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출의 많은 액수는 노동생산성의 성장이 느린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교육 및 의료 분야에 대한 지출이 가장 두드러진다. (표3 참조) 의사, 간호사, 교사들에 대한 실질 임금이 경제의 다른 분야들과 비슷한 비율로 올라가면서, 해당 분야에서의 지출도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교육 및 의료는 또한 경제학자들이 “상급재(superior goods)”라고 부르는 항목이다. 즉, 사람들이 더욱 부유해질수록 소득의 더욱 많은 부분을 해당 분야에 지출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일 경우에는, 더욱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OECD 전반에 걸쳐서 전반적인 의료비 지출은 GDP와 비교하여 2005년의 8퍼센트에서 현재는 10퍼센트 수준으로 상승했으며, 그러한 증가분의 대부분은 정부가 책임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정부의 개입이 생산성의 성장을 저해한다고 주장하며 보몰의 생각을 더욱 확장시켰다. 워싱턴DC 소재의 싱크탱크인 니스캐넌센터(Niskanen Centre)의 스티븐 텔스(Steven Teles), 새뮤얼 해먼드(Samuel Hammond), 대니얼 타카시(Daniel Takash)가 작성한 최근의 보고서에서는, 주택이나 교육 등 규제에 의해 공급이 제한되는 서비스 부문에 대한 보조금이 가격을 상승시켜서 결국엔 더욱 많은 보조금에 대한 수요를 발생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 가지 사례는 바로 학자금 대출이다. 뉴욕 연방준비제도은행(Federal Reserve Bank)의 연구에 따르면, 재정보조학자금대출(subsidised loan)의 한도액이 증가하면 그 중 60퍼센트는 결국 등록금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한다. 미국의 정치권은 고등교육에 대한 보조금을 더욱 늘리겠다는 공약들로 가득하다. 비용을 줄이겠다는 공약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마지막 영향력은 유권자들의 욕구이며, 이는 유권자들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20세기를 거치면서 노동계급의 수는 증가했고 여성 유권자들의 수도 증가했다. 정치학자들은 부유한 세계 전반에 걸친 여성들의 참정권 확대가 사회적 비용의 증가와 연관이 있다고 보는데, 특히 의료 및 교육 분야에서 그런 경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20세기의 유권자들은 또한 세계대전에서 싸웠거나 살아남은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지출을 크게 증가시켰고, 두 차례 모두 전쟁 이전의 수준으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전쟁에서 대규모의 동원이 이루어지면서, 실업급여 및 보건의료와 같은 서비스를 평시에도 더욱 널리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렸다.
그리고 오늘날의 유권자들은 점점 더 고령화되어 가고 있다. 지금의 나이 든 사람들은 정부의 도움이 없었던 젊은 시절에도 비교적 잘 견뎌왔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의 피터 린더트(Peter Lindert)가 최근에 펴낸 책 《사회적 지출이 작동하게 만들기(Making Social Spending Work)》에 의하면, 노인 1인당 13개의 사회복지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으며, 소득에 대한 비중으로 보면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학령기 아동 1인당 공교육비보다 노인 1인에 대한 지출액이 더욱 빠르게 늘어났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1인당 지출액에서 크게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의 수명은 더욱 길어졌는데, 이는 관련한 지출액이 지금도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노인들에 대한 지출액을 유지하라는 정치적인 압력은 지금도 강력하다.
정부가 성장하는 이면에 있는 다른 영향력들은 꽤나 안정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반면, 인구통계학적 요소들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앞으로 40년 동안, 부유한 세계에서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은 절반으로 증가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주 고령인 사람들의 비중은 훨씬 더 급격하게 늘어날 텐데, 영국의 데이터에 따르면 해당 연령층의 연간 1인당 의료비는 4배나 더 필요하다고 한다. 만성 질환이 증가하면서 의료 분야와 사회복지 분야 모두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며, 사람들이 말년에 필요로 하는 서비스들의 수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2019년에 OECD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회원국들 전반의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은 2015년의 8.8퍼센트에서 2030년에는 10.2퍼센트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그 수준에 거의 다가가고 있으며, 지난 18개월 동안 코로나19 검사 및 백신 접종을 위하여 구축된 막대한 인프라가 조만간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결국 상당히 보수적인 예측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요소도 작용하고 있다. 부유한 세계의 정부들은 각국의 경제를 탄소배출을 없애는 방향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각국 정부가 그러한 전환을 독려하기 위하여 탄소가격과 같은 원칙을 시장에서 적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결국엔 규제가 늘어나고 각종 보조금이 급증하게 될 것이다. 영국의 재정을 감시하는 기관인 예산관리청(OBT)은 탄소세를 부과한다 하더라도 2050년까지 순제로(net zero)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 지출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노력이 마무리될 때쯤이면 영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에 21퍼센트가 추가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더욱 커다란 정부를 위해 조성되어 있다. 이처럼 아마도 막아서기 힘든 경제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지적인 사고는 단지 정치적 좌파에서만이 아니라,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재분배의 규모에 대해서는 절대로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더욱 놀랍게는 정치적인 우파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은 더욱 커진 국가에 우호적인 네 번째의 영향력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은 바로 반대 세력의 부재이다.
