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으로 치부되는 듯했던 립스의 근거는 점차 퍼져나가 급기야는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에서 유가랩스의 두 창업자와 BAYC를 비난하는 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난이 일자 유가랩스는 ‘유가(Yuga)’의 의미가 라이더 립스의 주장처럼 극보수주의나 전통주의자가 즐겨 사용하는 개념에서 따온 것이 아닌, 게임 〈젤다의 전설〉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임을 밝히는 정도로만 대응했다.
그러나 논란은 더 커졌다. 2022년 6월 한 유튜버가 립스의 근거를 토대로 한 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해당 영상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결국 유가랩스는 법적 대응에 나섰고, 오픈씨에 BAYC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와 만든 RR/BAYC의 제거를 요청했다. 더불어 BAYC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훼손하고 있는 라이더 립스를 고소하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반유대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결성된 ‘안티 데퍼메이션 리그(Anti-Defamation League・ADL)’의 전문가들은 립스가 제시한 증거들에 의구심을 표했다. 많은 소송에 전문가로 참석한 바 있는 ADL의 시니어 연구원 마크 핏카비지(Mark Pitcavage)는 기술 전문 매체 ‘인풋(Input)’과의
인터뷰에서 립스가 주장한 BAYC 로고와 나치의 토텐코프 이미지 간에 연관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크립토펑크, 유가랩스의 품에 안기다
공동 창업자들과 관련된 논란에 뒤숭숭해진 BAYC 커뮤니티에 한 가지 놀라운 소식이 들렸다. 유가랩스가 크립토펑크와 미비츠를 인수한다는 소식이었다. 소문이 나온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2022년 3월 11일, 유가랩스와 라바랩스는 인수 성명을 발표했다. 뒤숭숭했던 분위기는 한순간 반전됐다. 유가랩스는 라바랩스로부터 423개의 크립토펑크, 1711개의 미비츠를 인수했고 이들의 저작권과 브랜드 및 로고를 포함한 기타 지식 재산권을 모두 보유하게 됐음을 알렸다.
인수 발표 후 유가랩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크립토펑크와 미비츠의 홀더들에게 자유로운 상업적 사용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크립토펑크와 미비츠를 BAYC와 동일하게 멤버십 클럽 모델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덧붙여 두 컬렉션의 미래에 대해 무언가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커뮤니티의 의견부터 경청하겠다고 전했다. 이 성명문에서도 유가랩스가 PFP NFT 프로젝트의 운영에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PFP NFT 프로젝트에서는 커뮤니티와 함께 산출물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전통적인 기업처럼 하향식(Top-down)으로 접근해서는 커뮤니티 구성원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다. 또한 이야말로 웹3.0 업계의 탈중앙화 정신에도 부합하는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날 라바랩스의 공동 창업자들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이번 인수가 그들이 유가랩스에 합류하거나 라바랩스를 매각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켰다. 이어서 이번 계약을 진행한 이유도 밝혔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문성이 어떤 기술의 도입기에 그 기술을 이용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데 있으며, PFP NFT 분야가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해 갈수록 크립토펑크와 미비츠를 운영하는 것이 적성이 아님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들의 개인적인 성격과 역량이 커뮤니티 관리, PR(Public Relation), 기타 PFP 사업을 이끌기 위해 매일 같이 요구되는 업무들을 수행하는 데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유가랩스의 공동 창업자들을 만났을 때 앞서 언급한 역량들을 갖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라바랩스의 두 공동 창업자는 크립토펑크와 미비츠를 떠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이다. 소유한 NFT는 두 창업자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또 다른 프로젝트인 ‘오토글립스(Autoglyphs)’는 그대로 운영한다.
인수 발표 후 크립토펑크의 가격은 수직 상승했다. 크립토슬램(CryptoSlam)에 따르면 발표 후 24시간 동안 크립토펑크는 1880만 달러, 한화 246억 원에 달하는 규모로 거래됐다. 이는 전일 대비 1219퍼센트 증가한 수치였다. 바닥 가격 또한 11퍼센트 상승한 75ETH를 기록했다. 미비츠도 동 기간 거래량이 1850만 달러로 전일 대비 529퍼센트 증가했고, 바닥 가격은 32퍼센트 상승해 5.6ETH를 기록했다. BAYC 또한 동 기간 거래량이 1000만 달러를 넘어섰고, 바닥 가격은 8.99퍼센트포인트 상승하여 약 96.87ETH를 기록했다.
가격 상승 외에도 이 인수에는 몇 가지 시사점이 있었다. 이미 BAYC가 크립토펑크를 역전하면서 최고의 PFP NFT 프로젝트로 등극한 상황이긴 했으나, 이번 인수를 통해 유가랩스는 최초의 PFP NFT까지 소유하게 됐다. 비로소 진정한 NFT 파워하우스로 거듭난 것이다.
해당 인수는 콘텐츠 사업자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됐다. 가치 있는 IP 자산을 구매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가랩스는 BAYC, MAYC, BAKC 등으로 구성된 BAYC 중심의 세계관뿐만 아니라 크립토펑크와 미비츠라는 새로운 IP 자산을 확보했다. 흥행 산업의 특성을 띠는 PFP NFT 시장의 경우, 향후 어떠한 프로젝트가 어떤 형태로 언제 성공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유가랩스는 사용할 수 있는 카드패를 늘렸다.
BAYC의 인수는 PFP NFT 산업 전반에도 의미 있는 발전이었다. 유가랩스와 아디다스의 파트너십 체결, 나이키의 아티팩트 인수로 NFT 분야가 산업화되는 모습을 보여 준 바 있었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PFP NFT는 기업보다는 프로젝트의 성격이 강했다. 실험적인 프로젝트였던 크립토펑크가 투자를 논의 중이었던 유가랩스에 매각된 것은 PFP NFT 시장의 본격적인 기업화를 의미했다. 이와 같은 흐름은 파편적이었던 시장이 점차 소수의 상위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통합(consolidation)될 수도 있다는 단서였다. 물론 긍정적인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웹3.0 커뮤니티 일부에서는 유가랩스의 크립토펑크와 미비츠 인수가 탈중앙화를 저해하는 움직임이라고 보기도 했다.
유가랩스가 인수를 발표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기 전, 시장에는 연이어 놀라운 소식들이 전해졌다. 3월 17일에는 유가랩스가 자체 코인인 에이프코인의 출시를 발표했고, 바로 다음 날에는 메타버스 게임 ‘아더사이드(Otherside)’의
티저 비디오를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