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도 번아웃으로 괴롭지만, 그들과 함께 일하는 리더들도 고민이 많다. 다른 환경과 배경에서 자라온 세대이기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고, 그 사이에서 불가피한 갈등이 발생한다. 세대적 차이가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중재하는 책임은 조직 전체에게 지워져 있다. 조직은 다양한 체계를 통해 업무적 차원과 관계적 차원에서 리더와 구성원, 구성원과 구성원 사이를 조정할 수 있다.
일 다시 구성하기
과도한 업무량과 스트레스 방지
과로를 권하는 조직 문화는 번아웃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조직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과도한 업무량과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플랫폼 ‘비바(Viva)’를 통해 구성원 개인의 업무 강도와 패턴, 흐름을 측정한다. 시간 외 근무 현황과 회의 시간 등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구성원이 구조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지, 번아웃의 위험이 있는지 확인한다.[1]
더욱 확실한 과로 예방을 위해 조직은 직접 규칙을 만들 수도 있다. 이를테면 매주 금요일은 회의 없는 날로 지정한다거나 퇴근 시간 이후에는 업무 지시를 금지하는 등의 조치가 있을 수 있다. 이는 조직과 직무에 따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을 파악하고 그를 완충하는 공감대를 만드는 과정이다. 미국의 투자 금융 회사 ‘씨티그룹 (Citigroup)’은 원격 근무 이후 구성원들이 비대면 의사소통에 큰 피로를 호소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CEO인 제인 프레이저(Jane Fraser)는 줌 번아웃(Zoom Burnout)을 해소하고자 2021년 3월부터 매주 금요일을 ‘줌 없는 날(Zoom-free Fridays)’로 지정했다. 더 나아가, 제인 프레이저는 구성원들이 업무 시간 이외에는 충분히 쉬며 재충전할 수 있도록 업무 시간 이외에 회의나 전화를 하는 것을 자제하도록 권고했다.[2]
업무 유연성과 자율성 제공
업무를 직접 통제하고 조정하는 업무 통제감은 번아웃을 유의미하게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많은 기업은 유연한 근무 형태를 도입하며 구성원의 업무 통제권을 늘리려 했다. ‘네이버’는 주 5일 원격 근무, 혹은 주 3일 이상 사무실 근무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커넥티드 워크(Connected Work)’ 제도를 도입했다. ‘라인플러스’는 시차가 네 시간 이내인 해외 국가에서도 원격 근무를 허용하며 업무 공간의 선택권을 더욱 확대했다. 라인플러스의 직원들은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호주 등에서도 최대 90일간 근무가 가능하다.
업무 시간 차원의 자율성을 제공하는 제도로는 유연 근무제가 대표적이다. IT 기업 ‘NHN’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 사이, 시간적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일하는 ‘퍼플타임 제도’를 운영 중이다. 정해진 월 업무 시간을 다 채운다면 하루를 쉴 수 있는 ‘오프데이’도 주어진다.[3] 구글은 ‘20퍼센트 룰Rule’을 통해 일주일 업무 시간의 20퍼센트를 자신이 원하는 창의적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구성원의 시간적 자율성 아래에서 구글 핵심 사업인 ‘G메일(Gmail)’, ‘구글맵스 (Google Maps)’, ‘애드센스(AdSense)’ 등이 탄생했다.
휴가 제도 역시 효과적인 번아웃 예방책이다. 일주일 정도의 짧은 휴가가 아닌 한 달에서 1년 정도의 리프레시 휴가 제도는 구성원의 재충전을 돕는다. 카카오는 3년마다 한 달 동안의 유급 휴가를, 네이버는 3년 근속 시 최대 6개월의 무급 휴가를 제공한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도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기에 MZ세대의 반응 역시 긍정적이다. 네이버에 재직 중인 30대 A씨는 “내부에서는 이 제도 때문에 구성원들이 회사에 뼈를 묻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일에 대한 가치 부여
일에 대한 목적의식이 확실한 사람은 번아웃을 겪을 가능성이 낮아진다.[4] 조직이 업무의 중요성과 가치를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번아웃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와튼스쿨(Wharton School of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조직 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자신의 저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에서 한 가지 연구를 소개했다.[5]
해당 연구는 대학 기부금을 모금하는 콜 센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으로, 직원들에게 직접 학생들의 편지를 읽어 주거나 장학생과의 만남 자리를 주선했다. 단순히 학생들의 편지를 읽거나 학생들을 만났을 뿐인데도 기부금 실적이 다섯 배까지 향상됐다. 직원들은 자신의 일이 학생과 사회에게 어떤 의미인지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고, 이 깨달음은 업무 성과 향상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리더의 소통뿐 아니라 구성원이 수행한 업무가 사회와 조직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 직접 체험할 기회를 주는 방법도 좋다. 이를테면 주요 의사결정 회의에 참석할 기회를 주거나, 구성원이 직접 업무 수행 결과를 보고하게 할 수 있다.
