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정부나 국제기구가 보지 못하는 구호의 사각지대는 어디인가?
현재 열 명의 자원봉사자가 나와 함께 일하고 있고 우리에게 온 우리에게 온 도움 요청은 1000건이 넘는다. 이게 바로 사회 시스템의 사각지대다. 난민들에게 필요한 식료품과 생필품을 파악하는 데 천재적인 두뇌는 필요치 않다. 파악하고자 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원은 여전히 터무니없이 적거나 부재하다. 헝가리 교회들이 자체적으로 도우려고 하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수천 명인데 교회들은 약 200가구 정도만 지원하고 있다. 이래선 안 된다. 난민 구호를 위해 막대한 예산이 배정되고 있다고 해서 이것이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예산이 대체 어디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내 눈앞에는 지금 굶고 있는 사람들, 매우 혹독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달라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청하지 못하는 경우 역시 존재할 것 같다.
실제로 그렇다.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어떤 문제를 누구에게 문의하며 어느 기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에 관한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실질적이고 유용한 정보는 텔레그램이나 바이버(Viber)같은 비공식적인 채널에서만 접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지만 기관들을 신뢰하진 않는다. 기관들 또한 이들과 헝가리어로 소통하려 하는데 이들은 헝가리어를 할 줄 모른다. 어마어마한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장기 체류하는 난민들은 지금 어디서 지내고 있나? 마땅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나?
공식 국가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고 일종의 보호소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국가 프로그램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헝가리인의 집에 얹혀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공장에 취직해 기숙사에 들어가는 이들도 있다. 이 역시 사각지대다. 그곳에서 난민들의 생활이 어떠한지, 과연 필요한 지원과 도움을 받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얹혀살게 되면 집을 내어 준 주인과 갑을관계가 형성된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아주 불행한 이야기들이 탄생하는 공간일 것이다.
게다가 기숙사 역시 문제다. 우리가 파악하기로 그곳에서는 하루에 한두 끼 정도가 지원되고 있으며 대체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익숙하지 않고 잘 안 맞는 음식들이다. 특히 아이들이 먹기 힘든 음식이다. 나 역시 헝가리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어머니들의 심정이 너무나 이해된다. 아마 나도 먹기 힘들 거다. 식료품 카드로 음식을 전달받은 분들은 “정말 오랜만에 과일, 고기, 채소를 먹었다”고 말한다. 최악의 상황이다.
러시아인, 마음의 벽을 허물다
헝가리 현지인들은 난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나?
난민에 대한 헝가리인들의 반응은 매우 엇갈린다. 수많은 헝가리인이 우리를 돕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이들은 사회적 명성이 있거나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 난민 문제를 고민할 겨를이 있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헝가리인은 난민을 경계하고 있다. 그들은 낯선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이민자를 싫어한다. “난민이 아닌 헝가리인을 도와라. 우리에게도 충분히 많은 문제가 있다”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아주 복잡한 사회 문제가 펼쳐지고 있다.
아무래도 러시아인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는 러시아인이 많은가?
정말 많은 러시아인이 난민들을 돕고 있다.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구소련 국가 출신 사람 중에도 난민을 돕는 사람이 많다. 나에게 돈을 보내고 침구와 장난감을 가져다주며 여러모로 지원해 준다. 그런데 이들이 왜 직접 나서지 못하는지 어느 순간 깨달았다. 해외에 거주하는 많은 러시아인들은 직접 우크라이나인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모진 말을 듣지 않을지, 도움을 거절하진 않을지 말이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엔 그런 것이 없다. 온라인상으로는 모두 서로 증오하고 욕하고 모진 말을 내뱉지만, 사실 온라인은 현실의 일그러진 거울이다. 현실에는 오로지 ‘도움’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인들과 처음 대면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어땠나?
나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유리 두즈
[1]의 다큐멘터리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기차역에서 난민을 만났을 때 그들이 내게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나는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는데 원래 모스크바 출신이라고 답했다. 그때 공기에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침묵이 아픈 침묵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절절하게 깨닫게 하는 침묵이었다. 어떤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에 가서 사람을 죽이고, 어떤 러시아인은 우크라이나인을 돕고 있고.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미쳐버릴 것 같다. 다만 내가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서 부정적인 반응을 얻은 적은 없었다.
