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일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에서 OSCE가 보고한 양측의 휴전 협정 위반 사례
(네이비) 폭발 (민트) 기타 위반
2021년 12월 3일, 미국 정보기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다방면” 침공을 계획 중이라며 경고
2022년 1월 14일, 미국, 러시아가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위장 작전을 준비한다며 경고
1월 23일, 영국, 러시아가 키예프의 정권 교체를 획책하고 있다며 경고
2월 10일, 러시아와 벨라루스 합동 군사훈련 개시
2월 12일, 미국,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 직원들에 대한 철수 명령
2월 17일, 루한스크의 유치원이 포격 피해를 입음
2월 18일,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 수천 명의 인파가 탈출
출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버건디) 폭발
(머스터드) 기타 휴전 협정 위반
출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2022년 2월 22일 현재
그는 이렇게 하면서 우크라이나인들을 향해 경멸을 퍼부었다. 그들이 러시아의 우정을 배신한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이며, 무분별하게 외국인 행세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우크라이나가 공산주의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공산주의가 그들에게 제공한 영토들을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영 방송사들은 이러한 그의 주장을 설명하는 우크라이나의 지도를 보여주었는데, 여기에서는 그러한 “선물”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고 그들의 영토는 키예프 남쪽에 있는 노란색의 작은 점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주간지 제르칼로티즈니아(Дзеркало тижня)의 율리아 모스토바야(Yulia Mostovaya) 에디터가 보기에, 첩보기관에서 냉정해지는 기술을 훈련 받은 남성이 이렇게 감정을 표출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푸틴의 연설을 본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나토(NATO)나 미국에 대해서 말할 때는 감정을 전혀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대해 말할 때의 그는 격렬한 증오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걸 싫어합니다.”
그렇게 어조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발언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메시지는 그가 자신의 적들을 모두 하나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위협은 서방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있는 서방의 하수인들을 쫓아냄으로써 그들을 문전에서 밀어내기 위한 것이다. (그의 생각에) 우크라이나는 미국인들이 러시아를 무너트리기 위해 조종하는 적대국이었다. 상황을 그런 방식으로 묘사해야 하는 이유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인들보다는 미국인들을 싫어하도록 만드는 게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연설이 있기 전에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된 러시아 연방의 안전보장회의(SCRF)는 공포와 굴욕과 고독의 분위기가 합쳐진 기괴한 풍경이었는데, 여기에서 푸틴의 경호원 출신으로 현재는 러시아의 국가친위대장으로 수십만의 병력들을 통솔하고 있는 빅토로 졸로토프(Viktor Zolotov)는 푸틴의 입장을 간단히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은 미국과의 국경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곳의 주인이고,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수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온갖 무기들로 전력을 키우고 있으며 핵무기를 개발하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무기들은 결국 미래에 우리에게 피해를 입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의 공화국들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를 지켜내야 합니다.”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직후에 잠시 핵무기를 갖고 있었던 우크라이나가 다시 한 번 핵보유국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근거가 없는 것이지만, 전쟁을 두려워하는 수백만의 러시아인들에게는 나름의 명분이 될 수 있다.
푸틴에게는 그러한 속임수가 필요하다. 그가 통치하는 러시아 사회는 현재 전례 없이 분열되어 있다. 1, 2년 전만 하더라도 정치학자인 키릴 로고프(Kirill Rogov)가 쓴 다음과 같은 글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 같은 수많은 사람들도 이제는 그의 주장에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그곳의 인프라 파괴로 인해 나토가 입게 될 피해보다는 러시아와 그들의 경제에 더욱 커다란 피해를 입힐 것이다.”
고요 뒤의 폭풍
이 연설이 러시아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면, 우크라이나의 일부에서는 그것을 그저 그런 것으로 받아들였다. 8년 동안 이어진 갈등은 전쟁에 대해서만 무감각할 정도로 친숙하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거의 4달 동안 무자비하게 전력 증강이 계속되면서, 진정한 공황상태를 야기하려면 충격적일 정도로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국경으로 병력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는 징후를 포착했다. 거의 동시에 인력을 통해서든 통신 감청에 의한 것이든, 그들은 푸틴이 수십 년 동안 구축한 유럽 최대의 군사력으로 이웃 국가를 침공하려 한다는 의도의 계획안을 입수했다. CIA의 빌 번스(Bill Burns) 국장이 11월 초에 모스크바로 날아가서 푸틴에게 그의 계획이 간파되었다고 말했지만, 전력 증강은 계속되었다.
