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이나시우와 비슷한 걱정을 가진 주민들이 모여 만든 왓츠앱 채널과 페이스북 그룹에 한 장의 지도가 공유되기 시작했다. 전문적으로 지도를 만드는 현지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여러 장의 지도를 하나로 합쳐 만든 것이었다. 이 지도는 지금껏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듯했다. 마치 태피스트리
[1]처럼 짜깁기 된 기하학적 형상이 여러 자연 보호 구역들과 인접해서 내륙 전체에 퍼져 있었다. 지난해 리스본에서 열린 행진을 포함해 각 지역 및 전국 단위로 벌어진 일련의 시위는 현대 광업이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경각심을 일으키고자 했다. 자연 서식지를 산업적 규모로 파괴할 가능성과 화학 물질 오염 및 소음 공해, 높은 수준의 물 소비량 등이다. 이들은 또 관광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제기했다. 관광 산업은 2019년 기준 연간 매출액이 184억 유로, 우리 돈 25조 원에 이르는 이 나라 경제의 근간이다.
이러한 모든 우려는 시민운동 진영의 연합 단체가 최근 발표한 ‘국민 선언(national manifesto)’에 잘 나타나 있다. 다만, 현지 언론의 떠들썩한 보도에도 불구하고, 이 선언은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이 나라의 환경 운동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는 사실도 일부 반영되어 있다. 포르투갈은 유럽 내에서도 그린피스 지부가 없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EU가 유럽 소비자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포르투갈 사람들은 친환경 브랜드 상품에 돈을 지출할 가능성이 가장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포르투갈 중부 카스텔루 브랑쿠(Castelo Branco)의 바르쿠(Barco) 마을 출신 대학 강사인 43세의 마리아 카르무(Maria Carmo)는 환경에 대한 무관심은 대부분 도심이나 해안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시골 지역 무시 경향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여긴다. 시골 지역의 인구는 지난 50여 년 동안 꾸준히 감소해 왔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가난하고 인구도 적은 내륙 지역 대신 해외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거나 해안 도시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이들 중 다시 내륙으로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다.
채굴 면허 승인에 대비해 이나시우를 비롯한 소수 강경파는 법정 싸움을 준비를 하고 있다. 카르무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다. 카스텔루 브랑쿠에서 그녀가 참여했던 캠페인 그룹은 이미 분열되었고, 회원들의 절반은 그녀가 사는 마을 위쪽에서 노천 리튬 광산이 허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어쨌든 채굴될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다른 형태의 약속을 받아 내기 위해 협상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바르쿠 지역에도 예전에 주석 광산이 하나 있었는데, 채굴이 꼭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고 말하는 주민들도 있다.
하지만 카르무는 주석 광산 채굴과 리튬 채굴을 비교하는 것은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1960년대 초 폐광 전까지 마을 외곽에 있는 아르제멜라(Argemela) 주석 광산에서 일했다. 그 당시 채굴은 소규모였고 광산도 지하에 있었다. 반면 새로운 리튬 광산은 산 언덕의 절반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정상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거주지 유적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특히 주민들은 화학 물질이 누출돼 인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제지리(Zêzere)강까지 오염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
3년간 고군분투하는 사이 카르무는 이제 지쳐서 거의 항복을 외칠 지경이 되었다. 그녀는 정부가 귀를 틀어막고 있으며, 시민들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파괴가 일어날 겁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죠? 파괴의 대가는 파리와 베를린에 사는 환경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돌아갈 겁니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차량을 몰고 돌아다니면서 만족감을 느끼겠죠.”
지속 가능한 희생
포르투갈의 리튬 호황을 지지하는 이들은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역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작은 희생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장기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풍력 발전 시설이나 태양열 에너지 단지, 수력 발전소 같은 혁신적인 기술 역시 지역 주민들에게 어느 정도씩은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사바나는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개발 예정인 광산이 1억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아 낼 충분한 배터리 팩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예상 수익은 초기 11년의 운영 기간에 15억 5000만 달러, 우리 돈 1조 867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사바나의 CEO인 데이비드 아처(David Archer)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런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 회사가 투자하는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세계 공공 이익(global commons)의 질’을 전반적으로 향상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방정식은 간단하다. 리튬은 배터리이고 배터리는 전기차이며, 전기차는 결국 배기가스의 감소이고 배기가스의 감소는 현재의 기후 비상사태에 덜 취약한 세상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트라소스몽테스 현지에서만 최대 800개에 이르는 신규 일자리가 생겨나 세수가 더욱 증가하고, 포르투갈 경제에 미치는 경기 부양 효과만 4억 3700만 유로, 우리 돈 5938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발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결정”이라고 그는 말한다.
