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이 미덕인 사회
현재 일본 인재 시장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IT 인력 수급이다. 현업 IT 기술자들의 연령은 높아지는데, 현장에 투입할 차세대 IT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며 2030년에 이르렀을 때 45만여 명 이상의 IT 인재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다.
[9] 이에 따라 2022년부터 국가공무원 채용종합직시험에 디지털 분야의 합격자를 적극 채용하기로 하는 등 일본 정부는 디지털 인재 채용 및 육성에 힘을 보태고 있으며, 많은 일본 IT 기업들은 한국의 고급 인력을 유치하고자 노력 중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일본 진출의 길이 좁아졌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청년들이 IT 분야에서 가장 많이 진출한 국가는 일본이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2020년 발표한 〈고용노동부 해외 취업 지원 사업을 통한 취업 현황〉 자료에 의하면 2016년 632명이, 2017년 1103명이, 2018년 1427명이 일본의 IT 기업에 진출했는데, 그 이유로 일본 기업들은 같은 한자 문화권인 동시에 일본인들보다 영어 실력이 우수한 한국 청년들을 선호한다는 점을 꼽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디지털 전환이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기술자의 생계가 달려 있다는 이유로 아날로그 시대에 축적된 기술이 좀처럼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대 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지는 않는 아날로그 기술들이 일본 내에서만 진보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예컨대 한국 자취생들은 작은 원룸에서도 대부분 디지털 도어를 쓰지만, 일본은 눈 씻고 찾아 봐도 디지털 도어를 쓰는 곳을 발견하기 어렵다. 여전히 열쇠를 들고 다니는 게 익숙하고, 디지털 도어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열쇠 수리공이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것에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21세기인 지금도 학생들은 기숙사나 월세방의 열쇠를 잃어버릴 경우 주인에게 변상해 줘야 한다. 또 2021년 10월 31일, 중의원 선거를 위해 연필을 깎아야만 했던 공무원들의 모습이 TV에 잡혔다. 전자 투표가 아닌 자필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연필을 돌려 쓰지 않도록 10만여 개의 연필을 일주일에 걸쳐 일일이 깎는 해프닝이 21세기 선진국 일본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제는 일본의 많은 전문가들이 자국의 디지털 행정을 추진하는 데 벤치마킹할 국가로 한국을 꼽는다. 지방자치단체의 시스템 인프라가 통일되어 있고, 중앙에 전문가 집단을 풍부하게 배치하고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각종 서류를 접수할 때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신청하는 반면 일본은 대부분의 행정 절차가 우편으로 오고 간 후에야 컴퓨터로 가입하고 활용하는 등, 여전히 일본의 IT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IT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기술을 원하면서도 활용하지 못하고 아날로그로 진행하는 불편함을 일본인들은 불평 없이 받아들인다. 이해와 순응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 때문이다. 한국처럼 더 큰 성공,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매달 나오는 월급으로 연금과 세금을 내고, 성실히 직장 생활을 하다 퇴직 후 국가 연금으로 기초 생활을 보장받는 것이 하나의 문화이자 성공 방정식으로 정착해 있다. 버블도 이미 오래 전 경험한 터, 한국처럼 불로소득으로 대박이 나거나 3억 원에 산 아파트가 9억 원으로 몸값이 뛰는 경우도 기대하긴 어렵다. 딱 일한 만큼 가져간다는 라이프 스타일이, 일본 전반의 디지털 혁신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