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종말
완결

농업의 종말

지난 수십 년간 우리의 농업 방식은 토양의 질을 떨어뜨리고 야생을 파괴해 왔다. 이제 혁명이 다가온다. 하지만 이 혁명은 또 다른 문제를 예고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글렌페쉬 지역의 소나무 ©Murdo MacLeod/The Guardian
스코틀랜드 고지대에 위치한 1만 7000헥타르의 사유지 ‘글렌페쉬(Glenfeshie)’는 20세기의 마지막 몇 년에 걸쳐 급격한 쇠락을 겪었다. 수십 년 동안 사슴을 지나치게 방목하는 바람에 언덕의 비탈들은 생명이 깎여 나간 불모지가 되어 버렸다. 나무뿌리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페쉬강 둑은 강이 범람할 때마다 토양이 유실되었고, 하류에는 물에 쓸린 토사가 침전했다. 사슴들이 풀을 뜯어먹는 와중에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스코틀랜드 소나무들마저 수명을 다해 가고 있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종자 산지는 조만간 죄다 사라져 버릴 처지였다.

1997년에서 2006년 사이 글렌페쉬의 소유권은 세 명의 덴마크 사업가를 거쳤고, 이에 따라 자기 파괴적인 사업 모델도 같이 이동했다. 라이플로 무장한 사슴 사냥꾼들을 꾸준히 유입시키려면 사슴 개체 수를 높은 상태로 유지해야 했는데,  사냥터지기의 인건비와 토지 유지 비용이 늘면서 글렌페쉬의 사냥터 운영은 늘 적자였다. 그러는 동안 고지대를 천연 서식지로 삼아 살아가던 소나무담비, 산토끼, 잿빛개구리매 등은 점점 사슴들에게 밀려나고 있었다.

2006년, 그 세 명의 덴마크 사업가 중 가장 부유한 억만장자 안데르스 홀치 포블센(Anders Holch Povlsen)이 마지막으로 글렌페쉬를 매입했다. 포블센은 온라인 유통 공룡 아소스(Asos)를 포함한 패션 제국을 경영하는 인물이다. 그는 전직 토지 관리인이자 현지 직원인 토머스 맥도넬의 강한 권고를 받아들여, 사유지의 삼림 지대를 회복시키고 생물 다양성을 복원하기 위해 이전 소유주가 착수했던 사슴 개체 수 감소에 더욱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글렌페쉬는 포블센과 그의 아내 앤이 소유한 열두 곳의 스코틀랜드 사유지 중 가장 큰 지역이다. 두 사람이 1996년부터 토지 취득과 ‘생태 복원(rewilding)’에 쓴 비용은 총 7000만 파운드로, 이들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광대한 규모의 부동산을 소유한 지주가 되었다. 생태 복원은 자연이 자유로운 통제권을 갖는다는 견해의 자연 보존 방식으로, 1990년 이후 널리 통용돼 왔다. 그러나 전통을 고수하는 많은 지주와 사냥터 관리인들은 그 단어와 단어 뒤에 있는 생각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생태 복원 논쟁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생태 복원은 ‘시골 사유지는 상류층 사람들이 사냥을 즐기는 무대’라는 개념이 시대에 뒤떨어졌음을 암시한다. 고지대는 부자들이 다른 곳에서 번 돈을 쓰러 오는 곳이었는데, 최근 수십 년간 한 번도 변변한 수익을 낸 적이 없던 사냥터들은 점점 더 독자 생존이 어려워지고 있다. 어느 베테랑 사냥터지기가 말해준 바에 따르면, 그 사업으로 실제 돈을 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글렌페쉬의 소유주인 앤과 안데르스 홀치 포블센 ©Tariq Mikkel Khan/AFP
2013년까지 맥도넬과 그의 팀은 글렌페쉬에서 8000마리의 사슴을 도태시켰고, 근방의 사슴 사냥 업체를 포함한 그의 적대자들은 이를 빌미로 도덕적 고지에 진을 쳤다. “자기들이 사슴을 쏘는 건 스포츠라면서 우리가 사슴을 쏘면 도살이라고 한단 말이죠.” 지난 9월 맥도넬을 찾아갔을 때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게다가 삼림이 회복되려면 수백 년은 걸릴 거라지 뭡니까.”

우리는 페쉬강이 내려다보이는 오솔길에 서 있었다. 길 양옆에 서 있는 어린 스코틀랜드 소나무의 녹색 침엽이 불그스름한 헤더에 대조되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소나무 사이로는 자줏빛 열매가 매달린 마가목이 자라고 있었고, 월귤나무 관목에는 봄이 되면 흰나방 애벌레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이파리가 달려 있었다. 페쉬강 저편에도 새로 자라는 나무들이 더 보였다. 나무들은 둑을 감싸며 비탈 위로 퍼져가는 중이었다. 맥도넬이 미소를 지었다. “보다시피, 우리 경쟁자들께서 틀렸던 거죠.”

지난 20여 년 동안, 남미에서 다뉴브 유역에 이르는 지역에서 정치가, 활동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억만장자들(이 억만장자들이 벌이는 핵심 사업은, 이를테면 포블센의 의류 사업처럼 환경 친화적이지 못한 경우가 잦다)이 맺은 임시 제휴를 통해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황폐화된 농경지와 방목지의 생태가 복원되어 왔다. 그들을 인도하는 철학, 즉 땅은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한다는 생각은 식량을 얻기 위해 토지를 효율적으로 개간하고 경작하고 비틀어 짜내야 한다는 종래의 지배적 관점을 뒤엎는다.

