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금융위기
2화

스트레스 테스트를 대비해야 한다

진짜 문제는 급격한 조정을 소화할 현재 금융시스템의 맷집이다. 

롤러코스터와 금융시장 사이에는 유사한 점들이 아주 많다. 둘 다 올라갈 때가 있고, 역시 둘 다 내려갈 때가 있다. 산처럼 높이 올라가고 나면, 뱃속이 요동거릴 정도로 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정점에 다다르고 나면, 거기에 올라탄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과연 여기에서 살아서 내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최근에 주식시장이 혼란을 겪으면서 위와 같은 놀이공원에 대한 비유들이 다시 흘러나왔다. 주식투자자들은 끔찍한 내리막에 대비해야 하는가? 그리고 만약 증시가 곤두박질친다면, 그 아래에서 굉음을 내고 있는 구조물(시장을 지탱하는 인프라)은 과연 굳건하게 버틸 것인가? 2007-09년의 금융 위기 이후로 금융의 구조는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놀이공원에 롤러코스터를 새로 설치하면 그것이 과연 안전한지를 검증하기 위하여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위기 이후의 세계 시장은 이제 자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스트레스 테스트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롤러코스터에는 마네킹을 태워서 테스트하지만, 금융 시장에는 실제 사람들이 탑승해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잠시나마 아찔한 하락세로부터 시장이 회복되던 거의 2년 동안, 금융시장에서는 즐거운 비명들이 난무했다. 파산한 렌터카 업체인 허츠(Hertz)의 주가가 오르고, 비디오게임 판매 업체인 게임스탑(GameStop)의 주식으로 쇼트 스퀴즈(short squeeze)[1]상황이 만들어지고, 장난스러운 도지코인(dogecoin)을 포함한 암호화폐에 판돈이 몰리기도 했다. 시장이 매우 활황세를 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승리를 거두었다. 2020년 2월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연준)가 금리를 0으로 인하하고 국채를 비롯한 자산들을 매입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특히 기술 대기업 종목 위주의 주식들이 엄청난 탄력을 받았다. S&P 500 지수는 2021년에 261일의 거래일 중에서 70일 동안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보다 나은 기록을 달성했던 연도는 1995년이 유일했다.

지금은 당시처럼 그렇게 웃음소리가 크지 않다. 지난 1월 27일에 S&P 500 지수는 올해 초 최고치에서 10퍼센트를 밑도는 조정 영역에서 마감했다.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NASDAQ) 종합지수는 지난해 11월의 사상 최고치에서 9.8퍼센트 하락했다. 변동성이 다시 맹렬한 기세로 살아났다. 예를 들자면 지난 1월 24일, S&P 500 지수는 뚜렷한 요인이 없는 상태에서 거의 4퍼센트 떨어졌다가 다시 반등하여 0.3퍼센트 상승하면서 마감했다. (그러나 다음날 다시 곤두박질쳤다.)

(표1) 들썩이는 지수 미국, 주식시장의 가치가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하는 비율 (단위: %) (민트) 개인 (네이비) 기관 출처: 예일대학교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
금융 버블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예일대학교의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 교수는 지금의 상황이 1929년 대공황 직전의 잘 나가던 시절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주식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들이 폭발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지금이 비슷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쉴러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증시가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하는 개인투자자들의 비율은 닷컴 버블이 터지기 직전인 세기 전환기 이후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표1 참조) 그러나 동시에 주가가 하락하고 나면 다시 반등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비율 역시 매우 높았다. 시장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생각과 기회상실에 대한 두려움(FOMO, fear of missing out)이 혼재된 모순 역시 1929년 당시의 역학관계를 연상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시장의 과대평가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10년 넘게 돈이 거의 공짜로 풀렸다는 점이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금리를 대폭 인하했고, 이후에는 팬데믹에 맞서서 새로운 차원의 금융 지원과 재정 지원으로 대응했다. 이는 자산 가격의 상승을 부추겼다.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2]로 평가한 S&P 500의 평균 주가는 지난 1월 초에 수익의 40배에 달할 정도로 아주 높았는데, 이보다 높았던 경우는 2000년에 주식시장이 붕괴하기 직전의 기간이 유일하다. (표2 참조)
(표2) 상당히 비싼 가격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을 적용한 S&P 500 지수 원문의 도표에는 단위가 퍼센트(%)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은 주가(가격)를 순이익(역시 가격)으로 나눈 것이기 때문에, 주가수익률(PER)처럼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의 단위는 그냥 숫자이다. 출처: 예일대학교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 * 직전 10년의 물가조정 평균 순이익으로 계산한 수치
이처럼 거품이 낀 주가 덕분에 자본조달의 급류가 이어졌다. 2021년에 이뤄진 기업공개(IPO)들에서는 역대 최고치인 6000억 달러를 조성했다. 사모펀드 기업들이 관리하는 자본금 항아리에는 돈이 넘쳐났다. 주가가 금융자산만 급증시킨 것은 아니었다. 암호화폐의 가격은 훨씬 더 크게 뛰었다. 미국의 주택 가격은 2020년 초 이후로 29퍼센트 상승했다.

