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과는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조현병이 황폐해진 삶을 살다가 이른 죽음을 맞는 불치병으로 인식됐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이런 변화의 상당 부분이 정신 약물 덕분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은 완전한 회복을 이루지 못하는 75퍼센트의 사람들이다. 꾸준히 약물을 복용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신 의학은 이들에게 완치를 약속하지 못하며, 15퍼센트에 이르는 사람들은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왜 4분의 3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정신과 치료는 부족하거나 무기력한 것일까?
정신 의학의 그림자
인체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흐름이 필요하다. 신경계에서의 신호 전달은 전기적 신경 전달과 화학적 신호 전달이 있다. 전기로 된 신경 신호가 신경 말단에 도달하면 신경 전달 물질이 유리되어 다음 세포에 도달하고, 이를 통해 정보가 전달된다. 생물 정신 의학은 정신 질환의 본질이 우리 몸, 그중에서도 뇌 속 신경 전달 물질의 불균형의 결과라고 본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발견된 1950년대를 지나면서 신경 세포들 간에 신호를 전달하는 화학 물질인 신경 전달 물질이 정신 질환의 원인을 밝힐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루트라고 인식됐다.
1980년대까지는 하나의 신경 전달 물질이 하나의 질병과 연관된다는 1:1 이론이 강세를 보였다. 예를 들면 도파민 과잉이 조현병을 초래하고, 항정신병 약물은 도파민을 차단함으로써 효과를 낸다는 도파민 가설이 널리 퍼졌다. 안타깝게도 지난 40년 동안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더 최근에 나온 일부 항정신병 약물은 도파민을 차단하지 않고도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의 연구 결과, 인간의 뇌에 작동하는 신경 전달 물질은 100가지가 넘는다. 모든 신경 전달 물질은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며 기능한다. 조현병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진 도파민은 최소 일 억 년 전부터 생체 기능 조절 물질로 작용했다. 개체 발생 과정에서도 배아기 뇌에서 가장 먼저 발현되는 신경 전달 물질이다. 도파민은 가장 원초적인 생명 유지부터 동기화된 행동, 학습, 주의력과 기억, 의식과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뇌의 광범위한 기능에 관여한다. 만약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될 경우 뇌의 기능에 장애가 올 수 있다.
예를 들어 도파민은 새로운 자극을 처리하는 데 관여하는데, 처음 접하는 환경에서 각성 수준이나 탐색 활동을 증가시킨다.
[5] 도파민은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뱀을 발견해 내는 것과 같이 무작위적 패턴 사이에서 어떤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는 데 관여한다. 도파민 분비가 적절하면 패턴을 잘 찾아낼 수 있고 창의적으로 패턴을 해석하기도 한다.
[6] 하지만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는 조현병에서는 무작위적인 패턴에서도 쉽게 특정 패턴을 만들어 발견하게 돼 환청, 환시 등 존재하지 않는 것을 듣거나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 도파민은 조현병 외에도 중독, 주의력 결핍, 스트레스 반응, 강박, 조증 등 다양한 진단 혹은 증상과도 관련이 있다. 조현병 환자에게 도파민 이상이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이상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전(機轉)으로 증상을 유발하는지, 그리고 과연 질병 과정의 원인인지 혹은 결과인지에 관해서는 아직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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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약물에 대한 제한된 근거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진단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는 상황이며 정신과 약물의 사용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는 제약 회사의 영향력이 주요하게 작용한다. 미국의 제약 회사들은 정신 의학 연구에 막대한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 메사추세츠대학의 연구팀은 DSM에 새로운 진단명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연구진과 제약 회사 간에 발생하는 이해 충돌을 조사했다. 조사된 정신 질환은 사별과 관련된 우울증, 폭식 장애, 파괴적 기분조절부전장애, 월경전불쾌감 등이다. 이들의 진단은 신뢰도와 타당도에 문제 제기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과 진단을 과도하게 늘린다는 ‘진단 인플레이션(diagnostic inflation)’의 우려도 있었다. 연구 결과 13개의 약물 실험 중 12개에서 DSM 의사 결정 연구자와 제약 회사들 간의 재정적인 관계가 있었다. 대부분의 실험 대상은 특허가 만료되거나 2년 이내에 만료될 예정인 의약물이었다. 제약 회사는 새로운 진단을 만들어 내고 이를 치료하는 약물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함으로써 적어도 1년 동안 1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정신 의학, 절대적 권력
정신과 진단과 약물 치료가 가진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만드는 권력은 강력하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정신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가지게 된다. 진단은 치료적 개입의 근거가 될 뿐 아니라, 장애 등록의 필수 요건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나쁜 행위를 아픈 행위로 바꿔줌으로써 교도소에서 처벌받을 사람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문제는 정신 의학의 여전한 과학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라는 데 있다. 정신과 의사가 내리는 조현병이나 양극성 기분 장애라는 진단은 일종의 사회적 선언이 되어 환자의 삶을 규정한다. 잠재적 정신 질환자에서 공식적 정신 질환자로 신분이 전환되는 것이다.