이 일의 실무자들 상당수가 억만장자이고, 그들이 자연에 되돌려준 풍경은 (서류상으로 누구의 소유건 간에) 우리의 귀한 자산이며, 식량을 토지에 의존하는 것은 깊이 뿌리내린 전통이기 때문에, 생태 복원은 논쟁을 야기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생태 복원은 지구의 건강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토지를 환경의 측면에서 보다 지속가능한 방식을 동원하여 먹거리를 생산하는 데 이용할 뿐 아니라 온실가스를 포획하고, 멸종 위기종을 구하며, 교통 체증과 손 세정제로부터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휴식을 얻는 데, 다시 말해 도시를 떠나 자연의 조화를 즐기는 데에도 이용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글렌페쉬의 재생이 바로 그러한 작업이다. 맥도넬과 그의 팀은 지난 10년간 페쉬강 유역과 이웃 강 트로미의 유역을 분할하고 있는 언덕을 따라 수만 그루의 소나무, 자작나무, 버드나무와 기타 토종 수목을 심었다. 이제 몇 년 뒤면 이 줄기들은 침식을 방어하는 방벽, 탄소 흡수대, 큰들꿩과 뇌조처럼 고지대에 특유한 새들의 서식 장소로 발전할 것이다. 새와 바람이 씨를 뿌려대고 있지만 밀집도가 1평방킬로미터당 40마리에서 1마리로 줄어든 사유지의 사슴들은 더는 어린 새싹을 모두 먹어치울 만큼 개체 수가 많지 않다. 식물의 수가 늘어나면 소나무담비, 붉은 다람쥐와 산토끼들에게 먹이가 공급된다. 맥도넬은 이런 산짐승들의 개체 수가 늘어나는 모습을 주시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솔잣새와 뿔박새 같은 멸종위기 조류의 개체 수도 증가했다.

이게 누구에게 이익일까? 포블센의 스코틀랜드 사업체는 현재 매년 300만 파운드의 손실을 입고 있지만, 2027년 즈음에는 고급스런 숙박 시설에 머물면서 절묘하게 익힌 사슴 고기를 즐기고 되살아난 풍경을 돌아다니는 데 돈을 지불할 고객들에 힘입어 이익을 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생태 복원 계획이 처음 공개됐을 때, 스코틀랜드의 토지 소유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비판하던 사람들은 — 스코틀랜드 시골 땅의 절반을 약 450명이 소유하고 있다 — 글렌페쉬가 부자들을 위한 자연 보호 구역이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지만, 이러한 반응은 일반 도보 여행자들이 무료로 글렌페쉬를 지날 수 있도록 허용되자 다소 누그러졌다.

만약 생태 복원이 부자의 도락(道樂)처럼 보인다면, 이는 복원의 경제적 타당성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생태 복원은 잘못 붙은 명칭이기도 한데, 파타고니아에서 수만 마리의 양을 제거하든, (크로아티아 벨레비트 산맥에 멸종 야생 소인 오록스 대신 사야게사 소를 집어넣은 예시에서 보듯) 멸종된 종을 대신하는 다른 생물종을 도입하든 간에 생태 복원은 그 이름이 암시하는 것보다 인간의 개입을 더 많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생태 복원이 제공하는 관광 사업도 제한적이다. 복원된 지역의 존재 의의를 훼손하지 않고서는 해당 지역에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다. 생태 복원가들은 경관을 복구하고 공공의 복리에 기여하는 쪽으로 투자의 방향을 돌림으로써 전통적인 경제 활동에 투입되던 돈을 가져오고 있다. 영국의 농업에 미치는 파장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토지가 행성 전체 차원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 관리돼야 한다는 생각은 가능한 최저의 비용을 들여 사람들의 배를 불리는 것이 존재 이유인 농부들 사이에서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농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대두되는 것이 바로 이 생각이다.

 

농장을 다시 야생의 땅으로


영국 인구에서 농업 종사자의 비율은 1.5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전 국토의 71퍼센트는 농지로 분류되고, 농부들이 소유한 토지의 규모는 그들에게 대중의 상상력을 지배하는 힘을 부여해 왔으며, 이러한 힘은 꽤 많은 암탉과 유머러스한 새끼 돼지 등을 그려내는 동화책을 통해 강화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이러한 영국의 이미지, 즉 나근나근하고 꽃이 만발한 녹색의 땅, 도시 거주자들이 여가를 누릴 때마다 가벼운 걸음으로 향하는 에덴동산이라는 이미지는 국민들이 자국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끼쳤다.

역경에서 회복한 기억은 당연하게도 집약적 농업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은 해상 봉쇄를 겪었고, 농부들은 관목과 목초지를 파종 가능한 밭으로 바꿔 경작지를 두 배로 늘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평화의 시기가 오고 나서도 자급자족을 이루자는 애국적 운동은 계속됐다. 그러는 동안 인구는 급증했고 농부들은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은 땅을 개간했다. 1946년에서 1963년 사이, 매년 평균 3000마일에 달하는 산울타리가 제거되었다.

