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깊이 읽어야 하는 이유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음악은 가능할까?
글로벌 장르로 부상한 케이팝 속 케이와 팝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빌보드가 케이팝 차트를 서비스하고,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도 케이팝에 독립된 장르 카테고리를 부여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세 장의 앨범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렸다. SM 소속 프로젝트 그룹 슈퍼엠(SuperM)도 빌보드 1위 앨범을 배출했다. 케이팝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산업이자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음악 장르다. 하지만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케이팝 내부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세계적으로 성공할수록 ‘한국의 대표 가수’로서 활동할 것을 요구받는다. 한국인이 없는 케이팝 그룹도 등장했지만 이에 대한 국내 팬과 해외 팬의 반응은 극명히 갈린다. 케이팝 그룹의 활동 방식을 둘러싸고 해외 팬과 한국 팬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케이팝은 정말 글로벌화된 음악일까? 세계인이 좋아하는 장르 속에서 ‘한국적인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케이팝 전문가의 폭넓은 시각과 세밀한 분석으로 로컬과 글로벌을 오가는 문화 현상, 케이팝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한다.
키노트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1화. 프롤로그; 케이팝이라는 장르
2화. 케이팝은 한국적인가
한국에서 탄생한 글로벌 음악 장르
보편적인 동시에 특수한
아바와 싸이는 왜 다른가
달라서 매력적인 음악
3화. BTS, 글로벌 팝 스타와 한국의 아이돌 사이
케이팝의 안티테제
바닥에서 성장한 아티스트
한국인이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
Z세대의 아이콘
진정성 서사 속 케이팝
4화. 케이팝 하는 외국인
‘미사모쯔’의 국적
케이팝 국제화와 외국인 멤버
현지 팬들을 사로잡아라
케이팝과 동아시아
5화. 케이팝의 국적
프로듀스 48과 AKB48
케이팝을 배우자
글로벌 스탠더드
동아시아의 문화, 케이팝
6화. 케이팝의 조건
케이팝 그룹에 한국인이 없다면?
AKPOP
세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케이팝 그룹
케이팝의 경계
7화. 케이팝의 본진은 어디인가
케이팝 어벤져스를 반기지 않는 팬덤
팬덤의 진화와 전 세계적 확장
수출형 아이돌
‘외퀴’와 ‘화이트워싱’
8화. 에필로그; 케이와 팝의 충돌과 진화
9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지구인 세대의 음악
먼저 읽어 보세요
케이팝의 해외 인기가 높아지면서 트와이스, 블랙핑크 등 외국인이 포함된 그룹뿐 아니라 비한국인으로만 구성된 케이팝 그룹도 등장하고 있다. 미국 출신 백인 남성인 채드 퓨처(Chad Future)는 케이팝과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영어로 발매했고, 자신의 음악을 미국식 케이팝이라는 의미의 에이케이팝(AK-pop)이라고 정의했다. 미국에서 탄생한 EXP 에디션은 비한국인으로만 구성된 케이팝 그룹이다. 이들은 미국에서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를 발매했고, 한국에 입국해 트레이닝을 받은 끝에 한국에서 공식 데뷔했다. 지보이즈(Z-boys), 지걸즈(Z-girls)는 한국 기획사가 케이팝 트레이닝 시스템을 통해 한국인이 아닌 아시아 국가 출신 멤버들로 구성해 데뷔시킨 그룹이다. 영어로 노래를 부르며 주로 아시아 시장에서 활동한다.
에디터의 밑줄
“글로벌 음악 산업의 중심에서 성공한 동아시아 음악이 여전히 흔치 않은 상황에서 케이팝의 지역 정체성인 K는 필연적으로 케이팝에 특별한 개성을 부여한다. 한글 가사, 음악을 혼합하는 방식, 무대 퍼포먼스와 춤, 의상, 뮤직비디오, 기획사-아이돌 시스템, 도덕주의 원리 강조, 팬덤의 수용 방식 등이 모두 결합되어 독특한 특징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케이팝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한국적이지는 않지만, 글로벌 보편성과 차별화되는 독자적인 지역 정체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매우 한국적이다.”
“케이팝의 해외 팬들은 일반적인 서구 중심의 글로벌 팝 음악에 대한 일종의 대안 개념으로 케이팝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국어 가사나 다른 한국적인 요소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글로벌 시장에서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일찍부터 인터넷 기반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주류 문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비주류 문화 콘텐츠를 향유해 온 글로벌 Z세대에게는 비서구·비영어권 음악이라는 점이 과거만큼 커다란 문화적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케이팝을 통해 Z세대들이 그 속에 담긴 한국적인 요소들을 일종의 ‘쿨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2016년 7월 국제 상설 중재 재판소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판결한 직후 빅토리아, 차오루, 페이, 레이 등 케이팝 내 거의 모든 중국 출신 아이돌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자신들의 소셜 미디어 페이지에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상징하는, ‘중국은 조금도 작아질 수 없다中國一点都不能少’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그림을 올렸다. 중국 팬들은 여기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베트남과 필리핀을 포함한 다른 동아시아 팬들은 물론 중국의 팽창주의 정책에 반감을 갖고 있는 한국 팬들은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힙합이 글로벌 인기 장르가 된 지 3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흑인이 하지 않는 흑인 음악은 가짜고 그것을 가지고 돈을 버는 타 인종은 도둑놈이다’라는 인식은 여전히 남아있다. 흑인 음악 분야가 이러한데, 비서구·비영어권 음악으로 영미 대중음악과의 차별성을 통해 개성을 어필해 온 케이팝에서 K를 분리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음악적으로나 외적 이미지가 케이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도, 한국인이 없는 케이팝은 진정성을 항상 의심받기 때문이다.”
“케이팝 역시 진정한 글로벌 장르가 되려면 자신의 국가·민족 정체성을 상징하는 K를 보류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힙합과는 달리 케이팝이 전 세계에서 본격적인 현지화 또는 토착화가 이루어져 진정한 의미에서의 글로벌 음악이 된다면 그것은 브이팝, 티팝, 큐팝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며, 그 경우 해당 지역에서 장르로서의 케이팝은 자연스럽게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케이팝이 갖고 있는 딜레마다.”
“해외 시장이 커지고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케이팝 가수들이 늘어나면서, 국내 팬들은 해외만 신경 쓰고 국내는 소홀히 하는 기획사와 가수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는 일이 잦아졌다. 케이팝 팬들이 많이 모이는 대형 인터넷 게시판에 ‘한국 활동에도 신경을 좀 써 달라’는 의견을 피력하는가 하면, 한국에서 팬 미팅이나 콘서트를 할 때면 ‘케이팝 가수의 내한 공연’이라는 냉소적인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인터넷 미디어 플랫폼의 발달과 그로 인한 직간접적인 문화 교류 증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세대의 등장 등은 전과 다른 문화 산업 환경을 만들어 냈으며, 케이팝은 이런 환경의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수혜자다. 이제 미국을 포함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문화 중심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들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틈새시장으로 빠르게 전달되는 세상이 되었다. 미국이 여전히 대중문화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 해서 과거처럼 전 세계의 유일무이한 문화 중심으로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그로 인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문화 취향을 갖게 되는 세상이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