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무너지고 있는가
완결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인가

사회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은 그것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판데믹 이후의 형태다.

2020년 3월, 런던 다우닝가 관저에서 자가격리 중이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영상이 공개됐다. 본인이 혼자 촬영한 영상 속에서 그는 창백하고 지친 안색으로 영국인들이 코로나19 판데믹을 함께 극복할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홀로 방에서 휴대폰 카메라를 켠 그는 사회의 존재를 입증하며 이렇게 선언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위기가 지금껏 증명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회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일 겁니다.”

이 상황은 전체적으로 이상했다. 존슨은 마치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는데, 실제로 이 영상을 공개하고 얼마 안 지나 병원에 입원해 집중 치료실 신세를 졌다. 열이 나는 와중에 정치적 전향이라도 한 것일까? 왜냐하면 사회의 존재를 선언한 그의 발언은 현대 보수주의의 정의라 여겨지는 1987년 마거릿 대처의 인터뷰를 공개 부인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대처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많은 아이들과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배워왔습니다. ‘나한테 문제가 생겼어. 이건 정부가 해결할 일이야!’라고요.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사회에 전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사회죠? 그런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녀는 코로나19에 걸린 적이 없다.

당연히 사회라는 것은 존재한다. 지금의 문제는 판데믹이 그것을 어떻게 바꿨느냐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숙고하기에 앞서, 우선 사회에 대한 이러한 발언들을 꼼꼼히 해독하고 그런 말들은 대체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존슨은 자신의 말을 통해 대처뿐만 아니라 로널드 레이건에게도 반박한 꼴이니 말이다. 사회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대처의 외침은 1981년 레이건의 대통력 취임식 연설에 공명한다. 당시 레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우리 문제의 해결책이 아닙니다. 정부 자체가 문제입니다.”

대처와 레이건은 종종 사회와 정부를 뒤섞어 이 둘을 축소하고자 했지만, 사실 사회와 정부는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사회란 서로 다른 배경과 불균등한 교육, 자원, 부를 소유한 사람들을 한데 묶는 상호 의무 그리고 친교가 적용되는 사적 유대 관계를 의미한다. 정부는 시민이자 동등한 존재로서의 정치적 통일체, 즉 국민에 속하는 사람들의 일을 다루는 행정 기관을 뜻한다. 사회는 공동체에 의지하며 정부는 정책을 적용한다.

레이건과 대처의 세계관에 따르면, 사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서로를 돌보는 가족과 시장에 개입하는 개인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부라는 관념은 사회가 존재한다는 잘못된 신념에 근거한 것이다. 이런 잘못된 신념은 건강 이상 같은 문제를 정부 지원 의료 시스템 등 정부 정책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마치 이런 문제들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정부의 이런 정책들은 진정한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 즉 자유 시장을 방해할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세계관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판데믹이 발생하기 훨씬 이전의 이 세계관이 그 일을 해냈다. 이는 미국과 영국의 사회 안전망을 해체하는 데 이바지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 체계와 윤리를 견고히 하는 데도 공헌했다. 그곳은 정부도 없고 규제도 없는, 민영화와 시장 원리가 지배하는 메마르고 외딴 황무지다. 인터넷에서의 인간은 그저 ‘이용자’로서 홀로 움직이는 개인으로 축소된다. 현실 생활이라는 본질적 자아의 역광을 받는 수많은 아바타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출현했다. 거리감이 친밀감을 대체했고 마스크가 얼굴을 가렸으며 실내엔 칸막이가 세워졌다. 국가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제했다. 인도에 거리 두기용 스티커가 붙었고 벤치는 텅 빈 채 남겨졌다. 그런 와중에도 어떤 것들은 이전과 같이 계속 작동했고, 그 강도는 오히려 훨씬 격렬해졌다. 소셜 네트워킹, 다시 말해 예측 알고리즘과 ‘친구’, ‘팔로어’들을 수익화한 기업들의 이야기다. 판데믹은 수많은 사람을 현실 세계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현실 세계의 대체품이었던 가상 공간, 즉 반정부적이고 반사회적인 세계에 외로이 인간을 가두고 소진시켰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고자 진행한 캠페인 등은 분명 병들고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보였던 희생을 통해, 특히 급증한 원조 집단의 수를 통해 상호 의무로 맺어진 유대 관계가 지닌 힘을 다시금 보여 줬다. 이들 각각은 사랑과 양육과 돌봄과 동지애의 또 다른 표현인 동시에 사회가 존재한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일부 미국인은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요청에 비행기에서 승무원을, 교실에서 교사를 주먹으로 폭행한다. 현재의 사회 규범이 전시 수준의 스트레스 환경에 놓여 있다는 일반적 인식은 있음에도 전시에 볼 수 있는 연대감은 부재한 실정이다.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대신 사람들이 서로를 두드려 패는 제2차 세계 대전을 상상해 보라. 심지어 충분히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슬픔, 탈진, 두려움, 고독, 소외 등은 판데믹이 야기한 지속적인 고통으로서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이 치명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가 종결될 것인지는 결국 정말 바이러스를 파괴할 수 있을지, 서로를 얼마나 마음 아프게 그리워하게 될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이상의 것, 즉 공익에 대한 정치적 결정에 달려 있을 것이다.