1973년 영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한 뒤 농부들은 식량 생산에 대한 보상으로 보조금을 받았고, 이로 인해 쓸모없는 잉여 농산물이 불어나자 농지를 유지만 해도 보조금을 받았다. 2017년에는 약 2억 7300만 파운드의 보조금이 이런 식으로 배분됐다. 수십 년간 농부들은 영국이 식량 생산에서 자급자족을 이뤄야 할 지속적인 필요가 있다는 점을 역설하며 보조금을 정당화했다. 비록 많은 경우 이 보조금이 유럽연합의 보조금 덕에 겨우 지불 가능했던 것이지만 말이다. 이 시기에는 집약적 방식을 통해 수확량을 더 높이 끌어올리려는 쉼 없는 욕망이 환경에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점에 대해 최소한의 자각만 있었을 뿐이다. 이 널리 알려진 지혜에 의문을 제기한 소수의 농부들은 동료들에게 축출당하는 사태를 맞았다.

2000년, 찰스 버렐은 잉글랜드 남부 넵(Knepp)에 위치한 1400헥타르의 사유지에서 10년 하고도 그 절반 동안 일궈온 집약적 농업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선언하고 난 뒤 깨달음을 얻었다. 버렐은 젖소에서 더 많은 우유를 얻어 내고 기름진 서식스 지역의 흙에서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자동화된 사양 방식, 최신식 콤바인, 다량의 비료와 살충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버렐이 농업에 종사했던 15년 중 13년 동안은 농장에 들어간 돈이 수입보다 더 많았고, 그는 농지에 150만 파운드를 초과로 끌어다 썼다. 2000년 2월, 버렐은 고용인들에게 농장 일을 접겠다고 말했다.

“농장 일꾼들은 …… 부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사무실을 떠났다.” 버렐의 부인 이사벨라 트리는 그들 부부의 경험을 쓴 책 《와일딩(Wilding)》에서 당시를 그렇게 회상했다. 하지만 농장 청산이 아무리 충격적이었다 해도, 농장을 ‘생물 다양성이 존재하는 야생의 땅’으로 전환하기 위해 공적 자금을 얻어내겠다는 버렐의 결정, 그리고 관광과 유기농 육류로 수익을 내겠다는 그의 목표는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처럼 보였다.
웨스트 서식스의 넵에서 사육하는 롱혼 소 ©Picasa/PR
2001년, 버렐은 사유지 내의 작은 구역에서 사업에 착수했고, 자금 조달이 이뤄지자 점차적으로 면적을 확장해갔다. 그는 땅을 경작하고 화학 물질을 살포하는 일을 중단했다. 내부 울타리를 제거해 야생 엑스무어 망아지와 탐워스 돼지가 구역 안으로 들어와 풀을 뜯어먹고 먼 거리를 헤집고 다니도록 했다. 그러자 그것들이 뒤엎은 땅이 다른 동물들을 위한 서식지로 바뀌었다. 쇠똥구리는 구충제와 기생충 약을 먹이지 않은 롱혼 소가 남긴 맛있는 유기농 쇠똥에 뛰어들었고, 들쥐는 옛 체제하에서라면 청결을 도모하기 위해 베어 넘겨졌을 죽은 떡갈나무에 식민지를 개척했다. 2002년 여름, 지난 한 세대 동안 그 정도의 숫자로는 눈에 띈 적 없었던 벌노랑이와 큰솔나물 같은 멋진 이름의 야생화들이 꽃으로 몰려든 수많은 곤충들과 더불어 올올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 세상에 드러났다. 트리의 책에 따르면 “우리가 그리워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광경”이었다.

넵에서 이루어진 것보다 훨씬 야심한 생태 복원 계획이 현재 유럽 전역에서 진행 중이다. 그러나 북부 포르투갈의 사실상 황폐화된 지역인 코아 벨리에서 복원 작업을 진행 중인 다국적 환경 보호 활동가들이, 혹은 인구 1000명의 스웨덴 라플란드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난관이 무엇이건 간에, 인적이 드문 그 지역엔 지역 주민이 보이는 집단적 적개심 같은 것은 없다. 인구가 빽빽이 들어찬 서식스 윌드에서 진행되는 생태 복원은 훨씬 더 뻑뻑한 일이었다.

2003년 8월, 버렐은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지역 농부들의 마음을 바꿀 요량으로 그들을 넵에 초대했다. 그가 들판과 울타리를 관목과 습지대에게 양도하자는 비전을 제시하자 말을 듣던 사람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웃들(과 이들의 가족 구성원들을 포함한 사람들)은 단순히 프로젝트가 자기들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트리는 책에 다음과 같이 썼다. “그건 훨씬 더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문제였다. …… 그것은 자부심 넘치는 농부들의 노력에 대한 모욕이자, 토지를 부도덕하게 낭비하는 것이었으며, 영국적인 것에 대한 공격이었다.”

2008년에 이르자 넵은 래그워트 같은 잡초로 뒤덮이게 됐다. 이 잡초의 선명한 노란색 꽃은 꽃가루 매개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가축이 많은 양을 먹게 될 경우에는 죽을 수도 있다. 어떤 삐딱한 이는 〈웨스트 서식스 컨트리 타임즈〉에 보낸 편지에서 넵을 비판하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시를 지어냈다. “래그워트라는 수치, 역병처럼 퍼지누나. 누구 탓이려나?”