한 개인이 느끼는 정신적 고통이 정신과 의사의 진단을 통해 정신 질환으로 규정되면, 그때부터 그 고통에 담긴 개인의 서사는 사라지고 ‘증상’에 대한 전문가의 치료가 시작된다.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으로 오랫동안 고통받던 영주(가명) 씨는 친구들이 수군거리고 놀리는 소리가 어느 순간 혼자 있는 공간에서도 환청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신과를 찾았고 의사는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영주 씨는 자신이 친구들의 따돌림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학교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정신과 의사가 깊이 있는 상담을 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의사는 약물 치료를 통해 환청이 줄어드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의사는 그 소리가 가지는 의미에는 관심이 없었다. 조울증 당사자로서 정신 질환에 대한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 ‘리단’은 의사가 알고자 하는 것은 내 마음의 상처가 아니라, 내 생활에 방해가 되는 증상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정신과를 처음 찾는 초심자에게 정신과 상담은 약물 치료를 위한 상담이지 심리 상담이 아님을 조언한다. “너무 많은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의사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말라. 의사의 말들에 나를 돌아보기보다 바뀐 약물이 주는 느낌을 조목조목 기록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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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진단을 받고 나면, 치료는 전문가의 권위에 종속되고, 환자는 치료에 순응해야 한다. 외과 수술과 같이 환자의 수동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신체 질환과 달리 정신 질환은 환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증상을 인지하는 것도,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먹는 것도, 그 약이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결국 환자의 역할이다. 모든 약이 그렇듯이 정신과 약물도 부작용이 따른다. 가볍게는 입 마름, 변비에서부터 하루 종일 졸리고 몸이 가라앉는 진정 작용, 성기능 장애, 그리고 틱 증상과 유사하게 얼굴 근육이 불수의적으로 움직이는 지연성 운동 장애 등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부작용도 있다. 치료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부작용이 당사자에게는 증상만큼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다. 환자는 약을 먹어 증상이 나아진다고 해도, 부작용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결국 약을 끊게 된다. 따라서 자신에게 잘 맞는 약의 종류와 용량을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를 위해서는 약에 대한 반응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환자 당사자가 치료에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또한 무조건적으로 약물을 강요하거나, 당연한 감정도 약으로 통제하는 것은 정신 질환자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에서 약물 치료는 절대적이다.
정신 질환을 의료적 치료로만 접근하게 되면 부득이하게 강제적 치료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개인을 강제적으로 구금할 수 있는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정신 질환이 있을 때다. UN 장애인권리협약이 장애로 인한 강제 구금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가 정신 질환자에 대한 강제 입원 제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선진국일수록 강제 입원의 기준과 절차가 엄격하다. 미국의 경우 정신 질환자에 대한 강제 입원의 판단을 법원이 내리도록 되어 있으며 호주 등의 국가는 준사법 기관인 정신건강심판원을 두고 있다. 정신 질환으로 인해 자타해의 위험이 있는 경우 (준)사법적 절차를 통해 강제 입원을 진행한다. 입원 기간도 일주일에서 최대 한 달 이내로 최소화하고 있다.
강제 입원의 경우 정신과 의사가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지만 대부분 민간 의료 기관에 소속된 의사들이 병원의 이해관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서구의 강제 입원율은 영국 13.5퍼센트, 이탈리아 12퍼센트, 독일 17퍼센트 등으로 나타난다. OECD 국가들이 대부분 10퍼센트 대인데 반해 한국은 32.1퍼센트로 두 배 가까이 된다. 한 개인을 강제로 구금할 수 있는 권력이 정신과 의사에게 주어져 있다.