관계 재건하기
리더의 지지와 소통
불과 20년 전만 해도 상명 하달식의 권위적인 리더십은 조직을 이끄는 당연한 구조였다. 군사 정권 시기를 거쳐 체화된 계급주의와 권위주의가 작은 조직에도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6] 권위적 리더십은 많은 이들을 한 방향으로 일사분란하게 이끌며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기업을 모방하고 뒤따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의 기업은 구성원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동력 삼아 성장한다. 이에 따라 리더십의 모습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 MZ세대에게 필요한 리더는 구성원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리더다. 이들은 빠르고 투명하게 소통하며 구성원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한다. 리더의 지지는 구성원에게 큰 힘이 되기 때문에 업무에서 겪는 좌절과 실패도 구성원이 쉽게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동력이 된다. 리더로부터 충분히 지지받는다고 생각하는 구성원은 그렇지 않은 이에 비해 번아웃을 70퍼센트 덜 경험한다.[7] 따라서 리더와 구성원 사이에는 더욱 활발한 소통이 필요하다. 소통은 리더와 구성원이 신뢰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평소의 불만을 파악할 수 있는 단계다.
물론 MZ세대가 원하는 대화는 리더의 일방적인 업무 지시나 간섭의 형태가 아니다. 업무 프로세스의 정확한 전달, 업무의 배경과 의미 전달이 업무적 소통의 기본 토대다. 이후 구성원 개인마다 겪고 있는 업무적 어려움이 있는지, 업무량은 적당한지, 어떠한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등을 체크할 수 있다.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 아닌 동료로서 구성원을 대한다면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대화가 오갈 수 있을 것이다.
번아웃 위험에 처한 구성원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아래 제시된 열 가지 번아웃 징후를 바탕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8]
① 최근 결근이 증가했는가.
② 업무 생산성과 성과가 떨어졌는가.
③ 실수가 더 많아졌는가.
④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가.
⑤ 업무에 대한 동기, 열정이 떨어졌는가.
⑥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는가.
⑦ 피드백에 과도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가.
⑧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태도가 보이는가.
⑨ 불면으로 인해 피로해 보이는가.
⑩ 조직 문화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가 보이는가.
몇몇 리더는 구성원의 잘못을 지적해야만 구성원이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믿음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쏟아지는 부정적 피드백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딜로이트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긍정적 피드백과 부정적 피드백의 이상적인 비율은 6:1이다.[9] 긍정적 피드백보다 부정적 피드백이 더 많을 때 성과가 가장 나빴으며, 부정적 피드백보다 긍정적 피드백이 두 배 많을 때 적당한 수준의 성과를 보였다. 부정적인 내용이나 약점을 중심에 놓기보다 구성원의 강점을 중점적으로 언급한다면 번아웃을 예방하고 업무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리더는 MZ세대에게 업무 관련 피드백을 보다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MZ세대는 ‘피드백 세대’로 불릴 정도로 공정한 보상과 그에 따른 피드백을 중시한다. 따라서 평가 이후에는 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하기보다 결과가 나온 과정을 설명하고 그에 따른 피드백을 제공해 불필요한 마찰을 줄일 수 있다.[10] 수시로 제공되는 피드백 역시 MZ세대에게 좋은 동력이 된다. 실제로 Z세대의 65퍼센트 이상은 피드백을 자주 받는 것을 선호하며,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피드백 받기를 원한다고 답한 바 있다.[11]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Adobe)’는 평가 공정성에 대한 구성원의 불만을 받아들여 연말에 진행하던 평가 면담 제도를 폐지했다. 대신 실시간 소통과 대화를 통해 성과를 점검하는 ‘체크인(Check-in)’ 제도를 마련했다. 체크인 제도를 통해 상황에 따라 성과 목표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었고 덕분에 구성원의 성과 역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구성원이 필요로 하는 시점에 적절한 조언을 하기에도 유리했다. 체크인 제도 도입 후 어도비의 퇴사자는 30퍼센트 감소했다.[12]
독성적 조직 행동 막기
갤럽이 주관한 연구에 따르면 번아웃을 초래하는 모든 요인은 직속 리더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었다.[13] 리더십 스타일은 MZ세대 구성원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성과만으로 리더를 선임하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리더십 스타일을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리더를 선임한 이후에도 다양한 독성적 행동 제재 방안을 도입할 수 있다. 실제로 구글은 리더 자신이 본인의 리더십 스타일을 돌아보고 발전할 수 있도록 반기마다 리더 상향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상향 평가 결과와 피드백을 통해 구성원과 소통하는 리더는 향후 평가 점수가 개선되는 경향을 보였다.