지난 가을 폭우가 그친 뒤 넵을 방문했을 때, 예전에 경작지였던 곳은 어린 나무, 부풀어 오르는 산울타리, 개망초 줄기가 흠뻑 젖은 채 뒤죽박죽 펼쳐져 있는 곳으로 변해 있었고, 이런 식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통해 넵의 탄소 포집 수용량은 크게 증가해 왔다. 2011년, 버렐은 아두르강의 제방에서 자기 사유지를 지나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무너뜨렸다. 폭우가 내리고 나서도 무해하게 범람하는, 일종의 환경 적응형 벌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버렐이 조성한 ‘홍수 벌판’과 그의 땅을 종횡으로 누비는 사람들이 만드는 길은 정부가 ‘공공 재화’라 정의하는 것을 구성한다. 물질적 이익 없이 사회에 제공되는 서비스 말이다. 이는 넵의 생태 복원에 반대하는 지역 여론을 완화시키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야생 관광을 통해 넵은 성공적인 사업 모델로 탈바꿈했고, 농장이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게 되었다. 봄철에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는 사람들은 탁 트인 야외에서 장작으로 물을 데운 스웨덴식 히키 욕조에 몸을 푹 담그고 난 뒤, 나무 위에 지은 고급스러운 오두막에서 느긋이 뒹굴다가 나이팅게일이 제 짝에게 부르는 세레나데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이들은 넵에서 구입한 유기농 갈빗살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 탬워스를 자유롭게 달리던 기억을 되살릴 것이다. 트리의 책 《와일딩》이 어찌나 잘 팔렸는지 저자는 최근 BBC 라디오 프로그램 〈무인도 디스크(Desert Island Discs)〉에 출연했는데, 이는 이 책이 조만간 국보급 지위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징조다.

요즘 버렐은 전국 각지의 농부들로부터 그의 방식에 대해 질문을 받고 있다. 하지만 넵은 따라하기 쉬운 사례가 아니다. 넵의 성공은 부분적으로는 그 장소가 갖고 있는 희소성과 귀족적인 매력에 기인한다. 어쨌거나 버렐은 낡은 성에 살고 있는 준남작이니 말이다. 그와 상담하는 농부들이 반드시 생태 복원 쪽으로 마음을 바꾸는 것도 아니다. 버렐 본인의 말을 들어보자. “이 사람들이 생태 복원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죠. 하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다 보니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겁니다.”

현재 야생화 재배와 홍수 위험 완화 등의 공공 재화를 공급하는 농부들은 농지 유지를 위해 받는 유럽연합 보조금에 더하여 유럽연합 환경 보조금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수령 비율은 들쑥날쑥하다. 2014년에서 2017년 사이 환경 관련 지출은 4억 8900만 파운드에서 3억 9900만 파운드로 감소했는데, 이는 농부들이 정부가 과도하게 규정을 따지며 일을 처리한다고 지적하는 상황을 반영한다.

잔인한 사실은 정부 정책이 지금보다 더 규정을 따질 예정이라는 점이다. 유럽연합 탈퇴로 인해 영국 정부는 자국 농업을 몇 년 동안 정체 상태로 유지시켜 줬던, 또한 수많은 사람이 생계를 의존해 왔던 보조금 체계를 폐기하고 있다. 현재 의회에 상정된 농업 법안에 따르면 보조금은 공공 재화에만 전용될 것이다. 만약 농부가 그러한 공공 재화를 공급하지 않을 경우에는 본인의 생산물 판매로만 먹고 살아야 한다. 영국의 대형 농업 회사에게는 그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현재 파산을 막아주는 유일한 수단이 연간 보조금인 소규모 가족 경영 사업자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근심 걱정 가득한 농부들이 버렐의 집 문 앞에 줄을 서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면 넵에는 영국 농업의 실추된 이름을 회복시킬 비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더 솔직한 농부들은 자신들의 대중적 지위가 비참하게 추락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누군가 내게 한탄했듯이, 국가의 식량 창고를 채워 넣는 헌신적인 이들이자 지역 전통의 관리자였던 농부들은 날이 갈수록 ‘토지를 약탈하면서 공적 자금까지 편취하는’ 사람들로 비쳐지는 중이다.

 

농업에 들이닥칠 변화


집약적 경작 가능 농업은 생산량을 끌어올리고 병충해를 퇴치하도록 설계된 방식이다. 비료,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를 많이 사용할수록 수확도 늘어난다. 화학 물질도 사용하지 않았고 잡초도 들끓던 시절인 1940년대에, 버렐의 증조할아버지는 헥타르당 2톤의 밀만 수확해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오늘날 고수확 종자를 사용하는 농부들은 헥타르당 10톤의 밀 수확을 기대하곤 하는데, 보통은 살충제와 질산암모늄 비료를 사용하고, 농부들 사이에서 비호지킨 림프종을 일으키는 제품으로 알려져 있는 제초제 ‘라운드업’도 드문드문 사용한다. 제품들의 발암성을 모른 척할 경우, 제대로 화학 물질을 쓰고 날씨도 맞아 떨어지면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2015년 노섬벌랜드의 한 농부는 헥타르 당 16.52톤을 수확했다고 발표했는데,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 올랐다.

수확량을 증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면서 화학 물질은 1만 7000여 명에 달하는 영국 농부의 상당수를 충성스런 고객으로 확보했지만, 이것이 야기하는 장기적 환경 피해에 대한 인식은 점점 커지고 있다. 화학 물질을 다년간 반복적으로 사용할 경우, 뿌리에 물과 영양을 공급하는 작은 균근균뿐 아니라 흙에 공기를 통하게 하고 배수 능력을 증진시키는 지렁이까지 죽게 된다.

