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서 발견된 쇠똥구리 옥시테르논 콘스피실라툼 ©Alamy
하지만 매년 수천 종의 생물이 새로 발견되는 반면에 수천 종 이상의 생물 종이 ‘여섯 번째 멸종’이라 알려진 환경 재앙에 휩쓸려 소멸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재앙은 모두 다섯 번 일어났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최근의 재앙은 백악기 말기의 멸종이다. 6600만 년 전에 일어난 이 사건으로 인해 공룡이 멸종됐다. 최악의 파괴적인 멸종은 백악기 대멸종보다 1억 9000만 년 전인 페름기에 일어났으며, 이 사건은 공룡이 출현할 수 있는 길을 닦아 주었다.
우리가 정말로 여섯 번째 멸종의 한복판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현재 생물 종들이 사라지고 있는 속도와, 인간의 개입이 없을 때 그 종들이 사라지는 속도 둘 다를 설정해야 했다. 후자를 ‘배경 멸종률’이라고 한다. 2015년, 미국과 멕시코 과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은 현재 알려진 모든 척추동물의 통계를 활용한 결과 동물 종은 인간의 개입으로 “최대 100배까지” 멸종이 빨리 진행되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공룡을 앗아간 것과 똑같은 멸종 속도다.
하지만 저명한 열대 곤충학자 테리 어윈(Terry Erwin)이 내게 이 여섯 번째 멸종에 대한 추정은 “생물학적 다양성의 아주 작은 부분에 편향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척추동물, 즉 괄태충, 게, 벌레, 달팽이, 거미, 문어, 그리고 무엇보다 동물 종의 상당수를 구성하고 있는 곤충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그저 막연히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환경 보호론자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는 있죠. 곤충에 대한 데이터는 전혀 없이 말이에요.” 어윈이 말했다.
현재 세계의 생물학적 다양성이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생태학자들이 무척추동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껴안고 싶은 귀여운 동물”에 쓰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껴안고 싶은 귀여운 동물’은 척추동물을 가리키는 어윈의 표현이다. 고릴라와 혹등고래의 경이로움에 대해서만 몇 년 내내 듣다 보면 견실한 곤충 연구자들은 아무래도 좀 서운해질 것이다. 어쨌거나, 곤충들은 우리보다 정말, 정말 많다.
우리는 곤충의 세계에 산다.
우리는 무척추동물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동물 종 중 척추가 있는 것은 5퍼센트도 안 된다. 약 70퍼센트가 곤충이다. 포유류는 전체 동물 200마리당 1마리에도 못 미치고, 그 안에서도 설치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종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포유류는 딱정벌레로 가득 찬 세상에 사는 한 줌의 쥐 떼에 불과하다. 그 딱정벌레의 대다수는 열대 지역에서 자생하는 초식 곤충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지구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의 총체를 정말로 이해하고 싶다면, 또 그것들이 사라져가는 속도를 진짜로 알고 싶다면, 얼마나 많은 종류의 딱정벌레가 온갖 종류의 열대 나무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하지만 생물의 종수를 세기 전에 우선 그것들에 이름을 붙여 줘야 한다. 여기서 바로 분류학자들이 등장한다. 종이라는 개념은 정의하기 어렵기로 생물학자들에게 악명이 높다. 특히나 유기체들은 대체로 연속체상에 존재하므로, 유기체들이 연속체 위에서 서로 가까이 붙어 있을수록 그것들을 구별하기도 점점 힘들어진다. 종에 대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정의는 진화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가 내린 것이다. 그는 종을 자기들끼리는 번식하지만 다른 종과는 번식하지 않는, 적어도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는 벌어지지 않는 동물 집단으로 정의했다. 만약 얼룩말과 당나귀를 억지로 교배시켜 ‘얼룩당나귀’를 만든다면 이는 잡종을 창조한 것이겠지만 얼룩말과 당나귀가 서로 다른 종이라는 사실을 논박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자연에서는 보통 그와 같은 교배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분류학자들은 단지 개별 종의 이름만 짓는 게 아니라 종들이 서로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몇 세기 동안 과학자들은 지구상의 생물들을 일관성 있는 체계에 끼워 맞추려고 노력해 왔지만, 결과가 그렇게 깔끔하지는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생명의 형태를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 특히 움직이는 방식에 근거해 분류하고자 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정주형 동물, 즉 일정 장소에 자리를 잡고 사는 동물이었다. 그는 레스보스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말미잘과 해면동물이 동물인지, 식물인지, 아니면 식물 같은 동물인지 심사숙고했던 듯하다.
분류학의 혁명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일어났다. 그 혁명은 사실상 한 사람, 생물학의 아이작 뉴턴으로 칭송받는 카를 린네(Carl Linnaeus)의 업적이었다. 린네는 그런 지위에 오를 만한 괴짜였으며, 식물의 성적 특성을 달달 외우는 천부적인 재주를 가진 영민하고, 완고하며, 과시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스웨덴 북부 라플란드로 한 번 중요한 원정을 떠난 적이 있긴 했지만, 보통은 다른 이들의 발견에 의존했다. 그에게 영감을 받은 열일곱 명의 ‘사도’들이 린네의 체계를 완성할 수 있는 표본을 찾아 전 세계를 탐험했던 것이다. 그중 일곱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사도들이 모아온 표본에 근거하여, 린네는 7700종의 식물과 4400종의 동물을 명명했다.
후대의 생물학자들은 린네의 분류 체계에서 흠잡을 만한 부분을 여럿 발견했다. 예를 들어 그는 고슴도치와 박쥐를 ‘흉포한 짐승’으로 함께 묶었고, 뾰족뒤쥐와 하마를 ‘짐 나르는 짐승’으로 한데 묶었다. 린네가 성취한 불변의 업적은 동물들을 묶을 수 있는 분류군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발견되는 모든 종을 명명할 수 있는 체계를 창안했다는 데 있었다. 그는 모든 생물 종에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정했다. 이를 이명법(二名法)이라 한다. 이름의 첫 번째 부분은 해당 종이 속해 있는 속(屬)을 가리키고, 두 번째 부분은 그 종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