포르투갈 정부도 이에 동의한다. 외국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만든 홍보 영상에서 환경부 장관은 자국을 “에너지 전환 측면에서 세계를 이끄는 나라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 짧은 영상은 현정부의 환경 혁신 정책에 대한 굳은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이윤이 창출되기만 한다면 지역에 미치는 환경적인 영향은 거의 항상 간과된다고 말한다. 캠페인 그룹인 액션에이드(ActionAid)에서 지구 기후 분야를 이끄는 하르지트 싱(Harjeet Singh)은 이런 딜레마 때문에 지난 수십 년 동안 국제 기후 회담이 어려움을 겪어 왔다고 말한다. 경제적 북반구(global north)는 배출량 제한 목표를 더욱 엄격히 만들고 싶어 하는 반면에 경제적 남반구(global south)는 여전히 경제 성장을 원하고 있으며, 기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책임은 당연히 기후 변화를 일으킨 당사자 즉, 선진국들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환경 기술은 재생 에너지 체계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지만, 부정적인 영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피해가 가장 가난하고 가장 소외된 이들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싱의 말이다.
칠레에서는 광업의 피해를 둘러싼 싸움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칠레 중부의 구리 생산지 오이긴스(O’Higgins)에서 나고 자란 지역 활동가인 36세의 라몬 발카자르(Ramón Balcázar)는 대규모 광업이 미칠 수 있는 잠재적인 피해가 어떤 것인지 이미 어린 나이에서부터 깨닫고 있었다. 19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성장 배경에는 토지 사용과 용수권(water rights), 화학적 오염에 대해 오랫동안 이어져 온 논쟁이 있다. 그리고 6년 전 그는 북쪽의 외딴 지역인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로 이주했다. 안데스 산맥에 있는 그 유명한 소금 평원 가장자리의 마을에서는 저 멀리 햇볕에 달궈진 하얀 결정과 뿌연 입자들로 뒤덮인 거친 표면이 보인다. 구름 한 점 없는 이 거대한 사막 하늘 아래에서 그는 마침내 자유롭게 숨 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몰랐지만, 사실 그는 또 하나의 전장으로 걸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산 페드로는 북쪽 볼리비아에서부터 아르헨티나 서부까지 펼쳐진 광산 지대의 최서단부에 위치한다. 캘리포니아의 데스밸리(Death Valley)보다 50배 건조한 이 지역의 바싹 마른 표면 아래에는 풍부한 광물들이 가득한 지하 세계가 감춰져 있다. 역사적으로 광업 회사들은 수익성이 좋은 이곳의 구리와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요오드와 질산염까지 모조리 채굴해 왔다. 일부의 추정에 의하면 이곳에는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절반가량이 묻혀 있다. 2010년대 중반에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소문이 모든 광산 마을에 번지던 무렵 신규 면허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고, 투자가 이뤄지면서 채굴 시설도 확장했다. 이 지역은 지금 ‘리튬 삼각지(lithium triangle)’로 알려져 있다.
광업 회사들은 현재의 운영 방식이 지속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멕시코시티의 한 대학원에서 공부 중인 발카자르는 이런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일축한다. 대규모 리튬 채굴이 아타카마의 연약한 자연 생태계에 미칠 영향이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포르투갈과 다르게 이곳의 리튬은 소금물 안에 녹아 있어 다이너마이트나 굴착기가 사용되지 않고, 보기 흉할 정도로 거대한 구덩이를 남길 위험은 없다. 대신 이곳에는 수백만 리터의 소금물이 고인 거대한 웅덩이들이 마치 염전처럼 깔끔하게 구획된 모습으로 늘어서 있다.
이곳의 소금물은 지하에서 퍼 올린 것으로 햇볕에 노출되면 증발한다. 발카자르와 인근 주민들의 두려움은 소금물을 퍼 올리는 동굴과 지하 대수층에 집중되어 있다. 그들은 이 지점에서 재앙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소금물이 매장된 지층의 위쪽에서 별도로 발견되는 담수층을 오염시킬 위험이 있어서다.