이러한 화학 물질의 남용은 많은 동물에게 먹이와 거처를 제공해 주는 산울타리와 관목을 제거하는 광기와 맞물려 야생 생태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혔다. 1970년 이후 영국에서는 40퍼센트 이상의 생물종이 감소했고, 야생 동물의 7분의 1이 멸종 위기에 직면했다. 이는 전 세계 평균보다 더 심각한 수치다.

더군다나 농업은 기후 변화에도 한 몫을 거든다. 영국의 농업은 국내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10퍼센트에 책임이 있다. 주로 소와 양에서 나오는 메탄, 비료에서 생성되는 아산화질소, 토양 속 탄소가 풍부한 유기물이 경작 과정에서 산화될 때 땅에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 등이다.
하트퍼드셔의 웨스톤 파크 팜에서 이뤄지고 있는 양 방목 ©David Levene/The Guardian
영국 정부에 농업 정책을 조언하는 옥스퍼드 대학 경제학자 디터 헬름에게 지도를 받은 주류 정치인들은 영국 농업의 자애로운 이미지에 분명한 회의를 품게 되었다. 지난해 헬름은 “영국 농업 전체에 닥친 재앙의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어떤 경제 활동도 이렇게 왜곡된 인센티브 제도를 갖추거나 실제 드는 비용에 비해 이토록 적은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고 덧붙인 바 있다.

심지어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전원의 풍요로움을 상징한다며 찬양한 목양마저도 이제는 환경 재앙으로 치부된다. 작가이자 활동가인 조지 몽비오(George Monbiot) 같은 이는 ‘양떼로 만신창이가 된’ 영국의 언덕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언덕에 다시 나무를 심고 반추동물을 모두 치워버리는 것뿐이라 주장한다.

새로이 회의주의로 개종한 이들 중에는 테레사 메이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현재 하원에서 검토 중인 농업 법안의 초안을 작성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던 마이클 고브도 있다. 심지어 전국농민연합조차 204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고 회원들에게 약속하는 실정이다. 비록 그 목표를 실현하려면 아직 개발되지 않은 탄소 포집 기술을 활용해야 하지만 말이다.

농업 법안은 고브가 만든 또 다른 자식인 환경 법안 옆에 편안히 누워 있는데, 지난 1월 의회에서 첫 번째 독회가 이루어진 이 환경 법안은 이른바 ‘오염자 비용 부담’ 원칙을 고이 간직하게 될 것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오염을 야기하는 산업은 원천적으로 불이익을 얻는다. 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 농부들은 더 이상은 생수 회사와 수산업 분야가 청구서를 대신 지불해 주리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화학 물질 사용은 사용 시 배출되는 온실가스와 그로 인해 생긴 오염물을 제거하는 비용에 의거해 가격이 매겨질 것이다. 다만 비용의 범위를 어디까지 잡아야 하는가라는 곤란한 질문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농업에 들이닥칠 변화는 간단한 경제 용어로 요약이 가능하다. 집약적 농업은 풍작, 즉 연배당에 우선순위를 두는 반면 새로운 접근법은 초기 자본, 다시 말해 토지 보존에 방점을 찍는다. 이 새로운 투자 우선순위가 영국 농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일별하고자 한다면 이미 다양한 수준에서 이러한 접근법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 진보주의자들을 찾아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환경 친화적 농업 혁신


지난 9월의 어느 오후, 존과 폴 체리 형제가 본인들 소유의 하트퍼드셔 농장에서 나를 찾아왔다. 손상된 토양을 어떻게 살려 냈는지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두 형제는 매년 가을마다 생기 없는 점토판 같은 흙을 고생스레 뒤집어엎곤 했다. 파종을 시작하기 전에 트랙터용 써레로 흙을 분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내켜하지 않는 밀을 구슬려 수확하기 위해 땅에다 화학 물질을 흠뻑 부어대곤 했다. “마치 자연과 전투를 치르는 것 같았어요.” 폴이 말했다.

1990년대에 미국 중서부의 혁신가들에 이어 소수의 영국 농부들이 유기농으로 방향을 돌리거나, 파종상을 만들기 위해 토양을 경작하는 일을 중단했다. 이들은 이를 ‘불경작 농법’이라 일컬었다. 2010년, 체리 형제가 이들을 따라했다. 형제는 토양의 부식을 줄이고 겨울 동안 탄소를 가두어 두기 위해 클로버와 같은 지피 작물을 심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학 물질의 사용을 줄였다. “그러고 나니까 자연이 우리에게 해주는 게 확 다가오는 거예요.” 존이 그렇게 말하며 내 손에 곱게 부서진 흙을 경건하게 붓고는 잠시 뜸을 들인 뒤 흙 속에 있던 ‘사랑스런’ 지렁이를 가리켰다. “이 흙은 강우림의 축소판입니다.” 그가 계속 말했다. “지구 인구보다 더 많은 생명체가 이 흙 속에 들어 있어요. 서로의 먹이가 되고 식물의 뿌리와 상호 작용하는 박테리아와 원생동물이 가득하죠.”

