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상업화 지수가 높은 미국, 칠레, 폴란드 등에서는 신뢰도가 대체로 낮았다. 해당 논문은 의료의 상업화가 의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상업화된 의료에는 소비자주의(consumerism)가 적용되면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소비자와 공급자의 관계로 치환된다. 따라서 존경과 감사보다는 감시와 견제의 눈길로 의사를 바라보게 된다. 두 번째는 의사가 환자의 건강보다 수익을 더 추구하는 이해관계 충돌이 일어나며, 세 번째는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큼 환자의 만족도 역시 떨어진다는 거다.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설명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의사가 만만해서’라는 설명보다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결국 의사를 쉽게 만날수록 신뢰가 손상되는 것이 아니고, 의료비가 비싸다고 의사를 존경하게 되는 것도 아닌 듯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상업화 기준으로는 중간 그룹에 속한다. 본인 부담금은 외국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국민 총생산의 3.2퍼센트로 조사 대상 29개국 중 4위였다) 전 국민이 국민 건강 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영리 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의사 신뢰도는 꽤 낮은 편으로 상업화 중간 그룹에서는 꼴찌다. 건강 보험이 적용되는 의료 서비스의 가격은 낮지만, 건강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의료 서비스의 가격은 여전히 높아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꽤 높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5퍼센트의 본인 부담금만 내고 저렴하게 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정작 온열 치료와 고농도 비타민 주사에 가산을 탕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 집단이 신뢰를 얻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집단적 권위주의와 환자의 알 권리
‘의료비가 너무 싸서’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생각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처럼,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의사들이 엘리트 의식에 젖어 있고 싸가지가 없어서’ 신뢰받지 못한다는 생각도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물론 폐쇄적인 의대와 병원으로 이어지는 균일한 집단 내에서 살다 보면 의사소통이나 공감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한 지적이 누적되면서 여러 의대에서는 인문학 교육 및 다양한 지역 사회 실습을 늘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싸가지 없음’ 역시 상당 부분은 과로와 번아웃을 일으키는 의료 환경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장 나부터도 의사소통 수준이 가장 낮았던 때가 가장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했던 레지던트 1~2년차 때였음을 상기해 보면 말이다. 의사가 정신을 좀 차리고 살 수 있어야 환자 입장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의사 개인의 인성이 아닌 집단의 권위주의적 경향 때문에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가 손상된다는 주장은 경청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권위주의란 단순히 환자에게 반말하거나 짜증을 내는, 기본적인 예의를 차리지 않는 태도를 일컫는 것은 아니다. 집단의식으로서의 권위주의는 ‘환자가 자신의 질병과 몸의 상태를 충분히 이해할 능력이 없고, 의사의 설명에만 의존해 치료받는 수동적인 객체’라는 개념의 가부장적 온정주의(Medical paternalism)이다. 즉, 환자는 자신의 치료에 대해 너무 자세히 알 필요 없고(아는 게 독이고), 의사가 말해 주는 대로 이해하는 것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가장 좋은 방향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현대의 의사들은 환자의 알 권리, 자기 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대명제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환자의 자기 결정권은 대개 의사가 그어 놓은 선 안에서 발휘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것을 넘어서는 순간 소위 ‘짱돌’, ‘진상’이 되어 의사가 책임질 수 없는 영역으로 벗어난다고 여긴다.