마음의 벽을 어떻게 허물 수 있었나?
나를 직접 겪고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본 사람들에겐 나에 대한 의문이 없을 것이다. 물론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게 원칙적으로 우크라이나어로만 말하는 분들도 계셨다. 이해한다. 나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난 몇 달을 지나며 우크라이나어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고 조금씩 대답할 수도 있게 됐다. 나는 우크라이나인들과 그들의 투쟁을 존경한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부디 모두가 잘 되기를 바란다. 나를 본 분들은 이 마음을 아실 것이라 생각한다.
러시아인이기에 특별히 더 무거운 감정과 책임감을 느끼나?
물론 당연하게도 특별히 더 무거움과 책임감을 느낀다. 내 생각에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이 느껴야 하는 감정이다. 사실 이는 정체성에 대한 매우 복잡하고 폭넓은 쟁점인데 이 정체성이 전쟁으로 인해 많은 이들의 마음에서 고장 나버렸다. 반대로 ‘우크라이나인을 돕는 러시아인’이라고 해서 이를 훈장처럼 여길 생각은 더더욱 없다. 사실 훈헬프 홈페이지에는 나에 대한 정보도 없고 식료품 카드가 어디에서 어떤 돈과 경로로 제공되는지에 대한 정보도 없다. 이는 불필요한 정보다.
이러한 활동을 핑계 삼아 나중에 자신을 세탁하는 사람이 없길 바란다. 나는 그런 류의 ‘좋은 러시아인’과 같은 편이고 싶지 않다. 이런 전쟁을 벌이는 나라와 같은 편이고 싶지도 않다. 그 누구의 편도 되기 싫고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기 싫다. 나는 늘 민족적 개념보다 넓은 사람이었다. 우리 가족은 국제 가족이고 나는 단 한 번도 민족주의의 폐해를 겪은 적이 없다.
지원이 많이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뷰를 보는 독자들이 헝가리의 난민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달라.
관심을 보여준 것에 정말 감사한다.
훈헬프 홈페이지에는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다른 방법으로 돕고자 한다면 언제든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메시지를 주셔도 좋다. 우리는 언제나 오픈되어 있다.
훈헬프로 도착한 메시지들
“저와 제 아내, 어린 아들과 장모님은 하르키우에서 피난 왔습니다. 5월에 장모님이 심장병으로 돌아가셨어요. 아파트를 렌트해서 살고 있는데 아이가 한 살밖에 되지 않아서 아내는 직장을 다닐 수 없어요. 장례식 이후로 집세를 낼 돈이 없어서 우크라이나 은행들에 빚을 많이 졌어요. 도움을 요청드려요.”
“제 막내딸 둘은 1년 8개월 된 쌍둥이입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저희는 아브데예프카(Avdiivka, 도네츠크주의 소도시)에서 왔는데 그곳에서 우리의 삶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악몽이었습니다. 지금은 부다페스트에 있고 새로운 시작을 해보고자 합니다. 도움이 절실합니다. 도와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23살이고 아이는 3살,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음식을 사거나 유치원에 입혀 보낼 아이 옷을 살 돈이 없습니다. 어떠한 도움을 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저는 68세 연금생활자입니다. 키이우에서 언니(77세)와 형부(75세), 그들의 딸인 제 조카와 함께 피난 왔습니다. 조카는 저희를 케어하기 위해 전시에도 재택근무를 하며 정말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카는 미혼이고 우리 모두를 돌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미혼모이고 아이를 혼자서 키우는 우크라이나인입니다. 전쟁으로부터 피난 왔습니다. 한 달 동안 러시아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전기와 수도 없이 어린 자녀와 숨어서 지냈습니다. 저희 도시가 해방된 이후 저와 친척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짐을 챙겨 도망 나왔습니다.”
“피난민입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생활비가 없고 한 살 된 아기를 돌보는 아내는 직장을 다닐 수 없습니다. 제 월급은 다음 달에나 지급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저는 61세이고 당뇨병과 고혈압 등 만성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제 나이와 건강 상태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7세와 10세 두 손자와 살고 있습니다. 부디 도와주세요. 미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