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쌓인 그 곳에는
셰필드의 기차역에서 도심으로 걸어가다 보면 “우리 도시에 새로운 동력이 생겼다”, “셰필드의 심장을 리믹스한다”와 같이 활기찬 미래를 상징하는 열렬한 문구들로 가득 찬 광고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 다음에는 할람 대학교 확장사업과 ‘도시의 심장’이라는 이름의 도시 재생사업으로 나뉜 건설 프로젝트가 나타난다. 도시 재생사업은 “즐길 거리, 휴식, 경험, 놀이, 일, 모임, 쇼핑, 술을 위한 공간”을 약속하고 있다. 쇼핑은 의도적으로 후순위로 언급된다. 셰필드시는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건축 공사들을 강행하는 것이라고 결정한 것처럼 보인다.
셰필드시는 늘 이런 방식을 택해왔다. 40년여 전 철강 및 석탄 관련 일자리들이 사라졌고, 이는 이 도시의 운명을 결정했다. 노동당이 장악한 시의회와 전국 광산 노동조합 셰필드시 지부 덕분에 도시와 주변지역은 ‘사우스 요크셔 인민공화국’으로 명명되었다. 노동절에는 시청에 붉은 깃발이 휘날렸고 평등과 연대가 깊이 뿌리내렸다.
또다른 측면도 있다. 셰필드에는 전쟁 이후 미래지향적인 감성을 담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고, 1970년대에는 카바레 볼테르, 헤븐17, 휴먼 리그 등과 같은 밴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1980년대는 투쟁과 저항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국제적이고 화려한 성공을 맛봤다. 특히, 휴먼 리그의 전설적인 노래, 〈Don’t You Want Me〉가 영국과 미국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1981년 말에서 1982년 초에는 더욱 그러했다.
존 루이스 백화정 건물은 셰필드라는 도시와 그곳의 문화를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1920년대에 상호 회사로 전환한 후, 존 루이스의 직원들은 회사의 이익을 공유하는 일종의 “파트너”가 되었다. 그들의 일터는 산업 시대가 낳은 거대한 집성체였으며 미래 지향적인 최첨단 건축 미학이 결합되어 있었다. 셰필드의 매장은 백화점이 어떤 곳인지를 정확히 보여줬다. 열정적이고 민주적이며,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풍요로움과 끝없는 선택을 누릴 수 있는 장소였다.
이는 19세기와 20세기에 뿌리를 둔 비전이었다. 거대하고 화려한 매장은 모든 사람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갖춰 두었다. 백화점은 대중이 경험을 공유하고 미래를 꿈꾸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또한 백화점은 공공 문화 공간의 역할도 했다. 〈
The Floorwalker〉(1916)에서 찰리 채플린은 풍요롭게 진열된 상품과 20세기의 놀라운 발명품인 에스컬레이터 사이에서 자유를 얻었다. 막스 형제의 〈
The Big Store〉(1941)는 “Sing While You Sell”이라는 제목의 뮤지컬 넘버와 함께 샹들리에와 우편물 전달 통로를 배경으로 추격전이 펼쳐진다. 1972년부터 1985년까지 방영된 영국 시트콤 〈Are You Being Served?〉는 “그레이스 브라더스”라는 가상의 백화점 매장을 성적 억압과 계급 차별이 만연한 일종의 제국으로 묘사했다.
존 루이스가 매입하기 이전 셰필드 매장 건물은 콜 브라더스(Cole Brothers)라고 불렸으며, 두 명의 포목상이 설립한 가족 기업이었다. 실크 원단, 숄, 외투 및 카펫 등의 도매 유통상이었으며 모자 제작, 재봉틀 공급 등도 겸했다. 콜 브라더스는 셰필드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두 개의 도심 도로인 파 게이트와 처치 스트리트의 교차점이라는 입지 때문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콜스 코너(Coles Corner)라고 불렀고, 친구나 연인을 만나는 약속 장소가 되었다. 철거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명패가 남아있다. 얼마 전까지는 카페 체인점인 ‘Pret a Manger’가 위치했었다. 그러나 이 도시의 추억을 간직한 이 작은 지역을 느끼고 싶다면, 셰필드 출신의 싱어송 라이터인 리처드 홀리가 작곡한 〈
Coles Corner〉라는 향수 어린 아름다운 노래가 있다. 동명의 앨범 표지에는 콜 브라더스 입구에서 꽃다발과 함께 연인을 기다리는 홀리의 사진이 실려있다. 노래는 풍부한 스트링으로 도시의 밤의 희미한 불빛, 매혹적인 즐거움,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길을 갈망하는 누군가의 외로움을 표현한다.
차가운 도시의 불빛이 빛나고,
삶을 싣고 차량들이 흐른다.
강 너머 어둠 속으로
나는 음악이 있는 시내로 갈 거야,
목소리가 공기를 채우는 곳으로 갈 거야,
어쩌면 누군가 날 기다리는 이 있을지 몰라
그녀의 머리칼에 미소와 꽃을 꽂은 채
1927년 셀프릿지 프로뱅셜 스토어스 그룹(Selfridges Provincial Stores Group)이 콜 브라더스를 인수했다. 그리고 존 루이스가 1940년 다시 인수했다. 다만 이러한 소유권 변경에도 불구하고 콜 브라더스는 그 이름을 유지했고 1963년 이 매장은 번쩍이는 새 건물로 이전했다. 새로운 매장은 시청을 바라보는 도심 광장 바커스 풀의 한 켠에 자리했고, 밥 딜런, 윈스턴 처칠은 물론 셰필드의 기념비까지 모든 이를 초대했다. 이 건물은 영국, 슬로바키아, 핀란드 출신들이 설립한 요크 로젠버그 마달(Yorke Rosenberg Mardall) 건축 사무소가 설계했다. 건물 외부의 흰색 타일은 벨기에에서 공수했고 입구는 스페인산 화강암으로 장식되어 있다. 자동차가 선망의 대상이었던 시절에 설계되었기 때문에 400대의 주차 공간을 여러 층에 걸쳐 갖췄다. 내부에는 다섯 개 층에 60여개의 매장이 있었다. “화려한 색상이 전체적인 기조입니다.” 《 존 루이스 가제트 》 는 1963년 9월호에 실린 8페이지 분량의 특집 기사에 개장 일에 입구로 몰려든 어마어마한 인파의 사진과 매장 내부 모습을 자세히 묘사했다. 기사는 “레스토랑에서 춤을 추기 위한 공간은 카펫을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소개한다.
이후 40년 동안 지역 전통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콜 브라더스’라는 이름이 건물에 남아있었다. 2002년이 되어서야 백화점 브랜드가 존 루이스로 바뀌었다. 그 동안 도심과 기업은 낯설고 힘겨운 국면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