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2)
상당히 비싼 가격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을 적용한 S&P 500 지수 원문의 도표에는 단위가 퍼센트(%)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은 주가(가격)를 순이익(역시 가격)으로 나눈 것이기 때문에, 주가수익률(PER)처럼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의 단위는 그냥 숫자이다.
출처: 예일대학교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
* 직전 10년의 물가조정 평균 순이익으로 계산한 수치
이처럼 거품이 낀 주가 덕분에 자본조달의 급류가 이어졌다. 2021년에 이뤄진 기업공개(IPO)들에서는 역대 최고치인 6000억 달러를 조성했다. 사모펀드 기업들이 관리하는 자본금 항아리에는 돈이 넘쳐났다. 주가가 금융자산만 급증시킨 것은 아니었다. 암호화폐의 가격은 훨씬 더 크게 뛰었다. 미국의 주택 가격은 2020년 초 이후로 29퍼센트 상승했다.
“모든 자산들의 가격이 현재처럼 된 이유는 유동성과 금리 때문입니다.”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의 그렉 젠슨(Greg Jensen)의 말이다. 공급망이 제약된 가운데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은 인플레이션과 품귀 현상이었다. 이로 인해 정책입안자들은 경로를 변경해서 유동성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최근 10월까지만 하더라도, 투자자들은 연준이 2022년에 금리를 한 차례만 0.25퍼센트 인상할 거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현재의 예상치는 다섯 번이며, 연준이 올해 말에 보유한 채권을 매각하는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에 착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젠슨은 현재의 주식시장이 이러한 현실을 “따라잡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조정(correction)이, 아마도 상당히 커다란 조정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그러한 요동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의 부총재인 존 컨리프 경(Sir Jon Cunliffe)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은 조정이 가능해야 하며, 일부 사람들은 돈을 잃을 것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과정에서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과연 다른 무언가에 연쇄반응을 일으키느냐, 아니면 그러한 조정이 흡수될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조정을 흡수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원합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커다란 조정은 2020년 3월이었는데, 그것은 기이한 조정이었다. 팬데믹이라는 외인성 충격에 의해 촉발되었기 때문에, 정책입안자들의 개입을 정당화하기 쉬웠다. 반면에 내생적인 금융 리스크에 의해 촉발된 마지막 폭락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였다. 그 이후로 금융 시스템은 기술과 규제의 측면에서 이례적으로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겪었는데, 이는 시스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따라서 이처럼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조정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알기란 쉽지 않다.
금융의 지형은 세 가지의 주요 영역에서 바뀌었다. 그것은 바로 금융 자산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어떤 기업들이 시장을 중개하고 있는지, 그리고 거래가 어떻게 청산하느냐 하는 것이다. 먼저 자산 소유자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현재 은행의 장부에 기록되어 있는 자산의 비중은 예전보다 더 적다.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에 은행들은 115조 달러 어치의 전 세계 금융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연기금이나 보험사, 대체자산 운용사와 같은 다른 유형의 금융기관들도 거의 비슷한 규모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비은행권이 보유한 몫이 훨씬 더 빠르게 증가했다. 2020년 말이 되면 그들은 모두 227조 달러 어치의 자산을 보유하게 되는데, 이는 은행권이 보유한 것보다 26퍼센트 많은 수치이다. 금융위기 이전에 미국 주택담보대출의 약 80퍼센트는 은행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은행들은 해당 대출채권의 상당수를 그대로 갖고 있었다.) 현재는 절반 정도가 은행권 밖에서 나오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투자자들에게 판매된다.
은행 시스템 이후의 세계
비은행권의 구성도 바뀌었다. 과거에 개인 투자자들은 금융 자산을 연기금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유했다. 1990년대 초에 미국 가계 재산의 약 4분의 1은 확정급여형(DB) 연금에 대한 청구권이었으며, 직접 보유한 주식의 비중은 10퍼센트에 불과했다. 현재는 가계 재산에서 직접 보유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27퍼센트로 사상 최고 비율이다.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5퍼센트에 불과하다.
