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길로 방향을 틀어 보면, 내 고향 하이옌(海岩)이 얼마나 변했는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때, 하이옌현의 총 인구수는 30만이었고 그중 8000명만이 현 소재지에 살았다. 지금 지역 인구는 38만 명인데, 그중 10만 명이 현 소재지에 산다. 도시화는 숱한 문제를 낳았고,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한 후 겪는 일도 그런 문제 중 하나다. 지방 정부들은 어마어마한 도시 팽창 프로그램을 이행하기 위해 대규모로 농지를 매입했다. 농지 일부는 투자를 유치하고 공장을 짓고 정부 수입을 늘리기 위해 산업용으로 배정했지만, 대부분은 높은 가격을 받고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매각했다. 그 결과, 한때는 작물만 자라던 곳에 이제는 고층 아파트 건물들이 무수히 솟아난다. 시골에 있던 농지와 집을 팔아야 했던 농민들은 지방 정부에서 보상으로 제공한 주거지로 ‘올라간다’. 부유한 지역에서는 농민들이 아파트 세 채나 네 채를 보상으로 받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 그들은 한 아파트에 살면서 나머지 두세 채에 세를 놓는다. 또는 상당량의 합의금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후에 그들이 도시의 삶에 어떻게 적응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익숙한 노동에서 단절된 그들이 할 만한 새로운 일거리가 무엇이 있을까? 어떤 이들은 택시 운전을 하고 어떤 이들은 작은 가게를 열지만, 그 외 사람들은 빈둥거리면서 하루 종일 마작을 하는가 하면 도박장에 다니다가 모든 것을 잃기도 한다. 땅을 빼앗긴 농민들의 공동체가 새로운 주택 단지에 정착할 때마다 도박단들이 따라간다. 정부에서 보상금을 주고 나면 주민들에게 현금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도박장 개설이 금지되어 있지만, 무면허 도박단이 커다란 여행 가방 몇 개에 도박 도구를 채워 넣고 새로 생긴 동네들을 다니며 감언이설로 이주 농민들의 집에 들어가는 사태를 막지는 못한다. 도박단은 오늘은 여기에 도박장을 차렸다가, 내일은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며 경찰과 숨바꼭질을 벌인다.
농민들이 떠나온 곳 ― 강제로 팔리기는 했지만 아직 철거되지 않은 시골집들 ― 의 상황은 어떨까. 농민들은 집과 땅을 지키기 위해 개들을 키우곤 한다. 도시로 가고 나면 집 지키는 개가 필요 없으니 개를 두고 간다. 그래서 텅 빈 채로 잡초만 무성한 농가에서 뼈와 가죽만 남은 버려진 개들이 충직하게 계속 보초를 서며, 이쪽저쪽 뛰어다니고 높은 지점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며 희망에 불타는 눈으로 과거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가슴 아픈 장면들을 보게 된다.
과거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오늘날 사회 전체에 퍼져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둘 중 보다 널리 퍼진 유형은 가난한 사람들의 갈망을 반영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규모로 올라선 중국의 상황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다지 혜택을 주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끝없이 가혹한 삶만 계속된다. 그들은 과거의 기억을 소중하게 여기는데, 그때도 가난하기는 했지만 아직 ‘실직’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시절에는 진정한 의미의 부유층도 존재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내 부모님의 수입이 합쳐서 120위안이었는데 마오의 월급은 404.8위안에 불과했다. 빈부 격차가 크지 않았고, 사회 불평등은 제한적이었다.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는 다른 형태의 그리움이 퍼져 있는데, 이들은 한껏 높이 올라간 만큼 벼랑에서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다. 나에게 상하이의 엄청난 부자와 나눈 대화를 알려 준 사람이 있는데, 이 부자는 뇌물 수수를 비롯한 부정직한 방법을 동원해 극빈자에서 백만장자로 변신한 사람이다. 곧 체포되어 긴 수감 생활을 하게 될 처지를 깨달은 그는 고상하고 널찍하며 호화로운 자기 사무실의 통유리창 앞에 서서 까마득히 아래에서 새로운 마천루의 토대를 세우느라 바쁘게 일하고 있는 건설 노동자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그 순간 얼마나 그 노동자들 중 하나가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일이 힘들고 봉급이 낮을지는 몰라도, 그들은 그처럼 불안하기 그지없는 상태로 살 필요가 없었다. 겨우 얻어 낸 모든 것을 잃게 되리라 예감하는 이런 사람들은 화려한 경력 전체가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과거를 되찾고 싶어 한다.
과거가 정말로 돌아온다면, 그러니까 쌀을 사려면 곡물표가 필요하고 식용유를 사려면 기름표가 있어야 하고 옷을 사려면 면표가 있어야 하며 물질적인 결핍이 심각하여 모든 물자가 배급으로 제공되었던 그 과거가 돌아온다면, 과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행복해할까? 아니라고 본다.
내가 보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과거를 애타게 그릴 때 그것은 이성적인 바람이 아니다. 그저 감정을 터뜨리는 방법이고, 현재 중국의 현실에 대한 불만에 뿌리내린 좌절감을 말하는 방식일 뿐이다. 그리고 정부나 기업에서 성공했으나 이제 철창 안에서 여생을 보내게 될 것을 알고 과거를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경우, 그 감정은 그저 아쉬움과 후회에서 솟아나는 마음일 뿐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이런 난장판에 발을 들이지 않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유행한 농담이 떠오른다. 이 사회의 부당함에 대한 농담이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갖고 싶어!”라고 말하는 예쁜 여자는 반지를 얻지.
“난 예쁜 여자를 얻고 싶어!”라고 말하는 부유한 남자는 예쁜 여자를 얻지.
나는 말하지. “샤워를 하고 싶어!” 하지만 물이 없다네.
마지막 줄의 상황은 내가 직접 겪어 보기도 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샤워 중에 물이 끊기는 일이 자주 일어났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비누칠을 하자마자 끊어지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지막 몇 방울이라도 떨어지면 눈을 헹궈서 쓰라림을 덜기 위해 머리를 들어 올린 채 주먹으로 수도관을 두드리는 것뿐이었다. 언제 물이 다시 나올지에 대해서는, 끈기 있게 기다리면서 하늘이 내 편이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에는 누구도 샤워 중에 물이 끊기는 일을 사회적인 불의로 보지 않았다. 지나간 그 시절에는 부자라곤 없었고, 그러니 예쁜 여자들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얻는 일도, 부유한 남자들이 예쁜 여자를 얻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미래를 대변한다고 한다. 끝으로, 세 세대의 중국 소년들이 지닌 인생관을 통해 지난날 중국의 궤적을 쉽게 요약해 볼까 한다. 이 아이들에게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주 다른 답변을 듣게 될 것이다.
문화혁명 기간에 자란 소년이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혁명과 투쟁.”
1990년대 초, 경제 개혁이 10년을 넘어선 시기에 자란 소년이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직업과 사랑.”
오늘날의 소년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돈과 여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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