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화 이후의 도시
1화

프롤로그; 건축가의 눈으로 본 사회주의 도시

평양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 전이다. 당시만 해도 북한을 바라보는 국내의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최근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이나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10년 전의 북한은 위협적인 존재 이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는 동안에도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을 수용했고, 그로 인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건축가의 눈에는 북한의 정치 체제보다 평양을 비롯한 북한 도시의 변화가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다가왔다.

평양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무렵부터였다. 지도 교수였던 건축가 이브 블라우(Eve Blau)는 《프로젝트 자그레브(Project Zagreb)》라는 저서를 통해 사회주의 도시인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 45년 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분석했다. 그의 저술과 전시를 접하며 사회주의 도시의 계보 안에 있는 평양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도시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 환경을 개선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사회주의 건축가들은 시민들에게 더 많은 녹지와 공공장소를 제공하고, 지나친 개발의 폐해를 막고자 했다.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한 주거 단위도 자본주의 도시의 논리와는 달랐다.

한국에서는 아파트 재건축과 함께 토지를 공적 재화로 보는 토지 공개념이 화두가 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 개념에 반발하는 것을 보면 한국은 여전히 도시를 공공의 공간이라기보다 재산 증식의 플랫폼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국의 도시는 아파트를 지어서 외형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전체 주택의 20퍼센트가 빈집이고, 2030년대가 되면 그 비율이 30퍼센트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지방 도시에서는 이미 빈집 사태가 시작됐다. 서울 외곽에 있는 수천 세대의 아파트 단지가 텅텅 비게 되면 우리 도시는 일본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 주택의 대부분이 단독이나 다세대인 일본과는 다르게 아파트 의존도가 심한 한국에서는 빈집을 넘어 ‘빈 단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빈집을 사들여 공원 주차장이나 마을 도서관 등을 만드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데,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큰 규모 때문에 해결책을 내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미래의 도시 문제에 대비해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학교와 주택, 아파트 단지 내 시설, 상가 등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자생적인 도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사회주의 도시에서 착안한 ‘도시 생산 주거(Factory for Urban Living)’라는 개념이 해결책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미래 도시는 생산에 기반을 둔 커뮤니티 네트워크로 발전해야 한다. 근대 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한 세기 전에 기계 문명 시대의 주거 양식을 이르는 말로 ‘거주를 위한 기계(Machine for Living)’라는 표현을 썼다. 기계 문명 시대의 주택은 하나의 기계와 같다는 의미다. 여기서 착안해 도시 생산 주거라는 표현을 만들었다. 생산과 주거 기능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의미다.

사회주의 모델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철학은 이미 많은 분야에서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적인 경제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건축과 도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개발로 점철된 우리 도시가 어떤 철학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변화해야 하는지, 사회주의 도시의 어떤 요소를 반영하면 더 나은 도시 모델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런 관점으로 평양을 보면 평양에는 사회주의 도시의 이상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비록 지난 세기에 그 이상이 실현되지 못했다 해도, 평양에 반영된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은 다양한 도시 문제에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평양을 연구한 건축가로서 국내외 무대에 북한 도시와 건축을 알릴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2014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에 아티스트로 참여했다. 건축가 조민석이 〈한반도 오감도〉라는 주제로 남북한의 도시가 분단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소개했고, 이 전시의 일환으로 북한과 평양의 건축에 대해 연구한 결과물을 선보였다. 한국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전시였다. 2017년에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 참여했다. 평양의 중산층 아파트를 모델 하우스처럼 둘러볼 수 있도록 전시장을 꾸몄다.

북한 건축에 관한 전시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인지 언제나 호기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일시적인 관심보다 중요한 것은 논의의 지속성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 나오고 있지만, 남북 관계가 화해 국면에 들어섰을 때만 주목을 받고 사라지는 악순환을 반복하다 보니 더 깊이 있는 논의가 시작되기는 어려웠다. 이 글이 북한의 도시를 편견 없이 살펴보고 도시의 삶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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