체리 형제에게 토양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나는 펜스를 향해 북쪽으로 떠났다. 펜스는 잉글랜드 동쪽에 위치한 4만 헥타르의 저지대 해안 평야로, 전체 면적 중 4퍼센트를 차지하는 농지에서 전국 농업 생산량의 7퍼센트가 수확된다. 나무가 거의 없는 평평한 풍경이 펼쳐지는 이 평야의 상당 부분은 18세기와 19세기에 바다를 매립하여 개간되었으며, 현재는 제방, 물길, 배수구와 잔물결로 이루어진 거대한 시스템에 보호받고 있다. 그리고 톰 클라크라는 농부의 고향이기도 하다.
윌트셔주 솔즈베리 근방의 보리밭에서 작동 중인 콤바인 ©Scott Barbour/Getty
클라크는 일리 대성당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어두운 토탄질 땅에 서서 이웃의 벌판을 가리켰다. 쟁기질을 당한 벌판은 두 집의 사유 재산을 가르고 있는 제방까지 벌거벗겨져 있었다. 반면 클라크의 땅에서 특징적인 것은 10미터 간격을 두고 늘어선 먹이용 무와 야생화였는데, 이는 벌들에게는 꽃가루를 공급하고, 집약적 농업에 식량원을 탈취당한 회색 자고새와 멧새를 위해서는 씨를 뿌린다는 두 가지 목적을 결합한 것이다. 클라크가 어린아이였을 때 그의 아버지는 똑같은 땅에 집약적 농업 방식을 적용해 농사를 지었다. 당시 눈에 띄는 야생 동물이라고는 “토끼 수천 마리”뿐이었다.

나는 엘리에서 차를 몰고 남동쪽으로 가서 서포크의 한 농장에 도착했다. 그 농장에서 브라이언과 패트릭 바커는 자신들이 ‘오염자 비용 부담’ 법안의 도입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보여 줬다. 두 사촌 형제가 소유한 밭 중 한 곳이 두 부분으로 길쭉하게 나뉘어 있었는데, 첫 번째 밭은 수확이 끝나 휑했고 두 번째 밭에는 파켈리아, 호밀, 무가 심어져 있었다. 겨울 동안 땅에 남는 이 ‘포착 작물’은 작년에 수확한 작물의 뿌리에서 남은 칼륨과 질산염을 포획하여 인근 하천의 오염을 막는다. 시험 기간이 끝나면 두 땅뙈기에서 흘러나온 지표수를 비교해 포착 식물의 효과를 측정할 예정이다. 정부의 새로운 보조금 제도하에서 환경 보존주의와 경제는 (이론상으로는) 완벽하게 일치할 것이다.

바커 가족은 가축들을 경작지로 데려와 천연 비료를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혼합’ 농법이라는 옛 방식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 농법을 통해 농부들은 작물을 기르고 가축을 길렀지만 집약적 방식이 등장하면서 인기를 잃었었다. 브라이언은 콤바인을 조작하면서 밭을 도는 동안 이사벨라 트리의 책 《와일딩》을 오디오북으로 두 번이나 들었다고 내게 말했다. 책은 흥미로웠지만 “세상 모든 곳이 넵 같았다면 어떤 야생 동물은 많았겠지만 또 어떤 야생동물은 별로 많지 않았을 겁니다.”

이 기사를 취재하며 내가 얘기를 나눈 영국 농부들은 하나같이 버렐이 넵에서 이룬 일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설사 그 의견이 버렐의 사업이 생색내기용이고 비생산적이라는 혹평이라 해도 그렇다. 환경 친화적 복원 사업에는 여전히 만만찮은 수의 반대파가 있고, 여기에는 옛 방식의 집약적 농법을 고수하는 농부와 종자를 개량하고 화학 물질을 만드는 농업 관련 사업가뿐 아니라 일부 식물학자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제아무리 많은 수의 벌과 멧새가 있다 해도 이를 능가하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전 세계적인 식량 부족 사태가 닥쳐오고 있다는 진실 말이다.

 

생태 복원의 불편한 진실


2009년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세계 인구가 2050년까지 현재보다 34퍼센트 증가하여 91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구는 이에 덧붙여 “더욱 커지고 더욱 도시화되며 더욱 부유해진 이 인구 집단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식량 생산이 …… 70퍼센트 증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 상태의 사업 방식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유엔의 예측에 비추어 볼 때 농지를 공공 재화로 전환할 경우 엄청난 생산량 부족이 초래될 것이며, 해결책은 더 많은 식량을 재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국에서 가장 큰 농업 기업 몇 곳이 자금을 지원하는 연구 기관인 국립농업식물연구소(Niab)의 기술이사 빌 클라크에게 이는 수확량 증가를 의미한다. 클라크가 보기에 토양이 생산적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건강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느냐라는 근본적인 선택에서 주의를 돌리는 짓이다. “수확량이 오르지 않으면,” 캠브리지에 있는 Niab 본부에서 클라크가 내게 말했다. “북아프리카의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밀을 못 구하는 건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니게 됩니다. 밀 자체가 아예 없어질 테니까요.” 북아프리카는 유럽 농부들의 주요 수출 시장이다.