지속적인 독성적 행동으로 동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리더와 구성원에게는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을 적용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따돌림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경우 사실 관계 확인 후 보직을 면하거나 징계하는 등의 불이익을 부과할 수 있다.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소속감 강화
리더와 동료는 번아웃의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번아웃을 예방하는 안전장치가 될 수도 있다.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의 윤대현 교수는 마음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연결’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직장 내 구성원 중 마음을 터놓고 연결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번아웃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14]
그렇다면 조직의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확대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활용할 수 있을까? 익숙한 개념인 멘토링 역시 좋은 방법이다. 멘토와 멘티는 서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다. 구글은 더욱 적극적인 동료 연결을 제도화하고 있다. 2016년 시작된 구글의 정신 건강 지원 제도인 ‘블루 닷 프로그램(Blue Dot Program)’은 누구나 편하게 동료와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제도다. ‘블루 닷’이라고 불리는 파란 스티커를 붙인 구성원은 정신 건강 지원 훈련을 거쳐 인증받은 사람이다. 이들은 동료의 심리적 어려움을 듣고 함께 고민한다.[15]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IBM’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정신 건강 동맹(Mental Health Ally)’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훈련을 마친 사람들은 공인된 배지를 받아 조직 내에서 활동한다. 동료 간의 네트워크를 위한 다양한 제도는 동료의 스트레스를 파악하고 서로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강화한다.[16]
해결을 위한 기반
그러나 구성원이 번아웃 예방을 위한 제도를 이용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쓸모를 잃는다. 따라서 실질적인 방안을 계획하기 이전 근본적인 인식 변화와 문제 점검이 선행돼야 한다.
편견 넘어서기
캐나다 소프트웨어 기업 ‘비지어(Visier)’가 발표한 2021년 번아웃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37퍼센트는 조직 내에서 번아웃을 앓고 있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번아웃이 자신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일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었다.[17] 게다가 대부분의 MZ세대는 사회 초년생이기 때문에 번아웃을 겪는다는 이유로 업무 조정, 휴직, 직무 이동 등을 요구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여있다.
SAP는 2020년부터 ‘당신은 괜찮나요?(Are you OK?)’라는 이름의 정신 건강 캠페인을 시작했다. 캠페인 기간 동안 다양한 강연이 제공된다. 구성원들은 강연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방법, 명상 프로그램 등을 배울 수 있다. 이러한 선제적 조치는 편견으로 인해 정신 건강 서비스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구성원에게 효과적이다. 조직 차원에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리더에게 정신 건강 서비스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전문가들은 리더가 먼저 나서서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을 공유하는 걸 추천한다. 이를 통해 구성원은 자신의 어려움이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18] 정신 건강을 돌보는 일은 아직 사회적으로 낯선 개념이다. 다양한 편견과 장벽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회복이 가능한 시기를 놓쳐 더 큰 어려움에 빠진다. SAP의 캠페인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조직의 노력으로 읽을 수 있다.
서베이로 해결책 발견하기
실질적인 해결 방법을 설립하기 이전, 기업마다 존재하는 번아웃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사전 단계가 중요하다. 각 조직에 맞는 해결책을 고안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구성원의 니즈와 어려움을 파악하는 ‘펄스 서베이(Pulse Survey)’를 실행할 수 있다. 펄스 서베이는 일 년에 한 번 실행하는 정기 서베이와 달리 일주일, 혹은 한 달 주기로 진행된다. 주기가 짧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구성원의 상태 변화를 파악하기 용이하다.
펄스 서베이를 유용하게 활용한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Adidas)’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아디다스는 일곱 개 문항으로 구성된 짧은 서베이를 매달 실행했다. 첫 부분의 공통 질문으로 “이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추천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주어져 전반적인 만족도를 측정한다. 조직별로 구성된 문항을 만들어 시기와 상황에 맞는 만족도를 측정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주관식 문항을 활용해 미처 기업이 파악하지 못한 이슈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19]