세상이 바뀌는 한 해의 시작이자 반짝이는 모래사장을 기어가는 소라게처럼 각자의 방향을 잡으려 애쓰는 이 시기에,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쩌면 과거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심지어 판데믹 이전에도, 지성인과 정책 입안자들은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사회의 미래에 경종을 울려 왔으며, 이 세계의 너덜너덜해진 ‘사회 조직(social fabric)’을 고정한 뒤 바늘로 꿰매어 수선할 계획에 착수하곤 했다. 2018년, 미국의 보수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위브: 사회 조직 프로젝트(Weave: The Social Fabric Project)’라는 단체를 창립했다. 이는 스스로를 위한 삶보다는 공동체를 위한 삶을 옹호하는 프로젝트다.

지난해에는 영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온워드’에서 ‘사회 조직 수선(Repairing Our Social Fabric)’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영국 내 공동체의 상태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요구가 보수주의자들에게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모어 인 커먼(More in Common)’은 초당파적이고 다국적인 조사 기관으로, 가령 독일의 사회 조직에서 온전하게 남아 있는 부분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종 정의도 사회 조직의 문제라는 틀에서 다루어진다. “잘 작동하는 사회는 상호성이라는 거미줄에 의존한다. 즉, 혼자서는 누구도 해낼 수 없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거기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서로 충분히 공유하려는 의지에 기대는 것이다.” 미국 정치 평론가 헤더 맥기는 2021년에 나온 책 《우리라는 총합: 인종주의로 인해 모두가 치르는 비용, 그리고 모두 함께 번영하는 법(The Sum of Us: What Racism Costs Everyone and How We Can Prosper Together)》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게 바로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다. 나는 나 혼자만 쓰는 배전관, 교육 제도, 인터넷 혹은 의료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한 것들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만들어져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그것들에 공적 자금을 대고,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맥기에 따르면 여기서의 문제는 이러한 공공선이 오로지 백인에게만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역사에서, 또 미국과 세계의 다른 지역 모두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연구 학과의 학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에디 글라우데는 트럼프 임기 말에 접어들면서 드러난 양극화, 부족(部族)화, 세분화가 문제라고 꼬집으며 말했다. “이 나라의 사회 조직이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함께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야만 합니다.”

때로 사람들은 판데믹이 이 문제들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때는 오히려 판데믹이 이런 문제들을 비출 수 있는 환한 빛이 되었고, 덕분에 이제야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계기가 생겼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건 간에, 싱크탱크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목적으로 자금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비영리 기관인 러셀 세이지 파운데이션은 코로나19가 사회 조직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흥미로운 사실이다. 왜냐하면 뉴욕에 기반을 둔 이 싱크탱크를 1907년 설립한 사람은 어느 철도 부호의 미망인인데, 그녀는 산업주의가 사회 조직을 찢어놓았다는 사실을 근심했던 이였고, 우연찮게도 바로 이 산업주의 시대에서 사회 조직이라는 개념이 유래했기 때문이다.

사회 조직이라는 영어 표현은 1790년대에 만들어졌다. 이 시대는 기계 방직기의 시대로, 사회 문제를 관찰하던 사람들은 공장과 도시의 성장 그리고 이촌향도 현상이 사람을 고립시키고 외롭게 한다고 우려했다. 그다음 세기에 걸쳐, 드 토크빌과 같은 낭만주의자에서 마르크스, 헤겔 같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에 이르는 온갖 사상가들까지 ‘사회’라 불리는 것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해결책에 대해 각자 의견이 엇갈리긴 했지만, 대체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상당 기간 동안 자유주의자들은 자유 민주주의에 자신들의 신념을 의탁했다.