금융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개인들이 투자에 들어가고 나오는 게 오늘날에 비해서 훨씬 더 어려웠다. 요즘에는 수수료가 저렴한 개인 투자자용 중개업체들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활용해서 주식이나 채권을 아주 쉽게 매매하고 있다. 이처럼 거래가 쉬워졌기 때문에 일반 소시민들도 투자 산업에 뛰어들기가 훨씬 더 간편해졌다. 그러나 투자 산업에는 은행권이 예금보험과 중앙은행의 지원을 통해서 누리는 안전판(backstop)을 갖고 있지 않다.
다음으로 고려해 볼 것은 중개업체들이다. 은행권의 트레이딩 데스크(trading desk)는 자동으로 매수 및 매도 주문을 처리하는 최신 기술의 알고리즘을 갖춘 시타델시큐리티(Citadel Securities)와 같은 전문적인 고빈도 트레이딩(HFT, 초단타 매매)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오랫동안 밀려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국채 및 회사채 중개 업무에서도 은행들은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다. 은행들이 거래하는 자산을 보유하는 걸 금지하는 볼커 룰(Volcker Rule)과 같은 새로운 법안을 포함하여 규제가 바뀌고 기술도 발전했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가 발행한 미수채권
[3](outstanding bond)
가운데 증권 중개업체들이 보유한 비율은 2008년에 10퍼센트였으나 2019년에는 불과 3퍼센트로 떨어졌다. 중개업체들이 보유한 회사채의 비율은 2007년의 8퍼센트에서 현재는 1퍼센트 미만으로 훨씬 더 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서 문제가 발행했을 때 이들 업체들이 중개자의 역할을 수행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는 또한 펀드가 실패했을 때의 영향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그래머시펀즈매니지먼트(Gramercy Funds Management)의 로버트 코닉스버거(Robert Koenigsberger)는 이렇게 말한다. “25년 전만 하더라도, 만약 어떤 은행에게 마진콜(margin call)
[4]을 행사할 수 없는 고객이 있었다면, 해당 은행은 돈을 주고라도 그런 지위를 확보해서 대차대조표 안으로 그로 인한 리스크를 흡수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은행권에는 그러한 권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도’라는 표시만 내걸리면 모두가 그걸 보게 되고, 이는 시장을 더욱 침체시킬 뿐입니다.”
이들이 가진 중개자로서의 역량이 줄어든 것과 동시에 채권의 공급량은 증가했는데, 부분적으로는 정부의 공급량이 쇄도했기 때문이고, 또 부분적으로는 기업들이 은행 대출금보다는 채권 발행에 더욱 의존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 등이 만든 상장지수펀드(ETF)의 성장세에 힘입어서 채권 거래에 대한 수요도 늘어났다.
예전에는 채권을 조금씩 사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지금은 ETF 덕분에 훨씬 더 쉬워졌다. 블랙록이 개인들에게 제공하는 고정수익형 ETF 가운데에는 8000여 개의 다양한 채권들로 구성된 상품도 있다. 만약 ETF 펀드의 유닛(unit, 판매 단위)에 대한 수요가 오르거나 내려간다면, 해당 펀드를 구성하고 있는 채권들에 대한 적정가치보다 높거나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시장조성자(market-maker)들로 하여금 비슷한 채권들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매입하여 또 다른 유닛을 만들거나, 또는 그런 포트폴리오를 매각하여 없애게끔 유도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부분의 활동들은 자동화되어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ETF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채권들에 비해서 훨씬 더 빠르게 거래된다. 변동성이 시장을 뒤흔들었던 2020년 3월 당시, 블랙록이 취급하는 투자적격(investment-grade) 등급의 회사채 ETF 가운데 최대 규모인 펀드는 하루에 9만회 거래되었던 반면, 해당 펀드를 구성하고 있는 최상위 5개의 종목들은 불과 37회 거래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런 특성이 채권의 가격을 더욱 정확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또한 채권 가격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얼마나 변동성이 심한지, 그리고 그것이 수요를 폭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신흥시장의 채권 펀드와 같은 투자에서 훨씬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면 유동성이 말라버린다. 만약 펀드들이 상환을 위한 현금이 필요해진다면, 그들은 신흥시장의 채권보다는 미국 국채와 같은 가장 유동성이 큰 자산들을 매각해야 한다. 2020년 3월에도 이러한 역학관계가 미국 국채 시장의 유동성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