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세대
1화

프롤로그 ; MZ세대를 덮친 번아웃

번아웃 세대


취업난을 뚫고 가까스로 대기업에 취직한 30대 남성 A씨. 올해로 입사 3년 차인 그는 최근 업무에서 흥미를 잃고 무기력함을 느끼는 번아웃을 겪고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살긴 하겠지만 미래가 안 보인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 우울하다. 시시때때로 퇴사 생각이 들지만 억지로 참고 있다. 그냥 쉬고 싶은데,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퇴사해버려도 되는 것인지 고민이다.”

경력 5년 차 여성 B씨도 마찬가지다. 주말도, 밤낮도 없이 열정적으로 일하던 B씨는 번아웃으로 인해 다니던 스타트업을 퇴사하기로 했다. “번아웃은 정말 무서운 거더라. 모든 게 정지해 버린다. 다 하기 싫고, 하나도 재미없고 의미도 없고, 다 부정적으로 보인다. 월급이 나오든 말든 상관없다.”

MZ세대에게 번아웃은 익숙한 단어가 됐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인 ‘딜로이트 글로벌(Deloitte Global)’이 2022년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무려 MZ세대의 45퍼센트 이상이 높은 업무 강도와 업무량으로 인해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다. 게다가 MZ세대의 40퍼센트 이상은 자신의 직장 동료들이 최근 번아웃으로 퇴사했다고 밝혔다. 지난 2년 내 이직 경험이 있는 MZ세대는 퇴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번아웃을 지목했다.[1]

2018년 4월 출간된 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무려 30만 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MZ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저자인 일러스트레이터 하완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열정도 닳는다. 함부로 쓰다 보면 정말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 언젠가는 열정을 쏟을 일이 찾아올 테고 그때를 위해서 열정을 아껴야 한다. 그러니까 억지로 열정을 가지려 애쓰지 말자.”[2] 저자의 말과 유사한 움직임은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무의미한 일에서 행복을 찾는 ‘무민(無mean)세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小確幸)’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번아웃에 지친 지금의 MZ세대는 의도적으로 치열하게 살기를 거부하거나 포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미국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 현상을 다룬 책 《요즘 애들》의 저자 앤 헬렌 피터슨(Anne Helen Petersen) 역시 MZ세대는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다가도, 계속되는 과로와 열악한 근무 조건으로 인해 번아웃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부 MZ세대는 번아웃을 피하기 위해 열정은 낮추고, 적당히 일해 보상 받는 방식을 선호하기 시작했다.[3] 이러한 움직임은 번아웃 세대가 과도한 경쟁 속에서 피로함을 표하고 그를 이겨내려는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조직 내 동상이몽


번아웃을 겪는 MZ세대만큼 그들과 함께 일하는 기성세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몇몇 기성세대는 힘들게 입사한 회사를 끝까지 다니지도 않고, 금방 그만두는 MZ세대가 불편하기까지 하다. 기성세대에게 있어 직장 스트레스는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그들은 MZ세대가 예전만큼의 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고생 없이 마냥 편하게 자라 맷집이 부족하거나 정신이 나약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기도 한다. 지금의 업무 환경은 매일 밤을 새지도, 주말에 출근을 강요하지도, 저녁마다 회식을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쉽게 퇴사하는 MZ세대는 도통 이해하기 힘든, 철없는 세대로 보인다.

실제 2021년 신규 직원 열 명 중 세 명은 입사 1년 내에 조기 퇴사한다.[4] 주목할 것은 조직이 생각하는 MZ세대의 조기 퇴사의 원인이다. 기존 구성원이 생각하는 조기 퇴사의 주요 원인은 ‘MZ세대가 개인의 만족이 훨씬 중요한 세대라서’, ‘이전 세대보다 참을성이 부족해서’였다. 과연 MZ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이기적이고 참을성이 부족한 걸까? 왜 그들은 번아웃에 더 취약할까?

직원의 퇴사는 기업에게 있어 일종의 손실이다. 직원에게 투자했던 교육 훈련 비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추가 인력을 채용하기 위한 추가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그렇다면 퇴사로 이어지지 않는 번아웃은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번아웃은 잦은 결근, 병가, 낮은 업무 몰입도의 주요 원인이고, 이는 기업 성과로 직결된다. 사회 여론 조사 기관 ‘갤럽(Gallup)’에 따르면, 번아웃을 겪는 사람일수록 이직할 의향이 2.6배 더 높고, 병가를 낼 가능성은 63퍼센트 더 높다.[5]

더 이상 MZ세대는 소수가 아니다. MZ세대는 이미 기업 내 60퍼센트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기업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할 주력 세대다. 때문에 MZ세대의 번아웃은 큰 규모의 퇴직으로 이어질 위험이 다분하다. 사회는 2021년 미국의 대퇴사(The Great Resignation) 행렬로 이 위협을 목도한 바 있다. 일시적 퇴사 현상에서 나아가 노동을 거부하는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 양산되거나, 반노동 운동(Antiwork Movement)이 일어나는 등 더 큰 사회적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번아웃 문제를 인식한 몇몇 기업은 문제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다섯 명 중 네 명의 HR 담당자들은 구성원의 웰빙(Well-being)과 정신 건강이 조직의 최우선 과제라고 밝히기도 했다.[6] 기업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아직 MZ세대의 절반 이상은 기업의 노력을 실질적으로 체감하지 못한다.[7] 아직까지 조직과 구성원 사이에 동상이몽이 존재한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세대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세대가 변한 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시대가 변했다는 말이다. MZ세대는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고착된 저성장 속에서 노력 대비 충분한 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MZ세대가 앓는 번아웃은 지금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건강한 미래를 위해 특정 세대를 탓하기보다는 새로운 세대를 주의깊게 살피는 태도가 필요하다. 조직과 사회가 한발 앞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1]
Deloitte Global, 〈The Deloitte Global 2022 Gen Z and Millennial Survey〉, 2022, p. 30.
[2]
하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웅진지식하우스, 2018, 34쪽.
[3]
앤 헬렌 피터슨(박다솜 譯), 《요즘 애들》, RHK, 2021, 166쪽.
[4]
이재윤, 〈1년만에 떠나는 MZ세대…기업 85% “조기퇴사자 있다”〉, 《머니투데이》, 2022. 7. 21.
[5]
Gallup, 〈Gallup‘s perspective on employee burnout: Causes and cures〉, 2020, p. 4.
[6]
McKinsey Health Institute, 〈Addressing employee burnout: Are you solving the right problem?〉, 2022, p. 2.
[7]
Deloitte Global, 〈The Deloitte Global 2022 Gen Z and Millennial Survey〉, 2022, p. 31.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