미국에서 사회에 대한 신념은 진보주의와 뉴딜 시기 자유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이었으며, 대공황 때는 특히 더욱 그랬다. 1935년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말했다. “자유주의자의 신념이란 남성과 여성 개개인의 능력에 대한 신뢰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돕는 일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2020년 3월 30일,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으로 인해 홍콩의 한 스타벅스 커피숍 테이블과 의자에 테이프가 붙어 있다. ©Vincent Yu/AP
하지만 그때까지도, 뼈아픈 경제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산업화 세계에 살았던 대다수 고통 받는 대중은 참으로 가난해지고 외로워지고 소외됐기에 권위주의자들에게 계속 허리를 숙였다.

경제 붕괴, 문명의 쇠락, 사회 분열에 대한 공포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들은 노상 하늘이 무너질 거라며 경고하지만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전쟁으로 인해 진짜로 하늘이 무너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전체주의의 발흥을 고통스럽게 연구하면서 자유주의자들의 사회에 대한 신념은 산산조각 났다. 사학가인 도로시 로스가 최근 연구를 통해 주장한 바와 같이 근대성 자체에 전체주의를 뿌리내린, 대중 사회를 통찰하는 이론이 생겨나서다. 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치 독일과 소련이 자유 민주주의에 가한 위협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두려움도 명확해졌다. 대중 사회의 원자화된 개인들은 전체주의 운동과 그 운동이 약속한 거짓 연대의 지지자로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20세기 중반,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생각한 자들은 ‘사회’와 ‘정부’의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 것인지, 혹은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혁명의 종류를 “사회 조직의 변화를 의도하는 것”과 “정치적 영역의 구조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분류했다. 그녀는 두 번째 종류의 혁명엔 호감을 느꼈으나 첫 번째 종류의 혁명은 두려워했다.

아렌트의 주장에 따르면 혁명이란 결코 ‘사회적 문제’, 이를테면 빈곤 같은 것을 해결할 수 없고 그리해서도 안 되는데, 과거의 혁명이 남긴 기록들 전체가 의심의 여지 없이 보여 주는 사실은 정치적 수단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든 시도는 테러로 이어졌다는 거다. 아렌트는 혁명이 빈자들의 절망에 압도되어 사회의 조직을 변화시키고자 시도될 경우 질서가 적출되고 사유 재산이 파괴되며 지식인들이 대량으로 처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빈곤 문제를 고심하듯 정부가 파멸의 길을 걸으리라 얘기한 건 아니었다. 혁명의 경우만 그렇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수주의 사상가들은 사회 조직이 닳아 떨어지고 대중들이 전체주의에 취약해진 이유는 산업 자본주의가 야기한 혼란과 불평등이 아니라 국가의 권력이 강해진 탓이라고 비난했다. 1953년에 발간된 《공동체의 탐색(The Quest for Community)》에서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니스벳은 현대 국가가 인간의 경제, 종교, 친족, 지역에 대한 충성 안으로 속속들이 침투하는 사실을 한탄했다. 그는 이런 상황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세속주의, 국가주의라고 믿었으며 이는 특히 뉴딜 시기의 미국에서 더욱 그러했다. 그는 세속주의와 국가주의가 사회적 유대를 약화함으로써 개인 소외와 문화적 붕괴를 야기한다고 봤다. 그는 현대 사회의 병리 현상을 ‘옛 시절’과 비교했는데, 그가 말하는 옛 시절이란 가족, 교회, 지역 공동체가 각 개인에 대한 충성을 이끌어 내고 유지하던 때이다. 옛 시절에 사람들은 자기 분수를 알았고 서로를 돌봤으며 상황이 어려울 때도 정부에게 도와달라고 손 내밀지 않았다.

