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법은 명명과 분류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뛰어나고 효율적인 체계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가 진화상의 친척인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하빌리스’와 관계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구별된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또한 이 명명법은 분류학자들에게는 재치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부쉬(bushi)’, ‘오바마이(obamai)’, 아주 독특한 머리 모양을 한 나방인 ‘도널드트럼피(donaldtrumpi)’ 같은 이름은 확실히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된다. 그보다는 덜 자주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종의 학명이 정치 문제나 최근의 사건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브라질에서 발견된 하루살이에 ‘트라제디아(tragediae)’라는 종명이 붙은 적이 있었다. 이는 2015년에 일어난 비극적인 댐 붕괴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분류학자들은 가끔 말장난을 하거나 운율을 맞추기도 한다. 갯민숭달팽이라고 하는 나새류(裸鰓類) 전문가인 테리 고슬리너(Terry Gosliner)가 한 번은 투룬나 속에 속하는 종에게 ‘카후나’라는 이름을 붙인 적이 있다. 그래야 ‘투룬나 카후나’라는 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고슬리너가 처음으로 갯민숭달팽이를 발견한 건 고등학교 재학 시절이었다. 그 이후 그는 갯민숭달팽이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40년에 달하는 경력을 쌓는 동안 300종 이상의 갯민숭달팽이에게 학명을 붙였다. 산호초에 서식하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나새류도 해수 온도 상승에 특히 민감하다. 몇몇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와 해양 산성화로 인해 앞으로 50년에서 100년 사이에 산호초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고슬리너는 그보다는 약간 낙관적으로 본다. 스트레스에서 탄력적으로 회복되는 산호초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다에서 산호초가 위험에 처해 있다면, 육지에서는 곤충에게 더 큰 위기가 벌어지고 있다. 이는 곤충학자들이 이제야 겨우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한, 전혀 다른 차원의 위기다.
곤충 대멸종의 가능성
곤충학자들은 곤충의 대멸종이라는 끔찍한 가능성을 생각하기에 앞서 곤충 다양성의 진정한 규모를 파악하는 작업에 먼저 맞닥뜨려야 했다. 그들은 지금도 그 문제로 씨름하는 중이다. 하지만 많은 곤충학자에게 이 문제의 돌파구가 생긴 순간은 1982년, 테리 어윈이라는 젊은 딱정벌레 전문가가 한 편의 짧은 논문을 발표했을 때였다.
어윈은 자기가 일하고 있는 파나마 열대 다우림에서 일정 넓이의 토지에 얼마나 많은 곤충 종이 서식하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는 이를 위해 시트 작업을 한 나무에 나뭇잎 청소기구와 비슷하게 생긴 도구로 살충제를 ‘분무’했다. 몇 시간 정도 기다리는 사이 죽은 벌레들이 바닥에 깔아놓은 플라스틱 시트 위로 폭포처럼 후드득 쏟아졌다. 그 벌레들을 모두 세고 분류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 어윈의 발견은 놀라웠다. 이 나무 한 그루에만 1200종의 곤충이 서식했던 것이다. 100종 이상의 곤충은 이 특정한 나무 외의 어디에서도 서식하지 않았다. 어윈은 이 결과를 확장하여 열대 다우림 1헥타르당 4만 1000종의 서로 다른 곤충이 서식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3000만 종의 곤충이 있으리라고 추산했다.
이 추산은 금세 유명해졌지만, 논쟁 또한 불러일으켰다. 어윈은 자기 분야에서 널리 존경받는 인물이다. 47개의 종명, 2개의 속명, 1개의 아과(亞科)명과 아종(亞種)명이 그를 기리며 지어졌다. 곤충학 공동체가 국제동물명명규약(International Code of Zoological Nomenclature)에 따라 종의 이름에 자기 이름을 따서 붙이는 행위를 관행상 금지하고 있다. 법적 강제력이 없다고는 해도, 어윈에 대한 존경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곤충학자들이 어윈의 거친 분석에 회의적인 것도 사실이다. 보다 최근의 연구는 3000만이라는 숫자를 다소간 줄이는 방향으로 수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윈은 여전히 고집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와이어트 어프와 빌리 더 키드 같은 친구들이 나한테 아무렇게나 총을 쏴 대고 있는 꼴입니다. 그들 중에 데이터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는 최근에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치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숫자들을 마구 뿌려대고 있을 뿐입니다.” 어윈은 실제 곤충 종의 숫자는 8000만, 어쩌면 심지어는 2억에 이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또한 곤충 종의 상당수가 주목하는 이 하나 없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