“모든 자산들의 가격이 현재처럼 된 이유는 유동성과 금리 때문입니다.”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의 그렉 젠슨(Greg Jensen)의 말이다. 공급망이 제약된 가운데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은 인플레이션과 품귀 현상이었다. 이로 인해 정책입안자들은 경로를 변경해서 유동성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최근 10월까지만 하더라도, 투자자들은 연준이 2022년에 금리를 한 차례만 0.25퍼센트 인상할 거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현재의 예상치는 다섯 번이며, 연준이 올해 말에 보유한 채권을 매각하는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에 착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젠슨은 현재의 주식시장이 이러한 현실을 “따라잡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조정(correction)이, 아마도 상당히 커다란 조정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그러한 요동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의 부총재인 존 컨리프 경(Sir Jon Cunliffe)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은 조정이 가능해야 하며, 일부 사람들은 돈을 잃을 것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과정에서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과연 다른 무언가에 연쇄반응을 일으키느냐, 아니면 그러한 조정이 흡수될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조정을 흡수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원합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커다란 조정은 2020년 3월이었는데, 그것은 기이한 조정이었다. 팬데믹이라는 외인성 충격에 의해 촉발되었기 때문에, 정책입안자들의 개입을 정당화하기 쉬웠다. 반면에 내생적인 금융 리스크에 의해 촉발된 마지막 폭락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였다. 그 이후로 금융 시스템은 기술과 규제의 측면에서 이례적으로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겪었는데, 이는 시스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따라서 이처럼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조정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알기란 쉽지 않다.

금융의 지형은 세 가지의 주요 영역에서 바뀌었다. 그것은 바로 금융 자산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어떤 기업들이 시장을 중개하고 있는지, 그리고 거래가 어떻게 청산하느냐 하는 것이다. 먼저 자산 소유자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현재 은행의 장부에 기록되어 있는 자산의 비중은 예전보다 더 적다.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에 은행들은 115조 달러 어치의 전 세계 금융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연기금이나 보험사, 대체자산 운용사와 같은 다른 유형의 금융기관들도 거의 비슷한 규모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비은행권이 보유한 몫이 훨씬 더 빠르게 증가했다. 2020년 말이 되면 그들은 모두 227조 달러 어치의 자산을 보유하게 되는데, 이는 은행권이 보유한 것보다 26퍼센트 많은 수치이다. 금융위기 이전에 미국 주택담보대출의 약 80퍼센트는 은행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은행들은 해당 대출채권의 상당수를 그대로 갖고 있었다.) 현재는 절반 정도가 은행권 밖에서 나오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투자자들에게 판매된다.



은행 시스템 이후의 세계


비은행권의 구성도 바뀌었다. 과거에 개인 투자자들은 금융 자산을 연기금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유했다. 1990년대 초에 미국 가계 재산의 약 4분의 1은 확정급여형(DB) 연금에 대한 청구권이었으며, 직접 보유한 주식의 비중은 10퍼센트에 불과했다. 현재는 가계 재산에서 직접 보유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27퍼센트로 사상 최고 비율이다.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5퍼센트에 불과하다.

