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래의 노래
우리는 여러 대의 카메라로 고래들을 뒤쫓고 있었다. 현장에는 세일리시 해(Salish Sea) 주변의 모든 항구에서 관광객들을 태우고 나온 십여 척의 다른 배들도 합류해 있었다. 2001년 8월의 일이었고, 이 지역을 방문한 나의 첫 번째 여정 가운데 하나였다. 바다 위에서는 선박의 무전기들에서 나오는 지직거리고 삐빅거리는 소리가 그물처럼 얽히고설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래들이 서로 음파로 의사소통하는 방식을 어렴풋하게 연상시켰다. 모든 배의 선장들이 전자기파로 중계되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해변에 있는 광고판들은 “확실한 고래 관찰 기회”라는 문구를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터를 켜고 섬의 수많은 곶(串)들 주변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며, 산후안 섬(San Juan Island)의 남서쪽 해안을 돌아보았다. 쌍안경을 통해서 등지느러미 하나가 바닷물을 가른 다음에 다시 물속으로 잠기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곳에서는 고래가 숨을 내쉬면서 뿜어져 나오는 물보라도 보였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하지만 고래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해변을 벗어난 곳에서 십여 척의 배들이 무리를 이루어서 서쪽으로 느리게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곳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갔고, 그러면서 배가 지나간 자리에 물결이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 엔진을 늦추었다. 우리는 수많은 요트와 유람선들이 모여 있는 구역의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물속을 들여다보았더니 바로 아래쪽에서는 한 장의 대리석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반들반들하고 매끄러웠다. 그것은 마치 희뿌연 판유리 같은 수면의 아래쪽에 검은색 잉크를 풀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커다란 꼬리가 빠르게 지나가는 걸 보고 나서야 나는 그것이 고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푸왑! 보트에서부터 15미터 앞쪽의 수면 위로 거친 숨소리가 폭발하면서 올라왔다.
10마리 정도 되는 생명체들의 무리가 수면으로 나왔다. 우리 배의 선장은 그들이 범고래 L 무리라고 말했다. 시애틀과 밴쿠버 사이의 세일리시 해역에는 세 무리의 “남방 거주 범고래(southern resident killer whales)”들이 살고 있는데, L 무리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산후안 제도 주변에서는 그들이 연어를 사냥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해안 수역들을 이동하는 “임시 체류 범고래(transient killer whales)”와 주로 태평양에서 먹이를 잡는 “연안 범고래(offshore killer whales)” 등 다른 무리도 주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한다. 우리 앞에 나타난 L 무리는 서쪽으로 계속 이동하여 하로 해협(Haro Strait) 쪽으로 나아갔다. U자 모양을 형성한 배들이 범고래 무리를 쫓아가면서 선박의 엔진들이 부르릉거리는 소리를 냈고, 고래들의 앞쪽으로는 탁 트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보트의 뱃전 너머로 수중 청음기를 내렸는데, 그 케이블에 연결된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는 작은 스피커가 달려 있었다. 고래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엔진의 소음도 들렸는데, 엄청나게 다양한 엔진들의 소음이었다. 금속 캔을 두드리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들이 들렸다. 고래들은 물속에서 소리의 반향을 이용하는데, 그것은 단지 흐릿한 물속을 투시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들의 주변에 있는 물질들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얼마나 단단한지,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진동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고래들이 딱딱거리듯 내는 다양한 스타카토 음들은 휘파람이나 높게 갈라지는 소리가 섞여 있었는데, 위아래로 굽이치고, 쏜살같이 날아가고, 위쪽으로 굴절했다가 아래쪽으로 급강하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휘파람 소리는 고래들이 유쾌하다는 걸 의미하는데, 이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사교적인 활동을 할 때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다. 고래 무리가 먹을거리를 찾아서 좀 더 넓은 공간에 흩어져 있을 때는 휘파람 소리를 덜 내는 대신에 훨씬 더 짧은 파장의 사운드를 방출하여 의사소통한다. 이러한 음파들은 단지 무리의 일원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들과 다른 무리들을 서로 구분하는 역할도 한다.
오늘날의 바닷속에는 엔진 소음과 수중 음파 탐지, 탄성파 탐사(seismic survey) 소리가 온통 뒤섞여 있다. 인간의 활동으로 생겨난 퇴적물은 육지로부터 흘러들어 물속을 뿌옇게 흐린다. 산업용 화학물질들은 수생동물들의 후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청각, 시각, 후각 등의) 다양한 감각들은 세계에 동물 다양성을 부여해 주었지만, 우리는 지금 그러한 감각의 연결고리들을 끊어내고 있다. 고래들은 먹잇감의 위치를 알려주는 반향 음파를 들을 수 없고, 번식해야 하는 물고기들은 혼탁하고 소음으로 가득한 환경 속에서 짝을 찾을 수 없으며. 갑각류들이 보내는 화학적 메시지와 소리의 울림은 인간의 오염이 일으킨 흐릿함 속에 길을 잃으면서 그들 사이의 사교적 관계가 약화하고 있다.
