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아노프 이사장과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애지중지 하는 미국인들의 마음(The Coddling of the American Mind)》
[2]이라는 책에서, 테러리즘과 대불황의 그늘에서 과잉보호를 하는 양육으로 인하여, 정서적인 안전을 포함하는 안전의식이 다른 모든 실질적이며 도덕적인 우려들을 능가하는 사고방식인 “안전지상주의”를 낳는다고 말한다. 안전에 대한 한계는 더욱 커져서 탐탁지 않은 연사들을 캠퍼스에 초대하는 걸 취소하게 만들고(표1 참조), 못마땅한 내용의 교재를 읽는 것에 저항하며, 동료 학생들의 발언을 규제해야 할 정도까지 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사회적 행동(또는 “실천”)을 요구하며 수십 년 동안 학계에서 발전해 온 모호한 내용의 텍스트들을 엮어서 만든 이론 체계에 매력을 느꼈다. 1965년, 비판이론가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는 “억압적 관용(repressive tolerance)”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는데, 이는 진보를 이뤄내기 위해서 발언의 자유를 정치적인 권리에서 박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유로우며 평등한 논의라는 자유주의의 신조를 취소하는 것”이 억압을 종식시키는 데 있어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영향은 브라질의 교육자인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에게서 찾을 수 있는데, 그의 책 《억압받는 자들의 교육학(Pedagogy of the Oppressed)》(영어판은 1970년에 출간)에서는 마오쩌뚱이 추진한 문화대혁명의 정신에 내재된 해방의 교육학을 옹호하고 있다. 프레이리는 이 책에서 “억압받는 자들이 억압의 세계를 드러내고, 그러한 교육학의 실천을 통해서 스스로가 변혁에 헌신할 수 있다”고 썼다.
정치적 대각성
현재 재커리 골드버그(Zachary Goldberg)와 같은 정치학자들이 정치적 대각성(The Great Awokening)이라고 부르는 것의 가장 유명한 전도사들은 이브람 X. 켄디(Ibram X. Kendi)와 로빈 디안젤로(Robin DiAngelo)이다. 학자이자 활동가인 두 사람은 모두 제도적인 인종차별의 광범위한 경계를 그려낸 베스트셀러를 저술했다. 둘 다 의도의 역할은 작게 보고 있는데, 그 방식은 서로 다르다. 켄디의 이원론적인 세계권에서, 행동은 인종적 격차를 적극적으로 좁히기 때문에 행동하는 이들이 반인종차별주의자들이며,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인종차별적이며, 인종차별주의는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이다.” 그의 결론이다.
디안젤로는 일상적인 언어가 가진 인종차별을 우려한다. 그녀는 만약에 억압받는 사람이 어떠한 행동을 모욕적이라고 느낀다면 억압자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최근에 펴낸 《착한 인종차별(Nice Racism)》이라는 책의 주제는 “백인 진보주의자들이 어째서 백인 민족주의자들보다 [흑인들에게] 일상적으로 더 많은 해악을 입히는가”이다. 그녀는 개인주의나 인종과 무관한 보편주의에 대한 열망과 같은 자유주의의 규범들을 순진하다고 생각한다. “자유주의는 권력에 대해서도, 권력 내에서의 격차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녀의 말이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행정직원들의 역할이 없었다면 그 영향력은 여전히 미미했을 것이다. 2000년 이후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들의 규모는 두 배 이상 늘어나면서, 교수진과 학생들의 숫자를 앞질렀다. 사립대학들에서의 증가세는 훨씬 가팔랐다. 1975년부터 2005년 사이에 공립대학들에서 행정직원들의 규모는 66퍼센트 증가했던 반면, 사립대학들에서는 135퍼센트나 늘어났다. 인원수가 증가하면서, 그들의 소관업무도 늘어났다. 명백한 인종차별이나 성희롱뿐만 아니라, 암시적인 편견 역시 찾아냈던 것이다. UCLA는 현재 교수진이 종신재직을 신청할 때 다양성 진술서(diversity statement)를 포함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2018년, 새라로렌스칼리지(Sarah Lawrence College)의 정치학자인 새뮤얼 에이브럼스(Samuel Abrams)는 이러한 행정직원들이 오히려 교수들보다도 더 좌파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공개했다. 자유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보다 12대 1 비율로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글로 작성한 것 때문에, 에이브럼스는 자신의 종신직을 취소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분노한 학생들의 시위에 직면했다. 그는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활동가들 때문에 캠퍼스 생활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싫어합니다. 다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겁니다.” 그의 한탄이다. “자신에게 시위대가 몰려오는 걸 원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매스컴의 대격변은 그러한 추세를 가속화시켰다. 트위터에서는 결연한 목소리를 가진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확대될 수 있고, 불안감을 느낀 중도좌파
[3]는 겁을 먹을 수 있다.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Hoover Institution)의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은 이렇게 말한다. “소셜미디어의 무기화는 게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술이 뉴욕타임스나 펭귄랜덤하우스나 구글에 이토록 쉽게 유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셜미디어의 침공은 자유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에게 끌려 다니는 오래된 문제의 한 가지 사례일 뿐입니다.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은 노골적인 전체주의자들에게 끌려 다닙니다.”
