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일 양국의 인터넷 보급률은 각각 96퍼센트와 90퍼센트로 일본 역시 상당한 인터넷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그러나 속도는 다른 이야기다. 세계 각국의 모바일 인터넷 속도를 매달 측정해 랭킹을 매기는 우클라(Ookla)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5월 기준 한국은 4위, 일본은 45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터넷 최고 접속 속도의 평균 수치는 우리나라가 약 86.6Mb/s, 일본이 약 78.4Mb/s로 두 수치의 격차는 10퍼센트 가량이었지만, 평균 접속 속도에서는 한국이 약 20Mb/s, 일본이 약 15Mb/s로 30퍼센트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인터넷 인프라의 차이는 일상의 많은 영역을 바꿔놨다. 편의를 극대화한 배달앱들이 한국에 ‘배달 음식의 성지’라는 타이틀을 안겨 주고, 카카오톡은 한국인들의 의사소통에 큰 축을 담당한다. 행정 처리 과정에서도 많은 부분 디지털 전환이 이뤄졌다. 최근에는 다수 관공서에서 모바일 앱을 개발해, 시간을 들여 관공서에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각종 공문서를 단시간에 발급받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필자는 지난해 5월 연말 정산 환급을 받기 위해 일본 나고야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에 취업한 아들에게 전년도 수업료 제출 증명 서류를 보내 달라고 했을 때, 본인이 직접 나고야까지 가지 않으면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 포기하고 말았다. 왕복 신칸센 차비에 하루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비용이 연말 정산 환급금보다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에서 디지털화의 발목을 잡는 것은 인터넷 인프라 자체의 부족이 아니다. 빠른 인터넷망을 보유하고도 아날로그 문화에 대한 애착으로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만큼 다양한 앱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모바일 기기에 대한 수요가 적고, 이는 인터넷 속도 개선의 차이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익숙한 레거시 문화(legacy culture)에 안주해 앱 활용도가 적고, 사용자 수가 적으니 앱 서비스 개선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으며, 이에 따라 다수 소비자가 디지털 서비스를 외면하는 순환 구조로 고착화한 것이다.
디지털 인프라의 불편한 진실
필자는 출석을 부르는 데 시간을 거의 소모하지 않는다. ‘배재콕’ 앱을 활용하면 반경 10여 미터 안에 있는 학생들과 스마트폰으로 자동 연결되어 출결석이 체크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신저 역할도 해준다. 이미 대한민국의 많은 대학에서 이런 전자 출결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물론 이를 악용하는 학생들도 있다. 강의실에 들어오지 않고 복도에서 와이파이를 이용해 출석 체크를 한 후 데이트하러 간다든지 말이다. 그러나 이런 에피소드보다 주목할 것은 바로 일상의 많은 영역에서 드러나는 일본 아날로그 행정의 취약점이다.
용량이 1.44메가바이트에 불과한 플로피 디스크(floppy disk)를 현 세대는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필자가 1980년대 말 대학에 다니며 전산학 수업 때 배웠던 이 구식 기술 매체는 생산 자체는 일본에서도 일찌감치 중단됐지만 여전히 여러 공공 기관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에 2022년 8월 30일, 드디어 디지털청의 고노 타로(河野太郎) 장관이 일본의 행정 절차에서 플로피 디스크의 사용을 중단하는 법을 진행하겠다는 기자 회견을 가졌다.