클라크에게 유감스러운 사실은, 영국과 유럽의 나머지 지역이 세계에 더 많은 식량을 수출하기 위해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던 바로 그 시점에, 클라크의 말을 빌자면 “기술이 무작정 나쁘다고 하는 비합리적 독단” 덕택에 생산량이 정체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클라크는 과학의 힘이 인간을 향상시킨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가 보기에 우리는 기술의 진보에 너무 심드렁해진 나머지 과학이 수많은 사람을 기아에서 구해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는 1950년대에 고도로 비옥한 종자인 일본 밀이 유럽 종자와 교배되었을 때 일어난 혁명에 대해 존경심을 담아 말했다. “크기는 반으로 줄고 수확량은 두 배가 되었죠.” 예약 없이 방문 가능한 Niab의 생육상에서는 최신의 기적을 볼 수 있다. 마름병이라 알려진 뿌리 질병에 면역력을 부여하는 귀리 유전자를 사용하여 개량한 밀 품종이 그것이다. 이 새로운 변종은 질병에 걸릴 염려 없이 같은 땅에 몇 년씩 연속하여 파종될 수 있다. 마름병을 피하는 방법으로 전해지는 전통적인 관행은 서로 다른 밀 종자를 번갈아 심는 것인데, 이는 자연스럽게 밀 생산 총량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Niab의 수확량 증대 기법은 판로가 없다. 유전자조작(GM) 작물에 대한 유럽연합의 적개심 때문이다. 이 적개심은 네오니코티노이드 살충제를 포함해 점점 그 수가 증가하고 있는 화학 약품에 대한 적대감으로 확대되고 있다. 유럽연합의 네오니코티노이드 사용 금지 조치로 인해 유채씨 수확량은 폭락했다. “만약 그 환경 운동가들이 요구하는 대로 농사 방정식에서 살진균제를 뺀다면,” 클라크가 말했다. “밀 수확량은 20~30퍼센트까지 감소할 겁니다.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게 그걸까요?”
웨스톤 파크 팜의 주인 존 체리가 자기 밭의 토양을 조사하며 흙냄새를 맡고 있다. ©David Levene/The Guardian
특정 분야의 농부들은 새로운 농업 법안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아직은 규모의 경제와 화학 약품에 의해 파괴되지 않은, 자연적으로 비옥한 토양이 결합하는 곳에서는 집약적 농업이 계속 높은 수익을 낸다.

마이클 슬라이의 집안은 잉글랜드 내전 이래 피터버러 근방의 작은 마을 소니에서 쭉 농사를 지어 왔다. 그들은 토지를 매입하고 매매하면서 슬라이가 설립한 시설인 ‘파크 팜(Park Farm)’을 현재의 규모인 1600헥타르까지 키웠다. 슬라이가 추수 감사제에 주관하는 연례 봉사인 6월 주말의 ‘농장 개방’ 행사에는 수천 명이 파크 팜을 방문한다. 그는 또한 지역 역사 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둘 중 무엇을 하든 그가 진정 즐기는 것은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대규모 상업 경작 농부’라는 자신의 지위다. 벌과 새를 위한 공간을 따로 챙겨준 것을 자랑스러워하긴 해도, 슬라이의 임무는 환경 서비스가 아니다. 식량 재배다.

슬라이의 직업적 비전을 정의하는 것은 지평선까지 뻗어 있는 거대한 사탕무 밭, 각각의 가치가 “수만 파운드”씩 나가는 최신식 트랙터와 파종기와 콤바인, 위타빅스와 미니 체더스 같은 전국적 브랜드와 맺은 최고급 밀 공급 계약이다. 그가 보기에 야생 생태 같은 건 “몇 퍼센트의 일부 부유층”에만 해당되는 문제다. 내가 방문했을 때 곡물로 가득 차 있던 2000톤 규모의 번쩍거리는 신축 저장 창고는 거대 시장에 바치는 찬양이다.

슬라이는 지피 작물 사용이나 불경작 농작법처럼 생산량이 줄어들 수 있고 상업성도 입증되지 않은 기술에 집중하기를 거부한다. 토양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벌레들에도 불구하고 체리 형제의 영농 방식은 손실을 보는 중이며, 보조금 개혁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 상태로 머물러 있을 공산이 크다. 슬라이가 우려하는 것은 영국 정부가 유럽연합을 일단 떠나고 나면 네오니코티노이드나 유전자 조작을 이용한 수입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고, 그로 인해 자국 농부들의 힘이 빠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영국은 이미 식량의 절반을 수입하고 있다. 네오니코티노이드 살충제 금지 조치 이후 유채씨 생산량이 폭락하자 영국은 똑같이 네오니코티노이드 살충제를 사용해 생산한 캐나다산 유채씨 기름을 수입함으로써 부족분을 메웠다.

식량 수입 증가는 슬라이의 근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는 정부가 공공 재화 확충이라는, 사람들 배를 채우는 데는 쓸모가 없으면서도 한창 유행 중인 ‘포교 행위’에 완전히 굴복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본다. 영국이 현재 자국 농업 수요의 30퍼센트를 공급받고 있는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과정을 밟는 현 상황에서, 슬라이는 식품 안전에 대한 관심이 인색하다는 사실에, 만약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닥칠 경우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자랑스러운, 하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이상에 대한 관심이 빈약하다는 점에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만약 영국이 특정 농산물을 계속 생산하고 싶다면,” 그가 말했다. “지금 제안되는 시스템은 그 목표와 절대 양립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조금 투입해서 조금 거두는 농부인지, 많이 투입해서 많이 거두는 농부인지 자문해봐야 해요. 중간은 없습니다.”

