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화로운 파리 16구에 위치한, 인상적인 주택 앞에 서 있었다. 건물의 고전적인 실루엣과 대리석 계단, 그리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철제 난간들이 오히려 그곳 내부의 용도와는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의 명칭은 위조품박물관(Musée de la Contrefaçon)이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위조품을 전문으로 하는 특이한 박물관이다. 나는 명품 브랜드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싸워온 문제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곳을 찾았다. 그 문제는 바로 대량으로 유통되는 저가의 복제품들과 노골적인 짝퉁 상품들에 관한 것이었다.
일부의 추정에 의하면, 가짜 상품의 거래 규모는 연간 6000억 달러에 이른다. 브랜드가 표시된 채로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든 상품의 10퍼센트 정도가 짝퉁일 수도 있다. 고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우리 중 80퍼센트는 가짜나 짝퉁 상품을 만져본 적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고급 사치품의 판매량이 급증했지만, 가짜 상품들은 훨씬 더 빠르게 증가했다. 지난 20년 동안 짝퉁의 규모가 1만 퍼센트 급증했다는 추정도 있다.
정신을 아찔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전반적인 수치만이 아니다. 프랑스 세관이 실시한 한 단속에서는 테니스 코트 54개를 뒤덮을 수 있는 규모의 가짜 루이비통(Louis Vuitton) 원단이 압수되었다. 중국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인 타오바오(淘宝网)의 판매자 한 곳을 단속한 결과, 가방, 앞치마, 신발 등 모두 1만 8500점의 짝퉁 상품들을 적발했다. 마드리드에서 실시한 단속에서는 블랙 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 시즌에 판매할 목적으로 준비된 8만 5000점의 짝퉁을 압수했다. 2020년 이스탄불에서는 거의 70만 개의 짝퉁 모발 관리 제품들이 압수되었다.
일반적으로 진짜보다 가짜가 훨씬 더 많은 상황이 되면, 그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시정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열에 의해 활성화되는 위조 방지 스티커, 보증 번호, 무선주파수인식(RFID) 칩, 색 변환 잉크, 홀로그램 등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수많은 조치로 무장한 인증 산업의 끊임없는 성장에도 불구하고 시정 작용은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하고 싶었다. 유명 디자이너들과 거대 브랜드들은 왜 짝퉁을 막아내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것을 줄이지도 못할까?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진짜와 가짜의 차이점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전형적인 프랑스식 답변을, 위조품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유리 케이스 안에 진품과 짝퉁 제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각각에는 친절하게도 진짜(vrai)와 가짜(faux)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나는 샤넬(Chanel)의 유명한 2.55 퀼트 핸드백처럼 보이는 제품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투어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그건 터키에서 만든 가짜였다. 샤넬의 진품이 가지런하며 견고한 박음질을 자랑하는 반면, 가짜는 접착제로 재료들을 붙여놓은 것이었다. 샤넬의 시그니처인 특유의 퀼트는 골판지와 탈지면으로 만들었다. 한국에서 만든 가방은 얼핏 보면 그냥 루이비통의 진품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루이비통 특유의 나뭇잎 무늬가 동그라미와 막대기 모양으로 바뀌어 있었고, LV라는 글자 로고는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는 한글로 대체되어 있었다. 가짜에 있는 디자인적인 요소들 가운데 개별적으로 진품과 일치하는 것은 없었지만, 그러나 전체적으로 모아놓으면 그것은 분명히 ‘루이비통’처럼 보였다. 가이드는 이것이 바로 똑같이 모방한 위조품과 “진짜처럼 행세하는” 위조품 사이의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캐비닛에는 오늘날의 프랑스인 갈리아(Gallia) 지방에서 만든 2000년 된 고대 로마의 가짜 암포라(amphora, 목이 좁은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마개 위에 있어야 하는 로마식 이름은 무의미한 기호로 대체되어 있었다. 나는 박물관의 직원들이 그곳에 전시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가짜 물품이 프랑스 영토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상당히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날 나는 조금 볼품없게도 슈퍼마켓에서 주는 비닐봉지에 노트와 지갑, 열쇠를 넣어서 들고 다녔다.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기 직전에 나의 숄더백이 가짜 롱샴(Longchamp)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박물관에서 가이드가 나에게 진품을 보여주었다. 내 숄더백의 지퍼에 달린 조그만 장식은 평범한 금색 고리였는데, 알고 보니 거기에는 롱샴 특유의 달리는 말과 기수가 있었어야 했다. 내 가방의 내부는 진짜 롱샴이 가진 감미롭게 두툼하고 고무처럼 흐물거리며 착 달라붙는 점착성이 없었다. 진품과 비교해보니 내 가방의 가죽은 이상한 스펀지 같고 허전했으며 박음질도 엉성했다.