[5] 그만큼 일본이 구식 기술과 관례를 바꾸고자 하는 ‘감’이 없었기에 구태의연한 행정법이 그대로 살아 있던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 디지털 인프라의 부족은 불편한 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기성세대는 ‘아날로그 원어민’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날로그에 대한 애정이 깊은데, 이는 달리 표현하면 디지털에 대한 신뢰가 낮다는 반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의료 시스템이다. 우선 한국에선 진료 카드 하나로 무인 기기에서 접수 및 수납을 할 수 있다. 보험 처리를 위한 서류도 진료카드로 간편히 인쇄할 수 있으며, 어떤 병원은 진료카드 없이 스마트폰으로도 이 모든 처리가 가능하다. 이를 본 많은 일본인들은 ‘정확한 확인도 없이’ 어떻게 해당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여전히 일본의 많은 병원에선 마치 90년대 대학 도서관의 한 풍경처럼 접수대 뒤쪽의 서류꽂이가 환자들의 진료카드로 빽빽히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확진자의 집계에서도 한국은 빠르게 대처했다. 중앙방역대책 본부를 만들고 확진자 동선을 데이터로 파악해 방역의 효율을 높였다. 여신금융협회 및 이동통신사와 연계한 역학 조사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련 정보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했으며 QR코드를 활용한 전자 방명록을 도입했다. 재난 지원금 지급에 있어서도 신속했다. 일본과 달리 행정 시스템과 주민등록번호가 결합되어 있던 덕에, 불과 2주 만에 90퍼센트가 넘는 대상자들에게 지급을 완료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떤가? 코로나19의 피해 보상을 위한 대국민 재난 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한 지 두 달이 지난 시점에도 전 국민 지급률이 30퍼센트에 미치지 못했으며, 그중 도쿄의 지급률은 12퍼센트에 불과했다. 모든 행정 처리를 오프라인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재난 지원금을 빠르게 받고 싶을 경우 직접 구청을 방문해 신청 후, 온라인용 비밀번호를 발급받아야만 했다. 우편으로 신청할 경우 구청에서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 주면 수기로 신청서를 작성해 다시 우편으로 발송하고, 해당 서류는 구청 직원들이 다시 일일이 수작업으로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그마저 인터넷 신청에 오류가 많아 중복 지급 사고가 잇따랐다. 장애인을 비롯해 온라인 접수 절차가 어려운 국민들이 재난 지원금 신청을 포기하는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나왔고, 한 공무원이 송금 의뢰서를 잘못 작성하는 바람에 한 가구에 4억 5000만 원의 지원금이 지급됐다는 뉴스가 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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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일본의 아날로그 행정이 갖고 있던 고질적인 취약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그간 일본 행정은 내각부와 경제산업성, 총무성 세 군데로 나뉘었다. 그러다 보니 각 부서마다 별도로 정책을 운영하고, 그에 대한 책임 소재도 확실하지 않아 총리 관저에서 지시를 내려도 해당 부서가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난항을 겪어 왔다.
일본 정부의 노력이 없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정보화 혁명이 전개되며 일본이 정보의 낙후국으로 전락할 것을 염려한 당시의 모리 요시로(森喜朗) 정권은 2001년 1월, 향후 5년 이내에 일본이 세계 최강의 IT 국가로 재도약하겠다며 ‘e-Japan 전략’ 등의 국가 정보화 전략을 내놓은 바 있다. 그리고 2003년 7월에는 새롭게 ‘e-Japan II’를 추진하며 전자정부 실현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정부 부처 간 칸막이 정치로 더 이상 진척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2018년 국가 행정 절차의 온라인 이용률은 7.3퍼센트, OECD 30개국 가운데 최하위에 머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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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일본은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사람마다 고유한 개인 식별 번호 12자리를 부여했다. 일본판 주민등록증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넘버카드’ 제도다. 개인이나 법인을 특정하고 식별하는 ID 인증 기능이 있어, 이를 활용하면 각종 행정 수속이나 민간 서비스에서도 신분증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보급률은 아직도 40퍼센트대에 머물러 있다. 이에 2021년 9월 1일, 일본은 지금까지 개별 운영되던 정부와 지방의 정보 시스템을 통합하고, 기존의 행정 구조를 혁신하는 것을 목표로 ‘디지털청(デジタル庁)’
[8]을 공식 출범시키며 마이넘버제도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진척은 더딘 상황이다.
정체된 일본과 다이내믹한 한국의 차이는 여러 지표로 드러나고 있다. 2020년 UN이 발표한 ‘세계 전자정부 순위’에서는 덴마크가 1위, 한국이 2위를 차지한 반면 일본은 2019년보다 네 단계나 떨어진 14위에 머물렀으며 2021년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도 한국이 일본을 앞서 있다. 지식 경쟁력과 기술 경쟁력은 두 배 이상 차이가 나고, 미래 준비도 경쟁력에서는 여덟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