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페쉬의 소유주인 앤과 안데르스 홀치 포블센 ©Tariq Mikkel Khan/AFP
2013년까지 맥도넬과 그의 팀은 글렌페쉬에서 8000마리의 사슴을 도태시켰고, 근방의 사슴 사냥 업체를 포함한 그의 적대자들은 이를 빌미로 도덕적 고지에 진을 쳤다. “자기들이 사슴을 쏘는 건 스포츠라면서 우리가 사슴을 쏘면 도살이라고 한단 말이죠.” 지난 9월 맥도넬을 찾아갔을 때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게다가 삼림이 회복되려면 수백 년은 걸릴 거라지 뭡니까.”
우리는 페쉬강이 내려다보이는 오솔길에 서 있었다. 길 양옆에 서 있는 어린 스코틀랜드 소나무의 녹색 침엽이 불그스름한 헤더에 대조되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소나무 사이로는 자줏빛 열매가 매달린 마가목이 자라고 있었고, 월귤나무 관목에는 봄이 되면 흰나방 애벌레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이파리가 달려 있었다. 페쉬강 저편에도 새로 자라는 나무들이 더 보였다. 나무들은 둑을 감싸며 비탈 위로 퍼져가는 중이었다. 맥도넬이 미소를 지었다. “보다시피, 우리 경쟁자들께서 틀렸던 거죠.”
지난 20여 년 동안, 남미에서 다뉴브 유역에 이르는 지역에서 정치가, 활동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억만장자들(이 억만장자들이 벌이는 핵심 사업은, 이를테면 포블센의 의류 사업처럼 환경 친화적이지 못한 경우가 잦다)이 맺은 임시 제휴를 통해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황폐화된 농경지와 방목지의 생태가 복원되어 왔다. 그들을 인도하는 철학, 즉 땅은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한다는 생각은 식량을 얻기 위해 토지를 효율적으로 개간하고 경작하고 비틀어 짜내야 한다는 종래의 지배적 관점을 뒤엎는다.
이 일의 실무자들 상당수가 억만장자이고, 그들이 자연에 되돌려준 풍경은 (서류상으로 누구의 소유건 간에) 우리의 귀한 자산이며, 식량을 토지에 의존하는 것은 깊이 뿌리내린 전통이기 때문에, 생태 복원은 논쟁을 야기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생태 복원은 지구의 건강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토지를 환경의 측면에서 보다 지속가능한 방식을 동원하여 먹거리를 생산하는 데 이용할 뿐 아니라 온실가스를 포획하고, 멸종 위기종을 구하며, 교통 체증과 손 세정제로부터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휴식을 얻는 데, 다시 말해 도시를 떠나 자연의 조화를 즐기는 데에도 이용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글렌페쉬의 재생이 바로 그러한 작업이다. 맥도넬과 그의 팀은 지난 10년간 페쉬강 유역과 이웃 강 트로미의 유역을 분할하고 있는 언덕을 따라 수만 그루의 소나무, 자작나무, 버드나무와 기타 토종 수목을 심었다. 이제 몇 년 뒤면 이 줄기들은 침식을 방어하는 방벽, 탄소 흡수대, 큰들꿩과 뇌조처럼 고지대에 특유한 새들의 서식 장소로 발전할 것이다. 새와 바람이 씨를 뿌려대고 있지만 밀집도가 1평방킬로미터당 40마리에서 1마리로 줄어든 사유지의 사슴들은 더는 어린 새싹을 모두 먹어치울 만큼 개체 수가 많지 않다. 식물의 수가 늘어나면 소나무담비, 붉은 다람쥐와 산토끼들에게 먹이가 공급된다. 맥도넬은 이런 산짐승들의 개체 수가 늘어나는 모습을 주시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솔잣새와 뿔박새 같은 멸종위기 조류의 개체 수도 증가했다.
이게 누구에게 이익일까? 포블센의 스코틀랜드 사업체는 현재 매년 300만 파운드의 손실을 입고 있지만, 2027년 즈음에는 고급스런 숙박 시설에 머물면서 절묘하게 익힌 사슴 고기를 즐기고 되살아난 풍경을 돌아다니는 데 돈을 지불할 고객들에 힘입어 이익을 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생태 복원 계획이 처음 공개됐을 때, 스코틀랜드의 토지 소유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비판하던 사람들은 — 스코틀랜드 시골 땅의 절반을 약 450명이 소유하고 있다 — 글렌페쉬가 부자들을 위한 자연 보호 구역이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지만, 이러한 반응은 일반 도보 여행자들이 무료로 글렌페쉬를 지날 수 있도록 허용되자 다소 누그러졌다.
