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는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백인 남성으로 알려져 있다. 단속을 피해 스프레이로 그라피티를 그리던 그는 2000년경 상대적으로 작업 시간이 적게 걸리는 스텐실에 매력을 느꼈다. 작업 방식을 스텐실 장르로 변환하고, 그라피티 예술가들의 상징과도 같은 태그
[2]보다 그림 위주의 거리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거리 예술가로서 뱅크시의 기법이나 비평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스텐실 기법, 특히 쥐를 작품 전면에 내세우는 경향은 1980년대 프랑스의 그라피티 예술가 블렉 르 라(Blek le Rat)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본주의 풍자 역시 거리 예술가들이 주로 선택하는 주제다.
과거 거리 예술의 스타일과 주제 의식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현재 뱅크시의 위상은 확고하다. 구글에서 ‘뱅크시’는 ‘거리 예술’보다 1.4배 많이 검색되고 있다. 뱅크시의 작품들은 경매장에 출품돼 억대에 거래된다. 뱅크시의 전시회에는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브래드 피트(Brad Pitt),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같은 유명 인사들이 방문해 작품을 고가에 사들인다. 뱅크시의 스텐실은 런던 관광청과 브리스톨 관광청에서 위치와 관련 정보를 소개할 만큼 관광 상품으로도 인기가 높다. 그의 작품은 훼손과 절도를 방지하기 위해 강화 유리로 보호되는 등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많은 거리 예술가들이 공유하는 주제와 기법을 사용함에도 뱅크시가 대중과 예술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름을 알리고 상업적 성공을 얻은 후에도 자신만의 고유한 화법과 전략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거리 예술가가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는 동시에 대중성을 획득하기는 힘들다. 체제를 비판하는데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시장의 러브콜을 받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버락 오바마의 대선 포스터 ‘희망(Hope)’을 제작한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인지도가 높은 작품을 제작하고 아디다스와 협업하는 페어리는 대중문화와 자본주의를 냉소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을 선보이기 어렵다.
그러나 뱅크시는 자본의 논리를 비판하고, 다른 시선으로 사회 체제를 바라보며, 예술과 대중문화의 간극을 좁히고자 한다. 그는 대중을 자본주의 아래에서 살아가는 쥐에 빗대어 풍자하고, 우체국과 병원 같은 공공 기관의 운용 논리를 비판하고, 다리 밑이나 버려진 공장 건물에 하층민의 현실을 표현한다. 일상의 공간에서 작업하지만 일상의 공간을 지배하는 시장, 정치, 도시 문화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 결과물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겨 자신의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그 덕분에 미술관에 가야만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던 대중은 쉽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작품 감상과 후기를 공유하기도 쉽다. 작품을 접한 사람이 많을수록 작품에 대한 해석도 다양해진다. 주류 문화를 조롱, 변용하는 뱅크시가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자 자본과 도시는 뱅크시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