나는 가이드에게 그 건물에 관하여 물어봤다. 이 건물이 17세기 초 마레(Marais) 지구에 있었던 건물의 복제품이라는 이야기가 사실인가요? 박물관 자체가 위조품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게 흥미로운 역설 아닌가요? 가이드의 두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나는 거기에서 냉랭함을 감지했다. “여긴 복제품이지 위조품은 아닙니다. 지적재산권(IP)이 통용되지 않는 곳에서는 위조품이라는 표현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1. 짝퉁을 검거하라
위조품박물관은 주로 명품 분야에 전문화되어 있지만, 지난 20년 동안에 벌어진 위조품들의 폭발적인 증가는 주로 중간급 시장에서 이루어졌다. 예전에는 시장의 좌판에서 판매되던 짝퉁 브랜드들이 지금은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만 하면 구입할 수 있다.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제품은 마케터들 사이에서 ‘매스티지(masstige)’라는 전문용어로 불리는 상품들이다. 매스티지는 ‘매스 마켓(mass market, 대중 시장)’과 ‘프레스티지(prestige, 고급)’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이며, 매스티지 상품이란 고급이긴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저렴한 제품을 의미한다. 매스티지와 명품을 가르는 명확한 구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명품들이 장인정신과 전통, 뛰어난 품질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반면에, 매스티지 상품들은 전문가의 손길을 거쳤다는 점을 강조하고 고급품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며 유명인들과 제휴하고 트렌드에 기대어 판매하는 전략을 취한다. 어느 비평가의 말처럼, 매스티지는 주로 사람들의 욕망에 초점을 맞춘다. “명품 브랜드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대변하는 세계와 소비자들이 실제로 구매할 수 있는 제품들 사이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공백”을 공략하는 것이다.
위조품박물관을 방문하기 며칠 전,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짝퉁 방지 단체인 리액트(React)의 현지 책임자인 비욘 그루츠바거스(Bjorn Grootswagers)를 만났다. 리액트는 지난 30년 동안 짝퉁 시장에 맞서 싸워왔다. 그들은 1년에 약 2만 건의 사례를 처리하고 있으며, 전 세계 107개국의 세관 및 사법기관들과 협력하고 있다. 그들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300여 곳의 클라이언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지적재산권을 가진 소유주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다음과 같은 대표적인 매스티지 브랜드들이다. 아디다스(Adidas), 아베크롬비앤드피치(Abercrombie & Fitch), 컨버스(Converse), 나이키(Nike), 푸마(Puma), 리바이스(Levi’s), 타미힐피거(Tommy Hilfiger), 피파(FIFA), 두카티(Ducati), 잭다니엘(Jack Daniel’s), 재규어(Jaguar), 로레알(L’Oréal), 프록터앤드갬블(Procter & Gamble, P&G), 유니레버(Unilever), 워너브라더스(Warner Bros), 야마하(Yamaha),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헬로키티(Hello Kitty), 플레이보이(Playboy) 등이다.
기차역에서 나를 태운 택시가 암스텔벤세베그(Amstelveenseweg) 대로를 따라 달리자 주변의 풍경이 업무용 고층 건물들에서 플랫(flat, 서구식 아파트) 지구로 변했고, 이후에는 좀 더 작은 테라스하우스(terraced house, 서구식 연립주택)들이 나왔다.