이곳 산후안 섬의 앞바다에서 들리는 고래들의 목소리는 마치 비단 같았다. 이 고운 비단이 프로펠러와 모터 소리로 만든 두꺼운 청바지에 덧대어져 있는 듯 했다. 가끔씩 고래들이 딱딱거리는 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그것마저도 팽팽하게 짜인 엔진들의 소음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십여 척의 배들이 고래를 뒤쫓아 가면서 진동을 일으켰고, 윙윙거리거나 덜컹거리는 소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수많은 엔진이 연소하며 발생시키는 소음들이 고래들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감싸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하로 해협을 통과하여 북쪽으로 나아가는 컨테이너선과 유조선을 각각 한 척씩 볼 수 있었는데, 아마도 이 지역 최대의 항구인 밴쿠버로 향하는 것 같았다. 매년 이곳에는 7000대 이상의 대형 선박들이 지나는데, 이곳을 지나는 항해 횟수는 모두 합해서 연간 1만2000회를 넘어선다. 선박들의 종류는 벌크선에서부터 컨테이너선과 유조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이 중 상당수의 길이가 200~300미터에 달한다. 하로 해협의 서쪽을 지나는 대형 선박들도 많은데, 이들은 주로 시애틀과 타코마 주변의 여러 항구와 정유 공장들을 오가고 있다. 이들 선박이 내는 소리는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는데, 때로는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들리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해가 저물면 정박하는 소형 유람선들과는 다르게, 이러한 대형 선박들은 밤낮으로 쉴 새 없이 소음을 만들어 내며, 오히려 야간에 더욱 활동적이며 가장 시끄러운 경우가 많다. 가장 커다란 컨테이너선은 수중에서 약 190데시벨 이상의 굉음을 폭발시키는데, 이는 육지에서 천둥이 치거나 제트기가 이륙하면서 내는 크기의 소음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곳 해역에 기대어 살아가는 남방 거주 범고래 공동체는 이러한 소음을 견디지 못한다. 이들의 개체수는 감소하고 있으며,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멸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1990년대에만 하더라도 이들 집단의 개체수는 90여 마리였지만, 지금은 70마리를 조금 넘는 수준이고, 매년 한두 마리 이상의 고래들이 새끼를 낳지 못한 채 사라져가고 있다. 이들은 2005년에 미국의 멸종위기종보호법(Endangered Species Act)의 관리 대상 목록에 올랐다. 고래들이 위기에 처하게 된 원인을 단 한 가지로 꼽을 수는 없지만, 선박이 내는 소음과 먹을거리 공급의 감소, 그리고 화학물질의 오염 등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여 그들이 미래로 향하는 문을 닫고 있다.
2. 시끄러운 바다
고래는 바다의 매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먹잇감인 빠르고 날렵한 왕연어(chinook salmon)를 쫓아서 100미터 이상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하곤 한다. 선박들이 내는 소음의 주파수는 고래들이 먹잇감을 찾기 위해 사용하는 반향음의 음역대와 겹친다. 소음으로 혼란이 일어나면 사냥하는 고래들의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만약 고래의 주변 200미터 이내에 컨테이너선이 있거나 100미터 이내에 선외엔진을 장착한 소형 보트가 있다면, 그 고래의 음파 탐색 범위는 95퍼센트 감소한다.
공기 중에서 우리 사람은 근처를 지나가는 선박들이 내는 낮은 소음만 듣게 된다. 선박들이 내는 소리는 대부분 파도 아래의 물속으로 전파되며, 공기 중으로 퍼진 소리는 빠르게 소멸한다. 수면의 아래에서는 동력 선박들이 생성하는 음파의 파괴력이 물 분자의 진동과 들썩임을 통해서 훨씬 더 빠르게 멀리까지 이동한다. 이러한 운동은 해양 생명체들에게 직접 전달된다. 공기를 통해서 지상의 동물들에게 전달되는 소리는 피부의 경계면에서 대부분 다시 튕겨 나간다. 사람의 중이(中耳)에 있는 뼈들과 고막은 이러한 경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특별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이런 기관들은 공기 중의 소리를 모아서 내이(內耳)의 액체형 매개물질(외림프, perilymph)로 그것을 전달한다. 우리 사람들에게 있어 소리라는 것은 주로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몇 개의 기관들만 관여하는 감각이다. 그러나 수중 동물들은 소리에 완전히 몰두한다. 물속에서의 소리는 그들의 주변에서부터 수분이 많은 내장까지 거의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전달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듣는다’는 것은 온몸으로 경험하는 감각이다.
