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성과의 결별
영화감독 지망생들은 프레카리아트(precariat)의 전형이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성을 뜻하는 프레카리티(precarity)와 노동 계급을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로, 불안정한 고용·노동 상황에 놓인 비정규직, 파견직, 실업자를 총칭한다.[1] 감독이 되기 전까지 지망생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연출부 스태프로 일하며 비정기적 소득을 얻는다.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할 때에는 소득을 전혀 얻지 못할 때도 있다. 입봉 시기를 예측할 수 없으며 입봉 이후의 삶도 보장되지 않는다.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프레카리아트가 구조적, 심리적 측면에서 기존의 노동자들과 다른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확실한 기반을 가진 노동자들은 직업적 정체성과 소속감을 갖고 있지만 프레카리아트는 일이 보장하는 신분도, 미래에 대한 기약도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프레카리아트의 심리는 불안, 소외, 부적응 등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2]
하지만 노동 시장의 유연화, 개인 수준의 불안정한 감정, 심지어 인간의 근본적 불안까지 통칭하는 프레카리아트의 개념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기존 개념에 지망생들을 끼워 맞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불안정성으로 뭉뚱그려지던 프레카리티 개념을 구조적 수준과 개인적 수준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프레카리티는 안전망의 부재로 개인의 삶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사회 구조를 의미하는 불규칙한 유동성이라는 개념으로, 행위자 개인이 느끼는 불안한 감정은 불안정성(insecurity)으로 구분해야 창의 노동 지망생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지망생 1인칭 시점의 연장선에 있다. 창의 노동의 장은 분명 불안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구조가 불안해하는 지망생과 직결되지는 않았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불안을 핵심 키워드로 삼았지만 답변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불안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지자 “아니요, 별로 불안하지는 않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어서 “평화로운 것 같아요”라는 대답이 나왔다. 준비해 온 질문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소영: 평소에 저는 좀 별생각 없이 지내는 것 같아요. 알바 가야 되면 알바 가고, 스터디 가야 되면 스터디 가고. ‘글을 써야지’라는 스트레스를 받고. 평화롭게 지내요.
생각보다 담담한 지망생들의 모습에 당황했다. 지망생들에게서 억지로 불안정성에 대한 감상을 이끌어 내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불안정한 노동 구조에 처해 있는 이들을 도식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질문을 바꿨다. “어떤 힘으로 지금처럼 살 수 있는 건가요?”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그들이 어떻게 ‘평화롭다’는 대답을 할 수 있는지, 그러한 대답을 하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왔는지 묻기로 했다.
먹고사는 문제와 자기 자신
신희: 원래 작년까지만 해도 알바도 하고 그랬어요. 노량진에 특히 많이 갔어요. 10년 위 영화과 선배들이 웨딩 촬영 알바 같은 걸 많이 했다면, 이제는 노량진 학원가에서 강의 촬영하고 편집하는 걸 진짜 많이 해요. 영화과 애들 집결이에요.
먹고사는 문제는 모든 지망생들이 반드시 마주하게 된다. 어디에 소속되어 있지도, 규칙적인 월급을 받지도 않는 상황은 불규칙한 유동성을 초래한다. 감독 지망생은 본인의 생활비뿐 아니라, 영화를 만들기 위한 제작비까지 마련해야만 빚을 지지 않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지망생들은 저마다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하며 생활과 창작을 병행하고 있었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들이 먹고사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오로지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과정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감독이 되는 과정이 생업과 일치한다고 한 지망생은 세 명뿐이었다. 이 중 두 명은 상업 영화 연출부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흔치 않은 경우로, 본인이 찍은 단편 영화의 상영료와 강연료로 생계유지를 하고 있었다. 지망생의 대다수인 여섯 명은 신희가 말한 것처럼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 영화와 전혀 관련이 없는 카페 서빙, 과외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3] 지망생 중 네 명은 웹 드라마 연출이나 시간 강사와 같이 영화감독 외에 별도의 커리어가 될 수 있는 일을 병행했다. 그 외 한 명은 복지 재단의 지원금과 미디어와 관련된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생활비를 공개한 지망생 여섯 명의 평균 생활비는 약 80만 원으로, 가장 적은 경우 30만 원, 가장 많은 경우가 150만 원이었다. 이들은 부모를 부양하지는 않아도 되는 처지이거나 방값 정도의 지원은 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영화를 계속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자신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면서 작업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망생들은 영화 제작에 필요한 자금만큼은 자력으로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영화 제작비는 단편 영화를 기준으로 적어도 수십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에 달한다. 지망생들은 공모전, 제작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었다.