공동체를 탐색했던 인물인 니스벳은 인간 혐오자였다. 그는 집에서 흑백 TV로 〈건스모크(Gunsmoke)〉 같은 서부극 보기를 좋아했고, 자녀들과 크로케 게임을 하며 본인 소유의 장미 정원에서 빈둥거렸다. 그는 부인이 끈질기게 권할 때만 교회에 나갔다. 사교도 즐기지 않았다. 니스벳은 “나는 개인들을 정말로 좋아합니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는 1959년 찰스 슐츠의 연재 만화 〈피너츠(Peanuts)〉 속 등장인물 라이너스 반 펠트가 인용해 인기를 끈 도스토옙스키의 “내가 견딜 수 없는 건 사람들이야!”라는 구절을 뒤집어 말한 것이다. 사회 같은 건 없다고 훗날 대처도 말할 것이었다. 오직 개인들만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이렇게 따지면 대처리즘은 사실 찰리 브라운에서 나온 셈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신념을 사회가 아니라 자유 시장에 두었다. 하지만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사이의 간극은 1950년대에 메워지게 되는데, 자유 민주주의가 붕괴해 전체주의로 바뀔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겁을 먹은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사회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내버렸기 때문이다. 로스는 이 자유주의자들은 더 이상 자신의 역할이 집회, 상호 관심, 협력적 행동, 평등한 처우 등을 발언함으로써 사회를 지키는 것이라는 점을 믿지 않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대신 그들은 개인을, 또한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보호하고자 애썼다. 선택이라는 행위, 그리고 선택이라는 시장 주도적 표현으로 개인이 우매한 대중으로 변하는 걸 막는, 마치 예방 주사 접종처럼 말이다.

1960년대가 되자 자유주의자들은 시민권 운동과 린든 존슨이 내세운 슬로건 ‘위대한 사회’ 등을 통해 사회라는 개념에 대한 자신들의 헌신을 새롭게 부활시킨 듯 보였다. 하지만 로스에 따르면 이는 자유주의자들이 지난 몇십 년간 사회를 버리는 와중에 일어난 일시적인 변화, 즉 잠깐의 방향 전환에 불과했다. 로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1960년대에 일어난 사회 자유주의의 정치적 부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는데, 이는 사회 자유주의가 보수주의의 정치적이고 지적인 부활을 야기했고, 그로 인해 자유주의적 정치와 사회사상이 파편화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학자들은 20세기 초의 진보주의에서 21세기 버전의 진보주의에 이르는 동안 좌파에서 지속적으로 자유주의와 사회 민주주의를 주창했다는 점을, 이 깨어지지 않는 전통의 연속성을 더 많이 주목한다. 하지만 1960년대의 정치적 혁명이 반혁명적이고 보수적인 반격을 일으켰다는 사실에는, 또한 그 반격이 부분적으로는 시민권에 대한 격렬한 반대를 통해 힘을 얻었다는 주장에는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는다. 맥기가 지적하듯, 상당수 백인들은 흑인들이 사회가 더 이상 ‘백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선언할 만큼의 정치적 권력을 획득한 바로 그 시점에, 사회의 존재를 믿는 것을 포기해 버린 듯 보였다.

1960년대가 되자 니스벳은 새로운 청중을 발견했다. 그들은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새로이 등장한 공산주의자들인 신좌파였다. 좌파 진영에서 사회가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자유주의자는 사회 민주주의를 포기했지만, 신좌파는 ‘사회 정의(social justice)’를 위해 싸울 것을 결심했다. 《공동체의 탐색》은 출간되고 얼마 안 지나 절판되었다가 신좌파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은 덕에 1960년대에 복간되었다. 니스벳은 1962년 판 제목을 ‘공동체의 탐색’에서 ‘공동체와 권력(Community and Power)’이라고 바꿨다. 새로운 제목은 더 좌파처럼 들렸지만 현대 사회의 고독과 소외에 대한 선언이라는 핵심은 똑같았다. 니스벳이 복간된 책에 쓴 서문을 소개한다. 이 서문은 지금의 격리와 ‘집에 머물라’는 캠페인, 고독이라는 전염병, 사회적 거리 두기, 록다운 등이 발생하기 수십 년 전에 쓰였다.

“내가 뜻하는 소외란 사회 질서라는 것이 자신과 동떨어져 있고, 이해할 수 없으며, 마치 사기 같은 것이라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의 상태다. 이 마음의 상태는 진정한 희망이나 욕망을 넘어 냉담함, 지루함, 혹은 심지어 증오까지 불러일으킨다. 소외된 개인은 그저 자기가 사회 질서의 일부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사회 질서에 참여하려는 관심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이런 사람들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다 보니, 특히나 이런 사람들 중에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같은 젊은 사람들이 포함되다 보니(젊은이들 사이에서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엄청난 인기를 끈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소외의 상태는 행동과 사고 양쪽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단합의 상징, 늘 준비된 인간관계 프로그램, 교외의 파티오 축제, 대선 후보들을 위해 4년마다 벌어지는 십자군 운동 같은 것들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국가, 정치 정당, 사업, 교회, 노동조합, 심지어 가족 등과 같은 제도가 멀리 있는 듯 느껴진다. 여기에 자아의 일부를 내어 주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미처 다 숨기지 못한다.”

