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어떻게 번아웃을 키우나
미국 전기 자동차 기업 ‘테슬라 (Tesla)’의 CEO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트위터를 통해 “일하기 쉬운 직장은 많지만, 누구도 일주일에 40시간 일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을 바꾸려면 일주일에 몇 시간 일하면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일주일에 80시간에서 100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1]
성과 향상과 효율성을 위해 장시간 근로를 장려하고, 과로를 열정과 같은 덕목으로 여기는 조직 문화는 번아웃을 초래하기 쉽다. 이와 같은 문화가 익숙한 조직에서는 번아웃이 일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로 소비되기도 한다. 번아웃이 일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가 되거나, 과도한 양의 업무를 해내는 것이 능력의 지표가 된다면 조직은 물론 구성원 역시 번아웃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시의적절한 대처를 미루는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직원들은 높은 업무 강도와 경쟁적인 조직 문화로 인해 심각한 수준의 번아웃을 호소한다. 이러한 현상은 이내 퇴사로 이어졌다. 미국 언론사 ‘블룸버그(Bloomberg)’의 보도에 따르면 ‘아마존(Amazon)’의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인 ‘아마존 웹 서비스(AWS·Amazon Web Services)’는 20~50퍼센트의 퇴사율을, ‘우버(Uber)’는 20퍼센트의 퇴사율을 보였다.[2] 직원들은 퇴직의 이유로 코로나가 아닌 IT 기업 내 부정적인 조직 문화를 꼽았다. 실리콘밸리 기업은 높은 연봉과 남부럽지 않은 사내 복지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로를 부추기는 조직 문화는 구성원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고 그들을 회사 밖으로 떠밀었다.
실리콘밸리의 장점으로 회자되는 쾌적한 업무 환경과 최고 수준의 복지도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규직 직원들은 높은 수준의 복지와 연봉을 누리지만 비정규직, 계약직,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아마존은 공격적이고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악명이 높다. 2018년 미국 언론사 ‘복스(Vox)’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아마존 물류업체의 직원이었던 세스 킹(Seth King)은 “10시간 동안 서서 창문도 없는 곳에서 일하며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아마존의 근무 환경을 설명했다. 그는 직원들이 너무 지쳐 일을 할 수 없을 때까지 일하며, 이러한 환경에서는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3]
중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최대 온라인 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阿里巴巴)’의 창업자이자 전(前) CEO 마윈(馬雲)은 “주 6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하는 ‘996 직장 문화’는 큰 축복이다”, “알리바바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하루 12시간 일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말을 해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4] 노동자의 장시간 근로는 과로사로 이어지기 쉽다. 중국의 과로사 비율은 이미 일본,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며 그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장시간 근로는 성과 달성을 위한 지름길로 보일 테다. 하지만 개인에게는 생존 여부가 달린 치명적 문제다.[5]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2017년, 게임 회사 ‘넷마블’에서는 ‘크런치 모드(Crunch Mode)’로 일하던 20대 개발자가 돌연 사망했다. 크런치 모드는 초장시간 근무를 뜻하는 단어로, 당시 개발자는 첫 주에만 95시간 55분을 일했다. 이러한 형태의 불규칙한 초과 근무는 3개월 동안 이어졌다. 신제품 출시, 마감 기일 등에 맞추어 크런치 모드에 돌입한 조직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간 집중적인 야근과 특근을 지속한다. 국내 IT 개발 업계의 관행으로 시작한 크런치 모드는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이후에도 횡행하고 있다. 2021년 12월 IT 업계 노동자 23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과반인 51퍼센트가 근 1년 내에 크런치 모드를 경험했다고 밝혔다.[6]
최근에는 안정적인 직군으로 여겨졌던 공무원 사이에서도 과도한 업무로 인한 자발적 퇴사가 늘어나고 있다. 공직을 떠나는 대부분은 MZ세대다. 35세 이하 공무원 퇴직자는 2020년 기준 5961명으로 3년 전보다 1580여 명 늘었으며, 5년 이하 재직자가 전체 공무원 퇴직자의 약 21퍼센트를 차지했다.[7] 전직 공무원 20대 여성 A씨에 따르면, 일부 공직 사회에선 일정 직급에 도달하면 실무에 관여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낮은 연차인 MZ세대에게 과도하게 일이 몰리게 된다. A씨는 “9급에서 7급까지가 대부분 업무를 하고 6급부터는 안 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로는 급이 오를수록 일을 안 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8]
그렇다면 업무량이 늘거나 업무를 보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번아웃의 유일한 원인일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도한 업무뿐 아니라 의사결정에 대한 권한이 없는 조직 문화,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무기력한 업무 환경, 의미를 찾기 힘든 업무나 미흡한 보상 역시 번아웃을 초래하는 주된 원인이다.
