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분야의 농부들은 새로운 농업 법안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아직은 규모의 경제와 화학 약품에 의해 파괴되지 않은, 자연적으로 비옥한 토양이 결합하는 곳에서는 집약적 농업이 계속 높은 수익을 낸다.
마이클 슬라이의 집안은 잉글랜드 내전 이래 피터버러 근방의 작은 마을 소니에서 쭉 농사를 지어 왔다. 그들은 토지를 매입하고 매매하면서 슬라이가 설립한 시설인 ‘파크 팜(Park Farm)’을 현재의 규모인 1600헥타르까지 키웠다. 슬라이가 추수 감사제에 주관하는 연례 봉사인 6월 주말의 ‘농장 개방’ 행사에는 수천 명이 파크 팜을 방문한다. 그는 또한 지역 역사 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둘 중 무엇을 하든 그가 진정 즐기는 것은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대규모 상업 경작 농부’라는 자신의 지위다. 벌과 새를 위한 공간을 따로 챙겨준 것을 자랑스러워하긴 해도, 슬라이의 임무는 환경 서비스가 아니다. 식량 재배다.
슬라이의 직업적 비전을 정의하는 것은 지평선까지 뻗어 있는 거대한 사탕무 밭, 각각의 가치가 “수만 파운드”씩 나가는 최신식 트랙터와 파종기와 콤바인, 위타빅스와 미니 체더스 같은 전국적 브랜드와 맺은 최고급 밀 공급 계약이다. 그가 보기에 야생 생태 같은 건 “몇 퍼센트의 일부 부유층”에만 해당되는 문제다. 내가 방문했을 때 곡물로 가득 차 있던 2000톤 규모의 번쩍거리는 신축 저장 창고는 거대 시장에 바치는 찬양이다.
슬라이는 지피 작물 사용이나 불경작 농작법처럼 생산량이 줄어들 수 있고 상업성도 입증되지 않은 기술에 집중하기를 거부한다. 토양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벌레들에도 불구하고 체리 형제의 영농 방식은 손실을 보는 중이며, 보조금 개혁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 상태로 머물러 있을 공산이 크다. 슬라이가 우려하는 것은 영국 정부가 유럽연합을 일단 떠나고 나면 네오니코티노이드나 유전자 조작을 이용한 수입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고, 그로 인해 자국 농부들의 힘이 빠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영국은 이미 식량의 절반을 수입하고 있다. 네오니코티노이드 살충제 금지 조치 이후 유채씨 생산량이 폭락하자 영국은 똑같이 네오니코티노이드 살충제를 사용해 생산한 캐나다산 유채씨 기름을 수입함으로써 부족분을 메웠다.
식량 수입 증가는 슬라이의 근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는 정부가 공공 재화 확충이라는, 사람들 배를 채우는 데는 쓸모가 없으면서도 한창 유행 중인 ‘포교 행위’에 완전히 굴복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본다. 영국이 현재 자국 농업 수요의 30퍼센트를 공급받고 있는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과정을 밟는 현 상황에서, 슬라이는 식품 안전에 대한 관심이 인색하다는 사실에, 만약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닥칠 경우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자랑스러운, 하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이상에 대한 관심이 빈약하다는 점에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만약 영국이 특정 농산물을 계속 생산하고 싶다면,” 그가 말했다. “지금 제안되는 시스템은 그 목표와 절대 양립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조금 투입해서 조금 거두는 농부인지, 많이 투입해서 많이 거두는 농부인지 자문해봐야 해요. 중간은 없습니다.”
농업 혁신의 치명적 아이러니
유엔이 예견하고 있는 식량 부족을 완화하는 확실한 방법은 덜 버리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풍족하게 지내 온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매년 생산되는 식량의 3분의 1인 13억 톤 가량이 폐기된다. 1960년대에는 30퍼센트 이상이던, 평균적인 영국 가정의 예산에서 음식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10퍼센트 아래까지 떨어졌다. (영국은 싱가포르와 미국 다음으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장바구니’ 물가가 싸다.) 사람들이 상품을 무척 가벼운 마음으로 사고 있으니, 상품을 생산하느라 투입된 자연 자원과 인간의 독창성에 대한 고려 없이 다량으로 버려지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슈퍼마켓을 돌아다니는 동료 쇼핑객 사이에서 눈에 띄는 동요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면, 이는 식량 부족에 대한 전망이 현재의 풍요와 너무도 동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이사벨라 트리는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해야 한다는 “소매업자, 농업 관련 사업가, 농민 조합”의 요구와 “보조금과 과잉 생산으로 인해 상품 가격이 하락하면서 …… 폐업하고만 우리 같은 농부들의 경험”을 대조한다. 좌우 어느 쪽 정부도 식품 절약을 독려할 수 있는 부가가치세 부과 같은 조치를 선뜻 고려하지 않고 있다.
개량된 유전자와 곡물 성장 촉진제의 사용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는 동안 과학 기술은 식량 생산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열어젖히고 있고, 이는 농장에서 농사일을 제거하게 될 것이다. 로봇과 드론은 인간이 농지에 있어야 할 이유를 줄이고 있으며, 그러는 한편 LED 조명과 유전자 편집, 특정 효소나 단백질을 처리하는 기법인 메타제닉스를 이용해 온실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수직농법은 식량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고 있다. 싱크탱크인 ‘리싱크X’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5년 내에 생물 반응기에서 키워낸 동물 세포로 만드는 세포 기반 육류가 미국의 거대 소고기 산업을 파산시키는 동시에 사료용 콩과 옥수수의 재배 필요성을 없애버릴 것이라고 한다. 보고서는 2035년이 되면 미 대륙 면적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이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게 풀려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