니스벳을 읽은 신좌파 사람들이 보수주의에 합류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하고자 애썼고, 다른 사상적 전통도 융합하려 했다. 그 다른 사상적 전통에는 가톨릭 사회사상과 미국 프래그머티즘 철학자 존 듀이의 글도 포함되어 있었다. 1962년 민주사회학생회(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가 발표한 〈포트 휴런 선언문〉에서, 신좌파는 현 사회의 고독, 단절, 소외를 애통해하면서 인간의 상호 의존과 형제애를 사회적 관계의 가장 적합한 형태라고 찬양했다(이 선언문에서 ‘사회’라는 단어는 총 38번 등장한다). 이 선언은 “새로운 좌파는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을 포함해야 한다. 전자는 우리와의 관련성 때문이며, 후자는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개혁 의지 때문이다.”라고 확언했다.

20세기 중반의 몇십 년 동안은 모든 진영의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문제라는 데 동의했다. 근본 없고 무지한 대중 사회가 정치적 신조나 선동에 취약하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원인과 해결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생각을 품었다. 니스벳과 보수주의자들은 국가를 비난하며 자유방임 시장에 신뢰를 보내는 한편 강력했던 ‘옛 시절’의 제도, 이를테면 가족과 교회 같은 제도로 돌아가야 한다고 확신했다. 흑인 민권 운동가들은 흑인 교회와 이슬람 국가의 공동체적 전통에 도움을 요청했다. 학생 운동으로 시작되었던 신좌파는 사회적 혹은 정치적 변화보다는 대학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문화적 변화에 신뢰를 보였다. 백인 자유주의자들은 선택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들먹였다. 유권자들이 합리적인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하고, 소비자들은 정보에 입각한 구매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심지어 낙태조차도 ‘선택할 권리’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노력하건 간에, 사회적 연대가 점점 약화하고 있다는 데는 모두 동의하는 듯 보였다.

1957년, 이디엘 드 솔라 풀이라는 MIT의 정치학자가 사회 연결망(social network)이라는 표현을 창안하면서, 자칭 ‘작은 세계’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를 시작했다. 2년 뒤 그는 ‘시뮬매틱스 코퍼레이션(Simulmatics Corporation)’이라는 데이터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의 이름은 여러 뜻을 담고 있었는데, 이곳의 목적은 인간 행동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자동화하여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고, 이 예측을 기업이나 정부에 판매하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시뮬매틱스 코퍼레이션은 최초의 인공지능 주도 데이터 서비스 기업이었다. 1960년대에 드 솔라 풀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사람들이 무엇을 우려하게 될지 예측했다. “현재 사회의 순응성을 공격하고 있는 비평가들은 21세기가 되면 원자화된 사회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 예측은 1968년에 나온 것이다. “그들은 현대 기술이 우리의 공통된 문화적 기반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자기만의 작은 세상에 방치한다고 주장하겠죠.”

기술 유토피아주의자였던 드 솔라 풀은 새로이 등장하는 통신 기술이 사람들을 더 가까이 결합하는 대신 세상을 작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실제로 그는 훗날 인터넷이 될 기술의 선두에 서 있었다). 드 솔라 풀은 자유주의자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신보수주의자, 엄밀히 말하면 자유 지상주의자가 되었다. 사후인 1990년에 간행된 책 《경계 없는 테크놀로지: 글로벌 시대의 원거리 통신에 대하여(Technologies Without Boundaries: On Telecommunications in a Global Age)》에서 그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경계 없는 공동체’가 만들어질 것이라 내다보았다. 이것이야말로 인터넷을 창시한 이들이 품던 꿈이다.
2019년 10월 29일,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워싱턴 DC 하원 금융서비스 위원회 청문회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모습. ©Mandel Ngan/AFP/Getty Images
월드 와이드 웹(www)은 21세기의 기계 방직기다. 벤처 캐피털리스트이자 전직 페이스북 임원이었던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는 2017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제 생각엔 우리가 사회 조직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도구를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최근 비평가들은 소셜 네트워크가 사회 조직을 파괴하고 있는데도 정작 소셜 네트워크를 만든 이들은 그게 사회 조직을 수선하고 있는 줄 착각한다고 주장한다. 페이스북은 약관에 나와 있는 회사 강령에 실제로 자신들의 목표가 “사람들에게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줌으로써 세상을 다 함께 가깝게 만드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기술 유토피아주의자들은 설사 산업주의의 기계들이 사회 조직을 부쉈다 해도 다른 기계가 그걸 고칠 수 있다고 항상 믿어 왔다. 특히나 교통과 통신 기술은 사람들을 빠르게, 가까이 뭉치도록 하는 면에서 늘 유망해 보였다. 전신·전화·무선 통신·TV·케이블 TV·월드 와이드 웹 이른바 인터넷에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모으는 성긴 실타래가 달린 셈이다.