만약 생태 복원이 부자의 도락(道樂)처럼 보인다면, 이는 복원의 경제적 타당성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생태 복원은 잘못 붙은 명칭이기도 한데, 파타고니아에서 수만 마리의 양을 제거하든, (크로아티아 벨레비트 산맥에 멸종 야생 소인 오록스 대신 사야게사 소를 집어넣은 예시에서 보듯) 멸종된 종을 대신하는 다른 생물종을 도입하든 간에 생태 복원은 그 이름이 암시하는 것보다 인간의 개입을 더 많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생태 복원이 제공하는 관광 사업도 제한적이다. 복원된 지역의 존재 의의를 훼손하지 않고서는 해당 지역에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다. 생태 복원가들은 경관을 복구하고 공공의 복리에 기여하는 쪽으로 투자의 방향을 돌림으로써 전통적인 경제 활동에 투입되던 돈을 가져오고 있다. 영국의 농업에 미치는 파장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토지가 행성 전체 차원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 관리돼야 한다는 생각은 가능한 최저의 비용을 들여 사람들의 배를 불리는 것이 존재 이유인 농부들 사이에서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농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대두되는 것이 바로 이 생각이다.
농장을 다시 야생의 땅으로
영국 인구에서 농업 종사자의 비율은 1.5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전 국토의 71퍼센트는 농지로 분류되고, 농부들이 소유한 토지의 규모는 그들에게 대중의 상상력을 지배하는 힘을 부여해 왔으며, 이러한 힘은 꽤 많은 암탉과 유머러스한 새끼 돼지 등을 그려내는 동화책을 통해 강화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이러한 영국의 이미지, 즉 나근나근하고 꽃이 만발한 녹색의 땅, 도시 거주자들이 여가를 누릴 때마다 가벼운 걸음으로 향하는 에덴동산이라는 이미지는 국민들이 자국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끼쳤다.
역경에서 회복한 기억은 당연하게도 집약적 농업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은 해상 봉쇄를 겪었고, 농부들은 관목과 목초지를 파종 가능한 밭으로 바꿔 경작지를 두 배로 늘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평화의 시기가 오고 나서도 자급자족을 이루자는 애국적 운동은 계속됐다. 그러는 동안 인구는 급증했고 농부들은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은 땅을 개간했다. 1946년에서 1963년 사이, 매년 평균 3000마일에 달하는 산울타리가 제거되었다.
1973년 영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한 뒤 농부들은 식량 생산에 대한 보상으로 보조금을 받았고, 이로 인해 쓸모없는 잉여 농산물이 불어나자 농지를 유지만 해도 보조금을 받았다. 2017년에는 약 2억 7300만 파운드의 보조금이 이런 식으로 배분됐다. 수십 년간 농부들은 영국이 식량 생산에서 자급자족을 이뤄야 할 지속적인 필요가 있다는 점을 역설하며 보조금을 정당화했다. 비록 많은 경우 이 보조금이 유럽연합의 보조금 덕에 겨우 지불 가능했던 것이지만 말이다. 이 시기에는 집약적 방식을 통해 수확량을 더 높이 끌어올리려는 쉼 없는 욕망이 환경에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점에 대해 최소한의 자각만 있었을 뿐이다. 이 널리 알려진 지혜에 의문을 제기한 소수의 농부들은 동료들에게 축출당하는 사태를 맞았다.
2000년, 찰스 버렐은 잉글랜드 남부 넵(Knepp)에 위치한 1400헥타르의 사유지에서 10년 하고도 그 절반 동안 일궈온 집약적 농업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선언하고 난 뒤 깨달음을 얻었다. 버렐은 젖소에서 더 많은 우유를 얻어 내고 기름진 서식스 지역의 흙에서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자동화된 사양 방식, 최신식 콤바인, 다량의 비료와 살충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버렐이 농업에 종사했던 15년 중 13년 동안은 농장에 들어간 돈이 수입보다 더 많았고, 그는 농지에 150만 파운드를 초과로 끌어다 썼다. 2000년 2월, 버렐은 고용인들에게 농장 일을 접겠다고 말했다.
“농장 일꾼들은 …… 부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사무실을 떠났다.” 버렐의 부인 이사벨라 트리는 그들 부부의 경험을 쓴 책 《와일딩(Wilding)》에서 당시를 그렇게 회상했다. 하지만 농장 청산이 아무리 충격적이었다 해도, 농장을 ‘생물 다양성이 존재하는 야생의 땅’으로 전환하기 위해 공적 자금을 얻어내겠다는 버렐의 결정, 그리고 관광과 유기농 육류로 수익을 내겠다는 그의 목표는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