2017년에 창간된 보수 성향의 저널인 아메리칸 어페어즈(American Affairs)는 지난 2019년에 “국가의 정당을 향하여(Toward a Party of the State)”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이 글의 작성자인 글래든 파핀(Gladden Pappin)은 “국가는 전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과 현대의 보수적인 사상에 비하여 훨씬 더 거대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인정하며, 헝가리가 더욱 많은 아이를 낳게 하기 위하여 각 가정에게 현금을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것처럼 “유럽에서 민족국가를 지향하는 세력과 같은 집단”에게 “원조와 편안함”을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포퓰리즘 우파의 다른 사람들은 노인들에 대한 지출은 보전하고, 특정한 이익집단의 돕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최소한 개념적으로는 대규모의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한다. 영국의 보수당은 오히려 더욱 큰 목소리고 작은 국가를 지향한다고 주장하지만, 리시 수낙(Rishi Sunak) 재무장관은 역사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지출과 과세 정책을 주관하고 있다. 평의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재정의 삭감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는 거의 없다.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스웨덴의 사상가인 요한 노르베리(Johan Norberg)는 스스로가 정치적 홈리스라고 말한다. “주요한 정치세력들은 그 누구도 저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경제적 자유에 초점을 맞춘 싱크탱크를 운영하는 철학자인 가스파흐 커니그(Gaspard Koenig)가 논의의 조건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대체적인 여론은 여전히 큰 정부와 거액의 공공지출에 확실히 우호적인 편이다. 벨기에의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독립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일부가 세금을 낮추고 작은 국가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데, 다만 그것은 호기심의 차원이지 어떤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노르베리와 같은 사람들은 지적인 흐름이 권력의 중심부에서 프리드먼이나 하이에크의 사상들이 넘쳐나던 1970년대 말과 같은 상황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과도한 규제와 국가가 장악한 자본주의의 실패가 점점 더 명백하게 드러나면서 그러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지지할 수 있는 정책들이 존재한다.
한 가지 방안은 쉽게 말해서 “습지를 포장도로로 닦기(pave the swamp)”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즉, 관료주의가 여전히 거대하게 남아 있다면, 그러한 관료주의의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인데, 적어도 그러한 상태를 통해서 일을 진행시키는 것이 더욱 쉽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경제학자인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Hoover Institution)의 존 코크란(John Cochrane)은 규제들에 대해서 “시간제한(shot clock)”과 일몰조항(sunset clause)을 추가하자고 제안한다. 시간제한이란 예를 들자면 미국의 식품의약국(FDA)이 신약이나 새로운 식품을 심사하는 시간을 미리 정해놓는 것으로, 허용된 시간 내에 타당한 판결을 내리지 못한다면 자동적으로 승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일몰조항이란, 계획적으로 다시 제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해당 규제는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일부에서 선호하는 또 하나의 임시적인 방안은 기존의 시장이 더욱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자면, 인수합병을 더욱 철저하게 조사해서 그로 인한 독점기업의 출현을 막는 것이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효율적인 시장이라면 정부 지출의 증가분을 상쇄할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 어떤 식으로든 경제의 성장을 지원할 것이다.
감히 작은 꿈을 꾼다면
아니면, 국가를 조금씩 갉아먹는 대신에, 사람들이 그로부터 손을 떼도록 하는 것이 있다. 대처 정책을 지지하는 싱크탱크인 경제문제연구소(Institute of Economic Affairs)의 마크 리틀우드(Mark Littlewood)는 국가의 서비스를 일부 포기하는 대가로 사람들에게 세금을 덜 내게 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비록 세수가 줄어들더라도 서비스 제공에 드는 비용이 더욱 크다면, 이는 결국 국고를 절약하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의 우산 아래에서 가장 간절히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미 언제나 그것의 보호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실제 세수 감소의 폭은 서비스 비용의 감축으로 상쇄되는 것보다 훨씬 더 클 수도 있다.
마거릿 대처는 언젠가 하이에크의 《자유헌정론(The Constitution of Liberty)》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면서 동료 보수당 의원들에게 “이것이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오늘날 작은 정부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확신이 결핍되어 있다. 그러나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정부가 더욱 커지는 것을 막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의 가장 중요한 논의는 국가의 규모가 아니라, 그것의 본질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