이러한 비전은 인터넷이 ‘자유의 테크놀로지’라고 주장한 바 있는 드 솔라 풀 덕분이다. 또한 이 비전은 니스벳 또한 인터넷의 무법성을 구축한 데 책임이 있는 의외의 관련자들, 다시 말해 공산주의자 신좌파와 반정부적 보수주의자들을 홀린 그의 아이디어에 큰 빚을 진 셈이다. 1970년대에 니스벳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강의했다. 뉴욕에서는 보수주의 지성인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중에는 저명한 보수 논객이자 저술가인 윌리엄 F. 버클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니스벳은 64세의 나이에 선도적 보수 싱크탱크인 미국 기업 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레이건 시대의 보수주의 양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극우 단체인 ‘모럴 머저리티(Moral Majority)’ 사람들이 레이건을 장악하고 있는 게 몹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는 못마땅한 듯 그렇게 말했다. “맙소사, 내가 이 종교적 정치 광신자들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몰라요.” 하지만 1990년대가 되자, 심지어 1996년 니스벳이 사망한 뒤에도, 그의 작업은 그들에게 예전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다.

1996년 자유주의자 칼럼니스트인 EJ 디온은 “현재 또 다시 니스벳이 각광받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이 현상에 불이 붙게 된 것은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이 현대 복지 국가를 무너뜨린 다음 그것을 보다 국지적이면서도 개인의 자발성에 의존하는 빈곤층 부양 활동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의 근거가 될 만큼 일관성 있는 철학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니스벳의 재조명은 보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미국 민주당 내 계파인 ‘신 민주당원(New Democrats)’에서도 열띤 관심을 얻었고, 이 계파에는 빌 클린턴도 포함되어 있었다. 니스벳 재조명 현상의 가장 강력한 표현은 좌파와 보수주의자가 연합해 선도한, 인터넷에 대한 반정부적 비전에서 나타났다. 이 연합을 이끈 이는 자칭 ‘보수적 미래주의자’ 뉴트 깅리치 하원의원이다. 그는 1996년에 정보통신법을 설계한 사람으로, 이 법은 정부의 개입과 관리 감독으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운 인터넷 환경을 구축했다.

“산업 사회의 정부들, 살점과 쇳덩이로 이루어진 진저리나는 거인들이여. 나는 사이버 스페이스, 새로운 정신의 고향에서 왔노라.” 1996년에 자유 지상주의자 존 페리 발로우는 ‘사이버 스페이스 독립 선언문(Declaration of Independence of Cyberspace)’에 이렇게 썼다. “선언컨대, 우리가 건설하고 있는 전 지구적 사회 공간은 너희들이 우리에게 가하고자 하는 압제로부터 당연하게도 독립적일 것이다.” 발로우의 수사법은 반정부적이었지만(“사이버 스페이스는 너희의 국경선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으론 사회 친화적이었다(“우리는 우리만의 사회 계약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이 모든 종류의 사회가 존재하는 동시에 어떤 정부도 없는 장소가 되리라 예측했다. 그의 예상은 결국 반만 옳았다. 중국과 같은 두드러진 예외를 제외하면 인터넷은 사실상 통제 불능의 공간이다.

2000년에 《와이어드》는 인터넷이 미국의 모든 분열을, 더 나아가 세계의 분열을 치유할 것으로 예측했다. “우리는 국가로서 인터넷과 공공 생활의 융합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포용력을 기르며 서로 더 연결된다. 정파성, 종교, 지리적 위치, 인종, 성별 그리고 그 외 전통적인 정치적 분열은 정치와 사회적인 태도에 적용될 조직적 원리이며 유선이라는 새로운 기준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보다 더 엇나간 예측은 별로 없다. 월드 와이드 웹이 소셜 네트워크로 전환되면서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소셜 미디어’가 부상했을 때, 사회적 유대 관계는 그저 부식될 뿐이었다. 이런 상황은 끝나지 않을 듯 계속되는 탄식과 또 다른 니스벳 부흥 현상을 낳았다.

