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우위
영국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가 1817년 포르투갈 와인과 영국 옷감을 예로 들면서 ‘비교 우위’
[2]라는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주창한 이래,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의 이론적 장점을 확신해 왔다.
리카도는 사람들이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제품의 생산에 집중하고, 그 제품을 교역할 때 모든 국가의 생산성이 극대화된다고 주장했다. 이 아이디어의 혁명적인 지점은 ‘비교’라는 단어에 있다. 리카도는 모든 국가가 특정한 수출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지 않더라도,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자원에 ― 비옥한 땅이든 값싼 노동력이든 기술적 자원이든 ― 집중하면 국가의 번영을 이끌어 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다시 말해 모든 국가가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리카도는 국가가 자체 생산이 가능한 것만 소비해야 한다는 자급(autarky) 이론과 한 국가의 수출이 곧 다른 국가의 손실을 의미한다는 중상주의의 신뢰성을 파괴했다.
실제로 경제사학자들은 자유무역의 장점에 대해 단결된 모습을 보인다. 1930년대 초 대공황 당시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의 실패 속에서 스무트-홀리법이 얼마나 많은 경제적 추가 손실을 유발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보호주의와 관세가 상황을 호전시켰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상황을 놓고는 이런 견해가 더욱 힘을 얻는다. 폭격을 맞은 유럽 경제에 무상 원조를 제공하고 무역 장벽을 해체한 미국의 마셜 플랜(Marshall Plan)은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Wirtschaftswunder)’을, 프랑스가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을 맞이하는 토대가 되었다. 또한 1970년대 후반 마오쩌둥이 사망한 뒤 중국이 세계 경제에 동화되고 세계 수출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수억 명의 중국인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식스 대학교의 앨런 윈터스(L. Alan Winters)는 세계 무역 체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중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세계 무역 체제는 전후 세계 경제 성공의 핵심 요인이었다. 소득이 크게 늘었고, 역사상 최초로 세계 빈곤이 절대적으로 감소했다.”
경험 학습
그러나 무역 자유화가 번영의 절대적인 요인이라는 주장에도 이면은 있다. 모든 사례가 비교 우위 이론에 정확하게 들어맞지는 않는다.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19세기 후반, 독일과 미국은 당시 초강대국이던 영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자국 제조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 장벽을 세웠다.
캠브리지대 경제학자 장하준은 오늘날 부유한 국가의 대부분은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상당한 기간 동안 높은 수준의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했다고 지적한다. 자유무역 지지자들은 그 국가들이 자유무역을 채택했다면 상황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고 말하겠지만, 보호무역주의가 비스마르크(Bismarck, 독일의 첫 수상)의 독일이나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impson Grant, 미국의 18대 대통령)가 이끄는 미국의 성장을 늦췄다고 판단할 만한 어떤 근거도 없다.
전후 시대의 사례도 있다. 1960년대 한국의 산업 발전은 높은 관세 장벽 아래서 일어났다.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40년 동안 자국의 자동차 산업을 대외 경쟁에서 보호했다. 대만도 상황은 비슷했다. 다시 말하지만, 보호무역주의가 이들 국가에 큰 피해를 입혔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세 국가의 성장률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실제로 무역 장벽과 산업 보조금의 결합은 이러한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 잠재력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이나 조선업을 보호하면서 키운 산업 역량은 다른 고부가 가치 기술 개발의 토대가 된다. 보호주의는 자국 경영자와 관료에게 ‘경험 학습(learning by doing)’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완전히 개방된 무역의 세계에서는 얻을 수 없는 기회다.
장하준의 지적에 따르면, 1950년대 한국의 명백한 ‘비교 우위’는 조선업이나 가전제품이 아닌 어업과 저급 가발 제작에 있었다. 60년 전 한국이 잘하는 일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날의 삼성이 있을까? 일본에 도요타 자동차가 존재할까? 대만의 에이서(Acer, 세계 4위의 PC 제조사)는 또 어떨까?
물론 이런 교훈을 모든 저개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보호무역주의가 낭비와 부패로 이어진 개발도상국도 많다. 그러나 보호무역주의가 특정 조건하에서 수출 장려 등 다른 정책과 함께 실시될 때 경제 발전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강력한 역사적 증거가 있다.
사회적 거래가 깨지다
자유무역의 이면은 또 있다. 우리는 단지 경제적인 동물에 그치지 않는다. 하버드대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은 무역에 있어서 리카도식 효율성 효과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정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10년간 중국은 생산 원가를 밑도는 가격으로 세계 시장에 철강을 덤핑했다. 중국의 철강 과잉 생산은 부유한 서구 국가의 제조 기업에게 더 저렴한 투입을 의미했고, 동시에 더 생산적인 산업과 더 높은 소득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철강 덤핑으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철강 노동자와 정부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근본적인 ‘사회적 거래(social bargains)’가 약화되면, 국민은 합리적인 불만을 품게 된다.
기업의 해외 이전도 이와 비슷하다. 해외 생산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외국의 느슨한 보건과 안전 규정을 이용하기 위해서라면 공정성에 대한 일반 대중의 정서를 위반하는 것이다(편집자 주: 대니 로드릭은 자유무역 만능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이다. 세계화로 인해 생산직 노동자 등 특정 계층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하거나, 자유무역주의라는 미명하에 개발도상국 공장에서 아동 노동을 착취하는 등 보편적인 윤리 기준을 어기면서 부를 축적하는 세계화의 문제를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미국인 학살(American carnage)’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공장들은 하나씩 문을 닫고 이 땅을 떠났다. 남겨진 수백만 명의 미국 노동자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열변을 토했을 때 바로 그런 사회 계약이 파기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