금융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개인들이 투자에 들어가고 나오는 게 오늘날에 비해서 훨씬 더 어려웠다. 요즘에는 수수료가 저렴한 개인 투자자용 중개업체들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활용해서 주식이나 채권을 아주 쉽게 매매하고 있다. 이처럼 거래가 쉬워졌기 때문에 일반 소시민들도 투자 산업에 뛰어들기가 훨씬 더 간편해졌다. 그러나 투자 산업에는 은행권이 예금보험과 중앙은행의 지원을 통해서 누리는 안전판(backstop)을 갖고 있지 않다.

다음으로 고려해 볼 것은 중개업체들이다. 은행권의 트레이딩 데스크(trading desk)는 자동으로 매수 및 매도 주문을 처리하는 최신 기술의 알고리즘을 갖춘 시타델시큐리티(Citadel Securities)와 같은 전문적인 고빈도 트레이딩(HFT, 초단타 매매)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오랫동안 밀려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국채 및 회사채 중개 업무에서도 은행들은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다. 은행들이 거래하는 자산을 보유하는 걸 금지하는 볼커 룰(Volcker Rule)과 같은 새로운 법안을 포함하여 규제가 바뀌고 기술도 발전했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가 발행한 미수채권[3](outstanding bond) 가운데 증권 중개업체들이 보유한 비율은 2008년에 10퍼센트였으나 2019년에는 불과 3퍼센트로 떨어졌다. 중개업체들이 보유한 회사채의 비율은 2007년의 8퍼센트에서 현재는 1퍼센트 미만으로 훨씬 더 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서 문제가 발행했을 때 이들 업체들이 중개자의 역할을 수행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는 또한 펀드가 실패했을 때의 영향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그래머시펀즈매니지먼트(Gramercy Funds Management)의 로버트 코닉스버거(Robert Koenigsberger)는 이렇게 말한다. “25년 전만 하더라도, 만약 어떤 은행에게 마진콜(margin call)[4]을 행사할 수 없는 고객이 있었다면, 해당 은행은 돈을 주고라도 그런 지위를 확보해서 대차대조표 안으로 그로 인한 리스크를 흡수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은행권에는 그러한 권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도’라는 표시만 내걸리면 모두가 그걸 보게 되고, 이는 시장을 더욱 침체시킬 뿐입니다.”

이들이 가진 중개자로서의 역량이 줄어든 것과 동시에 채권의 공급량은 증가했는데, 부분적으로는 정부의 공급량이 쇄도했기 때문이고, 또 부분적으로는 기업들이 은행 대출금보다는 채권 발행에 더욱 의존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 등이 만든 상장지수펀드(ETF)의 성장세에 힘입어서 채권 거래에 대한 수요도 늘어났다.

예전에는 채권을 조금씩 사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지금은 ETF 덕분에 훨씬 더 쉬워졌다. 블랙록이 개인들에게 제공하는 고정수익형 ETF 가운데에는 8000여 개의 다양한 채권들로 구성된 상품도 있다. 만약 ETF 펀드의 유닛(unit, 판매 단위)에 대한 수요가 오르거나 내려간다면, 해당 펀드를 구성하고 있는 채권들에 대한 적정가치보다 높거나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시장조성자(market-maker)들로 하여금 비슷한 채권들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매입하여 또 다른 유닛을 만들거나, 또는 그런 포트폴리오를 매각하여 없애게끔 유도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부분의 활동들은 자동화되어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ETF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채권들에 비해서 훨씬 더 빠르게 거래된다. 변동성이 시장을 뒤흔들었던 2020년 3월 당시, 블랙록이 취급하는 투자적격(investment-grade) 등급의 회사채 ETF 가운데 최대 규모인 펀드는 하루에 9만회 거래되었던 반면, 해당 펀드를 구성하고 있는 최상위 5개의 종목들은 불과 37회 거래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런 특성이 채권의 가격을 더욱 정확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또한 채권 가격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얼마나 변동성이 심한지, 그리고 그것이 수요를 폭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신흥시장의 채권 펀드와 같은 투자에서 훨씬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면 유동성이 말라버린다. 만약 펀드들이 상환을 위한 현금이 필요해진다면, 그들은 신흥시장의 채권보다는 미국 국채와 같은 가장 유동성이 큰 자산들을 매각해야 한다. 2020년 3월에도 이러한 역학관계가 미국 국채 시장의 유동성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청산 계층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과거에는 은행들이 파생금융 계약이나 금리 스와프(interest-rate swap)와 같은 복잡한 거래를 통해서 청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금융위기 당시에는 시장 전체가 아니라 각 은행들 사이에서만 이러한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러한 각각의 처분 거래가 다른 투자자들과의 거래를 제한하는지 아니면 더욱 가속화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상대 은행들이 파산할 것을 우려한 은행들은 서로에 대한 대출을 중단했다.