윤아: 내년 초에 영화제나 영상위원회에 지원하려고요. 제작 지원 피칭[4] 같은 거 있잖아요. 선발되면 제작 인프라를 제공해 주거나, 아니면 시나리오 작업 비용을 주니까. 되면 또 그 작업하는 몇 개월은 걱정 없고요. 그런 생각 안 하고 하면, 빨리 포기하거나 부모님한테 너무 많이 기대게 돼요. 그래서 집이 잘살아야 (영화를)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데, 그게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은 거죠.
경제적인 환경이 풍족하지 않더라도 영화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철두철미한 계획이 필요하다. 하지만 긴 지망생 기간을 고려할 때 이러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매번 제작비 지원을 받아 낼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최소한의 생활비만을 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적 불안도 커진다. 지망생 일부는 그러한 불안감을 직접적으로 표출했다. 수빈은 불규칙하고 적은 수입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낀다고 말했고, 지윤은 불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수빈: 경제적으로 많이 불편해요. 월급이라는 게 정말 어떤 상징적인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이 살아가는 정기적인 수입이잖아요. 정말 중요하죠. 수입, 지출 계획 명확하게 짤 수 있고. 그게 안 되니까 사는 것 자체가 불규칙해지는 거예요.
지윤: 잔고 생각하면 불안하죠. 월세를 제때 낼 수 있을까. 내가 돈을 어떻게 더 아낄 수 있을까. 영화를 찍을 때 어디서 돈을 가져오지, 이런 거죠.
하지만 수빈, 지윤 외의 지망생들은 예상했던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별로 불안하지 않다’고 답하다가 경제적인 문제와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예상 외로 경제적인 불안은 그들의 삶에서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들이 불안이라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수입이나 잔고가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윤아: 항상 있죠. 능력에 대한 불안정. 능력이 쌓이고 있는지 안 보이잖아요. (…중략…) 연출할 때도 불안한 거고. 또 뭐라 그러지? 사람 모으고, 돈 같은 거 계약하고, 설득하고. 이런 사업 수완이 거의 없어서요.
지망생들이 긴 기간 거치는 작업은 그들의 성장으로 직결되지 않고, 그들의 정성적 노력은 정량적인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다. 가령 고시 공부를 한다면 모의고사를 풀고 오답을 확인하며 자신의 실력을 점검할 수 있다. 하지만 감독 지망생들은 글쓰기, 사업 수완, 연출력 등의 능력이 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윤아의 표현을 빌리면 감독 지망생들은 자신의 능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시간을 들이고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결과가 바로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노력을 멈춘다면 그들이 느끼는 불안함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인지 지망생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불안함의 큰 축은 나태한 자신이었다. 성과를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만큼, 본인이 그나마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자신의 노력하는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태식: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한테 강요하지 않잖아요. 나태해지는 내 상태에 대한 불안이 제일 커요. 그런 제 모습에 대한 경멸감이 있어요. ‘아, 내가 왜 이렇게 못하지?’ 하는 능력에 대한 괴로움보다는 하기 싫어질 때, 안 하고 있을 때처럼 나태해지는 순간이 더 힘들어요. 사소하게는, 밤새 시나리오 쓰고 낮잠 잤는데 너무 많이 잤을 때 있잖아요. 그렇게 일어났을 때 드는 어떤 느낌.
이렇게 의심과 자책이 차지하는 긴 시간을 지나고 나면, 그들 또한 보이는 결과를 마주하는 때가 온다. 바로 작품을 완성했을 때다. 그동안 들인 모든 시간과 노력이, 그리고 쌓아 온 실력이 집결된 결과물이다. 그 결과는 창작의 기쁨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시련과 좌절을 주기도 한다. 지망생들에게 언제 가장 우울하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작품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을 때라고 답했다.
신희: 편집할 때 우울하죠.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윤아: 어느 언저리에 가면 무기력해져서 그냥 나를 놓아 버리고 싶어져요. 2~3년에 한 번씩 작업이랑 맞물려서 더 이상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은 유혹을 느껴요. 작년에는 편집할 때 한 번 그런 시기가 왔어요. 찍은 직후 바로 편집할 때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러워요. 다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어떻게 빠져나오셨어요?)
편집으로요. (웃음)
“좌절한 적 있나요?”, “절망적이었던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지망생들이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했던 이유가 여기 있다. 신희가 직접적으로 언급했듯이, 구조적이거나 경제적인 수준의 불규칙한 유동성은 이들을 때로 불안하게 하지만, 좌절과 절망까지 느끼게 하지는 않았다. 생업을 병행하며 자신의 삶을 관리해 나가는 것은 현실을 지탱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나태해지는 상황, 그리고 자신의 결과물이 성에 차지 않는 상황이 이들에게는 더 힘들게 느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