글로벌적 선진화와 표준화를 어릴 때부터 경험한 MZ세대는 사회적 움직임과 보편적 가치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자신의 일과 업무도 개인과 사회에 의미 있는 방향이길 바란다. 자신의 업무와 자신이 속한 조직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친다는 믿음과 기대가 없다면 번아웃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의 영향력을 직접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믿음조차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MZ세대 열 명 중 세 명은 조직 내 하향식 의사 결정으로 인해 자신의 의견과 피드백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9] MZ세대는 자아실현과 조직의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길 원하지만 조직 문화와 업무 환경은 이들의 지향과는 너무 멀리 있다. 20대 A씨는 자신이 일하는 공공기관의 업무 구조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대부분의 일이 반드시 원칙에 근거해 진행되고, 자신의 재량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다. 기껏해야 일의 순서를 틀리지 않거나 오류가 없도록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 말고는 자율성을 발휘하기 힘든 환경이다.”[10]
관계에서 오는 번아웃
조직은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다. 때문에 관계의 충돌과 소원함도 번아웃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직장 내 리더와의 관계는 관계로 인한 번아웃의 주요 요인이다. 권위주의적인 리더는 위계를 두고 일방적으로 소통하거나 구성원에게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그들을 통제한다. 2016년 발간된 〈한국기업의 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리더 대부분은 전형적인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에 임원으로 재직 중인 외국인 T씨에게 한국의 수직적인 조직 문화는 마치 엄숙한 장례식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한국 기업의 임원실은 마치 엄숙한 장례식장 같다. 임원 앞에서 정자세로 서서 불명확하고 불합리한 리더의 업무 지시에 Why도, No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한국 기업의 업무 방식이 쉽게 개선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11]
리더는 명령하고, 구성원은 복종하는 형태의 소통은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낮추고 구성원의 자율적인 업무 방식을 폐기한다. 불명확한 업무 분장과 갑작스러운 업무 지시는 쉽게 야근으로 이어지고 그 사이에서 구성원은 빠르게 지쳐 간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와 조직과 리더가 원하는 결과에 대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니 구성원의 정신적 소진은 가속화된다.
업무 분담뿐 아니라 평가 방식과 보상 체계 역시 리더와 MZ세대 구성원 간 긴밀한 의사소통이 필요한 분야다. 평가와 보상이 객관적 기준이 아닌 리더의 주관이나 온정주의에 의해 이뤄진다면 구성원은 이를 신뢰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일의 의미를 찾거나 긍정적인 동력을 지속하기 어려워진다.