2013년, 저널리스트 조지 패커는 《미국, 파티는 끝났다(The Unwinding: An Inner History of the New America)》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고독과 소외와 고립으로 점철된 미국의 위기를 연대기 형식으로 그려냈고, 책은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패커는 이렇게 썼다. “언제 고삐가 풀리기 시작했는지, 미국인을 안전하게 때로는 탄탄하게 붙들어 매어 주던 코일이 언제부터 풀리기 시작했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거대한 변화가 그렇듯, ‘셀 수 없는 시기’에 별의별 방식으로 고삐가 풀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이 나라가, 항상 똑같았던 이 나라가 역사의 선을 넘어서더니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지고 말았다.”

패커가 보기에 고삐 풀림은 셀 수 없는 시기에 시작된 것이었지만(셀 수 없는 시기라는 말은 니스벳의 그만큼이나 모호한 표현인 옛 시절과 희미하게 공명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뉴딜 정신이 버림받은 데 대한 한탄으로 이해했다. 뉴딜을 버린 것은 처음에는 신좌파였고, 그다음에는 뉴라이트였으며, 그다음에는 신 민주당원이었다. 패커는 국가의 힘이 약해지면 공동체도 쇠약해진다고 믿었다. 정부가 줄어들면 사회도 줄어드는 것이다. 니스벳은 정확히 그 반대로 믿었다. 국가의 힘이 강해지면 공동체는 쇠약해진다. 정부가 커지면 사회는 줄어든다.

2020년 판데믹이 막 시작되었을 때, 《뉴욕타임스》의 보수 칼럼니스트이자 《공동체의 탐색》 신판에 머리말을 쓴 로스 다우섯이 《퇴폐 사회(The Decadent Society)》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의 주장이 기대고 있는 것은 니스벳이 쓴 어떤 에세이로, 그 글에서 니스벳은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이 상실될 때 황금시대가 종말을 고한다고 말하면서, 그 이후 출현하는 만연한 개인주의와 다우섯이 ‘퇴폐’라 일컫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2020년에 나온 또 다른 책인 《건설의 시간(A Time to Build)》은 보수 성격의 《내셔널 어페어스》  잡지 창립 편집자인 유발 레빈이 쓴 책이다. 이 책 역시 니스벳의 저서를 길게 인용했다. 니스벳은 ‘황혼기’가 ‘제도의 쇠퇴와 침식’, 그리고 강력한 ‘공동체로부터의 소외감’으로 특징지어진다고 쓴 바 있다. 레빈이 책에서 “우리는 충성의 공백 상태로 특징지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라고 썼을 때 의미한 바가 바로 이것이다.
태국 방콕에서 한 남자가 스마트폰을 훑어보고 있다. ©Songyuth Unkong/Getty Images/EyeEm
“우리 미국인들은 사회적 위기를 겪고 있다.” 레빈은 이렇게 쓰면서 그 위기가 ‘고독과 고립, 불신과 의심, 소외와 양극화’의 위기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제도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 “거대 기업, 은행, 전문직에서부터 연방 정부의 각 부서, 뉴스 미디어, 노동 조직, 미디어 시스템, 공교육, 학계에 이르기까지 제도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나날이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레빈이 보기에 이러한 쇠락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여론 조사를 통해서도 측정할 수 있다.

고독 같은 문제보다는 문화적 쇠퇴에 더 관심이 있는 다우섯의 입장에서 몰락은 인류가 달에 착륙한 1969년 시작되었고, 특히나 미국 영화계에서 옛날 영화들을 끝없이 리메이크함으로써 이 몰락이 이어지고 있다(리메이크할 수 있는 〈스타워즈〉와 슈퍼히어로 영화가 이제 얼마나 더 남았을까)고 할 수 있다. 이런 시각은 니스벳에게서 그대로 따 온 것이고, 다우섯 또한 자신의 부채 의식을 시인하고 있다.