2월 중순에 러시아의 전력 대부분이 우크라이나를 타격할 수 있는 거리 내에 집결하면서 위기가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 크렘린은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지역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있으며 무력으로 그곳을 장악하려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돈바스 지역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러시아 영토에 대한 포격이 있었으며, 우크라이나가 갑작스럽게 공격한다고 주장하는 등 일련의 도발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 어느 특정한 사건 하나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경보를 울린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자본이 국외로 도피하고 채권 수익률이 오르며 통화가치가 하락하면서 나라 경제에 피해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이를 최소화시키려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강한 의지가 결연하게 냉정함을 유지하도록 촉구했기 때문이다. 아나스타샤(Anastasia)는 도네츠크 주의 슬로뱐스크(Slovyansk)라는 마을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여성이다. 이곳은 목요일 아침까지만 해도 서로 대치하고 있었던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분리주의 반군 사이의 경계선에서 8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2월 22일에 만난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녀 자신도 물론 러시아와의 진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에 때문에 “매우 두렵다”고 말했지만, 뉴스의 기삿거리 하나만으로는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는 부족했다고 말이다. 푸틴의 연설에 대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걸 인스타그램에서 봤습니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매우 피곤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달 동안 긴장이 고조되는 과정 전반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보여줬던 침착함은 새로운 침공이 개시되기 며칠 전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돈바스는 물론이고 키예프에서도 경제력이 있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의 일부가 우크라이나의 서쪽이나 국외로 이동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미 떠난 이들도 있었다. 일부 부유한 러시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2월 22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최대 라이벌이자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투옥시키겠다고 위협했던 페트로 포로셴코(Petro Poroshenko)를 포함한 자국 내 모든 정파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이 단합되어 있음을 과시했다. 키예프의 정가에서는 “국방연합(Oboronnaya koalitsiya)”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그날 저녁, 그는 20만에 달하는 우크라이나의 예비군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우크라이나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고된 시련
우크라이나의 국방장관을 지냈던 안드리 자고로드니우크(Andriy Zahorodniuk)는 우크라이나의 군 지도부가 두 가지의 기본적인 시나리오를 근거로 대처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나쁜 시나리오이고, 다른 하나는 더욱 나쁜 시나리오였다. 첫 번째는 모스크바가 스스로 전략적 휴식을 취하면서 아마도 피로한 병력들을 교체한 다음, 분리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직까지 점령하지 못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으로 이동하리라는 것이다. 과거에도 푸틴은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심지어 전술적인 후퇴를 선택함으로써 적들의 평정심을 잃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보 참모들 가운데 일부는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전쟁이 대체로 기존의 분쟁지역이나 슬로뱐스크처럼 2014년에 분리주의자들이 점령했다가 나중에 패퇴한 영역에 한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랬다면 러시아인들에게는 더욱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미국이나 영국이 제공한 분석과는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푸틴이 몇 달 동안 훨씬 더 큰 무언가를 의도하고 있었다고 믿어왔다. 돈바스에만 한정된 행동은 그에게 거의 아무런 가치도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선택을 했다면, 유리한 입장을 날려버리는 결과였을 것이다. 두 개의 반군 공화국들이 있는 주들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일부였긴 하지만, 분리주의자들의 주장을 활용한다면 우크라이나의 정책을 뒤흔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소위 말하는 노르망디 그룹(Normandy group)이라고 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프랑스, 독일이 체결한 “민스크 협정(Minsk accords)”의 핵심이었다. 2015년에 돈바스 지역에서의 대규모 전투를 종식시킨 이 협정에 의하면 분리주의자들에게는 일정한 수준의 자치권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나머지 지역이 경제적으로는 유럽연합(EU)에, 군사적으로는 나토(NATO)에 가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거부권이 주어져야 했다. 그렇게 된다면 우크라이나는 분열되고 파편화되어서 스스로를 하나의 단일 국가라고 주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를 위해 원하는 바로 그런 형태의 이웃 국가이다. 프랑스의 싱크탱크인 FRS의 브후노 테흐트헤(Bruno Tertrais)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잠재력을 없애기 위한 일종의 거세를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두 개의 공화국을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함으로써 민스크 협정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은 우크라이나를 거세한다는 노선을 폐기했다. 그 대안의 노선은 친러시아 성향의 정권을 무력으로 밀어 넣는 것이었다. 만약 러시아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여타의 군사적 도발은 푸틴이 원했던 전략적 재편은 일어나지 않은 채, 오히려 서방이 부과하려 했던 가장 강력한 제재를 초래했을 것이다. 대가는 크지만, 실익은 전혀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군대가 이번 공격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1차 공습과 미사일 공격은 우크라이나의 통합 방공망을 파괴하려는 의도로 진행된 것이 거의 확실하다. 타격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키예프 인근의 바실키프(Vasilkiv)라는 마을에 있는 방공 포대였다. 만약 러시아의 전투기들이 공중을 장악한다면, 그들의 낙하산 부대와 헬리콥터로 수송되는 병력들이 최전선에 대규모로 집결한 우크라이나의 군대를 우회하여 한참 후방의 핵심 목표물들을 장악할 것이고, 이후에는 우크라이나의 저항세력들을 소탕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2월 24일 오전에 러시아가 키예프 외곽의 호스토멜(Hostomel) 공항에 낙하산 부대를 침투시키려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그런 헬리콥터들 가운데 일부를 격추시키고 러시아 병사들을 생포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