핵 합의가 북한 핵 협상의 벤치마크였다. 바이든 시대엔 북한 핵 협상이 이란 핵 재협상의 벤치마크가 될 수 있다. 이건 문재인 데탕트한텐 행운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김대중 대통령 이후로는 처음으로 한반도의 운전대를 잡은 지도자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 국내 정치의 변화 탓에 운전대를 놓치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운전대를 다시 잡아 보려고 사력을 다했지만 실패했다. 부시 대통령과의 관계만 악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한테 운전대를 내줄 생각이 없었다. 단지 오바마가 못한 걸 자신은 해냈다는 걸 과시할 수 있는 화려한 외교 쇼를 원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트럼프의 야망을 지렛대 삼아서 평양 정상 회담과 싱가포르 정상 회담을 성사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정작 한반도의 운전석에 제대로 앉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운전대는 여전히 트럼프가 잡고 있었고 조수석에서 길잡이 역할만 해달라는 셈이었다.

이번엔 다르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의 운전대를 문재인 대통령한테 맡겼다. G7 정상 회담 직후 성킴이 방한해서 대북 대화 메시지를 보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G7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선물을 줬다. 이번엔 바이든 대통령이 답례를 할 차례다. 물론 조건은 있다. 비핵화에 관해 북한의 실질적인 양보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결국 앞으로 서울-평양간 대화 채널이 얼마나 제대로 가동되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한미 정상 회담에서 우리 정부도 대신 내줄 건 내줬다. 한미 공동 성명에는 “한미는 쿼드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남중국해 등에서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항행, 상공 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 존중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쿼드, 남중국해, 대만는 모두가 미국측이 원하는 키워드들이다. 한미 미사일 지침 철회에서도 드러났지만 미국은 한국을 대중 전선의 최전선으로 본다. 1950년 1월 에치슨 라인의 실수에서 얻은 교훈이다. 바이든은 존 맥케인 사후 미국 조야에서 유일무이한 외교 전문가로 꼽힌다. 심지어 지금은 대통령이다. 한국을 포기하면 중국의 동진을 막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라는 말이다. 한국에 원하는 걸 다 들어주더라도 한국을 대중 전선쪽으로 한발자국 끌어들이는 게 이번 한미 정상 회담에서 미국의 최우선 목표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젠 역으로 북한을 한국과 미국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시도하고 있다. 바이든의 역공이다.

 

“Good Luck.”  

©Anna Moneymaker/Getty Images
지난 5월 한미 정상 공동 기자 회견에선 양측이 서로의 입장을 역지사지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일화가 있었다. 한 미국 기자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만 문제에 관해 어떤 얘기를 했는가.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보다 강한 입장을 촉구하지는 않았나”라고 물었다. 양 정상 모두 각오하고 있었던 질문이다. 한미 정상의 공동 기자 회견을 베이징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때 바이든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한다. “Good luck.”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두 개의 한국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일방주의 외교와 다자주의 외교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일방주의 외교는 상대방의 사정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결국 모든 외교 협상은 승자승 원칙으로 흐른다. 승자가 모든 걸 다 갖는다. 트럼프나 부시의 외교가 그랬다. 반면에 바이든이 추구하는 다자주의 외교에선 어느 누구도 모든 걸 다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어떤 입장인지 헤아려주기 때문이다. 대신 상대방도 똑같이 역지사지를 해줄 걸 기대한다. 이게 바이든 독트린이다.

바이든은 미국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로마 제국의 황금기였던 5현제 시대의 마지막 황제다. 게르만족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지만 전쟁을 끝낼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철학자 황제였다. 로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까지 번성했다. 역지사지를 할 줄 아는 황제였기 때문이다. 로마는 아우렐리우스 사후 쇠퇴하기 시작한다. 픽션이 많이 가미됐지만 당시 정황은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묘사돼 있다.[2]

