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외향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표현하는 ‘말과 행동을 잘한다는 것’은 외향 선호의 다면척도상, 자신의 생각, 감정, 느낌 등을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는 ‘표현적’에 해당한다. ‘표현적’이라는 특징은 외향 선호의 단일한 특징이 아니고, 부분적인 특징이다.
또한 외향에 대한 선호 경향성을 나타내는 사람이 모두 동일한 수준의 경향성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외향 선호인 A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외부로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B는 A와 같은 외향 선호를 보인다고 해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신의 내면에 보유하기를 선호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B는 내향의 특징을 나타내기 때문에 내향 선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B는 외향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이면서도 특정 상황에서 내향적인 특징도 공유하는 독특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MBTI 검사 결과가 외향인 사람들을 모두 똑같은 외향, 동일한 수준의 외향이라고 말할 수 없다.
MBTI가 던지는 숙제
융의 심리학은 중년기 이후의 심리학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출생부터 중년기
[3] 전까지 이르는 인생의 전반기, 인간은 자신의 선천적 선호를 파악하고 자기다움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중년기 이후 인생의 후반기에는 선천적 선호의 대극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성격의 통합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중년기 이후의 과정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처럼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설렘도 자리할 것이다. 중년기는 미지의 나를 찾아나서는 여정의 시작이다. MBTI 는 그 여정에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다.
모두가 중년기에 들어섰다고 자신의 대극 선호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를 위해서는 조건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자아존중감이다. 유형발달의 측면에서 이 자존감은 인생의 전반기에 발달한다. 청년기까지 자신의 선천적 선호를 발달시키고 이를 삶의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강화한다면 자연스레 자존감은 높아진다. 이 자존감은 소위 말하는 내공이 된다. 이 자기다움의 힘이 중년기 이후의 통합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면 중년기 이후 이뤄야 하는 통합이란 무엇일까? MBTI는 어느 쪽이 자신에게 편안한 방향인지를 일러준다. 먼저 자신의 선천적 선호 경향성을 파악하고 탐색해야 한다. 통합은 그 다음이다. 통합은 밝음과 어두움이 적절히 섞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편안해하는 선호인 빛이 있다면 그 반대에는 그림자가 있다. 빛과 그림자가 함께이듯, 개인 안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한다. 이것이 대극이다. 선천적 선호만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어둠을 수용해야만 통합에 이를 수 있다. MBTI는 내 안에 공존하는 빛과 그림자를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통합은 자신의 그림자를 밝게 만드는 과정과 유사하다.
ISTJ 유형인 사람이 중년기를 성공적으로 거쳐 자신의 대극 선호를 개발했다고 ENFP 유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분명히 있다. 정확히 말하면, 여유 있고, 유연한, 내・외적으로 조금 더 폭이 넓어진 ISTJ가 된다. 통합의 과정을 통해 성격유형의 넓이와 깊이를 조금 더 확대할 수 있다. 통합은 대극 양쪽을 모두 사용할 줄 아는 완벽한 존재, 혹은 슈퍼맨이 되는 것이 아니다. 중년기 전까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개발하며 자신의 선호가 두드러지게 살았다면 중년기 이후에는 그 두드러진 부분을 둥글게 만드는 과정이다. 원만하고 유연한 나를 만들기 위해 MBTI를 사용할 수 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최근 취업준비생에게 MBTI 성격유형 정보를 기재하도록 요구했던 기업의 사례가 기사화됐다.
[4] 해당 기업은 MZ세대의 트렌드를 따라 성격유형 기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MBTI는 업무적 역량과 무관한 성격유형이다. MBTI는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다양성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모토에서 개발됐다. 기업이 생각해야 할 것은 취업준비생의 MBTI 유형이 아니다. 16가지의 모든 성격유형이 자기다움을 발휘하며 일할 수 있는 건설적인 기업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기업에서 MBT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다양한 성격의 직원이 섞인 팀이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성과가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 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MBTI를 활용할 수 있다. 혹자는 성격유형을 토대로 그룹이나 팀을 나누는 방법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MBTI 의 유형이 같다고 해서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네 개의 코드가 동일한 사람들이 선천적인 선호 경향성을 공유하는 부분이 많을 수는 있지만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양육 환경, 가족 구성원, 친구 관계, 학력, 취미, 직업, 성역할 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에 의해 4개 코드가 동일하다 해도 색채와 결이 다르다. 개인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면 일과 관련된 역량, 관계와 관련된 역량 또한 제각각일 것이다. 결국 ‘나’는 성격유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독특하고 개별적인 존재를 성격유형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독특성과 역량을 무시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 MBTI는 두 명 이상이 모인 집단, 조직, 관계에서 모두 활용 가능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태도다.
인터넷에 떠도는 MBTI 궁합도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더 편안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 대인 관계적 욕구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러나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쌓는 경험이 필수적이다. 만남 이전에 네 개의 코드만 보고 타인을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MBTI만으로 관계를 규정할 수 없다. 심리검사는 개인이 타인을 받아들이는 과정 전반을 진단할 수 없다.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나와 잘 맞지 않는 유형이 드러내는 특징을 알아보고 그들과 더 나은 관계를 맺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이런 자신의 노력을 시작으로 상대방도 나를 이해하고 수용하려 노력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MBTI는 나와 다른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상황에서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상대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장벽 때문에 혹자는 타인이 자신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화를 내기도 한다. 상대방은 그 과정에서 소통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대화는 악순환에 빠진다. 타인과 원활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안테나를 세우고 주파수를 맞춰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나와는 다른 이들의 성격을 알아가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성격유형을 활용할 때 쉽게 빠지는 함정이 하나 있다. 성격유형을 자신의 삶의 변명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유형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이나 낙인을 찍는 행위를 넘어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대한 변명이나 면죄부로 성격유형을 오용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약속 시간에 늦거나, 함께 정한 계획을 어길 경우 누군가는 자신을 인식형이라고 표현하며 면죄를 바란다. 혹은 팀에서 몇 개월에 걸쳐 준비한 프로젝트의 프레젠테이션을 담당해야 할 때 자신은 내향형이기 때문에 일을 맡기 어렵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성격유형을 변명으로 삼거나 회피의 수단으로 삼을 수는 없다. MBTI는 이해를 위한 도구일 뿐 능력이 없다는 것의 원인이나 잘못의 변명이 될 수 없다.
MBTI를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도구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MBTI를 잘 활용한 초등학교 어느 학급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MBTI 전문가 과정을 수료한 어떤 선생님께서 학급 담임을 맡고 있었다. 해당 담임 선생님이 출장을 가셔서 다른 선생님께 임시로 하루 그 학급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셨다고 한다. 임시로 하루 동안 해당 학급을 맡으신 선생님은 아이들을 운동장에서 뛰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발야구를 하러 학생들과 함께 모두 운동장으로 나갔다. 한 아이가 공을 차러 나왔는데 쭈뼛거리기만 하고 공을 차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조금 답답한 마음에 “그냥 발로 차면 된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때 그 반 아이들이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쟤는 내향이어서 조금 기다려줘야 해요.” 임시로 학급을 맡으셨던 선생님은 당황스럽기도, 창피하기도 하셨다고 말했다. 다음날, 출장을 다녀온 담임 선생님과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본격적으로 MBTI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어떤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 혹은 사람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 다양한 도구를 사용한다. 사실 어떠한 도구든 도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는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심리검사라는 도구도 마찬가지다. MBTI는 자기 이해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다.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MBTI는 길잡이가 될 수도, 무기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