예를 들어 의사는 종종 환자의 알 권리를 임의로 차단할 수 있다(차단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그것이 선善이라고 여긴다. 작년에 내가 겪었던 ‘종양표지자[4] 논쟁’이 그랬다. 요즘은 혈액 검사 결과를 스마트폰 앱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모든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속한 병원에서는 1년여 전까지는 암 환자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종양표지자 검사 결과를 스마트폰으로 볼 수 없었다. 환자들은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게 해달라며 요청했으나 다수의 의사가 반대했고, 실은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환자가 종양표지자 검사 결과를 보고 질병 상태를 잘못 이해할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종양표지자 수치는 물론 암의 진행 과정과 상관관계가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종양표지자가 떨어져도 암은 진행될 수 있고, 올라가도 암이 호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기에 종양표지자뿐만 아니라 영상 검사, 환자의 증상, 신체 검진 소견 등 여러 요소를 통합해 암 치료 경과를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환자들이 종양표지자 검사 결과를 자신의 치료 경과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마치 주가 지수 같은 그래프로 오해하면 불필요하게 일희일비할 수 있다. 오히려 아는 것이 독이 되는 셈이다. 사실 이런 생각에 숨은 또 하나의 이유는 ‘환자들 질문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면 이에 관한 질문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진료 때마다 항암제 처방하기도 바쁜데 종양표지자의 의미에 대해서까지 설명해야 한다면 업무가 가중될 것이 뻔해 두려웠다. 의사는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지 환자가 궁금해하는 것에 다 일일이 대답해야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료진 사이의 토론 끝에 결론은 ‘환자의 알 권리를 막을 정당성이 없다’는 쪽으로 기울었고, 현재 종양표지자 검사 결과는 모두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사실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CEA[5]가 올랐는데 어떻게 된 일이죠?”라고 묻는 환자를 맞이하는 것은 편하지 않다. CEA에 관해 설명하며 제한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지난번 항암 이후 어떤 부작용이 있었고 통증의 강도는 어떻게 변했는지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환자가 자신에게 더욱 중요한 것에 집중하도록 설득하는 것 역시 의사가 해야할 역할이라고 여기게 됐다. CEA가 질병 경과 판단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꼭 필요하지 않은 검사이니 하지 않아야 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해 검사했다면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맞다(물론 설명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오픈 노트의 시대
이제 와 변명같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검사 결과를 보여주지 않기를 원했던 의사들도 환자를 업신여겨서 그렇게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다. 불필요한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권위주의, 혹은 가부장적 온정주의는 기본적으로 선의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러나 환자 중심적인 의료에서는 그 정보가 필요한지 불필요한지도 환자와의 상호작용 속에 결정된다. 환자는 종양표지자 검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묻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질병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암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조금 더 자신감을 얻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의사들이 아직 이런 환자 참여(patient participation), 환자 권리 찾기(patient empowerment)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고,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해도 우리 같은 저수가 의료 체계에서는 적용이 불가능하며, 내심 의사의 권위에 도전하고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앞으로 바뀌어야 할 부분이고, 조금씩이나마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환자 참여를 실현하는 방법 중에는 종양표지자같은 일부 검사 결과뿐만 아니라 아예 환자에게 자신의 의무 기록에 대한 접근 권한을 주자는 ‘오픈 노트(Open Notes)’ 운동이 있다. 지금도 환자가 자신의 의무 기록을 볼 수는 있지만, 별도로 비용을 들여 사본을 신청해야 하는 불편이 수반된다. 본인의 전자 의무 기록에 대한 접근 권한 자체를 주고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국내 현실에서 보면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는 이 제도는 미국에서 이미 시행 중이다. 미국은 2010년부터 시작된 시범 사업을 거쳐 2021년 4월부터 환자가 자신의 모든 전자 의무 기록에 무료로 실시간 접근권을 요구할 수 있도록 연방법으로 보장하는 데 이르렀다.