그들은 어쩌다 생존자가 되었나
강제 입원한 환자에게는 강제적 약물 치료, 사지 결박, 안정실 감금, 통신 제한 등의 제약적 조치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가 일어나기도 한다. 2016년 4월, 20대 남성이 알코올 중독으로 영등포 소재의 한 정신 병원에 입원했다. 그가 병원의 알코올 솜을 몰래 훔쳐 알코올을 짜내 섭취하자 의사는 간호사에게 전화로 결박을 지시했다. 환자는 양팔과 다리를 침대에 묶인 채 11시간 동안 구속 상태에 놓였다. 가까스로 몸부림을 쳐 스스로 탈출했지만 이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이상 반응을 보였다. 의료진은 환자에 대해 심장 마사지와 심폐 소생술 등 응급 처치를 시행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통상 입원 환자들은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특히 정신 질환 약물 투여자는 장시간 움직이지 못하면 혈액이 굳어 혈류 정체와 과응고 상태가 나타날 위험이 있다. 따라서 강박 조치를 하더라도 한 시간마다 환자 상태를 점검하고 두 시간 마다 팔다리를 움직여줘야 한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았고 업무상 주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업무상 과실 치사 협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업무 소홀과 사망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9] 2020년에도 경남 합천의 한 정신 병원에서 정신 질환자가 구타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고, 이에 대해 당사자 단체들은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폐쇄 정신 병원에서 자행되는 것은 치료가 아닌 감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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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입원 경험은 정신 질환자에게 심각한 트라우마가 된다. 2018년 미국에서 정신 병원에 입원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500명 중 절반 이상이 정신과 병동에서의 경험을 ‘트라우마’라고 답했으며, 37퍼센트는 강제적 치료를 포함한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고 응답했다. 약 7퍼센트는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답했다.
[11] 한국에서도 많은 정신 질환자들이 강제 치료 경험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정신 질환 당사자였던 박여리 씨는 정신 병원에서 영문도 모른 채 ‘CR룸’이라는 독방에 갇힌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독방에 갇힌 채 온 신경이 다 할퀴어진 상태로 밤을 새워야 했고, 화장실에 보내달라고 하자 초록색으로 된 오줌통을 독방에 던져 준 것 또한 선명하다고 한다. 강제 치료의 고통은 매번 병원을 뛰쳐나오게 만들었고, 치료 중단은 병을 더욱 악화시키는 이유가 되었다.
[12] 폐쇄된 병원에서 치료진이 가지는 절대적인 권력은 정신 질환자의 인권과 존엄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열악한 치료 환경은 인권 침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전국 230여 개의 정신 병원 중 대다수가 군대 내무반을 연상케 하는 비좁고 과밀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정신 의료 기관의 입원 병실은 일반 의료 기관과 달리 다인 입원실 면적이 1인당 4.3제곱미터가 적용되고, 입원실 당 최대 10개의 병상을 둘 수 있다. 일반 의료 시설의 경우 2015년 메르스 유행 이후 다인실은 1인당 6.3제곱미터, 병상 간 1.5미터 이상 이격 거리 확보, 입원실은 6인실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등, 설치 기준 강화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신 의료 기관은 안전사고 방지를 이유로 예외가 인정돼 과거 기준이 여전히 유지되어 왔다. 급기야 코로나19 사태 때는 열악한 치료 환경으로 인해 첫 사망자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코로나19로 인한 집단 감염으로 청도대남병원에서는 확진자가 114명, 사망자가 일곱 명 발생하였으며, 제이미주병원에서는 135명이 확진 판정을 받고 그중 한 명이 사망했다. 모두 병원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나서야 정부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해, 정신 병원도 일반 의료 기관과 동일한 시설 기준을 지키도록 조치했다.
정신 질환자는 정신과적 증상으로 인한 고통만큼 힘든 치료 과정 속에서 말 그대로 살아남아야 한다. 중증 정신 질환자의 경우 강제적인 치료, 약물 치료의 고통, 열악한 치료 환경, 사회적 낙인과 차별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아내야 한다. 실제로 정신 질환자의 초과사망률은 일반 인구의 네 배 이상, 퇴원 후 1년 이내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650명, 자살률은 전체 인구 대비 7.2배로 나타났다.
[13] 이러한 맥락에서 정신 질환자들은 스스로를 ‘생존자’로 정의하기도 한다. 197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정신 질환 당사자 운동에서는 억압적인 정신 건강 서비스 체계에서 살아남았음을 의미하는 ‘생존자’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심각한 우울증으로 강제 치료를 경험한 후 정신 질환자 당사자 운동의 선구자가 된 주디 챔벌린(Judi Chamberlin)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정신 병원 입원 경험은 의존과 약함을 조장한다. 환자들의 삶을 통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러한 통제가 정신 질환자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정신 질환 때문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정신 질환자들은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스스로 결정하기 어렵게 되며, 권위에 과도하게 순종하게 되고, 바깥세상을 무서워하게 된다. 정신 병원 입원은 그 자체로 반치료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