택시 기사가 나에게 이곳에 온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나의 대답을 들은 그는 그다지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짝퉁과의 싸움을 왜 암스테르담에서 벌이나요? 짝퉁은 여기에서 만드는 게 아닙니다. 저는 터키 출신인데, 짝퉁은 우리 터키 사람들이 많이 만든답니다!” 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높고 가파른 지붕으로 덮인 2층짜리 주택 앞에 멈추었다. 회의실 용도로 사용되는 앞쪽의 거실에서 나는 그루츠바거스와 그의 동료인 매리-앤 카우터스(Mary-Ann Kouters)로부터 아주 맛있는 커피를 대접받았다. 나의 오른쪽에 있는 선반에는 런던 옥스퍼드스트리트의 가판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싸구려 복제품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폴리 보드로 제작한 수납함에는 샤넬의 로고인 이중 C 형태 안에 모조 다이아몬드가 박힌 귀걸이 약 50개가 보관되어 있었고, 폴 프랭크 줄리어스(Paul Frank Julius)의 원숭이를 허접하게 복제한 제품도 있었으며, 다채로운 색상의 루이비통 로고가 박힌 플라스틱 지갑들도 있었다. 가짜 아리엘(Ariel) 가루 세제 상자들 옆에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4개짜리 브라운(Braun)의 오랄비(Oral-B) 전동칫솔모가 놓여 있었는데, 그건 그날 아침에 내가 열어서 사용했던 제품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25년 전 리액트를 설립했을 당시에 대해서 그루츠바거스는 이렇게 말했다. “한 달에 5000개의 짝퉁을 잡아내면 우리는 일을 아주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1년에 10만 개를 적발하면, 우리는 서로 등을 두드리며 칭찬해 줄 정도였습니다.” 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져서, 지금은 1년에 2500만 개의 짝퉁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예전에 리액트는 가짜가 판매되는 시장과 가게들을 조사하곤 했었다. 현재의 그들은 유럽연합(EU)으로 위조품들이 대거 반입되는 지점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로테르담, 앤트워프, 브레멘과 같은 컨테이너 항구들이다. 화물용 컨테이너 하나에는 밀수업자의 여행 가방 하나에 넣을 수 있는 것보다 천 배나 많은 물품을 실을 수 있다. 정확한 항구를 선택하여 정확한 선박을 포착하고 정확한 컨테이너를 고르기만 한다면, 단 한 차례의 단속에서도 수 만 개에서 때로는 수십만 개의 가짜를 적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1억 8000만 개의 화물용 컨테이너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고, 그 중에서 로테르담을 통과하는 것만 해도 1500만 개나 된다. 그루츠바거스와 그의 동료들은 동일한 규격의 컨테이너들 가운데 어느 곳에 짝퉁이 보관되어 있는지를 가늠한 다음, 세관 공무원들에게 배에서 그 거대한 컨테이너를 내려서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그루츠바거스는 가짜가 들어있을 수도 있는 컨테이너를 가려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서나 기법에 대해서는 내게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다만, 그는 어떤 컨테이너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보다는 무언가 빠져있지 않은지에 관해서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선박의 화물 목록에 단지 ‘신발’이라고 적혀 있다면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나이키 신발이라면 나이키라고 적을 것이고, 아디다스라면 아디다스라고 적혀 있을 겁니다. 짝퉁 상품들은 대부분 아시아에서, 그중에서도 중국에서 들어옵니다. 당연히 우리는 블랙리스트로 작성하여 관리하는 공장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공장들이 아니라 해운업체들을 살펴보기도 하는데, 공장들은 수시로 이름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들은 유닛1234같은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것마저도 모두 한자로 적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거기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가령 공장의 주소가 3층으로 되어 있을 수도 있는데, 3층에서는 화물을 실을 수 없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