발카자르는 지역 생태에 미치는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 모인 전문 과학자들 그리고 의식 있는 시민들의 네트워크인 ‘안데스 소금 평원의 다국적 관측소(Plurinational Observatory of Andean Salt Flats)’와 함께 일하고 있다. 목초지의 축소, 작물의 흉작, 동식물군(群)의 멸종 등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증거들은 모두 사막화의 과정을 가리키는데, 리튬 추출로 인해 그 정도가 더 심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거대하면서도 복잡한 수문학(hydrology) 체계의 교란으로 인한 영향은 하루 이틀 관찰하는 것으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발카자르는 말했다. “하지만 그 두 가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칠레 법원은 최근 리튬 채굴 기업인 SQM의 사업 확장 계획을 환경 문제를 이유로 저지했지만, 관계 당국의 지원을 얻으려는 거의 모든 시도는 실패해 왔다. 칠레에서 특정한 지역과 자연환경은 언제든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희생될 수 있다고 발카자르는 지적한다.
전기차는 깨끗하지 않다
광업 회사들이 리튬 매장지를 찾기 위해 전 세계 사막과 시골을 탐사하는 동안, 채굴 팀을 파견하지 않고도 배터리용 리튬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또 다른 연구가 병행되고 있다. 독일 작센주 시골 들판에 둘러싸인 산업 단지에서 크리스티안 하니쉬(Christian Hanisch)는 재활용을 통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땅에서 천연 리튬을 추출하는 대신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지난 10년 동안 50만 톤의 리튬이 추출되고 정제됐는데, 이들 중 상당량은 현재 버려진 상태로 녹슬고 있는 휴대 전화와 노트북 안에 들어 있다.
그는 브라운슈바이크 공과 대학 박사 과정 중에 뒤젠펠트(Duesenfeld)라는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이 회사 건물 2층에 있 는 평범한 사무실에서 만난 하니쉬는 물류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일상 기기에 들어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은 데다 다루는 것도 성가시기 때문에, 하니쉬는 편의성을 위해 중고 전기차 배터리에 투자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중고 전기차 한 대에는 재사용할 수 있는 리튬이 약 8킬로그램 들어 있다. 그는 창밖을 가리켰는데, 공장 밖 아스팔트 위에는 최근 배송된 샘플 몇 개가 쌓여 있었다. 샘플 하나의 크기는 두툼한 매트리스 정도로 보였다.
배터리를 감싸고 있는 무거운 플라스틱 케이스를 제거하는 작업은 비교적 쉽다. 문제는 배터리 셀 안쪽에 있는 리튬을 분리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배터리 셀을 섭씨 300도 수준으로 가열해서 리튬을 증발시키거나, 산(acid)이나 기타 환원제(reducing agent)를 사용해 리튬이 스며 나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리튬은 쉽게 폭발하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휘발성이 아주 강하다. 또 전도율을 높이기 위해 첨가한 다른 금속과 쉽게 반응하기 때문에 두 가지 방식 모두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시장 애널리스트들은 향후 10년 동안 세계 리튬 재활용 산업의 가치가 지금보다 12배 증가하고 2030년이 되면 180억 달러, 우리 돈 22조 원 이상이 될 정도로 잠재력이 크다고 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리튬 재활용이라는 혁신적인 방식을 둘러싼 경쟁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뒤젠펠트 외에도 초기 단계의 리튬 재활용 업체가 독일에만 최소 세 곳이다. 국 경을 넘어서 벨기에로 넘어가면, 제련 회사에서 도시 폐기물 재활용 기업으로 변신한 유미코아(Umicore)가 있다. 자체 기술을 개발 중인 유미코아는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유럽 내 또 다른 유력 경쟁자는 프랑스의 SNAM이다.
하니쉬는 뒤젠펠트의 기술이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자신한다. 뒤젠펠트의 접근법은 고도로 에너지 집약적인 제련이나 독성이 심각한 침출 방식이 아니라 기계적인 분리 방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다. 이 기법은 배터리의 부품을 물리적으로 분해한 다음, 자력과 증류법을 결합해 남아 있는 리튬을 추출하는 방식을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