니스벳은 이렇게 쓴 바 있다. “창조적 폭발이 꽤 오래 지속될 수는 있다. 그런 다음 모든 것이 판에 박힌 듯 돌아가고 모방과 인습과 선입견에 가득한 것으로 바뀌면서 본질보다 형식이 우월해진다.” 사실 1953년에 처음 쓰인 사회 고발장을 2020년에 재출간한 다음 1970년 즈음부터 벌어진 일을 진단하는 데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시절 이루어진 니스벳의 공동체 탐색은 뉴딜 자유주의가 확실히 문제라고 보았는데, 그건 니스벳이 여전히 뉴딜 시대를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빈과 다우섯은 자유주의를 비난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그들이 사회가 쇠퇴했다며 점찍고 있는 몇십 년은 대처와 레이건 식 보수주의 변종들의 발흥으로 특징지어지는 바로 그 시기다. 또한 그 시기는 지식 중심의 사회적 제도, 특히 교육과 저널리즘에 심대한 위협을 가하는 신좌파의 반자유주의가 세를 불리던 시기로도 특징지을 수 있다. 만약 정말로 사회 조직이 분열되어 있다면, 비난을 돌릴 곳은 늘 그랬듯 주변에 차고 넘치는 셈이다.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의 영향 아래에서 만들어진 주장들은 결국에 가서는 시대에 뒤쳐진 것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니스벳의 《공동체의 탐색》을 공공 도서관 서가에 도로 꽂아둘 적시인지도 모른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전체주의는 여전히 위협으로 남아 있다. 이 전체주의는 국가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지식, 정보를 통제하는 기업으로부터 비롯한다. 피할 곳도 없다. 그들은 당신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 기업들 없이는 정치든 재정이든 문화 혹은 사회든 어떤 일도 처리하기 어렵다. 진짜 사회 조직이 소위 ‘사회 조직(social fabric)’, 다시 말해 독점 기업들이 이윤을 위해 제조한 싸구려 일회용 모조품 조직보다 더 해지고 모서리 솔기도 풀려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판데믹 이전에는 진짜 세계와 가짜 세계가 공존했다. 진짜 우정과 ‘친구’가, 정치적 공동체와 ‘팔로어’가, 진실한 정치적 의사 표현과 ‘좋아요’가 있었다. 다른 인간과의 상호 작용은 멀리 떨어진 채 문제를 깊게 보지 않는, 때로는 전투적으로 변하는 교류 관계로 좁혀질 때, 그러니까 시뮬레이션이 될 때 위험이 생겨난다. 일단 록다운이 끝나면 사람들이 가상 세계의 문화를 현실로 들고 와서 훨씬 더 분노에 찬, 성급한, 피상적인, 사무적인, 상업적인 그러면서도 덜 민주적인 사회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서, 물론 그 세계가 왔을 때의 얘기이긴 하지만, 강력한 유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기업 강령에 포함된 도덕적 상상력에 의거한 행동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기능들, 즉 다정함과 연민, 그리움과 관대함, 충성심과 애정으로 작동하는 것에 따른 행동 양식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고독, 소외, 혼란, 분열에 대한 진정한 해답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능들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광대역 케이블과 틱톡 영상으로 확산한 바이러스, 홍수 소식처럼  널리 퍼뜨리려면 결국 사회와 정부가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익, 환경 보호, 지속 가능한 농업, 공공 의료, 지역 주민 센터, 공교육, 소상공인 보조금, 공공 예술 지원금 등을 위한 새로운 사회 계약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새로운 뉴딜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위험은 예전보다 더 심각해졌음에도 지난 몇십 년간 현실 세계든 가상 세계든 레이거니즘과 대처리즘으로 형성된 이 세상은 우리 주변 해수면을 상승시키고 숲에 불을 질러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회 계약에 의존하며, 이 계약은 모두 함께 살아가자는 동의다. 이 계약은 갱신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사회, 또는 사회 조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돌봄의 의무를 저버린 정부에 있다.

자유주의는 사회를 죽이지 못했다. 보수주의도 사회를 죽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회는 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는 하루 종일 스크린만 바라보며 거울을 창문으로 착각하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처럼 파리하고 걱정에 차 있다. 온라인에는 사회가 없다. 거기 있는 건 사회의 시뮬레이션일 뿐이다. 하지만 바깥 잔디와 도보에는, 숲과 거리에는, 운동장과 교정과 야구장에는, 공영 아파트와 가게와 펍과 농업 박람회와 도서관과 강당에는, 사회가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콧노래는 아마도 증기 기관 방직기의 귀가 먹을 듯한 굉음이 아닌, 손으로 기름칠 한 구식 나무 베틀의 삐걱거리고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어울리는 흥얼거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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