한편 관계에서 비롯하는 번아웃은 리더에게만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다. ‘독성적 조직 행동(Toxic Workplace Behavior)’이라 불리는 구성원의 행동 또한 번아웃을 가속화하는 요소다. 독성적 조직 행동이란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비협조적이거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 모욕적인 발언과 폭력적인 행동, 보편적 윤리관에서 벗어나는 행동이 대표적이다. 독성적 조직 행동을 마주한 구성원은 스스로를 가치 없다고 느끼고 조직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독성적 조직 행동을 경험하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번아웃을 호소하는 비율이 7.6배 높았고, 이직 의도도 6.3배 높았다. 독성 조직 문화는 번아웃의 60퍼센트 이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심지어는 연봉과 같은 보상보다 퇴사에 열 배 더 큰 영향을 미쳤다.[12]
간호사 조직에서 통용되는 용어인 ‘태움’과 같은 직장 내 괴롭힘은 대표적인 독성적 조직 행동이다. 태움이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로 선배 간호사가 욕설, 무시, 비하, 험담, 소문 등으로 신규 간호사를 괴롭히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태움의 희생자는 조직 내 나이가 어리거나 경력이 짧은 20~30대다. 2013년 연구에 따르면, 간호사 중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응답자는 61퍼센트였으며, 58퍼센트는 근무한 지 1년 이내에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13] 태움 문화로 인해 신규 간호사의 이직률은 2015년 34퍼센트에서 2019년 46퍼센트로 증가했으며,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14] 게다가 태움은 단순히 이직으로 끝나지 않는다. 태움 문화의 희생자인 간호사 A씨는 입사 5개월 만인 2018년 2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19년 1월, 29살 간호사 B씨도 같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독성적 조직 행동은 조직 전체의 발전을 저해할 뿐 아니라 한 개인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다음은 독성적 행동 리스트다.[15] 독성적 조직 문화가 강한 조직에서는 아래의 특성이 심하게 나타난다.
① 상사는 나를 조롱한다.
② 상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한다.
③ 나는 나에 대한 경멸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과 일한다.
④ 나는 나 자신이나 내 아이디어를 비하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⑤ 나는 나를 대화에 끼워 주지 않는 사람들과 일한다.
⑥ 상사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무시한다.
한편, 직장 내 인간관계의 충돌만큼 소외감과 외로움도 번아웃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다. 코로나 이후에 보편화된 원격 근무는 소외감을 더욱 심화시켰다. 원격 근무는 직장 내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신입 사원 교육과 온보딩 프로그램이 온라인으로 진행된 경우, 정확한 업무 전달과 지시에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회식과 같은, 타 구성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만한 자리가 마련되지 않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원격 근무가 뉴노멀로 자리 잡으며 몇몇은 MZ세대가 무조건 원격 근무를 선호할 것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조사한 결과, 입사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신입 사원의 64퍼센트가 원격 근무로 인해 ‘다른 구성원과 동떨어진 느낌을 받으며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답했다.[16] MZ세대는 완전한 원격 근무보다 사무실 출근, 혹은 둘을 결합한 하이브리드(Hybrid) 형태의 근무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17] 사회 초년생인 MZ세대는 사무실 근무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자연스레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다. 강력한 네트워크는 직장 내 동료, 선배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반이 돼 업무와 관련된 조언, 혹은 도움을 구할 수 있다.
탕핑족과 조용한 퇴사
번아웃 현상이 심화하며 새로운 사회 현상도 나타났다. 중국의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탕핑(躺平)’ 현상이 대표적이다. 탕핑은 ‘드러눕다’라는 뜻의 단어로, 996 직장 문화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이른다. 중국의 탕핑족은 치열한 경쟁을 피하고 쓸데없이 노력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996 문화에 맞춰 열심히 일해도 예전만큼의 보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전 세계 MZ세대 사이에서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 열풍이 불고 있다. 2022년 7월, 미국의 24세 엔지니어 자이드 칸(Zaid Kahn)이 올린 17초의 짧은 틱톡 영상이 조용한 퇴사 열풍을 불렀다. 조용한 퇴사란 일을 그만두지 않고, 받는 만큼만 일한다는 태도로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기꺼이 공짜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감수하며 번아웃에 잠기기보다 소극적으로 일하기를 택해 자신의 삶을 보호하는 것이다. 2022년 6월 갤럽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근로자의 과반 이상은 조용한 퇴사자다.[18] 퇴직하지 않고 회사에 남아 있지만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 지친 MZ세대들이 많아지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