트럼프의 당선은 중도파들에게는 더욱 불안감을 부추겼고, 양극단의 세력들을 더욱 극단적인 성향으로 키웠다. “극좌파 진보주의를 제외한 모든 것이 트럼프와 함께 엮여 있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민주당 성향) 어느 검사의 말이다. 예를 들어서, 트럼프가 멕시코 국경에 설치하려는 장벽을 반대하는 시위에서, 국경의 보안을 강화하고 무허가로 장기간 체류한 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민주당의 오래된 노선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했다. 오히려 진보주의자들은 이민당국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에 찬성함으로써 그들의 진정성을 입증해보였다.
뿌리가 단단히 자란 사회정의 의식은 주로 명문대 출신들이 많이 상주하는 학계 이외의 기관들로 가장 쉽게 확산되었다. 이처럼 엉망인 이론체계를 흡수한 학생들이 학교를 떠났고, 그들은 영향력을 가진 일자리와 직위를 얻게 된다. 문제는 상아탑의 밖에서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편협하고 호전적인 열정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좀 더 공정해지길 바라는 유순한 욕구로 부드러워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신문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디지털 혁명은 지역 신문들을 황폐화시켰고, 새로운 온라인 전문 매체들이 왕좌에 올랐다. 흉내만 낼 줄 아는 신출내기들에 의해 뉴스룸의 풍경이 바뀌면서, 발로 뛰며 취재한 덕분에 조직 내에서 승진을 했던 글쟁이들은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명문대 출신의 젊은 직원들로 대체되었다. 어느 저명한 저널리스트는 이것을 두고 “중립적인 객관성”이 “도덕적인 명확성”으로 대체되었다고 말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구분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숙청의 충동
뉴스룸의 변화는 또한 이것이 소수자들에게 발언권을 줄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진정한 방법이라는 가정에 근거하여, 인구통계적 다양성을 증가시키려는 노력과도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불쾌하다고 여겨지는 발언권을 없애려는 것이나, 윤리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을 축출하는 캠퍼스의 열기도 유입되었다. (참고로 뉴욕타임스의 사설면 편집자로 일하다가 그런 논란을 겪으며 사임한 제임스 베넷(James Bennet)은 현재 이코노미스트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번 기사에서 그는 관여하지 않았다.) 젊은 엔지니어들을 포함하여 신문사에서 보도국 이외의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사회정의라는 새로운 비전과 상충되는 콘텐츠를 제작한 것으로 간주되는 동료들에 대한 반대 활동을 더욱 활발히 벌일 수 있다.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신문사에서도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는 편집국장으로부터 거의 아무런 질책을 받지 않았다. 적대적 저널리즘(adversarial journalism)
[4]에 특화된 온라인 출간 사이트인 인터셉트(The Intercept)에서 일하는 좌파 성향의 리 팡(Lee Fang)은 ‘흑인들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단체를 지지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인터뷰한 내용을 게재했다. 그런데 그가 이 단체를 개인적으로 비판한 내용이 함께 실리면서 그는 어느 동료로부터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사과를 요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