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독자를 찾아서
1화

프롤로그; 다시 쓰는 저널리즘

언론사의 지위는 모순적이다. 민주주의라는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과제를 품고 있으면서 동시에 사적 기업으로서 이윤도 창출해 내야 한다. 이윤에 초점을 두면 가치가 위태로워지고 가치에 집중하면 생존의 기반을 위협받을 수 있다. 언론사의 위기는 이 같은 모순적 위상이 초래한 역동적인 게임의 결과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기 변동, 급변하는 기술적 조건은 저널리즘 조직이 넘어서야 할 외부 조건이다. 하지만 두 가지 외부 요인은 태풍이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처럼 순기능과 피해를 동시에 일으킨다. 기존 저널리즘 조직의 경제적 위상을 뒤흔들어 민주주의의 위기론을 낳기도 하지만 기존의 불안한 생태계를 정화시키고 힘을 분산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지금의 국면은 태풍이 휘몰아치며 서서히 새 질서가 생성되는 과정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수십, 수백 년 된 나무가 강풍에 뿌리째 뽑혀 나가겠지만, 그 자리엔 새 생명들이 자라날 것이고, 전혀 다른 생태계 질서도 등장하게 될 것이다. 부정적 측면만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태풍이 지나간 이후 돋아날 긍정의 싹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제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탄생하는 전혀 다른 수용자의 선호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기성 언론이 기존의 문법과 토대에 집착하는 동안 미디어 스타트업들은 새로운 접근법을 실험해 왔다. 미디어 스타트업들은 세 가지 측면에서 전통 언론과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첫 번째는 수용자 우선주의(Audience First Strategy)다. 미국 미디어 스타트업 악시오스(Axios)는 창업 선언문에서 밝히고 있듯, 수용자가 항상 옳다는 전제를 잊지 않는다. 현명한 수용자를 위해 저널리즘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떤 정보를 생산하고 전달해야 하는지를 전략의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는다. 현명한 수용자들이 즐겨 듣는 방식으로, 일상 언어를 활용해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텔링을 고안한다. 수용자의 현명함을 부정하고 수용자의 사고를 뜯어고치려 했던 전통 언론사와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이 과정에서 내러티브 혁명에 준하는 뉴스 포맷의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기사의 형태는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고정 관념 따위와 과감하게 결별한다. AP의 역(逆)피라미드 기사 포맷이 당대의 경제적 조건과 기술적 변화를 수용하며 탄생했듯, 새로운 미디어 스타트업들도 변화한 환경에 적합한 최적의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두 번째는 문제 해결형 접근법이다. 미디어 스타트업은 수용자가 당면한 문제를 탐색하고 발견한 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저널리즘 기법을 동원한다. 대다수의 수용자들은 정보 과잉의 시대에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추려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전통 언론사들은 수용자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여전히 인색하다. 수십 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저널리즘 기법을 일거에 뒤집어야 하는 일이니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반면, 새롭게 등장하는 미디어 스타트업들은 이 같은 유산(legacy)으로부터 자유롭다.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는 부족할지 몰라도, 새로운 저널리즘 문법을 써 내려가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세 번째는 본질의 재정의다. 미디어 스타트업은 저널리즘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저널리즘은 무엇이어야 한다는 당위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그들의 행위와 결과물이 곧 저널리즘의 새로운 정의가 되고 당위가 된다.

저널리즘 조직이 생존을 위해 갖춰야 할 수익 모델에서도 재정의 작업은 계속된다. 버즈피드(BuzzFeed)는 직접 상품 생산 영역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전통 언론사들도 본질의 재정의에 나서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식료품 배달 사업을 시도했고 워싱턴포스트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는 네이버 아웃링크[1] 논쟁이 격화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언론사들은 뉴스 제공에 대한 대가로 지급하는 비용인 전재료를 삭감하지 않는 동시에 아웃링크를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 반면 네이버는 아웃링크를 도입할 경우 전재료를 지불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 논쟁이 촉발된 배경에는 언론사와 플랫폼 사업자 간의 뿌리 깊은 불신이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격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저널리즘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광고주와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접촉면을 신문이 독점하던 시대엔, 신문 권력 견제가 당대의 중요한 쟁점이었다. 밤의 대통령, 제4부라는 수식어는 신문이 한때 가졌던 위상을 상징한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이 도입되고, 2000년대 초부터 포털이 성장하면서 신문의 위상은 하염없이 추락했다. 언젠가부터 신문사는 포털의 콘텐츠 공급자로 전락하게 됐고, 포털의 제어 시스템에 따라 콘텐츠 생산이 좌우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맞았다.

광고주와 소비자 사이에 신문이나 방송이 아닌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행위자가 끼어들게 되면서, 광고 시장을 신문과 방송이 지배하던 세상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포털과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고도화된 기술을 무기로 빠르게 광고 시장을 잠식했고, 이 과정에서 전통 언론사들은 수익성의 위기에 내몰렸다.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거대한 파고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전환 비용이 필요하다. 비용을 감내할 여력이 없으면 버텨 내지 못하고 사멸할 수 있다. 2017년 메러디스 코퍼레이션에 매각된 시사 주간지 타임, 중국계 의사에게 팔린 미국 서부 유력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은 파고를 넘지 못하고 고꾸라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매각이라는 형태로 이름은 보전할 수 있게 됐지만, 창업 초기부터 지향하던 저널리즘 가치를 지킬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사례들은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저널리즘 조직들이 이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전환의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도드라지지 않을지라도 새로운 수익 모델을 실험하고 수익을 다각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술을 포용하고 내재화하려는 시도를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 아웃링크 논쟁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처방을 찾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이 책은 국내 저널리즘 조직에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다. 단지 경고에 그치지 않기 위해 전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해외 사례를 분석해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구분했다. 전통 언론사에 머물지 않고 미디어 스타트업까지 언급한 까닭은 재정의의 범위가 그만큼 방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굳이 이론적인 논의까지 끌어온 이유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저널리즘 지식 체계는 전체 저널리즘의 역사에서 일부 시간대만을 점유했던 철학적, 이론적 사유의 결과일 뿐이다. 통시적으로 관찰하면, 그러한 지식 체계의 고정 관념에서 비교적 쉽게 벗어날 수 있다. 여기에 정보 및 기술 사회의 이론적 논의를 보태면 저널리즘의 내용을 풍성하게 살찌울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다소 무모하게 결합시킨 측면이 있다면 전적으로 필자의 무지 탓이다. 그럼에도 감행한 것은 지속 가능한 저널리즘에 대한 애착, 저널리즘이 전통적인 규범 논리에만 갇혀 있어서는 거대한 전환의 조류를 이겨 낼 수 없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저널리즘이 더욱 방대한 이론적, 실천적 영역과 결합함으로써 다시금 희망의 언어로 쓰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
검색한 정보를 클릭하면 정보를 제공한 원래의 사이트로 이동하는 방식을 말한다. 뉴스의 경우 검색한 뉴스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의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반면, 인링크는 뉴스를 포털 사이트에서 보여 주고 댓글도 포털 사이트에서 달게 하는 방식이다. 〈아웃링크〉, 《한경 경제용어사전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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