대부분 고래에게 있어서, 그리고 수많은 물고기와 수중의 무척추동물들에게 있어서, 눈은 그저 어쩌다 한 번 유용할 때가 있을 뿐이다. 심해의 깊은 곳에 사는 동물들은 마치 잉크 속을 헤엄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해안가의 바닷물도 너무 혼탁하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동물들도 기껏해야 자기 몸길이 정도만큼의 앞만 볼 수 있다. 그들에게 물속의 형태와 각종 자원, 수중의 윤곽들과 다른 생물들의 모습을 알려주는 것은 소리이다. 소리는 또한 의사소통의 수단이기도 하다. 빽빽한 나뭇잎들이 시야를 가리는 열대우림에 들어서면 청각에 예민해지는 것처럼, 바닷속의 동물들에게 보이지 않는 친구들과 친척들과 경쟁자들을 연결해주는 것은 소리이다. 그리고 소리는 자신의 근처에 먹잇감이나 포식자가 있는지를 알려준다.
만약 연어가 풍부하다면, 이런 소음들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고래들의 주된 먹잇감이 되는 왕연어들이 현재 위기에 처해 있다. 연어들은 민물에서 산란하고 치어들도 부화 후 몇 개월 동안은 그곳에서 자라야 하지만, 댐 건설, 도시화, 농업, 벌목 등으로 인해 연어들이 강물이나 하천으로 올라가는 길이 끊어졌거나 파괴되었다. 이 지역 내 왕연어 개체수는 1980년대 이후 60퍼센트 감소했는데, 20세기 초 이후로는 90퍼센트 이상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모델의 예측에 의하면,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는 아무리 긍정적이라 하더라도 남방 거주 범고래들의 미래는 취약한 상황이다. 여기에 또 다른 위험이 추가된다면 그들은 결국 멸종으로 내몰릴 것이다.
2017년 이후, 밴쿠버 항구는 하로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의 운항 속도를 자발적으로 늦추는 규정을 제정했다. 대형 선박들은 30해리(55.56킬로미터) 구간을 천천히 운항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약 20분의 시간이 더 소요된다. 선박들의 소음은 속도에 비례하여 증가하기 때문에, 이렇게 속도를 늦추면 남방 거주 범고래들이 먹이활동을 하는 공간에서의 불협화음이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프로젝트에는 80퍼센트 이상의 선박들이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의 운행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지나가는 배들이 소음을 조금씩 줄여서 얻어내는 고요함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이다. 2018년에는 밴쿠버에서의 원유 수출량이 엄청나게 증가했는데, 대부분 중국과 한국으로 향하는 물량이었다. 2019년에 캐나다 정부는 앨버타 지역의 오일샌드(tar sands)에서 추출되는 석유의 상당량을 공급해주는 파이프라인의 용량을 거의 세 배로 늘리는 방안을 승인했다. 밴쿠버 항구는 현재 방대한 신규 컨테이너 터미널의 승인을 추진하고 있다. 2021년에 비영리단체인 산후안의 친구들(Friends of the San Juans)은 이 지역에서 컨테이너, 석유, 액화 가스, 곡물, 포타쉬(칼리·탄산칼륨), 유람선, 석탄, 자동차 수송선을 위한 항만 터미널을 신축하거나 확장하지 않을 수 있는 대안을 20가지 이상 제시했다. 만약 터미널 신축 방안이 승인된다면, 이 지역의 선박 운행량은 25퍼센트 이상 증가할 것이다.
밴쿠버에서 북쪽으로 700킬로미터 정도 올라가면 키티맷(Kitimat) 항구까지 이어지는 피오르(fjord)가 나오는데, 이 지역에는 비교적 오염되지 않고 조용한 바다에서 서식하는 여러 종의 고래들이 살고 있다. 이곳에 건설 중인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이 완공되면 추가로 700척의 대형 선박들이 이 지역을 오가게 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선박의 운행량이 13배 이상 증가하게 된다. 게다가 이 계산에는 암초들이 많은 피오르 지대에서 유조선을 끌고 가는 예인선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미 해군도 이 지역에서 폭발물과 시끄러운 음파탐지기를 활용하는 군사 훈련을 확대할 계획이다. 태평양 북서부 해안 전역에서 이루어지게 될 해군의 ‘음향 및 폭발물’ 훈련은 남방 거주 범고래들이 좋아하는 수역에서도 진행될 예정인데, 이 훈련은 그들의 자체적인 추산만으로도 거의 3000마리의 해양 포유류를 죽이거나 다치게 할 것이며, 먹이활동, 번식, 이동에 지장을 받는 포유류들은 175만 마리가 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