국제적인 규제당국들은 광범위한 참가자들 사이에 거래를 체결하는 중앙청산소(CCP)를 통해 더욱 많은 파생상품들을 거래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결정했다. 포지션(position)[5]은 투명하게 처리되어 상쇄된다. 참가자들이 청산소에 들어가려면 거래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개시 증거금(initial margin)”을 넣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시장이 해당 거래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개시 증거금이 올라갈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에는 몇 군데의 주요한 청산소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대부분의 금리 스와프를 청산하는 런던의 LCH, 신용부도스와프(credit default swap)를 청산하는 애틀랜타의 ICE, 그리고 미국의 주식을 처분 및 청산하는 뉴욕의 DTCC가 있다.

요약하자면, 이러한 변화들은 은행권의 역할을 감소시켰다. 은행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적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개 역할도 작아졌다. 반면에 청산은 현재 중앙집중화된 기관들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 많은 측면에서 이는 은행들의 실패가 전체 경제를 뒤흔들어서 차입금의 비율이 높아지고 자산가치의 변동에 노출되었던 낡은 체제에 대한 개선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그 자체로 잠재적인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한 가지 리스크는 은행권의 차입금 비율이 떨어지긴 했지만, 보험사에서부터 헤지펀드에 이르기까지의 비은행권에서는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예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패밀리 오피스(family office)인 아르케고스캐피털매니지먼트(Archegos Capital Management)가 2021년 3월에 파산한 사건이다. 이 사례는 또한 가장 위험한 리스크를 비은행권이 감수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은행권이 여전히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르케고스가 파산하면서 은행들이 10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기 때문인데, 손해를 입은 은행들의 대부분은 이 업체의 프라임 브로커(prime broker)[6] 역할을 했던 곳이었다.
(표3) 서류상 이익 미국, GDP 대비 가계 순자산 비율 (단위: %) 출처: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은행들의 역할이 줄어든 이런 최첨단 금융 시스템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과연 얼마나 잘 견딜 수 있을까? 최근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돌아보면 몇 가지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연준이 국채 보유량을 줄이기 시작했던 2019년에 은행들과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현금으로 교환하는 환매(repurchase) 시장에서 하룻밤 사이에 금리가 10퍼센트나 치솟았다. 2020년 3월에는 다른 곳에서는 현금화가 어려운 비유동성(illiquidity)에 겁을 먹은 데다 현금이 절실했던 수많은 매도인들이 모두 한꺼번에 채권을 처분하려고 시도하면서 국채 시장이 발작 상태에 빠졌다. 알리안츠(Allianz) 보험의 수석경제고문인 모하메드 엘-에리안(Mohamed El-Erian)과 같은 관찰자들은 게임스탑(GameStop)의 쇼트 스퀴즈(short squeeze) 사태로 인해 공개적으로 쇼트 포지션(short position, 공매도 측)이었던 헤지펀드들이 자사의 포트폴리오를 처분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면서 S&P 500 자산의 5퍼센트 가량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처음의 두 가지 사례에서는 결국 연준이 자산을 매입하고 유동성을 창출하면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게임스탑의 사례에서는, 앞서 소개한 청산 시스템들이 로빈후드(Robinhood)를 비롯한 중개업체들에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캐피털 콜(capital call)[6]을 요구하면서 이들 업체는 거래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고 결국엔 쇼트 스퀴즈가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만약 쇼트 스퀴즈가 계속되도록 놔두었다면, 상당수의 펀드들이 파산했을 것이며, 그들은 게임스탑의 주식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을 것이고, 개별 투자자들을 상대하는 중개업체들은 가격이 얼마이든 필요한 주식을 매입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렸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 역시 파산할 수도 있었다.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면 거대한 혼란이 발생했을 것이다. 개인을 비롯한 투자자들이 평소의 습관대로 하락장에서 매입하지 않으면서 시장은 계속해서 하락했을 것이다. 시장조성 능력이 감소하면서 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변동할 것이다. 다수의 헤지펀드들에게는 마진콜 요청이 전달될 테지만, 그들 중 일부는 예상보다 차입금의 규모가 훨씬 더 커서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채권형 펀드와 주식형 펀드들은 투자자들이 줄줄이 빠져나가면서 고통을 겪을 것이다. 자산운용사들은 고객들의 상환 요청을 처리하기 위하여 미국 국채나 우량주식과 같은 유동성이 뛰어난 자산을 매각하게 될 것이고, 이 때문에 펀드의 수익률은 뛰어오르고 주가는 더욱 하락할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도 주식 중개 앱을 활용해서 투자금을 회수하려 할 것이다.