 

농업 혁신의 치명적 아이러니


유엔이 예견하고 있는 식량 부족을 완화하는 확실한 방법은 덜 버리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풍족하게 지내 온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매년 생산되는 식량의 3분의 1인 13억 톤 가량이 폐기된다. 1960년대에는 30퍼센트 이상이던, 평균적인 영국 가정의 예산에서 음식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10퍼센트 아래까지 떨어졌다. (영국은 싱가포르와 미국 다음으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장바구니’ 물가가 싸다.) 사람들이 상품을 무척 가벼운 마음으로 사고 있으니, 상품을 생산하느라 투입된 자연 자원과 인간의 독창성에 대한 고려 없이 다량으로 버려지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슈퍼마켓을 돌아다니는 동료 쇼핑객 사이에서 눈에 띄는 동요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면, 이는 식량 부족에 대한 전망이 현재의 풍요와 너무도 동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이사벨라 트리는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해야 한다는 “소매업자, 농업 관련 사업가, 농민 조합”의 요구와 “보조금과 과잉 생산으로 인해 상품 가격이 하락하면서 …… 폐업하고만 우리 같은 농부들의 경험”을 대조한다. 좌우 어느 쪽 정부도 식품 절약을 독려할 수 있는 부가가치세 부과 같은 조치를 선뜻 고려하지 않고 있다.

개량된 유전자와 곡물 성장 촉진제의 사용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는 동안 과학 기술은 식량 생산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열어젖히고 있고, 이는 농장에서 농사일을 제거하게 될 것이다. 로봇과 드론은 인간이 농지에 있어야 할 이유를 줄이고 있으며, 그러는 한편 LED 조명과 유전자 편집, 특정 효소나 단백질을 처리하는 기법인 메타제닉스를 이용해 온실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수직농법은 식량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고 있다. 싱크탱크인 ‘리싱크X’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5년 내에 생물 반응기에서 키워낸 동물 세포로 만드는 세포 기반 육류가 미국의 거대 소고기 산업을 파산시키는 동시에 사료용 콩과 옥수수의 재배 필요성을 없애버릴 것이라고 한다. 보고서는 2035년이 되면 미 대륙 면적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이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게 풀려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랭커셔주 버스코우에 버려진 작물들 ©EnVogue_Photo/Alamy
비록 브라질과 파라과이 같은 남미 국가들이 부분적으로는 열대 우림을 파괴함으로써 2018년에서 2027년 사이 세계 농업 재고에 1100만 헥타르의 토지를 추가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선진국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공간은 이미 줄어들고 있으며, 미네소타 대학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현재 농지로 전환된 토지보다 농업이 중단되는 토지가 더 많다. 이미 의회가 청취한 바, 많은 농부들이 은퇴할 때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런던에서 살던 어린 시절, 나는 캐나다 대초원 지대에서 농가의 딸로 자란 어머니가 해 주시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에 라운드업 같은 제초제는 없었지만, 나는 어머니와 당신의 형제자매들이 겨자 밭에서 잡초를 뽑기 위해 짝지어 허리를 굽힐 때 그 일에 감사했으리라 확신한다. 뼛속까지 도시인인 내 자녀들에게 할머니의 성장담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영국인 대부분의 상상력에서조차도 농업은 후퇴하는 중이다.

많은 농부들이 미래가 혼란스럽고 걱정스럽다고 고백하는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보조금에 적용되는 새로운 조치는 7년에 걸친 단계적 도입 기간을 갖게 되는데, 이 기간이 끝날 때까지 적응할 수 없는 일부 영세 농가는 파산할 것이다.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는 거대 집약적 농가가 영세 농민의 땅을 삼키는 것을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또 어떤 사람들은 공공 재화가 세워놓은 굴렁쇠를 요리조리 통과하기보다는 자신들의 토지를 겨울잠쥐와 황금방울새가 그리 선호하지 않을 사업들, 이를테면 고카트 경주나 모터바이크 스크램블링 업체, 그도 아니면 택배 물류업체에 넘길 수도 있다.

내가 반복적으로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감정은 대략 다음과 같은 흐름을 탄다. 농부들은 사회가 그들에게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돈 계산(즉 보조금, 또는 시장 원리)은 정확해야 한다.

설사 리싱크X의 보고서에 들어 있는 주장이 과도하게 부풀려진 것이라 해도, 그 보고서에서 개괄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변화는 가능할뿐더러 바람직하기도 하다. 지난 가을, 나는 물류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런던 킹스 크로스의 한 레스토랑에서 토니 주피터를 만났다. 주피터는 자연 환경 문제에 대한 정부 수석 고문이자 환경 단체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의 전 대표로, 늦서리보다 LED 전구 비용이 농부들에게 더 중요해지고 런던 사람들이 생태 복원된 그린벨트에서 스라소니, 비버와 더불어 주말을 보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미래를 내게 그려 보여 주었다.

영국의 농업 공동체는 공적 영향력이 거의 다 기울어가는 소수 집단으로, 먹고살기 위해 진흙에서 구르는 사람들을 과학 기술이 점점 더 적게 필요로 함에 따라 지금보다 더 쪼그라들 운명이다. 농업에서 일어나는 혁명의 “치명적인 아이러니”는, 한때 영국산 황금빛 밀을 담은 마대자루가 쌓이고 또 쌓였던 건물에 앉아 있는 주피터에 따르면, “살아남아 그 혁명을 볼 농부들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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