“행운을 빕니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농담에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다. “압박은 없었습니다.”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당사자 앞에서 “압박이 없었다”고 대꾸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고수의 화법이다. 정상외교에선 허심탄회가 최고의 전술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런 정공법의 고수다. 외교위원장 시절엔 아랍의 독재자들을 상대할 때 대놓고 “독재자”라고 부른 경우도 적지 않다. 대신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원하는 말을 정확하게 들려줬다.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했습니다. 양안 관계의 특수성을 생각하면서 양국이 협력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의 압박이 없었다는 걸 확인해 준 다음 공식적으로 대만 문제를 언급해 준 것이다. 바이든 외교의 승리였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바로 이 순간 이 말 한마디를 끌어내기 위해 한미 정상 회담을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신 바이든 대통령은 한가지 깜짝 선물을 더 준비했다. 성김 주싱가포르 대사를 대북특별대표에 임명한 것이다. 이건 문재인 대통령조차 공동 기자 회견 직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김 대사를 한미 정상 회담에 맞춰서 귀국시켜서 공동 기자 회견에 참석하게 했다. 멀쩡한 파월 국무장관을 지한파라는 이유로 공동 기자 회견에 불참시켰던 김대중-부시 정상 회담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바이든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건 나의 실수였다. 부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딕 체니와 네오콘한테 휘둘리고 있었다.”

성김 대북특별대표는 자타공인 북한통이다. 2018년 싱가포르 정상 회담에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장과 북미 합의문을 조율했던 실무진이다. 2006년 국무부 한국과장을 맡은 이후부터 20년 가까이 한반도와 아시아 문제에 관여해 온 현장통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있어서 실무적 상향식 접근을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트럼프식 톱다운을 지양하겠다는 얘기다. 결국 성김 대북특별대표한테 한반도 문제의 조율을 믿고 맡기겠다는 말이다. 한미 정상 회담에서 성김 대표를 일으켜세워서 소개까지 시킨 건 한마디로 문재인 대통령과 잘 해보라는 얘기다. 북한도 이게 어떤 메시지인지 모르지 않았다. 미국이 북한을 상대할 카운터파트너로 북한과 말이 통하는 사람을 세워 줬다. 그건 말씀 좀 나눠 보란 말이다. 말씀을 안 나눌 이유가 없다.

바이든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렵게 한반도의 운전대를 잡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처럼 천추의 한으로 남지 않으려면 한시가 급하다. 성김 미국 대북특별대표는 문재인 정부로서도 최고의 카운터파트너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공석인 북한인권특사보다 대북특별대표를 임명하는 성의도 보였다. 인권 문제는 북한의 역린이다. 북한인권특사는 누가되든 북한에 우호적이기 어렵다. 반면에 대북특별대표는 북한이 원하는 상대다. 그 중책을 성김이 맡게 됐다는 건 평양과 워싱턴 사이에 핫라인이 연결됐다는 의미다.

그렇게 문재인 데탕트의 2막이 올랐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서울-평양-워싱턴 사이를 오가는 화려한 외교전이 펼쳐질 기반이 마련됐다. 경우에 따라선 하반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워싱턴이나 서울 방문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년 한국 대선에도 큰 변수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은 임기를 남북 관계에 올인할 공산이 크다. 크게는 한반도 평화와 작게는 민주당 정권 재창출과도 직결된 승부처다.

지지율 하락과 서울,부산 재보선 패배로 레임덕을 각오하던 상황에서 집권 5년 차 외교 동력을 되살려 준 것이야말로 바이든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한테 행운을 빌면서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다. 다만 이제부터 남북 관계엔 정말 천운이 필요하다. 한미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남북이 풀리지 않을수도 있다. 중국이 얼마든지 훼방을 놓을 수도 있다. 중국도 북한이 러시아와 함께 대중 봉쇄의 약한 고리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부터 진짜 종반전, 그러니까 엔드게임이다. 양측의 모든 패가 전부 드러나고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 말이다.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그 엔드게임이다. 그래서 바이든의 ‘굿럭’은 농담만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를 원하는 문재인 데탕트를 위해서도 민주주의 연합으로 대중 봉쇄를 원하는 바이든 독트린을 위해서도 이젠 정말 영끌 행운이 필요하다.
[1]
캡틴 아메리카는 원래 2차 대전 참전 용사다. 시리즈의 최종화인 〈어벤져스 : 엔드게임〉 마지막엔 늙은 캡틴 아메리카가 등장한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도 출연한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 에반스가 연기한 노인 분장을 한 늙은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은 바이든 대통령과 여러모로 닮아 있어서 화제가 됐었다.
[2]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아우렐리우스 황제 사후 로마 제국의 혼란을 그린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아들 코모두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위에 올랐지만 검투경기에만 몰두하고 결국 검투사한테 암살당한다. 코모두스는 최악의 로마 황제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아우렐리우스와 코모두스와 관계는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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