물론 환자가 자신의 의무 기록을 직접 봤을 때 과연 그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 있겠냐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 내용을 이해한다 해도 질문이 많아지고, 때론 지적과 항의로 이어져 의사의 업무 강도와 분쟁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간의 오픈 노트 시범 사업을 통해 이루어진 연구에서는 의무 기록 공개의 부정적인 영향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더 높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환자는 자신의 의무 기록을 보고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약을 더 잘 챙겨 먹게 되었으며, 우려하던 바와 같이 의무 기록에 대한 문의로 의사의 업무가 늘어나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6] 심지어는 환자가 직접 자신의 기록에서 오류를 발견해 환자 안전을 향상시켰다는 연구 결과[7]까지 있다. 사실 의료진 입장에서 자신의 오류를 환자가 직접 발견한다는 것은 악몽에 가까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 오류가 수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환자에게 더 큰 악몽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솔직하고 투명한 의사소통으로 오히려 소송이나 분쟁이 줄었다는 보고도 있으니, 아마도 멀지 않은 미래에 오픈 노트가 전 세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국내에서도 환자의 의무 기록을 본인에게 공개해 의료 데이터 공유와 활용을 활성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8] 의료 데이터를 통한 혁신과 기술 발전에 대한 논의와 상반되게 개인 정보 보호 문제가 종종 걸림돌이 되는데, 환자 본인이 자신의 의료 데이터에 대한 실질적인 소유권을 지니고 결정할 수 있다면 정보 이용에 대한 논의 또한 자연스럽게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수술실 CCTV
의사 사회의 권위주의가 드러나는 또 하나의 단면은 해묵은 논쟁을 이어 가고 있는 수술실 CCTV 설치 문제다. 지난 수년간 시민 사회단체에서는 강력히 설치를 주장해 왔고, 결국 2021년 8월 CCTV 설치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서 의결됨으로써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이 문제는 의사협회에서 사활을 걸고 반대해 온 사안 중 하나다. 의사들이 CCTV 설치에 반대하는 이유는 동료의 범죄 행위를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진료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다. 표현이 애매해서 마치 핑계처럼 들리지만, 실제 그들이 느끼는 공포와 우려는 매우 크다. 수술 중에는 출혈이 많거나 혈압이 떨어지는 등 여러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지는데, 수술이 끝나고 기록된 CCTV 영상을 돌려 보며 지적당하고 또 항의를 받아 과실을 의심받게 된다면, 애써 힘든 수술을 하기보다는 지레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잊을 만하면 수술실 내 범죄가 수면 위로 떠 올라 논란이 되고, 심지어 최근에는 의사가 수술 도구로 간호사에게 신체적 상해를 입힐 뻔한 경악스러운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결국 공개와 투명성 확보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신뢰를 되찾을 길이 없어 보인다. 물론 CCTV 설치가 의무화됐을 때 수술 장면을 하나하나 꼬투리 잡아 시비 거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을 터다. 그러나 대다수 환자에게 수술이 안전하다는 인식을 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결국 CCTV에 대한 우려도 ‘일반인은 의료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므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보만을 골라서 주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온정주의 혹은 권위주의의 산물이지 않을까.개인적으로 수술실 내 범죄에 CCTV가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환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면 결국 치러야 할 비용이 아닌가 싶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고 통탄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미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주워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의사들이 다시 신뢰라는 모자를 쓰고 의관을 정제하려면 스스로 주워서 탈탈 털어야 하는 수밖에 없다. 즉 권위가 파괴되며 더 많은 정보가 유통되고 공유되는 세상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귀찮고 번거로워도 어쩔 수 없이 가야 할 길임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나는 이제 환자가 진료 과정을 녹음하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 사람이 녹음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다. 언젠가 내 진료를 시험 삼아 한번 녹음한 적이 있었는데, 진료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스마트폰만으로도 목소리가 또렷하게 기록됐다. 어차피 내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래서 약간은 체념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워낙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봐야 하니 내가 무슨 소리를 어떻게 할지 겁나기도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어떤 환자든 대화를 녹음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설령 녹음하는 것이 눈에 띄어도 그러려니 한다. 다만 녹음하겠다고 미리 얘기만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한다. 의사와 환자라는 관계를 떠나서 그게 사람 간의 예의이고, 나도 얼마간은 존중받고 싶으니까.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오픈 노트 운동이 벌어져 의무 기록을 모든 환자가 볼 수 있게 된다면 굳이 녹음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녹음을 한다는 건 의사에 대한 불신과 불만 때문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불안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몸 상태를 잘 모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가늠조차 안 되는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함이 가장 클 것이다. 꼭 오픈 노트가 아니더라도 환자가 진료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환자는 좀 더 안심하고 의사를 믿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반대로 의사가 스마트폰 녹음으로, 수술실 내 CCTV로, 심지어는 전자 차트 기록으로 늘 감시당하고 추궁당하는 신세가 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래도 어차피 감시당할 것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대세라면 먼저 내어놓는 것이 낫지 않을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