설령 은행권이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사건들은 경제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모하메드 엘-에리안은 이렇게 말한다. “자산의 소유권이 상당히 넓어졌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단기적으로는 가계 금융의 불안정을 증폭시킬 수도 있습니다. 소득이 적고 자산의 완충 여력이 적은 사람들일수록, 이러한 변동성의 영향을 받는 자산을 더욱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움직임이 되살아 날 수도 있다. 1990년대에는 나스닥이 활황세를 타면서 사람들이 쇼핑을 하러 다녔다. 갑자기 부유해졌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러한 상황이 일부 되살아난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암호화폐와 인기 종목들에서 그런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극단적인 상황이 되면 변동성이 큰 시장은 차입 규모가 큰 투자자들이나 펀드의 파산을 촉발시켜서 주로 작고 연약한 은행이나 보험기금들로 구성된 청산소의 이용자들을 없앨 것이고, 이는 결국 청산소에 있는 채무불이행 펀드들의 소멸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모든 은행들에게 마진콜이 쇄도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다른 참가자들을 무너트렸던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약해진다면, 은행들 역시 이러한 마진콜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고, 해당하는 청산소마저도 위험한 상태가 될 수 있다. 잉글랜드은행의 부총재를 지냈던 폴 터커(Paul Tucker)는 참가자들의 채무불이행을 견디지 못하는 청산소들이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고통을 전이시키는 파괴적인 메커니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두 개의 페달을 한꺼번에


이러한 시나리오는 추측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개입할 것이다. 시장 기반의 금융 시스템이 가진 장점은 자산을 매입하는 개입만으로도 기능 장애를 누그러트리기에 충분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안정이라는 목표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책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긴다면 중앙은행들로서는 개입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현재 많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훨씬 더 상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존 컨리프 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마치 발 하나로 가속 페달을 밟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브레이크 페달까지 밟으려고 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어려울 것입니다.”

새로운 금융 시스템이 가진 커다란 취약점은 그것이 혼란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 많은 참가자들이 시장의 변동에 노출될수록, 그러한 변동이 잠재적으로 더욱 격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은행들만 놓고 보면 확실히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는 훨씬 더 회복력을 갖추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형성된 시장 기반의 최첨단 금융 시스템이 과연 은행들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컸던 15년 전에 비해서 더욱 견고한 지에 대해서는 알기가 어렵다. 아직까지 롤러코스터에 타고 있는 사람들도 머지않아서 그 답을 알게 될 것이다.
[1]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공매도를 했으나, 이후에 오히려 주가 상승으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하여 해당 주식을 집중적으로 다시 사들이는 것
[2]
S&P 500의 주가를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직전 10년 동안의 평균 수익으로 나눈 값
[3]
일반적으로 미국의 국채 
[4]
선물 거래 등에서 가격 변화에 따른 추가 증거금 납부를 요구하는 것
[5]
개별 투자자가 가진 자산의 현재 형태
[6]
목표한 투자금을 전부 조성한 이후에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가 필요할 때마다 약정된 투자금을 납입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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